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5
현질 전사
-11권 17화
선팅이 되어 있어 내부가 잘 보이지 않았으나 거기에 설유란과 광영식이 타고 있다는 사실은 금세 알아차릴 수가 있었다.
꾸드득, 꾸드득!
주위를 나란히 달리고 있던 자동차들이 별안간 변신을 시작한 것이다.
그 차에 타고 있던 사람들이 놀라서 아우성을 치고 곧 따라온 고덕화와 허미래가 그들을 차내에서 급히 빼냈다.
그러고 나자 자동차들이 무슨 트랜스포머처럼 변했다.
물론 영화에서 나오는 것처럼 멋들어진 로봇이 나타났다는 것은 아니지만 기철민을 위협하기에는 충분했다.
기철민은 좌석을 포탄처럼 토해내는 버스의 공격을 피해 소형차 위에서 뛰어올랐고, 그러자 덤프트럭과 여러 차들이 엉켜가며 기철민을 덮쳐왔다.
고덕화와 허미래는 거기에 휘말린 일반 시민들을 구조해내기에도 바빴으므로, 기철민은 허리춤에서 티르브링어를 꺼냈다.
"천광쇄도!"
번-쩍!
쐐애애애액!
티르브링어가 눈 부신 빛을 뿜었고 그 자체가 검기가 되어 소형차 쪽으로 날아갔다.
그러자 소형차 주변으로 방어막이 생성되어 공격이 다소 상쇄되어버렸다.
콰창창!
차 천장이 우그러지고 유리가 몽땅 깨어져 날아갔으나 차는 여전히 달리고 있었다.
"이런!"
티르브링어의 상태가 온전히 않은 상황이라 방어막을 뚫지 못한 것이다.
제아무리 영구 강화를 걸어놓았다고 하더라도 반 토막 나버린 날을 억지로 이어 붙여 놓았으니 제 성능을 발휘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기철민이 낭패함에 혀를 차는 사이, 반격이 날아들었다.
"매직 애로우!"
파바바바바밧!
소형차 안에 타고 있던 설유란이 운전대를 광영식에게 맡겨놓고 기철민에게 공격을 퍼부었다.
기철민은 탈라리아를 이용해 그 공격을 피하고 다시금 티르브링어를 휘둘렀다.
"천광비검!"
"매직 쉴드!"
설유란이 식겁하며 다시 방어막을 쳤으나 소형차는 두 번의 공격을 버텨내지는 못했다.
꽈과광!
엔진에 불이 붙었는지 폭발음이 울리며 소형차가 까만 숯덩이가 되어 아스팔트 도로 위를 굴렀다.
동시에 도로를 난장판으로 만들며 기철민을 노리던 변신 차들이 힘을 잃고 우르르 쓰러졌다.
기철민은 혹시 차 안에 타고 있던 설유란이나 광영식이 죽은 게 아닌가 싶어 찔끔했으나, 도로 위로 튕겨 나온 그들은 신음을 내뱉고는 있어도 방어막 덕택에 괜찮아 보였다.
기철민은 그들을 향해 티르브링어를 겨누고 말했다.
"이제 그만하지그래? 조만간 지원군이 올 테니 너희에겐 승산이 없어."
설유란은 씩씩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건 두고 보면 알 일이지. 파이어 볼!"
설유란이 공격을 재개하던 그때, 시민들의 대피를 마친 고덕화와 허미래가 합류했다.
고덕화는 즉시 천강벽수선을 휘둘러 바람의 벽을 쳤고, 그 바람에 역풍을 맞은 파이어볼의 불꽃이 도로 설유란과 광영식을 덮쳤다.
놀란 설유란이 이를 악물고 파이어볼을 없앴다.
그리고 이번에는 좀 더 큰 마법을 준비하는 듯 눈을 꼭 감고 무슨 말들을 중얼거렸다.
그러자 광영식이 그녀의 마법이 완성될 동안 시간을 벌기 위해 나섰다.
"깨어나라!"
광영식의 몸에서 마력의 빛이 솟구쳐 사방으로 흐르자 도로 주위에 널브러진 차들과 가로등 같은 것들이 다시금 움직이기 시작했다.
가로등의 쇠가 끼기기긱 듣기 싫은 소리를 내며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기철민을 향해 쓰러지기 시작했다.
쾅! 쾅! 쾅!
아스팔트가 박살 나고 그 공격을 피하는 기철민의 주변으로 자동차들이 일제히 폭발했다.
콰과과광! 퍼버버벙! 펑!
다행히 허미래의 서포트로 기철민은 다친 데가 없었다.
기철민은 자꾸 성가시게 구는 꼬맹이를 처치하기 위해 이를 드러냈다.
"천광쇄도!"
그때였다, 설유란의 마법이 터져 올랐다.
"어스퀘이크 쇼크!"
쿠구구구구구구궁!
별안간 땅이 요란하게 흔들리더니 도로가 무슨 파도처럼 물결을 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바닥에 깔린 아스팔트가 깨져 꾸득꾸득 일어나고 소화전에서 물이 터져 오르며 전깃줄이 뒤엉켜 사방팔방으로 쓰러졌다.
동시에 주위의 건물들까지 피해를 보기 시작해 허미래가 이를 악물고 사방팔방에 와이어를 풀었다.
허미래가 흔들리는 건물들을 붙잡고 있는 사이, 설유란이 온몸의 문신을 번쩍거리며 두 팔을 허공으로 치켜들어 이불이라도 터는 것처럼 크게 흔들었다.
"하앗!"
그의 몸에서 폭포수처럼 쏟아져 나온 마력이 땅을 진동시켰고, 진도 12 정도를 넘어가는 정도의 극심한 흔들림이 국지적으로 일어나 그들이 선 자리를 완전히 뒤엎어 놓았다.
콰과과과과과과과광!
그 난리 통에 설유란과 광영식의 모습이 사라지고 기철민도 무너지는 땅속으로 끌려들어 가지 않으려고 몸을 피하느라 그들을 쫓지 못했다.
그러나 엄청난 규모의 마법이니만큼 효력이 길지 않았다.
흔들림은 곧 가라앉았고 호미로 뒤엎은 것처럼 엉망진창이 된 도로가 잠잠해졌다.
자욱이 일어난 흙먼지가 가라앉아 기철민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리고 저쪽에서 반쯤 파묻히다 만 자동차를 밟고 서 있는 한 사람을 보고 눈을 크게 떴다.
"광필두?"
설유란과 광영식이 은밀하게 도망치기는 글렀고, 둘이서는 더 이상 안 되겠나 싶었나 보다.
봉인을 깨트리고 속박의 구슬에서 광필두를 꺼낸 모양이었다.
광필두는 잠시 상황을 판단하듯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는 속박의 구슬에 갇혀 있던 것치고는 지나치게 멀쩡해 보였다.
베르세르키르 파우더를 쓴 후유증으로 하마터면 쇼크사할 뻔했으나 정대식의 도움으로 상태를 회복한 것이다.
하지만 기철민은 더 이상 그가 두렵지 않았다.
그에겐 7성 무구가 하나도 없었고 이능 파괴 능력도 기철민에게는 별 소용이 없었다.
애초에 기철민이 타고난 이능이 별 볼 일 없는 탓이기도 하고, 지난번 광필두와 마주쳤을 때와는 달리 티르브링어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기철민은 정대식이 이능 파괴에 당해도 그 능력을 복구시켜 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를 거리낄 이유가 없어 자신만만하게 그를 티르브링어로 겨냥하고 말했다.
"야 이 개새끼야. 다시 보니 무지하게 반갑네. 이번에야말로 내 손으로 널 박살 낼 수 있게 되어 기쁘기 그지없다."
광필두는 기철민의 거친 말에도 동요가 없었다. 그는 침착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보아하니 한국으로 돌아온 모양이군."
"그래. 원래대로라면 속박의 구슬에 처박힌 채 재판을 기다려야 하겠지만, 네 동료들이 네 콧구멍에 바람 좀 쐬어주려고 눈물겨운 노력을 했지. 자! 바람 다 쐤으면 이제 그만 감옥에 갈 준비하라고."
기철민이 떠드는 말을 듣고 광필두는 고개를 기울였다.
"정대식은 어디 있지?"
자신을 눈앞에 두고 정대식을 찾는 말에 기철민은 화를 냈다.
"대장님이 없어도 너 따윈 한주먹거리야!"
"내가 네 이능을 파괴했을 텐데."
"그래서, 뭐! 그게 뭐가 중요한데? 이능 파괴 능력만 있으면 만사가 다 해결될 거 같았냐? 이능 파괴자라는 별명이 꽤 무시무시하긴 한데, 그거뿐이잖아? 너야말로 7성 무구 없이는 허수아비나 마찬가지라고. 빈손으로는 네 이능 파괴가 두렵지 않은 사람을 제압할 능력이 없어!"
손안에 티르브링어가 있었기에 기철민은 의기양양하게 외쳤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광필두는 조금도 초조하거나 불안해 보이지 않았다.
그는 기철민이 지적하는 바를 무시하고 담담하게 물었다.
"날 구한 것은 설유란인가?"
기철민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에 설유란이 소리를 쳤다.
"광필두!"
그의 이름을 크게 부른 설유란이 그에게로 무언가를 집어 던졌다.
광필두는 뒤를 돌아보며 손을 들어 올렸고, 기철민은 눈을 크게 떴다.
설유란이 광필두에게 던지는 게 뭔지는 몰라도, 그걸 넘겨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본능적으로 찾아들었다.
"천노참격!"
기철민은 쓸데없이 떠든 것을 후회하며 광필두를 죽일 작정을 티르브링어를 위에서 아래로 내리꽂았다.
번-쩍!
티르브링어의 섬광이 하늘을 가르고 기철민은 정확히 광필두의 정수리를 노렸다.
틀림없이 검기가 광필두의 정수리를 꿰뚫는다 싶었던 그때.
까라라라라랑-!
귀청을 찢어발기는 날카로운 금속음이 들렸다.
티르브링어의 검기가 사방으로 흩어지며 기철민은 그의 공격을 막아낸 광필두의 모습을 확인할 수가 있었다.
그의 손에는 웬 창 하나가 들려 있었다.
유리로 만든 것 같이 투명한 몸체에 오색으로 빛나는 날이 붙어 있는 장창이었다.
기철민은 그게 뭔지 몰랐으나, 왠지 본능적으로 그 무구의 정체를 깨달을 수가 있었다.
기철민은 기함하고 소리를 질렀다.
"궁니르!"
광필두는 장창을 가볍게 휘둘러보고 그것으로 바닥을 쿵, 짚고 서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궁니르다."
기철민은 놀란 나머지 말을 더듬었다.
"구, 궁니르는...... 없어진 게 아니었나? 아무도 그 위치를 모른다고 그랬었는데!"
"내가 모른다고는 안 했다."
그제야 기철민은 광필두가 러시아에 혼자 나타난 이유를 깨달았다.
그가 철저히 혼자인지라 러시아에 나타난 것이 아니었다.
광필두는 자신이 마갑 델라니포스를 가지러 가는 사이에 설유란과 광영식에게는 장창 궁니르를 가져오라고 말을 해두었던 모양이다.
그로 인해 정대식의 시선이 광필두에게 쏠린 틈을 타, 설유란과 광영식이 궁니르를 찾아서 지금 그에게 넘겨준 것이다.
광필두는 곧 장창을 들어 기철민을 겨냥했다.
"간다."
그리고 앞으로 가볍게 내찔렀다. 기철민은 반사적으로 티르브링어를 들어 방어를 하려고 했다.
구우우--------우우웅!
궁니르가 우주를 불태우며 날아가는 혜성과도 같이 이글거리는 빛을 내뿜었다.
티르브링어도 마찬가지로 눈부신 섬광을 발산하며 그 공격을 막아내려고 했다.
평소였더라면 궁니르와 티르브링어의 위력이 엇비슷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 티르브링어의 상태는 평소와도 같지 않았다.
그게 결정적인 패인이었다.
꽈-----------꽈과과과과광!
기철민은 티르브링어의 섬광이 산산이 조각나는 광경을 보았다.
연이어 정대식이 영구 강화로 이어 붙여 놓았던 칼날까지도 완전히 박살이 나버렸다.
곧 궁니르의 타오르는 빛이 기철민을 덮쳤고, 그는 짧게 후회를 했다.
'역시, 티르브링어에만 의지할 게 아니라 실력을 더 키우는 거였는데.'
등 뒤에서 허미래가 무어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고덕화도 답지 않게 악을 쓰고 있었다.
그들이 자신을 구해내려 한다는 사실은 알았으나 이미 늦은 것 같았다.
기철민은 온몸이 티르브링어처럼 깨지는 기분 속에서 눈을 질끈 감았다.
* * *
기철민을 끝장내 놓고 도주하는 광필두를 그 누구도 뒤쫓지 못했다.
펜리르 부대원들은 기철민의 목숨 줄을 붙잡고 있느라 정신없었고, 나머지 인물들은 그를 추격할 만한 능력을 갖추고 있지 못했다.
설령 있다고 하더라도 그럴 용기가 안 났을 것이다.
미지의 무구로 알려져 있던 궁니르를 소유한 데다가, 이능 파괴의 능력까지 갖추고 있는 그를 붙잡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어찌 되었건 1차 광필두 체포 작전은 실패로 돌아간 것이 분명했다. 그들은 설유란의 인비저블 마법을 통해 현장을 벗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