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7
현질 전사
-10권 4화
"으윽!"
전신에 주먹으로 두들겨 맞는 것 같은 충격이 느껴졌다.
그 공격을 뚫고 정대식은 엔트로피를 실체화했다.
그런 다음 구현과 변화, 강화의 단계를 거쳐 그녀를 무기화시켰다.
"준비됐지?"
<됐습니다.>
"강화 강력권!"
<강화 강력권.>
엔트로피는 거대한 해머와 같은 모습으로 정대식의 오른팔과 결합해 있었다.
정대식은 이중의 강화 강력권을 블랙 드래곤에게 날렸고, 그러자 블랙 드래곤의 주둥이가 쩍 벌어지며 애시드 브레스가 토해져 나왔다.
콰르르르르르르르!
"으으윽!"
이중의 강화 강력권도 그 애시드 브레스를 뚫지 못했다. 도중에 해머화 된 엔트로피가 녹아서 사라져 버렸던 것이다.
그러나 정대식의 신체는 어떤 손상도 입지 않았다. 그가 블랙 드래곤 스킨 아머를 걸치고 있는 덕분에, 애시드 브레스에 아무런 타격이 없었던 것이다.
'그렇군! 애시드 브레스가 내 공격을 무위로 되돌리는지는 몰라도 날 해치지는 못해! 좀 더 맘 놓고 싸울 수 있겠어!'
정대식은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왼손을 내뻗었다.
"마기포!"
꽈---------아아아아아아앙!
정대식이 자신의 마력을 때려 붓다시피 하여 쏘아낸 마기포가 그의 왼손에 착용한 마기전을 통해 방출되었다. 그러자 눈을 불태워버릴 듯이 새파란 마력의 빛이 거대한 빛줄기가 되어 블랙 드래곤에게로 쏘아져 나갔다.
거기에 안면을 직격당한 블랙 드래곤이 고통스러운 신음을 내뱉었다.
-크아아아아아아아아!
귀와 머릿속을 동시에 울리는 엄청난 소리였다.
블랙 드래곤은 급히 자신에게 치료 마법을 사용했으나 멀어버린 두 눈이 금세 복구되지 않았다.
그 바람에 정대식의 위치를 특정하지 못한 블랙 드래곤이 광범위한 공격 마법을 시전했다.
-메테오!
콰과--------------과과과과과과!
별안간 시커먼 하늘을 찢어발기며 불타는 유성이 비 오듯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콰과과과과광!
콰과과과광!
콰그르르르르르르!
작게는 주먹만 한 크기서부터, 머리통만 하거나 사람 크기만 한 유성이 지면을 강타하자 그야말로 지옥이 따로 없었다.
성채의 잔해와 몬스터들의 시체가 뒤엉켜 있는 바닥에 유성이 퍼부어져 지면이 요동을 쳤다.
당연히 정대식도 쏟아지는 공격을 피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가 유성을 피해 이리저리 날아다니자 놀랍게도 그 기척을 읽어내고 블랙 드래곤이 공격을 가해왔다.
콰르르르르르르르르!
애시드 브레스를 쏟아내던 블랙 드래곤은 그 공격이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눈치챈 것 같았다. 그러자 당혹한 듯 잠시 가만히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정대식은 문득 떠오른 추측을 입 밖에 끄집어냈다.
"잠깐만 기다려라!"
다른 사람이 보면 헛웃음을 터트릴 만한 광경이었다.
몬스터와 대화를 나누려 하다니?
몬스터의 급에 따라 인지 능력도 다르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몬스터와 대화를 나누는 시도가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몬스터들은 인간에게 절대적인 적의를 갖고 있었기에 그것은 허무한 시도였을 뿐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정대식의 머릿속으로 블랙 드래곤의 음성이 들려왔다.
-내가 왜 그래야 하는 것이냐, 드래곤 슬레이어.
정대식은 자신의 짐작이 들어맞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전율을 느꼈다.
'역시! 내가 블랙 드래곤 스킨 아머를 착용하고 있어서 블랙 드래곤과 대화가 되는 거구나!'
정대식은 솟구쳐 오르는 흥분을 가라앉히고 말했다.
"드래곤 슬레이어라니? 난 드래곤을 잡아 죽인 적이 없다."
-그렇다면 네가 착용하고 있는 블랙 드래곤의 가죽은 어떻게 된 일이냐?
"이것은 우리 인간 세계로 흘러든 무구 중 하나일 뿐이다. 아직 인간은 블랙 드래곤을 사냥한 적이 없다. 그럴 만한 능력도 되지 않아."
-헛소리!
블랙 드래곤은 크앗하고 울부짖었다. 그러는 동안 서서히 블랙 드래곤의 안구가 회복되어가는 것이 보였다.
어쩌면 시력이 회복될 동안 시간을 끄는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대화 아닌 대화가 계속 이어졌다.
"헛소리가 아니다. 애꿎은 화풀이를 할 생각이 아니라면 우리가 싸워야 할 이유는 없어. 내 적은 네가 아니다!"
-우습구나. 드래곤의 진노를 애꿎은 화풀이라 표현하다니.
"나는 그저 체르노보그를 쓰러트리기 위해 모스크바로 가려는 것뿐이다. 그걸 위해 포로녜치를 죽이고 그 둥지를 파괴해야 한다. 그런 중요한 일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괜한 싸움을 벌이고 싶지 않다. 나와 말이 통하는 대상이라면 더더욱!"
-포로녜치.......
블랙 드래곤은 잠시 혼란스러운 듯이 그 말을 중얼거렸다. 그 모습을 보자 포로녜치와 무슨 상관관계가 있는 것 같았다.
그렇잖으면 던전도 아닌 인간 세상에, 그것도 포로녜치의 둥지가 지척에 있는 곳에 출몰할 리가 없었다. 정대식은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블랙 드래곤이 왜 여기에 있는 것이지? 왜 자신의 영역을 벗어나 있는 것인가?"
-나의 둥지는 파괴되었다. 그놈들이 알을 으스러트렸고 나는...... 나는.......
블랙 드래곤은 몹시 혼란스러운 듯 머리를 내저었다. 그러다가 곧 고통을 참지 못한 듯 크게 울부짖으며 정대식에게 덤벼들었다.
캬아아아아아아!
정대식은 자신을 한입에 삼키려는 블랙 드래곤을 피해 몸을 날렸다. 그리고 빠르게 마기포로 블랙 드래곤의 눈알을 몇 번 후려갈겼다. 그러자 거의 회복되었던 블랙 드래곤의 눈꺼풀이 다시 찢어지며 피가 콸콸 솟았다.
-크아아아아! 죽어라, 인간!
블랙 드래곤이 허공에서 몸을 비틀며 마법을 쏟아내었다.
-체인 라이트닝 볼트!
꽈과과과광! 번쩍!
블랙 드래곤의 공격은 인정사정없었으나 어쩐지 그를 공격하기가 망설여졌다.
자신을 공격하는 게 블랙 드래곤의 본의라고 여겨지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우물쭈물하며 여유를 부릴 수 있을 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서둘러 부대원들을 쫓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상기하고 정대식은 공격을 준비했다.
"반격권!"
콰르르르르르르르르르!
정대식은 블랙 드래곤이 쏟아내는 애시드 브레스 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러자 반격권의 영향으로 애시드 브레스가 도로 블랙 드래곤에게로 쏟아졌다.
물론, 애시드 브레스는 블랙 드래곤에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그러나 정대식이 필요로 했던 것은 블랙 드래곤의 시야를 가리는 것이었다.
운무처럼 일어난 애시드 브레스가 블랙 드래곤을 뒤덮었고 정대식은 그 안으로 뛰어들었다.
그렇게 기척을 완전히 죽인 채로 블랙 드래곤의 가까이 접근하여, 정확히 놈의 미간에 주먹을 뻗었다.
"변화!"
변화 스킬로 정대식의 주먹이 칼처럼 날카롭게 변했다.
정대식은 곧장 다음 스킬을 썼다.
"강화 강력권!"
퍼억!
날카로워진 그의 마력이 강화 강력권에 힘입어 블랙 드래곤의 강력한 비늘을 뚫었다. 그러나 주먹 하나 정도가 살 속에 파고들었을 뿐, 치명상이 되지는 못했다.
그 사실을 이미 짐작하고 있던 정대식은 블랙 드래곤을 일격에 보내버릴 공격을 쏟아냈다.
"방출!"
정대식은 블랙 드래곤의 미간에 꽂아 넣은 주먹을 통해 자신의 마력을 일시에 쏟아부었다.
그러자 블랙 드래곤의 머릿속이 그의 마력으로 인해 엉망진창으로 헝클어졌다.
곧 블랙 드래곤의 뇌가 그 강력한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두개골 안에서 터져버렸다.
크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블랙 드래곤의 최후는 고요했다. 그저 머릿속이 터져버렸기에 사방에 쏟아지는 피와 뇌수 같은 것은 찾아볼 수 없었다.
뼈나 살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블랙 드래곤의 단말마가 한번 울려 퍼졌을 뿐이다.
그러고 나자 블랙 드래곤의 시체가 아래로 추락했다.
휘이이이이이---------------------
콰아아아아아앙!
메테오의 흔적이 역력하게 남은 지상으로 블랙 드래곤의 시체가 처박혔다.
그 광경을 한번 내려다보고 정대식은 아래로 내려갔다. 그리고 블랙 드래곤의 시체 앞에서 뭔지 모를 떨떠름한 기분을 느꼈다.
'드래곤치고는 허무한 죽음이 아닌가.'
정대식이 강력해진 탓이겠지만 뭔가 블랙 드래곤이 전력을 다하지 않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정대식은 괜히 찜찜한 기분을 털어버리고 감정 스킬을 썼다. 그러자 블랙 드래곤 사체의 값어치가 정확히 계산되어 떠올랐다.
'헉!'
정대식은 깜짝 놀랐다.
'드래곤 사체가 값어치 있는 줄은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였다는 말이야?'
블랙 드래곤이라서 그런지 감정가가 어마어마했다.
액수를 들여다보는 제 눈을 의심할 지경이었다.
'1조 3000억 원!'
정대식은 저도 모르게 엔트로피를 불러내 말했다.
"이거 내가 잘못 본 거 아니지? 1조 3000억 원이 확실해?"
엔트로피가 재깍 답했다.
<그렇습니다.>
"드래곤이 이렇게나 값비싸다고?"
<당연한 일입니다. 드래곤은 뼈 한 조각, 피 한 방울까지도 엄청난 가격으로 거래가 됩니다. 입고 계신 블랙 드래곤 스킨 아머도 값어치로 따지자면 몇천억 원을 호가합니다. 더욱이 이 드래곤은 희귀한 블랙 드래곤이라 그 가격이 높은 것입니다. 뇌 말고는 손상된 부분이 없으니 더더욱 그런 것이고요. 아마 이 블랙 드래곤의 크기가 더 컸더라면 가격이 두 배 가까이 치솟았을 수도 있습니다.>
"여기서 블랙 드래곤이 더 클 수도 있다는 말이야?"
<드래곤은 수명에 따라 크기가 점점 커집니다. 이 블랙 드래곤은 그다지 나이를 먹은 드래곤이 아닙니다.>
"그렇다 치더라도 대단하군."
정대식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거라면 상점 레벨 업을 할 수 있겠어."
<지금 즉시 블랙 드래곤의 사체를 처분하시겠습니까?>
"그래. 블랙 드래곤을 상점에 내다 팔고, 그 수익금으로 상점을 레벨 7로 업그레이드 하겠다."
<알겠습니다. 그럼 판매창을 열겠습니다.>
우우우우웅-
그의 현질 시스템이 기묘한 빛을 뿌리며 블랙 드래곤의 사체를 삼켜갔다. 곧 엄청난 개수의 숫자가 그의 잔액창에 떠오르며, 엔트로피가 즉시 상점 업그레이드를 실행했다.
<상점을 레벨 7로 업그레이드하고, 1조를 차감합니다.>
Chapter 58. 포로녜치 공략
우우우우우우웅--------------------퍼엉!
다음 순간, 현질창에서 엄청난 빛이 뿜어져 나와 상공으로 치솟아 올랐다.
거기에 휩쓸린 정대식은 눈이 멀어버리는 것 같은 충격 속에 비틀거렸다. 그러자 상점 업그레이드로 인한 과량의 정보가 그의 머릿속으로 한꺼번에 밀려들었다.
찰나 우주의 끝과 같아 보이는 어둠과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빛이 그의 머릿속을 번뜩이며 지나쳐 갔고, 의미를 알 수 없는 무수한 광경과 색과 뜻이 전신을 때려왔다.
"허억!"
간신히 격변의 순간이 지나치고 났을 때, 정대식은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어디서 번개라도 한 방 맞은 것처럼 머리가 멍하고 전신이 덜덜 떨려왔다.
그러면서 코피가 강물처럼 콸콸 쏟아졌다. 마치 몸살이 났을 때와 같이 삭신이 쑤시면서 오한이 끼쳐와, 정대식은 서둘러 엔트로피를 불렀다.
"에, 엔트로피."
<부르셨습니까? 정대식 님.>
정대식은 눈앞에 나타난 엔트로피를 보고 눈을 휘둥그레 떴다.
너무 놀라서 쓰러진 자신의 상태조차 잊을 정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