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질 전사-236화 (235/297)

# 236

현질 전사

-10권 13화

아까부터 죽은 듯이 잠잠하기만 하여 전력이 절반으로 꺾인 기분이라 이대로 체르노보그가 있다는 던전으로 들어가도 될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부대원들에게 이러한 사실을 알릴 수 없었으므로, 정대식은 일단 미하일 소령의 안내를 따르기로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지하로 가죠.」

그들은 하수도 뚜껑을 찾아 그것을 들어내고 어두컴컴한 데다 퀴퀴한 악취가 풍기는 지하로 내려갔다.

잭 어 랜턴 스킬로 안을 밝히자 빛에 놀란 쥐 떼들이 와르륵 흩어지는 게 보였다.

사력에 노출된 쥐들은 크기가 거의 고양이만 했으며 흉기나 다름없어 보이는 앞니를 갖고 있었다.

그걸 본 허미래가 비명을 지르지 않으려고 입술을 질끈 무는 게 보였다.

「이쪽입니다.」

미하일 소령은 바닥에 고여 있는 오물을 걷어차며 앞장을 섰다.

일행들도 잠자코 그 뒤를 따르는데, 어디서 불길한 소리가 들렸다.

쉬르르르르-

바람 소리라고 하기에는 기분 나쁜 소음에 진저리를 치며 이재우가 말했다.

"그런데 지하라고 안전한 건 아니지 않습니까? 여기에도 몬스터들이 득시글거릴 게 뻔한데요."

정대식이 그 말을 미하일 소령에게 전하자 그가 단언했다.

「무슨 몬스터와 마주친다 한들 게게네이스와 싸우는 것보다는 나을 겁니다.」

그들은 좁은 통로를 따라 걷다가 위아래로 뻥 뚫린 공간을 만났다.

위로는 지상으로 이어져 있었으나 아래로는 까마득한 어둠이라 얼마나 깊은지 알 수 없었다.

하마터면 발을 헛디딜 뻔하고 멈춰선 미하일 소령은 방향을 가늠해 보고 건너편의 통로를 가리켰다.

「저기로 뛰겠습니다. 문제없으시겠죠?」

미하일 소령이 그쪽을 가리켜 보이는 모습에 다들 문제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미하일 소령이 먼저 가겠다고 잠시 뒤로 물러났다가 발을 박찼다.

곧 통로 끄트머리에서 뛰어오른 그가 반대편 통로를 향해 몸을 날렸다.

그때였다.

쉬르르르르르르!

불길하던 바람 소리와 함께 아래서 뭔가가 튀어나와 공중에 뜬 미하일 소령을 낚아챘다.

"큭!"

미하일 소령은 신음을 삼키며 몸부림을 쳤고 곧장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캄캄한 지하로 빨려 들어갔다.

「미하일 소령!」

정대식은 두 번 잴 것도 없이 아래로 뛰어내리며 소리쳤다.

"엔트로피, 부대원들을 지켜!"

그러자 그와 함께 뛰어내리려던 부대원들이 멈칫하고, 엔트로피가 방어막을 만들어내어 부대원들이 선 쪽의 통로를 막았다.

정대식은 까마득한 지하로 떨어져 내려가며 스킬을 썼다.

"잭 어 랜턴!"

허공에 나타난 밝은 빛 덩어리를 앞으로 쏴 보내자 갈고리 같은 것에 다리가 꿰어 아래로 끌려가는 미하일 소령이 보였다.

그는 몸을 칭칭 감고 있는 촉수와 씨름하고 있었으나 끄트머리에 갈고리가 달려 있는 그 촉수는 하나하나가 눈이라도 달린 것처럼 미하일 소령을 위협하고 공격하며 그의 저항을 봉쇄하고 있었다.

곧 빛을 보고 정대식을 발견한 미하일 소령이 외쳤다.

「변신하겠습니다!」

미하일 소령이 길게 울부짖으며 리칸트로피로서의 면모를 드러냈다.

크아아아아아아앙!

지하를 쩌렁쩌렁 울리는 울음소리와 함께 그의 모습이 짐승으로 변하며 우악스러워진 손아귀가 촉수를 벅벅 찢어냈다.

곧 촉수들이 움츠러들며 그를 놓치자 정대식이 마기전으로 가속도를 더해 그를 허공에서 낚아챘다.

"잡았습니다!"

정대식과 미하일 소령이 한 덩어리가 된 찰나, 아래에서 아까보다 수배는 되어 보이는 촉수들이 우르르 솟아올라 왔다.

정대식은 오른팔로는 미하일 소령을 붙들고 왼팔은 앞으로 뻗으면서 외쳤다.

"마력포!"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앙------------!

마력의 빛이 쏘아져 나가며 촉수 떼와 부딪치자 시퍼런 폭발이 일었다.

그 기세에 떠밀려 위쪽으로 솟구치게 된 정대식은 그 기세 그대로 양발에 착용한 마기전에 마력을 실었다.

그러자 발바닥 쪽에 박힌 마력석으로 마력이 방출되며 몸이 로켓처럼 솟아올랐다.

그들이 순식간에 떨어졌던 통로를 도로 올라 추락했던 곳에 이르자, 초조한 표정으로 대기하고 있던 부대원들이 반가운 표정을 하는 게 보였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였다. 너덜너덜해진 촉수들이 한데 엉겨 붙어 무슨 기둥처럼 밑에서부터 솟구쳐 오르는 게 보였다.

"대장님!"

"피하세요!"

부대원들의 아우성을 듣고 정대식은 미하일 소령을 붙잡은 채로 더 위로 향했다.

그 바람에 하수도를 막아놓은 스틸 그레이팅을 박차며 공중으로 뛰어오르게 되었다.

콰앙!

그들을 따라서 촉수의 기둥이 솟구쳐 오르고, 곧 그 촉수들을 토해낸 몬스터의 정체가 드러났다.

그것은 거대한 지렁이처럼 생겼는데, 가죽이 반투명하여 속이 훤히 비쳐 보였다.

그 안에 가득한 촉수와 내장 기관, 그리고 뱃속을 꽉 채우고 있는 온갖 것들이 보였다.

자잘한 몬스터에서부터 쥐나 뱀, 개나 고양이, 물론 인간의 시체까지도 소화되다 만 모양 그대로 들어있었다.

정대식은 욕지기가 치미는 것을 느끼며 미하일 소령을 황급히 일으켜 세웠다.

「괜찮습니까?」

「저는 괜찮습니다만, 그보다는 게게네이스를 피해 보려던 노력이 물거품으로 돌아간 것 같군요.」

번쩍!

소란을 듣고 여덟 마리 뱀의 시선이 모조리 이쪽으로 향했다.

곧 게게네이스의 몸뚱이도 이쪽을 향했는데, 희한하게도 게게네이스에게는 눈이 없었다.

뻥 뚫린 콧구멍 두 개와 흉측하기 짝이 없는 커다란 입 하나뿐이었다.

눈은 아마 하반신에 붙은 여덟 마리 뱀이 대신하는 듯, 그놈들이 쉬싯 거리며 곧장 이쪽으로 달려들었다.

그러자 하수구에서 구불거리는 몸을 빼낸 거대 지렁이가 그 앞을 가로막았다.

거대 지렁이가 작정하고 게게네이스를 훼방 놓으려 한 것은 아니다.

거대 지렁이도 정대식과 미하일 소령을 쫓으러 나왔다가 우연히 그 두 마리가 마주쳤을 뿐이었다.

어쨌거나 거대 지렁이가 게게네이스를 가로막은 것은 맞았고 그 사실이 적잖이 거슬리는지 여덟 마리의 뱀 머리가 일제히 거대 지렁이를 공격했다.

놈들은 날카로운 이빨로 거대 지렁이를 무슨 헝겊 조각이나 되는 듯이 갈기갈기 찢어놓았다.

물론, 그동안 정대식이 마냥 넋을 놓고 있지는 않았다.

정대식은 재빨리 은신으로 미하일 소령과 자신의 모습을 감추고 그들이 박차고 나왔던 하수도로 도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그들이 들어가려던 통로로 다시금 들어가 나머지 부대원들을 재촉했다.

그러자 지상에서 게게네이스가 그들을 찾아서 난동을 부리는 소리가 들렸다.

쿵!

콰앙!

콰르릉!

당연히 지하가 지진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우르르 떨려, 그 와중에 하수도를 따라 달린다는 것은 적잖은 담력을 요했다.

펜리르 부대원들은 이를 악물고 하수도를 달렸고, 그러자 놀란 쥐 떼들이 그들을 앞서 달리기 시작했다.

찍찍찍찍!

징그러운 쥐 떼들에게 파묻히다시피 달린 끝에, 그들은 바깥으로 뛰쳐나가게 됐다. 도시를 가로지르는 개천의 입구로 빠져나오게 된 것이다.

둑을 기어올라 뒤를 돌아보자 게게네이스가 쿵쾅거리며 주위의 건물을 때려 부수고 있는 광경이 보였다.

이미 부식될 대로 부식된 건물은 판자때기인 양 힘없이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일행은 그 광경을 뒤로하고 야트막한 아파트촌을 지나 시가지를 빠져나왔다.

그러자 도시 외곽이라고 여겨지는 광경이 눈에 들어왔고, 미하일 소령이 그 건너편을 손짓하며 말했다.

「저기가 바로 그 던전입니다.」

그 던전이 어디를 말하는 것인지는 분명해 보였다.

다름 아닌 체르노보그의 던전인 것이다.

Chapter 60. 체르노보그의 던전

크워어어어어-

크아아아아아아아-

가능한 한 몬스터를 피해가며 던전 가까운 곳까지 이동한 그들은 더 이상은 몬스터를 회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던전의 입구 주변으로는 모든 것이 파괴되어 남아있는 것이 없었으므로 사방이 뻥 뚫려 있었고, 거기에 온갖 종류의 몬스터들이 득시글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잡몹들은 다 잡아먹힌 건지 도망친 건지 보이지 않았으며, 상대하기 까다로워 보이는 무시무시한 놈들만이 남아있었다.

하늘엔 가루다 떼가 까마귀인 양 배회하고 있었고 지상에는 데스 솔져들이 가득했다.

이놈들은 아까의 놈들보다 더 무장이 훌륭해 죽이기 어려워 보였다. 중간에 와이트로 보이는 놈들이 뒤섞여 있어서 더 그랬다.

스켈레톤은 공격해서 몸을 무너트리면 그만이지만 이놈들에게는 정화가 필수적이었다.

그렇잖으면 죽이기가 무섭게 그 몸에서 빠져나온 사령들이 새 몸에 달라붙기 때문에 자칫 잘못하면 빙의되어 와이트가 되어버린다.

굴이나 좀비와는 달리 물리지 않아도 와이트가 될 수 있기 때문에 번거로운 것이다.

문제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데스 솔져들이 늘어선 전열을 쭉 훑어보던 정대식은 뒤쪽으로 시선을 옮겼다가 두 눈을 의심했다.

'아니?'

후열에는 데스 스나이프 뿐만 아니라 활과 화살을 비껴차고 있는 켄타우로스 부대가 보였다.

그들 옆으로는 유성추를 든 미노타우로스가 떼거리로 모여 있었고 사이클롭스와 고삐를 차고 있는 만티코어도 여러 마리가 보였다.

삼두 트롤로 이루어진 부대뿐만 아니라 드레이크에 올라탄 라이더들도 눈에 띄었으며, 주술사와 뱀파이어도 곳곳에 뒤섞여 있었다.

아주 체계적으로 구성되어 있는 모습이 완전히 군대나 다름없었다. 정대식은 그 광경을 보고 짙은 의구심을 느꼈다.

'여태껏 몬스터들을 자신의 영역을 지키기 위해서 싸우는 짐승 같은 놈들이라고만 생각해왔는데, 이건 완전히 양상이 다르잖아? 설마, 조만간 일어난다는 마지막 몬스터 브레이크가 단순히 모든 던전이 터져서 몬스터들이 튀어나온다는 이야기가 아니었나?'

누가 봐도 무장한 몬스터 군단은 전쟁을 준비하는 것처럼 보였다.

만약 이놈들이 암흑 영역을 벗어나 인간 세계로 나간다면 무질서하게 싸우는 다른 몬스터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의 위력을 보여줄 것이다.

그러자 하나하나 퍼즐이 맞춰 들어가듯, 여태껏 보고 겪어왔던 일들이 하나의 결론으로 맞물려갔다.

'하와이에서도 여러 몬스터들이 헤르보르나 시서펜트와 같은 강대한 몬스터들의 지배를 받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미군조차 하와이를 탈환하는 데 애를 먹고 있었지. 그렇다면 암흑 영역이 확장되고 있는 것은 다분히 체르노보그의 의도라고 볼 수 있다. 단순히 놈의 영향력 때문이 아니라, 이곳에서 자신의 군대를 키우고 있었던 거라면...... 우리 인간을...... 멸망시키기 위해서!'

정대식은 소름이 오싹 돋았다.

지나친 생각이라 부정하고 싶어도 던전 주변에 끝도 없어 보이는 군대를 보고 있으려니 그럴 수가 없었다.

'체르노보그뿐만이 아냐. 10성급을 넘어가는 몬스터들이 저마다 자신의 군대를 꾸려 인간을 공격한다면, 과연...... 당해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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