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6
현질 전사
-10권 23화
엔트로피가 곧장 상황을 꿰뚫어 보고 입을 열었다.
<광필두입니다.>
"광필두라고!"
기철민이 경악한 소리를 내뱉고 모두가 놀라고 있는 사이, 작은 점에 불과하던 모습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바닥에 깔린 재를 걷어차며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는 사람은 엔트로피가 말한 대로 광필두였다.
"광필두! 기어코 뢰를 손에 넣고 여기까지 쫓아온 것인가!"
기철민이 탄식하듯 내뱉는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듀라한이 마력 회복 포션을 털어 마시고 싸울 준비를 갖추었다. 광필두가 여기까지 온 이유는 분명 7성 무구 중 여섯 번째인 마갑을 획득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어떻게 벌써 여기까지 쫓아온 것이지?"
그를 맞닥뜨리는 시기를 한참 뒤로 예상했던 부대원들은 놀라서 술렁거렸다. 그 연유를 고덕화가 추측해냈다.
"아마도 체르노보그의 영향력이 사라진 탓이겠지. 순간 이동 스크롤이나 그에 준하는 방법을 써서 거리를 단축했을 거야."
다행인지 아닌지, 그자는 혼자였다. 그러나 혼자라는 사실이 큰 의미를 가지는 것 같지는 않았다.
광필두는 전신을 눈부신 무장으로 휘감고 있었다.
옆구리에는 강철우의 것이었던 딜라이트 소드를 차고 몸에는 제이드 팔머가 갖고 있던 브릴리언트 아우라 아머를 걸치고 있었으며, 가슴에는 국가기물금고의 엘브스 밤을 두르고 있었다.
등에는 여진주와 박태산에게서 빼앗은 케이론 보우와 스비에스키 방패를 짊어진 채였다.
7성 무구 중에 무려 다섯 개로 무장하고 있으니 서 있는 것만으로도 그 기세가 대단했다.
하나같이 만화경처럼 눈 부신 빛을 내뿜으며 보는 사람의 눈을 어지럽히고 있어 그 모습을 겨냥하는 것조차도 쉽지 않아 보였다.
이미 인간의 범주를 넘어선 강함을 지녔다는 게 온몸으로 표출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족하지 못한 채 기어코 7성 무구를 다 손에 넣으려 하고 있으니, 광필두를 적으로 규정하는 것은 정당해 보였다.
더구나 그는 무구를 획득하기 위하여 수많은 피해를 냈을 뿐만 아니라 최희를 비롯한 여러 각성자들의 능력을 강탈하여 손실시켜 놓았으니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넌 셈이었다.
그런 광필두를 보고 펜리르 부대원들도 하나둘씩 전투 준비를 갖추기 시작했다. 그러자 듀라한이 그들을 돌아보고 말했다.
「이것은 내 싸움이야! 자네들은 물러나 있지.」
엔트로피가 그 말을 전해주자 기철민이 고개를 저었다.
"한때나마 펜리르 부대원이었던 김태희...... 아니, 최희를 건드린 이상 저 녀석은 우리의 적이기도 합니다. 게다가 저놈은 공공의 적으로 규정되었으니 얼굴을 맞닥뜨린 이상 놈과의 싸움은 피할 수 없는 노릇입니다."
다들 기철민의 말에 동의하는 듯, 펜리르 부대원들은 일제히 광필두를 향해 무기를 겨누었다.
방금 부상에서 회복하여 마력도 부족하고 피로도 채 가시지 않은 상태였으나 그 모습만큼은 조금 전 체르노보그와의 일전에서 살아 돌아온 자들답지 않게 기세등등해 보였다.
"기철민, 네 말이 옳다! 무려 15성급인 체르노보그를 코앞에서 맞닥뜨리고도 살아남지 않았나! 그러니 같은 인간인 광필두쯤은 아무 문제 없지!"
이재우가 호기롭게 외치는 말에 허미래가 답지 않게 목소리를 높였다.
"여러 각성자들의 능력을 빼앗아가며 제 욕심을 채웠으니 이제는 그 대가를 치러야 해!"
김송근과 고덕화도 말없이 동의의 기색을 드러내었고, 미하일 소령도 싸움에 동참할 기세였다.
비록 그는 광필두와 어떤 은원도 없었고 도리어 광필두의 적이라 할 수 있는 듀라한과 대적하는 입장이었으나, 한 사람의 손에 7성 무구가 쥐어지는 일을 경계하는 건 그의 상관인 블라디미르 대령도 마찬가지였다.
현재로선 듀라한은 둘째치고서라도 자신의 목숨을 끝까지 돌보아준 펜리르 부대를 편들어 광필두를 적대시하는 게 옳다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그들은 반사적으로 듀라한을 중심으로 하여 일종의 대형을 구축했다.
그 광경을 보고 이쪽으로 저벅저벅 걸어오던 광필두가 우뚝 발걸음을 멈추었다.
그는 서로 표정이 보이고 말소리가 들릴 만한 거리에 서서 입을 열었다.
"해가 나는 것을 보아하니 체르노보그를 쓰러트린 모양이군."
광필두가 그리 말을 하는데 무슨 조명이라도 받는 것처럼 그의 머리 위로 햇살이 떨어져 내렸다.
그는 검은 재와 몬스터의 시체가 자욱하게 깔려 있는 땅을 밟고 서서 그 햇볕을 음미하기라도 하듯 잠시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 다시 눈을 내려 듀라한과 그의 주변으로 늘어선 펜리르 부대원들 너머 엔트로피와 그녀의 품에 안긴 정대식을 보고 말했다.
"설마 했는데 정말로 체르노보그를 쓰러트릴 줄이야."
그 말을 듣고 기철민이 이를 드러냈다.
"상황판단 끝났으면 재빨리 꼬리를 말고 달아나는 게 좋을 거다."
광필두는 고개를 갸웃했다.
"왜지?"
"왜냐니...... 설마 네 전력이 15성급인 체르노보그보다 더 막강하다고 말을 하고 싶은 것이냐? 그게 아니라면 조만간 벌어질 싸움에서 네 승산은 없을 것이다."
기철민은 그들이 체르노보그를 쓰러트릴 만큼 강하다는 사실을 강조해 말했으나 광필두는 귓등으로 듣는 눈치였다.
그는 체르노보그를 쓰러트린 사람이 오직 정대식이고, 그 외는 안중에 두지 않는 것 같았다.
"정대식이 체르노보그를 쓰러트렸다면 잘된 일이지. 러시아의 축복이다. 그러나 너희들에겐 불행일지도 모르겠다. 특히 듀라한, 당신에게는 안된 일이지."
그렇게 뇌까린 광필두는 핵심을 정확하게 찔렀다.
"정대식이 체르노보그를 쓰러트린 여파로 싸울 상황이 안 되는 것 같으니, 듀라한 네가 나를 직접 상대해야 할 것이다. 나는 체르노보그만큼 강하지 않을지는 모르겠지만, 너 하나를 쓰러트리는 데는 무리가 없다. 그러니 권고한다."
광필두는 답지 않게 말을 많이 한다는 느낌으로 한숨을 몰아쉰 뒤 말을 이었다.
"듀라한, 마갑을 내게 양보하고 순순히 물러서라. 그렇다면 네 능력만은 남겨두겠다."
그 말을 듣고 듀라한이 입술을 비틀었다.
「이능 파괴자라.......」
듀라한이 영어로 말을 시작했기에 그가 한 말을 알아듣고 광필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나는 이능 파괴자다. 그러니 내 능력을 시험하지 않는 게 좋을 것이다."
그러자 듀라한이 마갑을 몰아 앞으로 한 발짝 나서며 말했다.
「보아하니 내 이능을 파괴하려는 모양인데, 내 능력이 무엇인지 알고 파괴하겠다는 것이지?」
그 이야기를 듣고 기철민은 이맛살을 찌푸렸다.
그러고 보니 그는 반군의 지도자이자 해방대의 우두머리, 7성 무구 중 하나인 마갑의 주인인 듀라한으로 유명했으나 정작 그의 이능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었다.
그의 신분이 신분이다 보니, 그에 대해서 알려져 있는 게 많지 않은 탓도 있지만 델라니포스의 위력이 워낙에 대단해서 다른 부분은 묻혔던 것이다.
기철민 역시도 하다못해 절대 부러지지 않는다는 로물루스의 창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어도 듀라한의 능력이 뭔지에 대해서는 들어본 기억이 없었다.
듀라한은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말을 이었다.
「뭐, 이 능력을 자주 사용할 일이 없기는 하지.」
그는 곧 펜리르 부대원들을 돌아보고 말했다.
「아쉽게도 자네들의 실력을 발휘할 기회는 없을 것 같군. 어차피 내가 해결할 테니까 말이야!」
그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그 모습이 사라져버렸다.
마갑이 그 능력을 발휘하기 시작한 것이다.
눈 깜짝할 사이에 제자리에서 없어진 그는 순간이라고 말하기에도 짧은 찰나에 광필두를 향해서 수십 차례의 공격을 퍼부었다.
물론, 그 광경을 제대로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눈에 보이는 종류의 공격이 아니었다. 심지어는 그 공격을 당하는 광필두조차 제대로 반응하지 못했다.
듀라한의 눈에 그는 엉뚱한 곳을 바라보며 그냥 멀거니 서 있었고, 그 사이에 로물루스의 창이 광필두를 향해 쏟아져 내렸다.
그리고 순간이라고 말하기에 적합한 순간.
'이런!'
로물루스의 창이 쏟아낸 공격을 브릴리언트 아우라 아머, 광필두가 걸치고 있는 7성 무구 중 하나인 갑옷이 모조리 막아냈다.
물론, 듀라한은 광필두가 갑옷을 두르고 있는 곳을 노리지 않았다.
그는 일격에 광필두를 죽일 생각으로 확실히 그의 미간을 노렸고, 갑옷을 착용하고 있음에도 광필두의 안면이 온전히 드러나 있었다.
브릴리언트 아우라 아머는 중세 판금 갑옷과 유사한 형태를 하고 있었으나 투구에 얼굴 가리개가 없었던 것이다.
또한, 듀라한은 잊지 않고 안면뿐만 아니라 갑옷의 약점이라고 여겨지는 관절 부위를 노렸다.
개중 하나만 공격이 먹혀들어가도 어느 정도는 광필두에게 타격을 줄 수 있으리라 계산한 것이었다.
하지만 어떤 공격도 광필두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7성 무구에 통하지 않았다.
브릴리언트 아우라 아머는 로물루스의 창이 가한 공격을 허용하지 않으며 철통방어를 했다.
로물루스의 창이 광필두의 안면을 찔러 들어가는 그 찰나에 갑옷의 형태가 변하면서 그 자리를 가렸던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관절 부위도 그 모양이 뿔처럼 뾰족하게 변하여 로물루스의 창을 도로 튕겨냈다.
그 갑옷에는 오랫동안 주인이 없었기에 그 기능에 대해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았다.
그러나 실제로 공격을 가해보니, 7성 무구에 속해 있는 갑옷이라고 할 만했다.
그것은 가해지는 공격에 따라 스스로 형태를 변화해가며 방어를 하는 능력이 있었던 것이다.
그래도 여기까지는 어느 정도 듀라한의 계산하에 있었다.
로물루스의 창으로는 7성 무구로 무장한 광필두의 방어를 꿰뚫을 수 없으리라 짐작했다.
뿐만이랴, 광필두에게는 7성 무구가 네 개나 더 있었으니 듀라한이 그를 쓰러트리기는 상당히 어려울 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듀라한이 승리를 자신한 이유는 신이 그에게 준 능력 때문이었다.
그의 파워 랭킹이 높은데는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제아무리 훌륭한 무구로 무장하고 있다고 한들, 그 공격이 명중하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는 법이다.
그런데 듀라한에게는 엄청난 속도의 이동을 가능케 하는 마갑이 있었다.
델라니포스에 올라타고 있는 한은 그에게 명중하는 공격은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의 공격을 튕겨내는 것은 가능해도 그를 해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것이다.
무엇보다, 듀라한에게는 모든 공격을 흘려버릴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실제로 듀라한은 정부군, 혹은 몬스터들과 싸우면서 무수한 전투를 치렀으나 단 한 번도 치명상을 입은 적은 없었다.
이런저런 자잘한 부상을 입기는 해도 어디까지나 극심한 움직임에서 비롯된 생채기 수준이었지 적의 공격에 명중당한 적은 없는 것이다.
그렇기에 듀라한은 그 어떤 것보다 자신의 능력을 믿었다.
심지어는 7성 무구 중 하나인 마갑보다도 더 믿었다.
어차피 상대는 7성 무구를 다섯 개나 갖고 있으니, 하나만으로는 대적할 수 없다 판단한 것이었다.
그리고 일반적인 상황이었다면 그 판단은 옳았을 터였다.
하지만 지금은 일반적인 상황이 아니었고, 듀라한은 그 사실을 꿰뚫어 보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