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질 전사-248화 (247/297)

# 248

현질 전사

-10권 25화

정대식은 듀라한이 광필두와 싸우다가 이능을 파괴당했다는 사실을 전해 듣고 이를 으드득 갈았다.

"그 자식......! 최희의 능력도 망가트려 놓았다더니 이제는 아주 거칠 것이 없는 모양이군!"

<7성 무구 중 하나인 마갑을 지키려고 현재 펜리르 부대원들이 광필두와 싸우고 있는 중입니다.>

"망할! 그래선 안 돼, 자칫 잘못하다가는 부대원들이 모조리 능력을 잃어버리게 될 거야!"

<다행히 아직까지는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습니다.>

"벌어지지 않았다고는 해도 시간문제인 거 아냐! 이놈의 업그레이드는 도대체 언제 끝나는 건데!"

역정을 내는 정대식을 보고 엔트로피가 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허공에 업그레이드가 얼마나 진행되었는지가 떠올랐다.

"67% 진행되었군. 아직도 한참이나 남았잖아!"

<그렇게 초조해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이곳은 정대식 님의 의식이 만들어낸 공간이므로 현실 세계와는 시간 감각이 다릅니다.>

"여기가 더 느리다는 거야?"

<그렇습니다. 뜻하는 바에 따라 더 느리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빠르게는 안 돼?"

<빠르게는 안 됩니다. 말씀드렸다시피 업그레이드를 위한 의식의 재조정 중이라, 그 시간을 앞당길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젠장, 꼼짝없이 갇힌 꼴이로군!"

정대식은 투덜거리며 씩씩대다 문득 생각난 바를 물었다.

"아, 그렇지. 마기전! 마기전은 어떻게 됐어?"

마기전을 완성하기 위하여 그 먼 길을 달려 체르노보그와 싸우기까지 하지 않았던가.

마기전만 있었으면 자폭권같이 위험한 스킬을 사용하지 않고도 놈을 상대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동시에 체르노보그를 쓰러트리고 거의 의식이 날아가다시피 한 상태인지라 자신이 마기전을 제대로 챙겼는지 몰라서 불안해졌다.

다행히도 엔트로피는 태연히 말했다.

<마기전의 나머지 파츠를 획득하는 데 성공하셨습니다.>

"그렇지! 장하다, 나 자신!"

정대식은 자신을 칭찬하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그럼 지금 마기전은 어디 있는데?"

아까 기억을 재생시켜 보았을 때는 마기전이라 여겨지는 뭔가가 딱히 보이지는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묻는 말에 엔트로피가 허무할 정도로 간단하게 설명을 했다.

<지금 착용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정대식은 의식 속 세계라는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그 말을 듣고 저도 모르게 고개를 내렸다.

그러나 그는 평범한 티셔츠에 청바지 차림일 뿐. 마기전이라 여겨지는 어떤 물건도 보이지 않았다.

"현실 세계에서 마기전을 착용하고 있다는 말인가?"

정대식의 물음에 엔트로피가 긍정했다.

<그렇습니다.>

정대식은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며 물었다.

"그렇담 지금 의식 속에서 마기전을 착용해볼 수는 없나?"

정대식의 경험으로 마기전을 쓰는 데는 막대한 마력이 소비되었고, 더욱 효율적인 사용을 위해서는 약간의 연습이 필요했다.

그래서 의식 속에 갇혀 있을 동안 광필두를 상대하기 쉽도록 마기전의 사용에 익숙해지려고 물어본 거였다.

그러자 엔트로피가 정대식을 턱짓하며 말했다.

<말씀드렸다시피 이미 착용하고 계십니다.>

"착용...... 안 하고 있는데?"

정대식이 눈썹을 찡그리며 반문하는 것을 보고 엔트로피가 설명했다.

<착용하고 계신 것입니다. 다만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지요.>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마기전은 모든 파츠가 완성되자 정대식 님의 신체와 합일되었습니다. 겉보기로는 마기전의 모습이 드러나 있지 않으나, 항시 마기전을 착용하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니 그 능력을 십분 발휘할 수 있습니다.>

정대식은 시험 삼아 왼손을 들어 보였다.

그리고 마기전을 쓸 때처럼 의식을 집중해 손을 펼쳤다.

"마기장!"

마기전을 쓰는 것은 스킬이 아니라서 그런지 예전과 똑같이 마력석이 위치해 있을 손바닥에서 마력이 튀어나갔다.

정대식은 이번엔 오른손을 들어 똑같이 마기장을 사용해보았다.

그러자 왼손과 같이 마기장을 쓸 수가 있었다.

전에는 라이트 뱀브레이스가 없어서 왼손으로만 마기장을 쓸 수 있었으나, 마기전이 완성된 고로 양손을 다 쓸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렇군, 마기전이 완성됐어!"

정대식은 가볍게 바닥을 박찼다. 그러자 마찬가지로 발밑에서 마력이 방출되며 몸이 위로 날아올랐다.

그뿐만 아니라 어깨와 견갑 쪽에서도 일정량의 마력이 방사되어 전보다 훨씬 자유롭게 허공을 날아다닐 수가 있었다.

"최곤데!"

기분이 좋아진 정대식은 양손으로 마력포를 휘갈겼다.

의식이라서 그런지 마력이 소모되지 않아서 그는 실컷 마기전을 시험해 보았다.

그러나 어째 여신급으로 진화했다기에는 적잖이 아쉬운 면이 있었다.

정대식은 도로 엔트로피의 곁으로 돌아와 투덜거렸다.

"근데 완성이 되었다고는 해도 기능적인 면에서는 전과 별 차이가 없는 것 같잖아. 이거 진짜 여신급 무기 맞아?"

정대식의 질문에 엔트로피가 답했다.

<파츠를 다 모은다고 무구가 진화한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티르빙이나, 야마환의 예를 생각해보십시오.>

"으음? 티르빙은 그렇다 치고, 여기서 야마환이 왜 튀어나와?"

<야마환이 진화를 이루었기에 염마의 알이 된 것이 아닙니까.>

"아!"

정대식은 상점을 레벨 7로 업그레이드 할 때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느닷없이 가지고 있지도 않던 염마의 알이라는 아이템이 튀어나와 이게 뭔가 싶었는데 그게 야마환이었던 모양이다.

"그게 알이 되어버려서 제 기능을 하지 못했던 거로군."

<예. 레벨 9 업그레이드에 시간이 걸리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야마환도 염마로의 진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정대식은 미간을 찡그렸다.

"갑자기 그걸 팔아버린 게 아쉬워지기 시작하는데."

<뭐, 그렇지요. 염마로 진화를 완성한 상태에서 판매했더라면 더 높은 가격을 받을 수 있었을 겁니다.>

정대식은 이마를 싸쥐었다.

"으윽...... 그때는 상점 업그레이드가 급해서 어쩔 수 없었던 것이긴 하지만...... 아깝다, 아까워!"

정대식은 가슴을 치며 후회를 했다.

재건축이 승인될지 모르고 아파트를 팔아버린 기분이 이런 것인가 싶었다.

마음 같아서는 염마로 진화했을 때의 가격은 얼마인지 물어보고 싶었으나 배 아파 죽을까 봐 차마 물어볼 수가 없었다.

"이미 지나간 일이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지...... 잊어버리는 수밖에...... 크악! 아깝다! 아까워!"

잊어버리자고 하면서도 정대식은 몇 번이나 발을 동동 굴렀다.

얼마간 난리 블루스를 추고 난 후에야 간신히 진정하고 본론으로 되돌아갔다.

"아무튼, 마기전을 완성하기는 했으되 진화를 이룬 것은 아니라 아직까지는 여신급 무기라 할 수 없다 이거지?"

<그렇습니다. 현재로서는 M급, 그러니까 마스터급 무기밖에는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레벨 9로 업그레이드 하고 나면 어찌 될지 모르는 일이지요.>

"그래......."

정대식은 턱을 만지작거리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레벨 9가 완성되고 나면 마기전도 업그레이드될 가능성이 컸다.

적어도 레전드급 무기가 되고 나면 광필두를 상대할 만할 것이다.

녀석도 7성 무구를 완성하기 전이니 제아무리 마갑까지 손에 넣는다고 하더라도 여신급 무구를 획득했다고 볼 수는 없었다.

최후의 7성 무구, 궁니르를 갖기 전까지는 말이다.

게다가 마기전의 경우를 봐도 그렇고 7성 무구를 다 손에 넣는다고 해서 그게 단번에 여신급으로 진화한다는 보장이 없었다.

그 소유자가 그만한 걸물이 아니라면 진화가 쉽사리 이루어지지는 않는 모양이었다.

물론, 광필두가 진짜로 위험한 것은 단순히 7성 무구 때문만이 아니었다.

다름 아닌 이능 파괴의 능력이다.

정대식은 심각한 표정을 하고 물었다.

"엔트로피, 너는 광필두가 듀라한의 능력을 파괴하는 장면을 보았겠지."

<그렇습니다.>

"그게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는 거지? 그냥 이능자를 보기만 하면 다 파괴할 수 있는 건가?"

마구잡이로 이능 파괴가 가능하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에 물어보자 엔트로피가 간단히 대꾸했다.

<제 기억을 재생해 보시겠습니까?>

"그래, 직접 봐야겠다. 틀어봐."

정대식은 아까와 같은 방법으로 엔트로피가 목격한 이능 파괴의 현장을 보았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어떤 식인지를 통 알 수가 없었다.

광필두의 옆에 나타난 듀라한이 별안간 마갑 위에서 떨어지는 게 전부였기 때문이다.

"저게 어떤 식이든 간에 광필두의 이능 파괴를 대적할 만한 능력이 필요해."

정대식은 최희를 떠올리고 입술을 깨물었다.

광필두로 인해 능력을 잃었다 하니 날개 잃은 새와 무엇이 다르겠는가?

부상이야 회복하면 된다지만 능력을 상실했으니 크게 낙심하고 있을 게 분명했다.

적어도 그녀의 능력을 되돌려줄 수 있을 만한 방법이 필요하다 생각하고 정대식은 질문했다.

"파괴된 능력을 되찾아 줄 수 있는 스킬이 없나? 상점 레벨 9라면 그런 스킬도 있을 것 같은데."

정대식이 묻는 말에 엔트로피가 대답했다.

<아직 업그레이드가 완료되기 전이라 그 부분까지는 아직 알 수 없습니다.>

정대식은 그 말을 듣고 힐끗 업그레이드 상황판을 곁눈질했다.

이제 80%가량이 되었으니 오래지 않아 완성될 것 같았다.

그때 엔트로피가 한마디를 덧붙였다.

<그러나 정대식 님이 아셔야 할 정보가 있습니다.>

"내가 알아야 하는 거라고?"

<레벨 8로 업그레이드되었을 때 미처 말씀드리지 못한 정보입니다.>

뭔가 심각한 이야기일 것 같아서 정대식은 팔짱을 끼고 턱짓을 했다.

"어디 한번 말해봐."

엔트로피가 그 말을 듣고 입을 열었다.

<최후의 전쟁이 코앞까지 닥쳤습니다. 아주 가까운 때에, 라스트 몬스터 브레이크가 일어나 전 인류의 존속을 시험받을 것입니다.>

정대식은 저도 모르게 혀를 찼다.

"광필두만으로도 골치 아파 죽겠는데 아주 가지가지 하는군."

정대식은 곧 손가락 하나를 들어보며 말했다.

"내가 한 가지 짐작해보지. 체르노보그와 싸우러 오면서 느낀 바가 있거든."

<말씀하십시오.>

"체르노보그와 같이 고위 성급의 몬스터들은 하위 성급의 몬스터들을 장악할 수 있어. 그렇지?"

<그렇습니다.>

"하위 성급 몬스터들을 장악해 군대를 조직할 거고, 몬스터 브레이크가 일어났을 때 던전에서 한꺼번에 쏟아져 나와 공격할 테지?"

<맞습니다.>

엔트로피의 긍정에 정대식은 눈을 음산하게 빛냈다.

"지구에 벌어질 최후의 전쟁은 곧, 신들의 전쟁이기도 하다고 그랬었지. 지구가 신들이 선택한 전장이라고 말이야. 그렇다면 마지막 몬스터 브레이크가 터졌을 때 나타나는 것은 단순한 몬스터뿐만이 아니라...... 신이라고 불러도 될 만한 놈들이 아닌가?"

대담한 정대식의 짐작에 엔트로피는 잠시 말이 없었다.

정대식은 자신이 한 추측이기는 해도 그 말을 엔트로피가 부정해주기를 바랐다.

체르노보그 한 마리만으로도 죽을 뻔했는데 그보다 더한 놈들이 여러 마리 기어 나와 난장판을 부린다면 무슨 수로 감당해낸다는 말인가?

하지만 엔트로피는 늘 그렇듯이 매정했다.

그녀는 무표정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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