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질 전사-255화 (254/297)

# 255

현질 전사

-11권 7화

Chapter 64. 여신급 진화

블라디미르 대령의 추적을 따돌리기 위하여 그들은 왔던 길로 되돌아가는 대신에 우크라이나 키예프를 통해서 유럽의 포탈을 이용하기로 했다.

사실상 모스크바 일대가 체르노보그의 영향력 아래 놓이게 되면서 우크라이나와 폴란드까지도 큰 피해를 보았기에, 그쪽 루트를 이용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가장 큰 문제는 방사능이었다.

1차 몬스터 브레이크가 일어났던 시절. 혼란과 공포에 빠졌던 인간들은 핵무기를 사용했고, 특히 체르노보그가 유럽으로 건너오는 것을 막기 위하여 국경 일대에 핵무기를 다량 투하했다.

그로 인해 이 지역은 아직까지도 방사능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었으므로, 방사능 변이를 일으킨 몬스터들이 득시글거리고 있었다.

당연히 그 어떤 교통편도 남아 있지 않았으므로 도보로 이동해야 했다.

다행히 펜리르 부대에는 공간 마법을 쓸 줄 아는 서지원이 있었다.

그가 붕괴하는 던전에서 정대식을 구해낸 것을 보면 그 실력이 비약적으로 향상된 게 틀림없었다.

그러나 서지원은 펜리르 부대원들을 자신의 능력으로 옮기는 것을 적잖이 부담스러워했다.

"그땐...... 그땐 어떻게든 대장님을 살려야겠다는 생각에 필사적이었어요. 공간 마법을 성공시키지 못하면 그대로 죽을 판국이었으니 요행이 통한 것이지요. 그 바람에 체르노보그의 마력을 흡입해야 했고 결과적으로는 죽을 뻔하기도 했고요. 그러니 한두 명도 아니고 여러 명을 장거리로 옮기는 것은 어렵습니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차원의 틈바구니에 갇혀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되거나 짜부라져 흔적도 안 남고 사라지게 되는 수가 있어요."

서지원이 겁을 집어먹고 하는 말에 정대식은 그의 능력을 쓰는 것은 최소화하기로 했다.

만에 하나를 위해 방사능 수치가 지나치게 높은 곳만 건너뛰기로 합의를 한 것이다.

그러자 이재우가 불만을 늘어놓았다.

"가뜩이나 블라디미르 대령이 부하들을 줄줄이 거느리고 뒤쫓아 오고 있는데 그냥 좀 쓰면 안 돼? 그럼 쓸데없이 몬스터들이랑 싸울 필요도 없고 좋잖아."

그 말에 서지원이 당장에 인상을 험악하게 찌푸렸다.

"원한다면 지금 당장 한국으로 날려 보내주지. 도중에 잘못돼도 상관없다면 말이야."

"아니 뭐......."

이재우는 금방 쭈그러들었고 정대식은 가능한 한 빠르게 러시아를 벗어날 방법을 궁리했다.

그는 일단 방사능이나 기압, 강풍 등등에서 부대원들을 보호하기 위하여 마기장을 막처럼 얇게 펼쳐 그들의 몸 위에 입혔다.

예전에 둥근 마기장을 부대원들 머리에 헬멧처럼 뒤집어씌워 물속에서건 재 속에서건 자유롭게 숨 쉴 수 있게 한 것을 업그레이드 한 셈이었다.

그 보호막을 둘러쓰고 있으면 모두가 정대식의 영향력으로 안전하게 보호되는 셈이니 설령 방사능을 뒤집어쓴다 해도 오염되지 않을 수 있었다.

거기에 더해서 이재우와 마력 접속을 하고 거대한 종이비행기를 만들게 했다.

"전원이 여기에 올라타 하늘을 날아가도록 하겠다. 도중에 비행형 몬스터의 공격을 받게 될 수도 있겠지만 가능한 한 날아서 블라디미르 대령의 추적과 거리를 벌려두도록 하지."

펜리르 부대원들은 전원 종이비행기에 탑승했고 이재우가 곧 그것을 공중에 띄웠다.

사실 그것은 이재우의 마력만으로 하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만들어낸 종이비행기에 지속적으로 마력을 주입하여 안정적인 운행을 해야 하니 상당한 집중력과 마력 양이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정대식은 이재우와 마력 접속을 계속 유지하고 있어야 했다.

더불어 펜리르 부대원들에게 씌운 보호막도 지속해야 했으므로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할 말은 아니지만 경치 좋네."

정대식과 이재우의 고생을 아는지 모르는지, 편하게 종이비행기에 올라타 하늘을 날아가게 된 부대원들이 발아래 펼쳐지는 풍경을 보며 감탄했다.

답답한 비행기에 갇힌 채로 하늘을 나는 것도 아니고 맨몸으로도 바람이나 기온, 기압 등등에 영향을 받지 않았으므로 아주 편안한 상태에서 비행을 즐길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도 오래가지 않았다.

정대식이 우려한 대로 모스크바를 벗어나 얼마 날지 않아서 비행형 몬스터들이 들이닥쳤다.

"꽤애애애액!"

"끼아아아아악!"

하피 떼거리였다.

이재우와 정대식은 비행에 집중하고 있었으므로 나설 수 없었다.

대신에 고덕화가 실라이론을 불러내 앞으로 나섰다.

"풍조우순!"

콰르르르르르르르르르!

강력한 바람의 파도에 떠밀려 하피들이 사방팔방으로 흩어져 버렸다.

하피들은 기를 쓰고 다시금 덤벼들었으나 그때마다 고덕화가 강풍으로 그들을 날려버렸다.

이윽고 공격을 포기한 하피들이 사라지고 나자 이번엔 더 강력한 적이 나타났다.

"히포그리프, 히포그리프다!"

히포그리프는 가고일이나 그리폰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보기 힘든 몬스터였다.

특히 동아시아 쪽에서는 발견된 바가 없어 펜리르 부대에는 생소한 몬스터였다.

그러나 5, 6성급의 위력적인 몬스터인 것은 사실이라 하늘 위에서 맞닥뜨리기에는 버거운 상대였다.

정대식은 혹시 몰라 관측 스킬로 히포그리프의 약점을 일러주려 했지만, 그 전에 기철민이 먼저 자리를 떨치고 일어났다.

"저놈은 내가 맡지."

기철민은 탈라리아를 이용해 순간적으로 허공에 몸을 띄웠다.

그리고 티르브링어를 가볍게 휘둘렀다.

"천광비검!"

파바바바바바바바밧!

티르브링어에서 쏘아져 나간 수백 개의 불덩어리가 히포그리프를 강타했다.

히포그리프는 절묘한 비행으로 그 공격을 피했으나 전부 다 피하지는 못하고 날개를 한 방 얻어맞았다.

놈이 비틀거리는 틈을 타 기철민은 일격을 가했으며, 히포그리프는 순식간에 몸이 두 동강 나버렸다.

허공에서 거대한 몬스터의 몸뚱이가 쩍 갈라지며 피가 비처럼 쏟아지는 광경이 희한하게도 장관이었다.

정대식은 엔트로피를 시켜 재빨리 그 사체를 아공간에다 수습했다.

아무런 수확이 없던 것은 아니었으나 정대식의 기분상 빈손으로 돌아가는 기분이라 가능한 돈이 될 만한 것을 모아갈 참이었다.

그래야 부대원들에게 수입을 안겨주고 생색이라도 좀 낼 게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하면서 하늘을 날아가고 있던 그때.

정대식의 눈을 번쩍 뜨이게 하는 광경이 보였다.

"저게 뭐지?"

정대식이 핵폭탄이 떨어진 후유증으로 완전히 황폐화되어버린 땅을 보고 하는 말에 모두가 일제히 목을 길게 뺐다.

파괴되어 한쪽 면이 완전히 뭉개진 산꼭대기에 웬 둥지 같은 것이 보였다. 거기에 하얗게 빛나는 알이 하나 놓여 있었다.

정대식의 질문을 듣고 엔트로피가 말했다.

<드래곤의 알이로군요.>

"드래곤의 알이라고?"

정대식으로선 귀가 번쩍 뜨이는 말이었다.

드래곤의 알이라니!

살아있는 몬스터의 알은 굉장히 희귀했다.

가고일이나 그리폰의 알도 어마어마한 값으로 거래가 되고 있는데, 그게 드래곤의 알이라면 더할 나위 없었다.

상점에 팔아도 돈이 되고 그냥 팔아도 돈이 될 것이다.

정대식은 저거라도 건져가야겠다는 생각에 즉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걸 가져가야겠군."

"대장님, 지금 밑으로 내려가시겠다는 말입니까?"

드래곤의 알이라면 응당 주위에 알을 지키는 드래곤이 있다는 말이었다.

무슨 종류의 드래곤인지 알 수는 없어도 상대가 드래곤이라면 당연히 위험할 터였다.

정대식이 혼자 몸이라면 또 모를까, 그는 현재 이재우와 마력 접속을 해 있는 상태이고 부대원들의 보호막을 유지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드래곤과 격전을 벌이다가 주의가 흐트러지기라도 한다면 부대원들이 전원 방사능에 노출될 수도 있는 것이다.

제아무리 돈이 좋다지만 안전이 우선인 법.

기철민은 그를 말리려 들었으나 정대식은 아래로 내려갈 생각이 없었다.

심지어 비행을 멈출 작정도 아니었다.

그는 이재우에게 나는 속도를 조금 늦추라 말하고 엔트로피를 쳐다보았다.

"엔트로피, 네가 할 수 있겠지?"

엔트로피는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그 광경을 보고 부대원들이 술렁거렸다.

엔트로피가 정대식의 분신과도 같은 서번트라는 것은 익히 아는 사실이다.

그러나 서번트는 서번트일 뿐이다.

서번트가 단독으로 드래곤과 상대한다는 말은 듣도 보도 못한 것이다.

<그럼 신속히 처치하고 오겠습니다.>

엔트로피의 모습은 바람에 휩쓸리듯 사라졌다.

곧 드래곤의 알이 있는 산꼭대기 부근에서 그 모습이 드러나 보였다.

그러자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산 밑에서 거대한 드래곤 한 마리가 나타났다.

"캬아아아아아아아아!"

길게 울부짖는 드래곤은 온몸이 탈색된 것처럼 희었다.

더불어 네 장의 날개를 갖고 있었고 빨판 같은 다섯 개의 꼬리가 붙어 있었다.

드래곤은 그것을 이용해 높은 산마루에 달라붙은 채로 엔트로피에게 괴성을 질렀다.

엄청난 피어가 그곳을 지나쳐 날아가고 있는 펜리르 부대원들에게까지 들려왔다.

"으으윽!"

"멀리 떨어져 있는데도 몸이 떨려!"

"엄청난 놈이다, 도대체 몇 성급일까?"

"적어도 10성급은 되는 거 아냐?"

펜리르 부대원들은 수런거리며 엔트로피와 싸우는 드래곤을 쳐다보았다.

드래곤은 이리저리 날아다니는 엔트로피에게 아이스 브레스를 쏟아냈다.

말이 아이스 브레스지 그것은 닿는 즉시 모든 것을 얼려버리는 강력한 브레스였다.

그러나 엔트로피가 그 공격에 직격당한 것 같지는 않았다.

어렴풋이 온갖 무기를 장착한 장갑으로 변신한 엔트로피가 보였고 곧 그쪽이 소란스러워졌다.

콰과광!

콰앙!

폭음이 일어나는 가운데 종이비행기가 격전지에서 멀어져 자세한 내용이 보이지 않았다.

엔트로피를 뒤에 두고 가던 길을 마저 재촉하는 정대식을 보고 허미래가 걱정스러운 듯이 말했다.

"저대로 놔 눠도 되는 건가요?"

정대식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 응. 이제는 링크에 딱히 거리 제한이 있는 것도 아니고......."

"예?"

"엔트로피가 내 마력으로 구성된 존재이기는 하지만 그러니만큼 내가 가진 능력을 온전히 사용할 수 있으니 상관없어. 더욱이 스스로 자유의사를 가지고 판단을 내릴 수 있으니까 알아서 잘 싸우겠지."

레벨 9가 되면서 정대식은 엔트로피와의 링크에 제약이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그 전까지는 엔트로피에게 자유의지가 생겼다고 하더라도 정대식과의 거리가 지나치게 떨어져 버리면 연결이 끊어져 소환이 해제되어버렸다.

하지만 레벨 9가 되고 나니 그런 한계점조차 없어져 엔트로피는 또 하나의 정대식이나 마찬가지였다.

정대식의 마력과 스킬을 온전히 다 쓸 수 있는 데다가 스스로 판단하여 싸울 수 있으니 정대식은 편하게 앉아서 명령만 해도 되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문득 궁금증이 찾아들었다.

만약에 레벨 10이 되면 엔트로피는 어떻게 진화하게 되는 것일까?

지금 상태에선 성능이 더 개선될 것도 없는 것 같은데, 하고 의문하며 정대식은 태평하게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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