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2
현질 전사
-11권 14화
여러 사람들이 오가는 편의점 앞에서 음료수와 과자를 펼쳐두고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었기 때문이다.
정대식은 대답 대신 씩 웃으며 윤현민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러자 얼굴이 벌게진 윤현민이 쑥스러워하며 말했다.
"러시아는 어땠어요? 거긴 완전히 몬스터 밭이라던데."
"그래, 엄청나더군."
"체르노보그를 직접 보지는 못했겠죠?"
"아니, 직접 봤는데? 직접 보기도 했고, 이 손으로 쓰러트리기도 했지."
"저, 정말이에요?"
윤현민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입을 쩍 벌리고 있더니 말을 마구 더듬었다.
"진짜로 체르노보그를...... 쓰러트렸단 말이에요?"
"그래. 이 형이 누구냐."
정대식이 피식거리며 말을 하자 윤현민이 제자리에서 펄쩍거리며 두 손을 흔들었다.
"우와! 개 멋있어......! 그게 진짜라면 지금 당장 파워 랭킹이 수정되어야 해요! 아니지, 공식 랭킹도 수정될 거예요. 지금 형이 파워 랭킹 3위인데, 체르노보그를 쓰러트렸으면 당장에 1위가 되겠죠! 공식 랭킹도 마찬가지겠죠? 씨 서펜트에다가 헤르보르에다가 체르노보그까지...... 5대 거신 중에 무려 둘을 쓰러트린 거잖아요!"
"알았으니까 조용히 좀 하고 제자리에 앉지그래?"
"세상에! 내가 랭킹 1위 인물하고 같이 음료수를 마시고 있다니......!"
윤현민은 감격한 듯 몸을 부르르 떨었다.
정대식도 좀 새삼스럽기는 했다. 러시아로 떠나기 전까지만 해도 랭킹이 수정되기 전이라서 순위가 크게 대단치 않았다.
공식 랭킹 겨우 100위권, 파워 랭킹 50위 권쯤이었던 것 같은데 그사이에 1위로 뛰어오르다니.
명실상부 세계 최강임을 공인받는 셈이었다.
윤현민은 랭킹 1위를 미리 기념하는 뜻에서 사인을 새로 받아야겠다고 했다.
사진은 추적의 위험이 있으므로 삼갔지만 사인이야 못 해줄 것 없었으므로 거절하지 않았다.
정대식이 모처럼 만에 가벼운 마음으로 노닥거리고 있던 그때.
콰앙!
별안간 어디서 굉음이 들렸다. 동시에 차들이 경적을 울리는 소리가 들렸고 연거푸 차가 부딪치는 소리가 울렸다.
"뭐, 뭐예요?"
윤현민이 깜짝 놀라서 목을 길게 뺐다.
정대식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길을 걷던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다들 하던 행동을 멈추고 긴장 속에서 소란이 일어나는 쪽을 주시하고 있었다.
정대식은 그 광경에서 전과는 다른 분위기를 느꼈다.
명백한 위기의식에 그동안 여러 차례 일어났던 소규모 몬스터 브레이크로 사람들이 다들 몬스터의 출현을 겁내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퍼어엉-!
그때 별안간 가스가 폭발하기라도 했는지 큰 불길과 함께 연기가 뭉게뭉게 일었다.
그리고 도무지 인간의 것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만한 울음소리가 들렸다.
"크워어어어어어어어-!"
그 소리를 듣자마자 사람들이 아우성을 치며 달아나기 시작했다.
"꺄아아아악!"
"모, 몬스터다!"
"도망쳐!"
사람들이 사방팔방으로 흩어지고 도로 위 차들이 뒤엉키는 가운데 폭발이 일어난 부근에서부터 인파가 쏟아져 나오는 광경이 보였다.
그리고 그들 뒤로 펄쩍펄쩍 뛰는 괴생명체가 보였다.
그 윤곽은 낯이 익었다.
"푸카다!"
그것은 나귀와 비슷하게 생긴 몬스터였다.
옆으로 긴 귀가 삐죽 튀어나와 있었고 네발로 달렸는데 안면은 고블린처럼 생긴 괴상한 몬스터였다.
그것은 사람 머리를 입속에 집어넣고 질식시켜 죽이거나 발굽으로 차서 죽이거나 했다.
그게 도로를 따라 사방팔방으로 뛰어다니고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 뒤로 흡혈 괴물인 겔로와 오크 같은 놈들이 뒤따라서 오고 있었다.
정대식은 그 광경을 보고 아연실색했다.
'이 근처에는 던전이 없는데? 이놈들이 도대체 어디서 기어 나온 거지? 설마 인근에 또 새로운 던전이 생겨난 것인가?'
어찌 되었든 놈들이 닥치는 대로 사람들을 해치고 있었으므로 우물쭈물할 때가 아니었다.
정대식은 즉시 스킬을 사용했다.
"창조!"
한 마리씩 직접 상대하기에는 그 수가 지나치게 많았으므로 정대식은 창조 스킬로 서른 마리의 서번트를 만들어내었다.
사람보다 머리 하나가 작은 크기에 병사 모습을 한 서번트들이 사방으로 달려나가 몬스터를 상대하기 시작했다.
정대식은 서번트들이 놓친 몬스터들을 다중 조준을 이용해서 처치했다. 그리고 엔트로피를 불러냈다.
"엔트로피!"
<부르셨습니까, 정대식 님.>
느닷없이 나타난 엔트로피를 보고 윤현민은 깜짝 놀랐다.
그가 으헉 소리를 지르는 것을 개의치 않고 정대식이 말했다.
"즉시 다른 쪽으로 가서 몬스터들을 처치하고 사람들을 지켜!"
<알겠습니다.>
엔트로피가 날아가는 것을 보고 정대식은 윤현민을 돌아봤다.
"넌 지금 즉시 안전한 곳을 찾아서 숨어."
"아, 안돼요!"
"왜?"
윤현민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폭발이 일어난 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 저...... 저쪽에 우리 집이 있단 말이에요! 집에 가족들이 다 있어요!"
바로 그곳에서 몬스터들이 달려 나오고 있었다.
정대식은 혀를 짧게 차고 윤현민에게 종잇장처럼 얇은 마력장을 펼쳐 보호막을 입혔다.
"내 뒤에 바싹 붙어서 따라와라!"
"예!"
정대식은 그를 데리고 길을 건넜다. 그리고 이 난리가 일어난 근원지라고 생각되는 방향으로 향했다.
그러자 상가와 주택가가 마주 닿아 있는 교차로 한가운데, 검은 구멍이 뚫려 있는 게 보였다.
'저것은...... 역시나! 던전이다, 새로운 던전이 생겨난 거야!'
그 입구에서 몬스터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정대식은 즉시 그곳으로 달려가 오크 몇 마리의 목을 잘랐다. 그리고 마기장을 너르게 펼쳐서 아예 그 입구를 틀어막아 버렸다.
임시방편으로 그렇게 해두고 아파트와 주택가가 늘어선 주거 지역으로 달려갔다.
이미 그곳에도 몬스터가 버글버글했던 것이다.
"다중 조준!"
정대식은 사람들을 쫓아 달려가는 몬스터들을 겨냥해 총알처럼 작게 응축한 마력탄을 날렸다.
그것만으로도 몬스터들이 우르르 쓰러졌다.
그러자 저만치 앞서서 난동을 부리고 있는 오크 한 무리가 보였다.
정대식은 사정 볼 것 없이 그놈들을 향해 손을 휘둘렀다.
곧 오크 놈들이 무언가에 베인 듯 허리가 두 동강 나 바닥에 나동그라졌다.
그 광경을 보고 윤현민이 이 와중에도 경탄을 금치 못했다.
"괴, 굉장하다......! 세상에!"
그렇게 혼자서 몬스터 수십 마리를 순식간에 박살 내다보니 금방 상황이 정리되었다.
윤현민은 곧 어느 빌라를 향해 달렸고, 몬스터들이 다 죽은 것을 보고 빌라 밖으로 나오던 사람들을 보고 소리를 쳤다.
"엄마, 아빠!"
"현민아!"
아마도 윤현민의 가족들인 것 같았다.
그들이 무사해 보여서 정대식은 멀찍이서 안도의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딱히 인사말을 남기지 않은 채 몸을 돌리고 아까의 그 던전으로 되돌아왔다.
던전 입구 주변의 교차로에는 망가진 차들과 죽은 몬스터의 시체가 즐비했다.
오래지 않아 엔트로피가 되돌아와 임무의 완수를 알렸다.
<나머지 몬스터들은 전부 처치했습니다.>
그가 만들어낸 서번트들도 남은 놈들을 다 죽였는지 정대식의 곁으로 모여들고 있었다.
정대식은 일단 서번트를 없애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 난리가 났는데도 시가지 한복판이라서 그런지 사람들이 귀퉁이에 숨어서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거나 동영상을 촬영하고 있었다.
목숨 아까운 줄 모르는 작자들이다 싶었으나 던전이 생겨난 위치가 안 좋았다.
이런 도심지 한복판에 던전이 생기다니 심히 염려스러웠다.
'일단은 던전 안으로 들어가 보스몹까지 완벽히 처치해야겠군.'
정대식은 입구를 막아둔 마력장을 해지하고 안으로 발을 디뎠다.
짧은 위화감이 지나치고 그는 어두운 동굴처럼 생긴 던전 안을 보았다.
뛰쳐나온 몬스터들의 수준을 보아하니 그리 위험 등급이 높은 던전은 아니었다.
그러나 보스몹을 찾으려면 다소 시간이 걸릴 터였다.
성가시다고 생각한 정대식은 자신이 생각한 바를 한번 시험해 보기로 했다.
'체르노보그가 쓰러졌을 때 던전도 함께 붕괴가 되었다. 잘하면 보스몹을 죽여서 당분간 위험을 없애는 것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아예 던전을 없애서 닫아버리는 것이 가능할지도 모른다.'
던전은 크든 작든 하나의 세계였다.
지구와는 별도의 차원에 존재하는 몬스터들의 세상인 것이다.
그러니 그것을 파괴할 만한 힘이 있다면, 적어도 지구로 통하는 던전의 입구를 부술 수 있다면 던전을 영구히 없앨 수 있는 것이다.
'한 번쯤 시도해볼 가치는 있겠지.'
정대식은 그의 온몸을 감싸고도는 압도적인 힘을 느꼈다.
평소 그것은 없는 것처럼 그의 내부에 잠겨 있었으나, 그가 그것을 느끼고자 하면 바다나 하늘, 혹은 우주와 같이 밀려들어 넘쳤다.
그것은 레벨 9의 힘이었고 여신급으로 진화한 마기전의 힘이기도 했다.
정대식은 깊이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단번에 그 힘을 모조리 풀어놓았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앗-------------!
Chapter 66. 전쟁의 시작
<새로운 던전의 계속적 출현>
<인류 멸망의 신호탄?!>
<연이은 몬스터 브레이크로 인명피해 속출>
<정부, 몬스터 브레이크 종합 대책반 꾸려>
<피난 갈 곳도 없는 시민들>
<전국 대규모 대피령>
기철민은 포털 사이트의 주요 뉴스 제목을 훑어보다가 <인류를 구원할 자, 누구인가>라는 제목의 기사를 클릭해 보았다.
그러자 대문짝만하게 정대식의 얼굴이 떠오르며 수많은 광고창이 줄을 이었다.
기철민은 광고창을 하나하나 눌러 끄고 그 기세를 읽어보기 시작했다.
기사의 내용은 제법 상세해서, 찌라시라고 치부할 수만은 없는 구석이 있었다.
<러시아의 암흑신, 체르노보그의 소멸에는 현 타이탄 공격대 소속이자 펜리르 부대원의 부대장이며 유일한 올인원으로 잘 알려져 있는 정대식이 깊이 관여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최근 정대식은 공식 랭킹 9위, 파워 랭킹 1위로 발돋움하는 기염을 토했다. 그러나 일전에 비밀리에 귀국한 것으로 알려진 펜리르 부대에서 그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고 알려져 있었다. 그 사실을 두고 여러 추측이 오가는 가운데.......>
기철민은 연관 기사를 눌러보았다.
마찬가지로 광고창이 수두룩 빽빽하게 떠서 그걸 다 끄려니 몹시 성가셨다.
<행방이 묘연한 정대식, 그는 과연 어디로 갔다는 말인가? 각성자 연맹의 관계자 말에 따르자면 러시아에서 광필두와 정대식이 일전을 벌인 것은 사실이며, 그 결과 정대식이 7성 무구 중 다섯 개의 무구를 획득한 것으로 짐작되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그가 자취를 감추면서 각성자 연맹과 헌터 협회 일원에서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는 눈치다.>
<각성자 조직실에서는 말을 아꼈으나 국가기물금고를 습격하여 뢰를 탈취한 광필두는 현재 그 신병을 구속당한 상태로 알려져 있다. 조만간 거기에 관한 공식 발표가 있을 예정이며, 재판을 거쳐 엄벌에 처해질 것이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