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2
현질 전사
-11권 4화
파직 거리며 튀어 오르는 마력들을 보아하니 그가 무엇을 삼킨 것인지 알 것 같았다.
정대식은 치밀어 오르는 한숨을 삼키며 중얼거렸다.
"베르세르키르 파우더를 먹은 거냐......."
일명 광전사의 가루, 버서커의 뼛가루 등등으로 불리는 그것은 헌터들 사이에서는 일종의 금지 약물이었다.
먹는 즉시 신체 상태를 극한까지 끌어올려 주면서 마력 양을 두 배로 부풀려주는 사기템이었으나 그 후유증이 죽음에 이를 정도라고 하여 금지 약물 취급을 받고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게까지 해서라도 베르세르키르 파우더를 쓰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것은 엄청난 고가에 거래가 되었고 사기를 당하는 사람들은 많아도 실물을 보기는 하늘의 별 따기에 가까웠는데, 광필두가 먹은 것은 아무래도 진품이었던 모양이다.
"푸우, 푸우......."
광필두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정대식을 노려보았다.
그의 몸에서 마력이 발작하며 날뛰는 것이 보였다.
곧 그가 딜라이트 소드를 그에게 겨누자 그 날이 여태까지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한 빛으로 발광하는 것이 보였다.
정대식은 그 모습을 보고 입술을 비틀며 말했다.
"죽는 한이 있더라도 7성 무구를 포기하지 않겠다 이거냐? 좋다, 네가 그걸 원한다면야....... 엔트로피!"
<부르셨습니까, 정대식 님.>
정대식은 홀연히 나타난 엔트로피를 무장시키기 위해 통합 스킬을 써서 새로운 스킬을 만들었다.
"에고 웨펀!"
그우우우우웅!
여러 종류의 스킬이 에고 웨펀의 형식으로 통합되어 단번에 적용되자 순식간에 엔트로피의 모습이 엄청난 크기의 주먹을 달고 있는 장갑병으로 변모했다.
정대식은 그녀를 허공으로 날려 보내며 말했다.
"단번에 저 자식을 날려버리자고!"
<알겠습니다.>
"으아아아아아!"
광필두가 딜라이트 소드를 내뻗으며 덤벼들자 거기에서 눈 부신 빛이 사방팔방으로 쏘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아이템의 효과로 인해 마력의 두 배로 뻥튀기되어서 그런 것인지 쏟아지는 빛 공격에 마기전이 진동하는 게 느껴졌다.
정대식은 그 눈부심에 눈을 가늘게 떴다. 곧 발광하는 딜라이트 소드가 머리 위로 날아들었다.
정대식은 왼팔을 들어 올려 그 공격을 막아냈다.
꽈르르르르르르릉!
빠지지지지직!
경천동지할 만한 굉음과 섬광이 폭발해 올랐다.
정대식은 딜라이트 소드의 날이 자신의 팔을 파고드는 것을 느꼈다.
마력이 한껏 주입된 딜라이트 소드가 마기전의 방어력을 갉아먹으며 정대식의 육체로 파고들고 있었다.
딜라이트 소드의 무서운 점이 과거와 현재, 미래의 시간 전반에 걸쳐서 공격을 가한다는 점이라, 레전드급으로 진화한 마기전조차도 온전히 막아내지를 못하고 있는 것이다.
아마 강철 신체나 완전 신체가 없었더라면 순식간에 팔이 두 동강 나고 말았을 터였다.
'엄청나다......! 7성 무구가 다 모여 여신급으로 진화한다면 당해낼 수 있을지 미지수다!'
정대식은 어금니를 꾹 물었다 놓으며 오른팔을 내뻗었다.
"강화...... 강력권!"
뻐어어어어어엉!
광필두의 명치로 정확히 주먹이 들어갔다.
광필두가 헉 숨을 삼키는 광경이 보였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치명상을 입혔다고 보기에는 어렵다.
브릴리언트 아우라 아머가 번쩍거리며 그 방어력을 자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진정으로 치명상을 입히기 위해서는 시간차가 거의 없는 제 이격이 필요했다.
"엔트로피!"
사실 엔트로피를 소리쳐 부를 필요는 없었다.
그녀는 그와 온전히 의식을 공유하고 있었고 정대식과 한 몸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이번에 완전히 결착을 내야 한다는 생각에 절박해져 절로 부르는 소리가 튀어나왔다.
그러자 그 부름에 응답하듯 엔트로피의 주먹이 정대식의 옆구리를 아슬아슬하게 스쳐, 광필두의 명치로 틀어박혔다.
"카악!"
광필두는 피를 왈칵 토했다.
그게 정대식의 얼굴에까지 튀었으나 어찌 된 일인지 딜라이트 소드의 빛이 더욱 강해졌다.
이윽고 폭사하듯 그 빛이 부풀어 오르며 모든 것을 집어삼켰다.
구우우우우우우웅!
파아아아아아아-!
공격의 여파가 사방으로 퍼지며 검은 재가 수십 킬로미터 밖으로 확 밀려났다.
순식간에 바닥에 수북이 쌓여있던 재가 사라져버려 파묻혀 있던 땅이 드러나 보였다.
이윽고 빛이 꺼져 들었을 때, 정대식은 자신의 팔이 바닥을 나뒹구는 것을 보았다.
기어코 광필두가 그의 팔 하나를 잘라내고 만 것이다.
그리고 그 팔과 함께 광필두도 엎어져 있었다.
그는 온몸의 구멍에서 다 피를 토하며 발작하고 있었다.
정대식의 팔을 자르는데 모든 마력을 다 쏟아부어 베르세르키르 파우더의 효과도 끝나버린 모양이었다.
일순 그의 신체를 한계까지 몰아붙였던 버서커화가 종료되자 그 후유증으로 쇼크가 닥쳐든 것이다.
"으윽."
정대식은 팔이 잘린 고통에 이를 악물었다.
제아무리 신체가 강화되었다고 해도 육체가 훼손되는 고통이 아무렇지 않을 수는 없었다.
정대식은 식은땀을 흘리며 재빨리 잘린 팔을 집어 들어 절단면에 갖다 붙였다.
팔이 잘렸으되 마기전으로 인하여 피도 흘리지 않았고 상처가 오염되지도 않았다.
아마 그대로 놔두면 완전 신체로 인하여 서서히 새 팔이 자라나게 될 터였다.
그러나 그런 끔찍한 장면을 오래 보고 싶지는 않았으므로 정대식은 잘린 팔을 붙였고 그러자 순식간에 세포가 엉겨 붙으며 복구를 시작했다.
물론, 그것도 엄청나게 아팠다.
팔이 잘린 것보다 더 아픈 것 같았다.
"크아악!"
정대식은 신음을 내뱉으며 제자리에 주저앉았다.
팔이 단번에 도로 붙었으나 극심한 고통이 지나고 난 후유증으로 몸에 오한이 끼쳤다.
그러나 마기전이 곧 그의 상태를 정상화해주었고, 정대식은 서둘러 피를 쏟으며 발작하는 광필두에게 스킬을 썼다.
"각성!"
파아아아아!
정대식의 마력이 그를 뒤덮어 발작이 그쳤다.
한데 죽기라도 했는지 숨을 쉬지 않았다.
정대식은 욕설을 퍼부으며 치료 스킬을 썼다.
하지만 치료 스킬의 레벨이 그렇게까지 높지 않아서 그런가 아무 반응이 없었다.
"야, 광필두! 정신 차려!"
아무리 그래도 광필두를 죽이기까지 하고 싶지는 않았던 정대식은 그를 살려보려 애를 썼다.
그러면서도 엔트로피에게 7성 무구를 회수하라고 당부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엔트로피, 이놈한테서 7성 무구를 몽땅 벗겨내! 그리고 이 녀석을 살릴 만한 아이템 좀 찾아봐. 포션이든 뭐든 좀 먹여야겠어!"
정대식이 다급하게 말하는 소리를 듣고 엔트로피가 나타나 7성 무구를 회수했다.
엔트로피는 그것을 즉시 아공간에 털어 넣었고, 정대식은 그녀를 다급히 재촉했다.
"빨리해! 진짜 숨을 안 쉰단 말이야!"
<완전 회복 포션이 있습니다만, 구입하시겠습니까?>
"그래, 구입해!"
<완전 회복 포션의 가격은 100억입니다.>
"젠장, 더럽게 비싸네, 알겠으니까 빨랑 사!"
<완전 회복 포션을 구입하고 100억을 차감합니다.>
파아아아앗!
정대식의 손아귀에 약병이 나타났고 정대식은 그것을 황급히 광필두의 입에다가 부어 넣었다.
그리고 광필두를 바로 눕혀놓자 막혀 있던 그의 숨통이 터졌다.
"허억."
크게 숨을 들이쉬며 몸을 벌떡 일으켰던 광필두는 다시 뒤로 쓰러져버렸다. 그러나 출혈이 멎었고 안색도 호흡도 안정적으로 되돌아와 있었다.
정대식은 그가 멀쩡한 것을 보고 안도의 한숨을 쉬며 벌러덩 주저앉았다.
체르노보그와 싸우고 업그레이드를 마치기가 무섭게 광필두와 또 한바탕 했더니 몹시 피곤한 기분이었다.
그의 몸에서 긴장이 빠져나가자 자연스럽게 마기전의 형태가 사라지며 정대식의 모습도 원래대로 되돌아왔다.
그래서 그런지 더 기운이 빠지는 것 같아 정대식은 잠시 멍하니 앉아서 넋을 놓았다.
그러고 있으니 그를 부르는 가느다란 목소리가 들렸다.
"대장님......."
그쪽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다름 아닌 허미래였다.
그녀는 엉망이 된 얼굴을 들어 그를 보더니만 자리에서 비틀비틀 일어났다.
그리고 눈물을 왈칵 쏟으며 이쪽으로 후다닥 달려왔다.
"대장님!"
"허미래."
허미래는 넘어지듯 정대식의 품으로 달려들어 그를 끌어안고 펑펑 울었다.
그녀가 왜 우는지 알 것 같았으므로 정대식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다른 부대원들의 상태가 어떤지를 한번 훑어보았다.
다들 광필두와 일전을 치른 데다 정대식과 광필두가 싸운 여파로 정신을 잃은 채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었다.
정대식은 엔트로피에게 그들을 치료하고 일으키라 이르고 허미래를 위로했다.
"걱정 많이 했지? 이제 괜찮아. 체르노보그도 광필두도 다 해결됐다."
"흑, 흑...... 어허어엉...... 무, 무사하셔서 기뻐요."
"그래. 나도 기쁘네."
"그, 그치만 어떡해요...... 저, 능력을 잃어버렸어요...... 이제 더 이상 각성자라고 부르기가 어려워졌단 말이에요......."
허미래는 대성통곡을 하며 말을 이었다.
"저뿐만이 아녜요. 펜리르 부대원들이 전부, 전부 다 이능이 파괴되어...... 으헝엉엉엉."
정대식은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며 아무 걱정하지 말라고 말을 하려 했다. 그런데 그때, 저쪽에서 기묘한 현상이 일어났다.
허공이 일그러지며 소용돌이치더니, 별안간 거기에 검은 구멍이 생겨난 것이다.
그 구멍의 모습은 낯이 익었다.
정대식은 미간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저건...... 던전의 입구?"
그 말을 듣고 허미래도 눈물 젖은 얼굴을 들어 뒤를 돌아보았다.
그녀는 곧 얼굴을 양손으로 훔치면서 어리둥절한 듯이 말했다.
"저게 뭐죠? 아까까진 아무것도 없었는데."
"지금 막 던전이 새로 생겨난 것인가?"
정대식이 영문을 몰라 하며 자리에서 일어나자 잠자코 있던 엔트로피가 한마디를 했다.
<제가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정대식은 그녀를 돌아보았고 엔트로피는 담담히 고했다.
<최후의 전쟁이 코앞으로 닥쳤다고 말입니다.>
정대식은 그 말을 듣고 신음을 삼켰다.
그는 새로이 던전이 생겨난 곳이 여기뿐만이 아님을 깨달았다.
더 많은 던전의 입구가 지구 곳곳에 생겨났을 터.
그 안에서는 여태껏 보지 못한 무수한 몬스터들이 인류의 멸망을 위하여 준비하고 있을 것이다.
* * *
알렉세이는 악몽 속을 헤매고 있었다.
평소에도 악몽을 자주 꾸는 편이었으나 오늘은 그 내용이 좀 달랐다.
체르노보그가 나와 세상을 파괴하는 대신 처음 보는 남자가 등장했다.
알렉세이는 그자가 낯익다고 생각했으나 누구인지 도통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자가 알렉세이를 보고 한 마디를 지껄이자 자신의 몸이 헝겊 조각처럼 갈기갈기 찢겼다.
-신께서 네 능력을 거두어 가셨다.
「으아아악!」
듀라한은 비명을 지르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앉았다.
그러자 놀란 듯이 코앞에 있던 정대식이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났다.
「으으음?」
듀라한은 눈을 깜박이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는 막사 안의 간이침대에 누워 있었고 올인원인 정대식과 펜리르 부대원인 여자가 함께 있었다.
듀라한은 막사 밖에 펜리르 부대원들이 캠프를 차리고 불 주위에 둘러앉아 있는 광경을 보았다.
사방은 어두웠으나 그 어둠은 체르노보그가 만들어낸 암흑과는 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