소설리스트

현질 전사-266화 (265/297)

# 266

현질 전사

-11권 18화

그들이 폐쇄된 고속도로 톨게이트를 도보로 지나쳤을 때, 온 사방에서 요란하게 사이렌 소리가 울렸다.

도심지 쪽에서 소란이 일어나는 것을 보아하니 또다시 몬스터 브레이크가 일어난 것이 분명했다.

광필두와 그 동료들은 그 틈을 타 고속도로의 차 하나를 빼앗아 타고 서울을 벗어났다.

그리 오래 달리지 않아 용인에 다다라서 그들은 도주를 멈추었다.

마법을 남발한 설유란이 길을 더 가지 못할 지경이 되었던 것이다.

"한 병으로는 안 되겠어, 더 줘."

설유란이 하는 말에 광영식이 머리를 흔들었다.

"아까 인비저블 마법 쓰기 전에 세 병이나 마셨잖아. 조금 전에 마신 게 마지막이야."

"젠장......."

설유란은 고운 얼굴에 걸맞지 않은 욕설을 뇌까렸다.

마법사의 화장이 엉망진창으로 번져 몰골이 다소 기괴했다.

지쳐 보이기는 광영식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그의 이능은 특이한 대신에 정교함이 떨어졌다.

아직 나이가 어리고 실전 경험이 부족한 탓도 있을 것이다.

광필두는 광영식을 턱짓하고 말했다.

"여기서 쉬었다 가자. 은신처를 만들 수 있겠어?"

광영식은 고개를 끄덕였고 그의 이능을 이용해서 고속도로 밑 배수로에 은신처를 만들었다.

주위의 물건들을 되는대로 끌어와 만든 것이라 초라하기 그지없었으나 딱히 몸을 의탁할 데도 없었고, 수배령이 떨어졌을 테니 호텔 같은 곳을 찾아 들어가긴 무리였다.

설유란은 침낭을 몸에 감기가 무섭게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광영식도 피로에 지쳐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광필두는 그를 억지로 깨워서 에너지 바를 먹였다.

그리고 자신도 요기를 한 뒤 잠시 휴식을 취했다.

몬스터 브레이크 탓인지 고속도로를 달리는 자동차 소리가 뚝 끊겼다.

해가 지고 달이 떴을 땐 사방에 적막이 가득했다.

광필두는 눈을 붙이려고 노력해봤으나 잠이 오질 않았다.

광영식 역시도 마찬가지인지 그가 작은 목소리로 물어왔다.

"이제 어쩔 셈이야?"

광필두는 그 말에 대답하는 대신 다른 소리를 했다.

"잠깐이라도 자."

광영식은 눈을 내리감았고 어둠 속에서 광필두는 홀로 앉아 있었다.

얼마간을 그렇게 있다가 소리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은신처를 벗어나 어딘가로 걷기 시작했다.

걷다 보니 버스정류장 옆에 자전거 보관소가 보였다. 거기서 자전거 한 대를 뜯어내어 길을 달리기 시작했다.

그가 자전거를 달려서 도착한 곳은 용인에 있는 대규모 던전이었다.

던전의 위험 등급 자체는 그다지 높지 않았으나 적당한 난이도의 다양한 몬스터들이 출몰하는지라 꽤 대중적인 던전이었다.

헌터들이 많이 오가는 곳인 만큼 던전 입구에 온갖 노점의 흔적과 게시판에 어지럽게 붙어 있는 광고들이 보였다.

그러나 지금은 텅텅 비어 있었는데, 잇따른 몬스터 브레이크로 인해 대부분의 던전들이 출입금지 상태가 되었던 것이다.

광필두는 던전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철조망을 쉽게 뜯고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던전 입구로 발을 내디뎠다.

기묘한 위화감이 스쳐 지나고 나서 보인 것은 끝도 없이 펼쳐진 사막이었다.

바깥은 밤인데 하늘에 무려 세 개나 되는 해가 이글거리며 타오르고 있었다.

숨이 턱턱 막히는 더위가 끼쳐왔으나 광필두는 성큼성큼 사막으로 발을 내디뎠다.

여기는 그에게 익숙한 곳이었으므로 걷는 발길에 거침이 없었다.

조디악 공격대에 있을 적에 몇 번이고 와본 적이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걷던 광필두는 가는 길에 몇 번인가 몬스터를 마주쳤다.

소규모 코볼트 무리를 처치하고 드레이크 두어 마리를 작살내며 던전 깊은 곳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모래 거인의 영역 부근에 이르러 발길을 멈추었다.

등 뒤로 낯설지 않은 인기척이 느껴졌던 것이다.

광필두는 잠자코 몸을 돌렸고 줄곧 그의 뒤를 따라오고 있었던 것처럼 말없이 선 사람을 보았다.

"정대식."

광필두가 부르는 소리에 정대식은 분노를 숨기지 않았다.

"광필두."

그가 내뿜는 살기에 살갗 위로 소름이 돋았다.

무더운 사막에서 추위가 느껴질 정도로 살벌한 기세였다.

동시에 그의 몸 주변으로 일렁거리는 마력의 푸른빛이 일었다.

이따금 스파크를 탁탁 튀기며 일어나는 마력의 기운이 오싹했다.

"아주 죽고 싶어 환장을 했지? 목숨만은 살려주려 했던 내 행동을 바보짓으로 만들어 버리다니."

광필두는 궁니르를 다시 잡고 말했다.

"난 목숨을 살려 달라 한 적이 없다."

"내가 너를 쫓아올 거라는 사실을 알고서 기철민을 죽이려고 한 거냐?"

"그건 모르겠고 내가 궁니르를 갖고 있으면 네가 나타날 거라는 사실은 알았지."

자신의 행동 패턴이 읽혀버렸다는 불쾌감이 정대식이 인상을 찡그렸다.

그는 다우징으로 궁니르의 위치를 파악했고, 그게 뜻밖에도 가까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불길한 예감을 느꼈다.

이미 광필두가 그것을 차지하고 있을 가능성을 점쳤던 것이다.

불길한 예감은 어김없이 들어맞는 법.

궁니르를 쫓아 들어온 던전에는 광필두가 그것을 가지고 서 있었다.

던전에 들어오기 직전에 허미래가 보내온 메시지로 광필두의 도주와 기철민이 큰 부상을 입었단 사실을 알게 된 정대식은 적의로 불타오르고 있었다.

"그래서 이 던전으로 들어온 거냐?"

"그래. 남들의 방해를 받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그렇게 말하는 광필두를 보고 정대식이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겨우 궁니르 하나를 가지고 나와 대적하겠다는 거냐? 내겐 네 이능 파괴가 통하지 않아!"

"그거 말인데."

광필두는 드물게 미간을 찌푸리고 말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모르겠더군. 네 이능이 뭔지 말이야. 네가 단순한 올인원이 아니라는 사실은 알겠다."

그는 곧 궁니르로 정대식을 겨누고 물었다.

"너, 도대체 정체가 뭐냐?"

정대식은 이를 드러내고 으르렁거렸다.

"내가 설마 그걸 가르쳐 줄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대답해줄 거라고 생각한 건 아니다. 그냥 물어본 거지."

"실없는 소리를 들으러 널 찾아온 게 아니다."

"궁니르를 가져갈 참인 거겠지."

"그래."

광필두는 의아하다는 듯이 말했다.

"네겐 이미 7성 무구에 준하는 무구가 있다. 그런데 왜 7성 무구를 완성하려고 드는 거지? 네가 그것을 손에 넣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을 사람들이 많을 텐데. 더욱이, 마갑은 여전히 듀라한의 손에 있지 않은가? 7성 무구를 가질 작정이라면 그건 왜 그대로 둔 거냐?"

"멍청한 놈, 너는 작금의 사태를 보고도 느끼는 바가 없냐?"

"작금의 사태라고?"

"몬스터 브레이크 말이다!"

정대식은 목에 핏대를 올리고 외쳤다.

"솔직히 말하자면 내겐 7성 무구 같은 거 필요 없어! 나한텐 이미 마기전이 있고...... 실은 마기전이고 나발이고 다 필요 없다는 말이야. 내가 원하는 바는 지극히 소박하다. 나는 원래라면 평범한 강남 건물주가 되어서 잘 먹고 잘사는 게 꿈이었단 말이야!"

다소 어이없는 이야기에 광필두는 입을 다물었고, 분개한 정대식이 팔다리를 휘둘러가며 고함을 쳤다.

"그런데 너 같은 놈들이 내가 평화롭게 살도록 내버려 두질 않잖아! 네놈만이라면 다행이지, 오래지 않아서 대규모 몬스터 브레이크가 일어난다고 하니 별수 있냐! 가능한 방법은 다 동원해봐야 할 거 아냐! 그래서 7성 무구를 모으려는 거다!"

광필두는 문득 피식 웃었다.

그가 웃으리라고는 생각을 못 했기에 정대식은 깜짝 놀랐다.

그런 정대식을 보고 광필두가 황당하다는 식으로 말을 이었다.

"네가 무슨 만화 주인공도 아니고, 지금 세상의 구원자가 되겠다고 나서는 거냐?"

"......본인 입으로 세상을 끝장내겠다고 한 사람이 할 소리가 아닌데."

"난 그저 내게 주어진 사명을 받아들인 것이다. 내 능력이 세상으로부터 배척받았으니, 나 역시도 그러는 것뿐이야.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지. 그런데 너는 소박하게 사는 것이 꿈이라면서 세상을 구하겠다고?"

"제기랄, 나도 좋아서 이러고 있는 게 아니라고. 세상이 다 불타고 없어지면 내가 무슨 수로 떵떵거리고 살 수 있겠어. 세상천지 나와 몬스터밖에 없다면 부귀영화가 다 무슨 소용이냔 말이야. 그러니 내가 세상의 구원자...... 비슷한 노릇을 하겠다는 것은 영웅이 되고 싶어서가 아니야.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에서다."

그렇게 말을 하던 정대식이 문득 묘한 표정을 했다.

이상스러운 기분이 든 것은 광필두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광필두는 세상을 망치고 싶어 했고, 정대식은 세상을 구하고 싶어 했으나 그 동기는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에 있었다.

광필두가 세상을 망치고 싶어진 것은 그가 그런 능력을 타고났기 때문이었다.

정대식 역시도 세상을 구할 만한 능력을 갖고 있기에 구원자의 입장에 서게 되었을 뿐이었다.

둘은 닮은 것 같으면서도 달랐고, 다른 것 같으면서도 달랐다.

그 사실이 기이했으나 그게 격돌을 피할 만한 핑곗거리가 되지는 못했다.

"......어쨌든, 여태껏 네게 악감정은 없었다. 네가 기철민을 그 지경으로 만들어 놓기 전까지는 말이야.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내 사람은 건드리지 말았어야지."

"우리가 싸워야 하는 이유가 한 가지 더 보태진 것뿐이다. 덤벼라."

"선공을 양보한 걸 후회하게 될 거다. 단번에 끝장을 내주지......!"

정대식이 눈을 파랗게 빛내며 공격을 시작했다.

"마력파-!"

우우우우우우웅-----------------

그의 몸이 떨리는 것 같아 보인다 싶더니만 칼날과도 같이 날카로운 마력의 파동이 허공으로 쏟아져 나왔다.

그러자 사막의 모래알갱이들이 일제히 사방으로 밀려나며 엄청난 먼지구름을 만들어냈다.

물론, 파동의 한가운데 있던 광필두는 그 먼지구름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그는 궁니르로 자신의 마력을 쏟아부었고 정대식에게 공격을 가해 자신에게로 덮쳐드는 파동의 충격을 상쇄시키려고 했다.

"흐읍!"

궁니르가 새하얗게 백열하며 마력의 파동을 꿰뚫었다.

광필두는 궁니르에 몸을 딱 붙이고 고개를 숙인 채 폭풍을 헤치는 조각배처럼 파동을 견디고 또 견디며 그 파괴력을 견뎌내었다.

이윽고 파동이 사그라졌다 싶었던 그때.

퍼버버버버버버벙!

마력탄의 비가 쏟아져 내렸다.

광필두는 궁니르를 세차게 저으며 그 마력탄들을 모조리 다 쳐냈다.

그러나 공격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이번에는 빔과 같은 마력포가 날아들었고 광필두는 궁니르를 휘두르며 몸을 날렸다.

그를 쫓아 마력장이 사방팔방으로 비산하고 광필두는 반격의 기회 한번 잡지 못한 채로 방어하기에 급급했다.

그것도 오래가지 못했다.

콰르르르르르르르!

별안간 발밑의 모래가 태산처럼 일어났다.

처음엔 모래 거인이라도 나타난 줄 알았으나 아니었다.

거대한 파도처럼 일어난 모래가 광필두의 머리 위로 쏟아져 내렸다. 모래가 쏟아져 내리며 그 성질이 변하며 날카로운 유리질과 같아졌다.

그것이 다이아몬드와 같은 강도로 광필두를 덮쳐들었고, 그는 순식간에 그 속에 파묻혔다.

생매장당하는 기분을 느끼며 허우적거리던 광필두는 궁니르를 붙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그리고 의식을 집중시켜 궁니르를 통해 자신의 마력을 외부로 방출했다. 그러자 그를 땅 밑으로 묻어버릴 기세이던 모래알갱이들이 사방으로 터져나갔다.

콰과과과과과과과!

광필두는 그 가운데서 솟구쳐 올라 정대식을 향해 궁니르를 휘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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