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4
현질 전사
-10권 1화
Chapter 57. 성채를 향해
데스 레인저와 각종 몬스터들이 숨어 있는 숲을 쓸어버리고 그들은 걸음을 재촉했다. 그러나 숲이 있던 자리를 채 벗어나기도 전에 하피들이 습격을 해왔다.
여자의 상반신에 새의 날개와 짐승의 하반신을 달고 있는 그녀들은 하늘 위의 세이렌이라 불릴 만큼 피어가 지독했다. 사방을 쩌렁쩌렁하게 울려대는 피어 속에서 모기떼처럼 덤벼드는 하피들을 상대하느라고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그 와중에 지상에는 스킬라가 떼로 출몰하여 사방이 몬스터로 뒤덮였다. 부작용을 걱정한 정대식이 야마환의 사용을 자제하였기에, 몬스터들을 뿌리치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 수가 한두 마리가 아니다 보니 마치 몬스터로 만들어진 바닷속을 헤엄치는 것과 같았다.
말 그대로 암해였다.
"꺄아아아아아아아!"
"캬아아아아아아!"
"까르르르르르르!"
"우우우우우우우우우!"
사방에서 울부짖는 하피들과 스킬라들을 정신없이 해치우고 있던 정대식은 부대원들의 움직임이 눈에 띄게 느려진 것을 보았다.
그들은 마력 포션이나 서지원, 허미래, 그리고 정대식의 서포트로 끊임없이 마력을 충전 받고는 있었으나 그렇다고 피로감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암흑 영역으로 진입한 후 줄기차게 몬스터를 상대하고 있으니 진이 빠질 법도 했다.
특히 곰으로 변신한 미하일 소령은 이미 온몸이 상처투성이였다. 허미래가 짬짬이 힐을 써주고는 있었으나 그녀 앞가림하기도 바빴으므로 미하일 소령을 커버하기에는 무리가 있는 상황이었다.
'안 되겠군. 결국 야마환을 써야 하는 것인가?'
정대식이 야마환의 사용을 고민하던 그때였다.
번-쩍!
별안간 하늘이 두 쪽으로 갈라지는 것처럼 눈이 부시면서 어떤 충격 같은 것이 지면을 때렸다.
꽈르르릉!
다음 순간, 놀라서 두 눈을 크게 뜬 정대식은 그야말로 엄청난 광경을 보았다.
콰과과과과과과!
하늘에 맞닿아 몰아치는 불기둥!
정대식은 입을 쩍 벌린 채로 몬스터들을 회오리처럼 쓸어 올리는 그 불의 허리케인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그것은 다른 부대원들도 마찬가지였다. 느닷없이 나타난 그 불기둥은 몬스터 떼에게는 완전히 재앙이나 다름없었다.
특히 하늘을 박쥐처럼 어지러이 날아다니고 있던 하피들은 순식간에 그 회오리로 빨려 들어가 숯덩이가 되어버렸다.
그 광경을 보고 기겁한 스킬라들이 황급히 흩어지기 시작했다. 정대식은 재빨리 정신을 차리고 부대원들에게 소리를 쳤다.
"도망가게 놔두면 또다시 공격해올지도 모른다, 이참에 다 쓸어버려!"
"천리동풍!"
"슬로우!"
"공간 왜곡!"
여기저기서 시동어가 외쳐지며 스킬라들이 죽어라고 비명을 올렸다.
그때쯤 불기둥은 무수한 몬스터 떼를 휘감아 하늘 위로 승천하듯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그 자리엔 약간 얼빠진 표정을 한 기철민이 서 있었다.
그는 자신도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손에 들린 티르빙을 보고 있었다.
아니, 그것은 이미 티르빙이라고 말하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였다.
정대식은 그에게로 가까이 다가가 말했다.
"티르빙이 진화를 이루었나 보군. 이제는 티르브링어라고 불러야 할 것 같은데."
기철민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말을 더듬었다.
"바, 방금 보셨습니까?"
"봤다."
"도대체 이게 어찌 된......."
"네가 한 일인데 네가 모르면 누가 알아?"
"제가요?"
기철민은 자신이 그 불기둥을 만들어내었다는 게 믿기지 않는 모양이었다. 좀 바보 같은 문답을 얼마간 반복한 후에야 감탄한 표정으로 손에 들린 티르브링어를 바라보았다.
"힘들고 지쳐서 더 이상은 못 하겠다, 딱 죽겠다 싶었거든요. 그때 이러면 안 된다고 마음을 다잡고 젖 먹던 힘을 다해 온몸의 마력을 끌어올렸더니...... 별안간 티르빙이 변하면서 그 불기둥이 솟구쳐 오르더군요."
"덕분에 하피들과 스킬라들을 내쫓을 수 있었다. 대단한 위력이었어."
"더 놀라운 건 그만한 능력을 발휘했음에도 조금도 지치거나 피곤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도리어 더 기운이 나는 것 같아요!"
"M급 이상이 되는 아이템 중 상당수가 소모된 마력을 보충해주는 역할을 하지. 적을 더 많이 처치하면 할수록 기력이 상승하는 거야."
그렇게 말을 하고 보니 좀 억울했다. 마기전은 아직 완성이 되기 전이라서 그런지 사용할 때마다 상당량의 마력을 잡아먹었다. 오죽하면 어떡해야 마력 사용을 줄여서 쓸 수 있을까 연구까지 했겠는가?
게다가 야마환은 극심한 부작용으로 매번 굶어 죽을 위기를 넘겨 가며 사용을 해야 하니 티르빙보다 그 성능에 있어서 아쉬운 부분이 있었다.
정대식은 괜히 섭섭한 기분이었으나 기철민에게 티르빙을 넘긴 것을 후회하지는 않았다.
정대식이 본 대로 기철민은 티르빙을 최종판으로까지 진화시킬 수 있는 능력과 집념이 있는 것이다.
"앞으로 이 정도만 해준다면 포로녜치의 성채에 다다라서도 문제없겠어."
"아닙니다. 다 대장님 덕분이죠."
"음, 스킬라를 처치한 부대원들이 돌아오는군. 다음 습격이 있기 전에 얼른 서두르자!"
"알겠습니다."
그들은 서둘러 부상을 치료하고 다시금 이동했다.
물론, 몇 발 가지 못해 또다시 몬스터를 맞닥뜨려야만 했다.
끝도 없는 싸움이 반복되고 있어 카잔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실감이 났다.
그렇게 얼마를 싸우고, 또 걷고 싸우고, 또 걷기를 반복했을까.
미하일 소령이 다 쉬어빠진 목소리로 손을 들어 말했다.
"저기, 성채가 보이는군요."
정대식은 엔트로피를 불러내어 앞서 날려 보냈다. 그러자 링크된 시야로 멀리 포로녜치의 성채가 음산한 모습을 하고 있는 광경이 보였다.
포로녜치의 성채는 마치 인류 문명의 최후를 상징하는 오브제와 같아 보였다.
포로녜치의 성채를 구성하고 있는 것은 일대의 도시를 파괴하여 그러모은 찌꺼기들이었다.
다 녹슨 철근과 콘크리트, 녹아내리다 만 아스팔트와 차와 가로등, 간판 같은 것들이 한데 엉겨 붙어 있었다.
그 가운데는 몬스터들의 시체뿐만 아니라 인간의 시체로 여겨지는 살덩어리들도 군데군데 보였다.
실로 끔찍하기 짝이 없는 모양새인지라 정대식은 눈살을 찌푸리고 엔트로피에게 주위를 돌아보게 했다. 그리고 엔트로피를 통해 성채 주변에 어슬렁거리고 있는 몬스터 떼의 규모가 얼마만 한지를 파악했다.
'최소 몇만은 되어 보이는군. 이건 몬스터 떼라기보다는 거의 몬스터 군대에 가깝다. 거기다가 성채 위의 저건.......'
엄밀히 말해 성채라기보다는 그저 온갖 도시의 잔해를 그러모아 쌓아 올린 벽과 같은 그것의 위쪽에는 놀랍게도 무기들이 자리해 있었다.
탱크나 기관총, 포탑 같은 것들이 성채 위쪽을 장식하고 있었다.
아마도 체르노보그가 모스크바를 점령했을 때 몬스터들과 싸웠던 군인들의 무기일 것이다.
딱히 그 무기를 운용하는 인력이 보이지는 않았으나, 장식품 삼아 무기들을 거기에다 갖다 놓지는 않았을 것이다.
성채를 지키는 바바야가, 세 명의 마녀들이 무슨 술수를 써도 쓸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바바야가는 전형적인 마녀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는데, 마치 가면처럼 쭈글쭈글한 얼굴에 시커먼 두건과 망토를 둘러쓰고 있었다.
하지만 망토 밑에는 몸이라고 할 만한 게 없는지 부피감이 느껴지지 않았고, 허공에 망령처럼 둥둥 떠 있었다.
그들은 두건 아래 개구리처럼 툭 불거져 나온 눈을 데굴데굴 굴리며 성채 주위를 감시하고 있었다.
그 눈은 염소처럼 동자가 옆으로 길쭉하게 누워 있어 기괴하기 짝이 없었다.
정대식은 바바야가가 엔트로피를 발견하기 전에 그녀를 불러들였다. 그리고 부대원들에게 간략히 상황을 설명하고 말했다.
"정면으로 대결을 하기에는 성채 주위에 포진하고 있는 몬스터 떼가 지나치게 많다. 처치 못 할 것도 없겠지만 놈들에게 힘을 다 뺐다간 포로녜치를 상대할 여력이 없을 거야. 그러니 작전이 필요하다. 무슨 좋은 생각이 있나?"
그때 서지원이 나섰다.
"아무래도 제가 활약할 차례인 것 같습니다."
정대식은 걱정스럽게 물었다.
"괜찮겠나?"
서지원은 유약한 생김새에 어울리지 않는 듬직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물론입니다."
그는 몬스터들의 바다를 헤엄쳐 오면서 계속된 마력 흡수 사용으로 상태가 많이 안 좋아 보였다.
그나마 힐러로 각성한 허미래의 서포트가 있었기에 그럭저럭 버텨내고는 있었으나, 리치 써클렛이 음산한 빛을 번쩍번쩍 뿜어내는 가운데 그의 피부가 시퍼렇게 변해 있었다.
몬스터들의 사력을 빨아들이는 바람에 그의 몸 상태가 인간이기보다는 몬스터에 더 가깝게 변형하려 드는 것이다.
실제로도 그의 몸에선 시취가 흘렀고 입에서 흘러나오는 숨결이 유독하여 가까이 다가갈 수가 없었다.
서지원은 그러한 자신의 상태를 살펴보며 말했다.
"이제 이 사력을 모조리 방출해낼 때가 된 것 같습니다. 제가 공간 분리로 길을 뚫어볼 테니, 여러분은 몬스터 떼를 개의치 말고 곧장 성채로 가서 바바야가를 쓰러트리고 그것을 무너트리는 편이 좋겠습니다."
그렇게 설명한 서지원은 곧 푸르스름한 안광에 힘을 줬다.
"단, 제 능력이 몬스터들의 사력을 쓰는 것이다 보니 위험부담이 있습니다. 시간을 끌면 이 사력에 반응한 몬스터들이 폭주해버릴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신속히 성채를 무너트리셔야 합니다."
정대식은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우리를 성채까지만 보내준다면 그 점은 문제없다. 허미래가 필요하겠지?"
허미래가 즉시 나섰다.
"서지원의 곁에는 제가 붙어 있겠습니다. 만에 하나의 사태가 일어난다 하더라도 제가 어느 정도는 커버할 수 있을 거예요."
"좋다. 그럼 바바야가를 쓰러트리는 일이 첫 번째, 그리고 성채를 무너트리는 일이 두 번째가 되겠군."
그때 미하일 소령이 끼어들었다.
"풍문에 의하면 바바야가는 세 마리를 동시에 해치워야지만 처치를 할 수 있습니다. 따로 죽여 봤자 계속 부활한다고 하니 의미가 없어요. 인원을 나누어 그들을 한 번에 상대해야 합니다."
"좋다. 그렇다면 나와 미하일 소령이, 고덕화와 김송근이, 이재우와 기철민이 각각 한 마리씩 바바야가를 맡아서 처치하겠다. 바바야가를 쓰러트리고 나서 성채를 무너트리는 일은 우리가 전부 함께한다. 알겠나?"
"알겠습니다!"
"좋아, 그럼 시작하지!"
* * *
그들은 은신으로 몸을 감춘 채 몬스터 떼가 도사리고 있는 성채 앞 평원으로 최대한 가까이 다가갔다.
사방에서 몬스터들의 악취가 풍겨왔고 놈들이 내뿜는 괴성이 귀청을 찢어놓을 듯했다.
그렇게 최대한 거리를 단축해, 그들은 평원 한가운데 서게 됐다. 은신을 해제하자마자 바로 몬스터들에게 노출될 만한 그런 장소였다.
부대원들 사이에서 긴장이 감도는 가운데, 허미래가 서지원의 가까이 붙어 섰다. 그러자 서지원이 두 손을 모아서 입가로 가져갔다. 그리고 입을 크게 벌리며 시동어를 내뱉었다.
"공간 분리!"
콰아아아아아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