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4
현질 전사
-10권 11화
다음 순간.
땅이 꽈르릉 울리며 그 구덩이로 엄청난 풍압이 터져 나왔다.
꽈---------아앙!
얼마나 그 기세가 엄청난지 한창 몬스터들과 싸우던 부대원들이 뭔 일인가 싶어 그쪽을 쳐다볼 정도였다.
뿐만이랴, 몬스터들까지도 놀라서 그쪽으로 시선을 주었다.
곧, 사방으로 조각난 아다만티움 덩어리들이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바닥으로 추락하는 검은 고렘의 잔해를 피해 허미래가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울상을 했다.
"으아앙!"
그러나 정작 자신의 머리 위로 아다만티움 다리 짝이 떨어졌을 때는 한쪽 팔로 가볍게 그것을 쳐버렸다.
그 광경을 쳐다보던 정대식은 염려할 필요 없겠다고 다시금 앞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는 높은 하늘 위에 있었고 그의 주변으로는 가고일과 이재우, 기철민의 공방이 계속되는 중이었다. 그리고 그 너머로는 더 많은 몬스터 떼가 몰려오고 있었다.
더 이상 그것을 몬스터 떼라고 부르기는 적합하지 않은 것 같았다.
일사불란하게 몰려오는 그것은 몬스터 군단이라고 부르는 게 걸맞았다.
제아무리 어젯밤의 휴식으로 부대원들의 사기가 충만한 상태라고 하더라도 저 많은 몬스터들을 다 상대했다가는 지쳐 쓰러질 것이다.
체르노보그가 지척에 있는 관계로 이런 잡몹들을 상대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사신이라도 불러내 처리를 해야 옳겠지만, 몰려오는 것들은 안타깝게도 사신이 수명을 빼앗을 수 있는 생명체가 아니었다.
땅에서도 하늘에서도 자욱하게 몰려오는 것들은 언데드였다.
그것도 보통의 구울이나 좀비 따위가 아니었다.
그들은 얼핏 보기에는 스켈레톤처럼 보였는데 완벽하게 무장을 갖춘 꼴을 보아하니 데스 솔져들인 것 같았다.
그뿐만 아니라, 사이사이엔 현대식 무기를 장착한 데스 스나이퍼들도 자리해 있었고 그들을 지휘하는 데스오피스 뿐만 아니라 후열에는 부정한 프리스트들과 비숍들이 보였다.
그 뒤에는 성전대를 박살 냈다는 아크 비숍이 버티고 서 있을 것이다.
이만저만 골치 아픈 것이 아니라 정대식은 손에 낀 야마환을 쓰다듬었다.
이럴 때는 다소 부작용을 감안하더라도 야마환을 쓰는 것이 딱인데 어찌된 일인지 어제부터 통 말을 듣지 않았다.
아무런 반응이 없는 것이 무슨 문제가 생긴 것 같아 염려스러웠다.
거기다 어젯밤 포로녜치와 싸우다 블랙 드래곤 스킨 아머가 손상되기까지 했으니, 정대식의 전력이 약해진 상태였다.
'저놈들을 어쩐다? ......별수 없군. 엔트로피에게 상점을 뒤져 언데드를 단박에 쓸어버릴 수 있는 스킬이나 아이템을 찾아내라는 수밖에는.......'
그나마 진화한 포로녜치의 말린 위장이 있는 게 적잖이 위안이 되었다. 그 가격이 3조에 달하니 당분간 돈 걱정은 안 해도 될 것 같았다.
물론, 상점 업그레이드는 또 다른 문제였다.
8레벨로 업그레이드를 하려면 10조가 필요했다. 체르노보그를 쓰러트릴 때 그만한 레벨이 필요한지도 모르겠지만, 그때까지 나머지 7조를 벌어들일 방법이 감감했으므로 일단은 7레벨인 상태에서 싸우고 볼 일이었다.
정대식이 막 아래서 싸우고 있는 엔트로피를 불러들이려던 그때.
등 뒤에서 누가 정대식의 어깨를 짚었다.
「괜찮으시면 여긴 제게 맡겨주시죠.」
다름 아닌 알렉세이였다.
정대식은 그러고 보니 그가 있었지, 어디 한번 실력을 구경해보자는 심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물러났다.
"알겠습니다."
델라니포스의 위력을 볼 귀중한 기회이기도 했다.
물러서는 정대식을 앞질러 가며 듀라한은 자신이 차고 있던 마갑을 진짜 말 다루듯이 토닥였다.
놀랍게도 마갑의 목 언저리를 두드려주자 푸릉푸릉하고 콧김 내뿜는 소리가 들렸다.
'진짜 살아있는 말 같네.'
침착하게 마갑을 달래고 적 진영을 훑어본 듀라한은 곧 정대식을 돌아보고 말했다.
「두 눈 크게 뜨고 보셔야 할 것입니다.」
그게 뭔 소린가 생각한 순간.
듀라한이, 정확히는 마갑이 허공을 박찼다. 그러자 그 모습이 눈앞에서 사라져버렸다.
보인 것은 가운데가 뻥 뚫린 몬스터 군단뿐이었다.
어느새 듀라한이 몬스터 떼를 뚫고 놈들의 뒤쪽에 이른 것이다.
"아니?"
정대식은 놀라서 외마디 소리를 내뱉었다.
듀라한은 그냥 놈들을 가로지른 게 아니었다.
음속이나 광속이 아닌가 의심스러울 만한 속도로 몬스터들을 지나치자, 그 여파에 휘말린 놈들이 피떡이...... 아니, 산산조각이 나 있었다.
듀라한이 지나간 자리 언저리에 있는 스켈레톤들은 이미 제 형체를 갖추고 있지 않았다. 그리고 군단의 뒤편에 선 듀라한은 놈들을 지휘하고 있던 아크 비숍의 턱밑에 가 있었다.
"푸르르르르릉!"
마갑이 우짖는 소리가 정대식에게까지 들렸다.
아크 비숍을 보고 마갑이 번쩍이는 갈고리가 달린 발굽을 높이 치켜드는 광경이 보였다.
아크 비숍이 그 광경을 보고 가뜩이나 흉측한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저주받은 성배를 휘두르려고 했다.
그때, 듀라한의 모습이 다시금 사라졌다.
놀랍게도 아크 비숍은 엄청난 속도로 움직이는 듀라한의 움직임을 어느 정도는 꿰뚫어 보는 것 같았다.
놈이 팔을 휘두르자 쩡! 쩡! 하고 저주받은 성배가 듀라한의 무구와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정대식의 눈에는 그들의 격돌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싸움이 길어지면 듀라한이 불리해질 거라는 것은 당연지사.
몬스터 떼의 주의가 아크 비숍이 있는 뒤쪽으로 돌려지고 있으니 자칫 잘못하다가는 몬스터 군단에게 갇히는 수가 있었다.
'구경이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군!'
정대식은 엔트로피를 불러들였다.
"엔트로피."
<부르셨습니까, 정대식 님.>
싸우던 놈을 내팽개치고 나타난 엔트로피에게 정대식은 스킬을 썼다.
"변화."
쿠르르르르르!
엔트로피의 모습이 빛에 감싸이며 무너지는가 싶더니 도로 커졌다.
그 빛이 정대식의 키를 훨씬 넘는 정도가 되었고, 곧 무수한 사출구를 갖고 있는 무기와 같은 모습이 되었다.
정대식은 무기화된 엔트로피로 몬스터 군단을 겨냥했다.
수백 개나 되는 사출구가 부채꼴 모양으로 퍼졌고, 그곳으로 정대식은 마력을 불어넣기 시작했다.
"강화."
각각의 사출구에 맺히는 마력을 강화한 정대식은 그것을 일거에 터트렸다.
"방출!"
쾅쾅쾅쾅쾅쾅쾅!
콰르르르르르르르르!
각각의 사출구에서 쏘아져 나간 수천, 수만 개의 마력탄이 몬스터 떼를 덮쳤다.
그것은 단순히 적을 꿰뚫기만 하는 게 아니었다.
산탄 총알과 마찬가지로 쏘아져 나갔다가 적의 몸에 닿는 순간 폭발하게끔 되어 있었다.
그렇기에 온몸에 구멍이 숭숭 뚫린 스켈레톤이라 하더라도 버텨낼 재간이 없었다.
놈들의 새하얀 뼈가 박살 나며 사방으로 비산하며 전열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정대식은 그 광경을 보고 혀를 쯧 찼다.
'수가 많아서 한방으로는 안 되겠군.'
정대식은 다시금 산탄총...... 아니, 마력산탄포를 쏘기 위하여 무기화된 엔트로피에게 마력을 불어넣었다.
그런데 정대식의 공격을 받고 정신을 번쩍 차린 놈들이 수작을 부리기 시작했다.
'과연, 군대라 이건가.'
데스 솔져 사이사이에 숨어 있던 부정한 프리스트들이 앞으로 나서서 방어막을 펼쳤다.
기분 나쁜 빛을 띤 방어막이 데스 솔져들의 머리 위로 드리워지고 데스 스나이퍼들이 정대식을 향해서 총공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퍼버버버버벙!
그들이 일제히 내쏜 총알이 정대식에게로 날아들었다.
비처럼 무수히 날아오는 총알은 사력이 입혀져 거무스름한 연기를 흩뿌리고 있었다.
그것이 곧장 정대식에게로 날아오고 있으니 그 광경이 고래를 잡기 위해 무수한 작살을 던지는 꼴과 같았다.
정대식은 그 광경을 냉랭히 쳐다보다 간단히 손을 휘둘렀다.
"마기장!"
파아아아아앗!
그가 펼친 마기장이 정대식의 주위를 둘러쌌다.
곧 데스 스나이퍼들의 공격이 정대식에게로 와 닿았으나 그것은 마기장의 방어력을 뚫지 못했다.
펑펑펑!
사력이 폭음을 내며 터져 오르고, 그 여파로 잠시 시야가 가렸다.
곧 공격이 끝났을 때 정대식은 한쪽 입술을 삐뚜름하게 들어 올리며 중얼거렸다.
"이젠 내 차례군."
정대식은 파랗게 빛나는 사출구를 데스 스나이퍼 쪽으로 겨누고 외쳤다.
"방출!"
쾅쾅쾅쾅쾅쾅쾅!
콰르르르르르르르!
몬스터들이라고 똑같은 수에 또 당하지는 않았다.
이번에는 부정한 비숍들이 나서서 데스 스나이퍼를 노리고 날아가는 마력탄환들을 가로막았다.
그들이 손에 들고 있던 완드를 휘두르자 놀랍게도 정대식의 공격이 용수철이라도 되는 양 도로 되돌아오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정대식의 마력이었다.
정대식은 의식을 집중했고 마기장의 성질을 조작했다.
그러자 정대식이 두르고 있던 마기장이 되돌아온 공격을 도로 흡수해버렸다.
어찌 보면 사용한 마력을 고스란히 돌려받은 셈이니 손해를 본 것은 아니었다.
물론, 공격이 무위로 돌아간 것은 사실이었다.
비숍들이 정대식의 공격을 튕겨낼 동안 몬스터들의 군대가 정대식을 상대할 만한 또 다른 카드를 내놓았다.
이번에는 하늘이었다.
정대식은 몬스터 군단의 머리 위로 날아드는 거대한 그림자를 보고 얼굴을 찌푸렸다.
'언데드 드래곤?'
몬스터 군대답게 그들은 언데드 드래곤을 거느리고 있었다.
그것도 한 마리가 아닌 세 마리였다.
게다가 각각의 언데드 드래곤에는 드래곤 라이더가 타고 있었다.
놈들은 낯빛이 창백했고 손바닥만 한 송곳니가 입술 밖으로 삐죽하게 튀어나와 있었다.
한눈에 보기에도 뱀파이어인지라, 정대식은 엔트로피의 변화를 해제하고 말했다.
"엔트로피. 아무래도 안 되겠다. 이놈들을 한 방에 보낼 만한 정화 스킬을 찾아봐! 언데드를 처치할 수 있는 스킬 말이야!"
<언데드를 처치할 수 있는 스킬에는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만.>
"가성비가 최고로 좋은 것으로! 무조건 가성비, 가성비다!"
<가성비를 따지자면 소환 스킬이 가장 낫습니다. 성녀 소환이라는 스킬이 제 계산으로는 가격 대비 가장 좋은 효과를 낼 것입니다.>
"좋아, 그럼 성녀 소환 스킬을 구입하겠어!"
<성녀 소환 스킬을 구입하고 천만 원을 차감합니다.>
"바로 레벨 10으로 업그레이드해!"
<성녀 소환 스킬을 Lv10으로 업그레이드하고 90억을 차감합니다.>
"좋아, 온다!"
정대식은 코앞에 들이닥친 언데드 드래곤들을 보고 외쳤다.
"성녀 소환!"
번쩍!
눈앞에 빛의 문이 열리듯 강렬한 눈부심이 강타했다.
그 빛에 놀란 듯 언데드 드래곤들이 휘청거렸고, 곧 그 빛 속에서 성녀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정대식은 그 성녀를 보고 깜짝 놀랐다.
성녀라기에 사신과 같이 어떤 신화적인 존재를 생각했는데, 그 성녀는 정대식이 익히 아는 얼굴이었다.
한창 매스컴을 탈 때보다 조금 더 성숙해지기는 했으나, 거의 그 모습 그대로였다. 정대식은 저도 모르게 그녀의 이름을 입 밖에 내뱉었다.
"모스크바 성전대의 루나?"
그녀는 자다가 불려 나온 사람처럼 얼떨떨해 보였다.
영문도 모르는 채로 눈을 깜박이다가 주위를 둘러보고 사방 천지에 깔린 몬스터와 언데드를 보고 새파랗게 질렸다.
도무지 전투 준비가 안 되어 있는 모습에 정대식은 엔트로피를 보고 화를 냈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