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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질 전사-221화 (221/297)

# 221

현질 전사

-9권 22화

정대식은 아쉬운 맘에 미하일 소령에게 물어보았다.

「이 몬스터 사체들을 돌아가는 길에 수거할 수는 없겠습니까?」

미하일 소령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희한하게도 몬스터의 사체는 던전 밖을 벗어나면 부패 속도가 현저히 빨라집니다.」

「여긴 추운 지방이잖습니까. 그런데도 그렇습니까?」

「썩는 속도가 좀 더딜지는 몰라도 마찬가지입니다. 게다가 여긴 그렇게 추운 지역이 아닙니다. 지금은 하늘에 해가 가려 있어 추운 것이지, 만약 체르노보그를 쓰러트리면 일대의 기온도 원래대로 돌아올 겁니다. 그럼 순식간에 썩어 사라지겠지요.」

「흐음.......」

정대식은 아쉽다고 입맛을 쩝쩝 다셨다. 어차피 부대원들을 훈련하기 위한 사냥이라 마냥 낭비라고 할 수만은 없지만, 어찌 되었든 아까운 건 아까운 거다.

이 수많은 몬스터 사체를 두고 차마 발길이 떨어지지 않아, 정대식은 엔트로피를 보고 물었다.

"야, 엔트로피."

<부르셨습니까?>

휙, 모습을 드러내는 엔트로피를 보고 옆에 있던 미하일 소령이 움찔했다. 그건 다른 군인들도 마찬가지였다. 아직까지 수시로 나타났다 사라지는 엔트로피에게 익숙해지지 않는 모양이었다. 엔트로피가 이런 살풍경한 장소에는 어울리지 않는 어린 소녀의 모습을 하고 있어 더 그랬다.

"몬스터 사체를 처리할 만한 스킬이 없을까?"

<아시다시피 분해나 해체 스킬이 있습니다만.>

"알고 있어. 하지만 그건 효과 범위가 적잖아. 커다란 몬스터 한 마리 해체하려면 스킬을 열댓 번은 써야 할걸?"

정대식이 더욱 간편하게 몬스터를 처리할 방법을 궁리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관련 스킬이 있다 한들 업그레이드를 충분히 하지 않으면 그 효과가 미비했다.

레벨업을 한번 하는데 10억을 깨 먹으니 겨우 레벨 10을 만드는데도 90억이 필요했다. 상점 업그레이드를 하기 위해 전투 스킬에도 돈을 아끼고 있는데 그런 스킬에다 돈을 낭비하기 아까웠던 것이다.

<아니면 디멘션 포켓과 같은 효과를 내는 아이템이 있습니다.>

"그게 뭔데?"

<압축 상자라는 아이템입니다.>

"압축 상자?"

<말 그대로 물건의 부피를 크게 줄여 넣을 수 있는 물건입니다.>

"얼마나 줄일 수가 있지?"

<그건 가격에 따라 다릅니다. 100억짜리가 100분의 1, 1,000억짜리가 1,000분의 1 크기로 줄어듭니다.>

"제일 싼 게 100억이나 한다는 말이야?"

<그렇습니다.>

"그럴 바에야 해체 스킬을 익혀서 그때그때 상점에 파는 편이 낫겠다! 굳이 압축 상자를 사서 들고 다녀야 할 이유가 없잖아?"

그렇게 말을 하던 정대식은 퍼뜩 생각을 바꿨다.

"아니, 잠깐만. 해체 스킬을 익혀서 압축 상자에 몬스터 사체를 넣어가지고 나중에 부산물 처리소에 갖다 팔면...... 제값을 받을 수 있겠네?"

<그렇겠지요.>

정대식은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해체 스킬을 획득하고 일단 레벨 5까지만 업그레이드를 하자. 그럼 40억만 써도 되니까. 다소 성가시더라도 스킬을 여러 번 써야지 뭐. 그다음에 압축 상자를 사는데 100억을 쓰면...... 여기서 획득한 몬스터 부산물로 본전을 뽑고도 남을 거야.'

그만하면 투자할 만하겠다고 정대식은 말했다.

"좋아. 해체 스킬을 획득하고 레벨 5로 업그레이드해."

<해체 스킬을 획득하고 천만 원을 차감합니다.>

<해체 스킬을 레벨 5로 업그레이드 하고 40억을 차감합니다.>

"압축 상자를 사겠어. 제일 저렴한 것으로."

<압축 상자를 구매하고 100억을 차감합니다.>

이로써 140억이 날아갔다.

남은 잔액은 대략 1,200억 정도.

그동안 벌어들인 돈이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하와이에서의 보상도 아직이라 1조를 모으기엔 까마득히 멀었다. 정대식은 무려 8,800억을 더 모아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한숨을 푹 쉬었다.

'이래가지고 언제 1조를 모아서 상점 업그레이드를 해? 그냥 레벨 6으로 만족하고 있는 스킬이나 업그레이드할까?'

1조나 되는 돈을 써가면서까지 상점 업그레이드를 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회의가 들었다. 레벨 6에서도 아직 획득하지 못한 수많은 스킬이 있었다. 이미 갖고 있는 스킬만 계속 업그레이드해도 충분히 최강자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레벨 7을 포기할 수 없는 것은 레벨 6에서 어떤 한계가 느껴지는 탓이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스킬의 결합이다.

'내 전투 능력은 강력권과 무적권, 반격권만으로도 충분하다. 방어 능력도 강철 신체 하나만 업그레이드해나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이미 M급의 장비까지 갖추고 있으니 이러한 스킬들을 업그레이드하는 것은 단순히 파괴력을 높일 뿐이다. 그 이상이 필요해.'

정대식이 상점을 업그레이드하려는데는 엔트로피를 좀 더 알차게 써먹고자 하는 이유도 있었다.

정대식은 모든 계열의 능력을 획득한 올인원이 됨으로써 엔트로피를 일종의 파트너로 만들었다.

엔트로피를 구현과 변화, 강화 등을 통하여 전투에 배치할 뿐만 아니라 링크를 통해서 엔트로피가 획득하는 정보를 전부 받아들일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애초에 정대식이 목표한 에고 웨펀이 되었다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엔트로피가 스스로 스킬을 사용할 수 없는 탓이다. 일일이 정대식이 명령을 내려주어야 하는데, 제아무리 링크를 통한 의식 공유가 된다 하더라도 급박한 전투 상황에서는 부족한 감이 있었다. 하다못해 스킬 사용에 있어서도 다소의 번거로움이 있는 것이다.

엔트로피를 무기화하려면 구현, 변화, 강화, 이 세 단계를 거쳐야 했다. 거기에다가 공격 스킬까지 따로 지정을 해주어야 하니, 엔트로피를 운용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그런데 만약, 구현, 변화, 강화 이런 스킬을 한 번에 결합할 수 있다면?

엔트로피에게 내리는 명령 자체가 크게 축소가 된다.

특히 상태증진 스킬이 가지는 번거로움이 사라질 것이다.

상태증진 스킬은 근력, 마력, 체력, 오감, 민첩, 행운 등 여섯 가지 기본 항목으로 나뉘어 있었다.

이것을 발동시키려면 향상시키고 싶은 특정 항목의 스킬을 지정해 발동을 해야 했다.

즉, 모든 항목의 신체 상태를 향상시키고 싶으면 여섯 가지나 되는 스킬을 일일이 발동해야 한다는 말이다.

대상이 정대식 본인에 한할 경우에는 다소 귀찮더라도 별다른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 스킬이 대상지정 상태증진이 되고 대상이 부대원들이 되다 보니 문제가 되었다.

부대원들의 머릿수만 여섯인데 스킬의 종류만도 여섯 개다 보니 모든 상태를 증진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그래서 지금은 마력을 늘리는데 치중하고 있었으나, 정대식이 직접 겪어본 바로는 모든 상태를 고루 향상하는 게 좋았다. 그러니 이 여섯 종류의 상태증진 스킬을 한데 묶어서 발동시킬 수 있다면 그처럼 편한 일이 없을 것이다.

더불어 여섯 개나 되는 스킬을 업그레이드하느라 낭비되는 돈도 크게 아낄 수 있을 터였다. 상태증진 스킬 항목이 여섯 개다 보니 이걸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는 데만도 60억이 들었다.

그런데 만약 이 스킬들을 한데 묶어 하나로 통합할 수 있다면?

정대식으로선 환호작약할 일이다.

물론 스킬을 합체한다는 개념 자체가 7단계의 상점에도 없을 수 있었다.

그런 방법이 있다 하더라도 레벨업을 할 경우에 그 효과가 크게 떨어질 수도 있었다.

하지만 레벨 7단계의 상점에 지금보다 더 높은 수준의 스킬이 있으리란 건 확실했다.

상태증진 스킬 6종을 레벨 10으로 업그레이드해놓는 것보다 획득하는 것만으로도 더 큰 효과를 발휘하는 스킬이 있을 수 있다는 말이다.

스킬의 획득 자체는 고작 천만 원에 불과하니, 1조를 들인다 하더라도 더욱 수준 높은 스킬이 있는 레벨 7로 상점을 업그레이드하는 것이 맞았다.

그렇다 보니 상점을 아예 업그레이드하지 않을 거라면 모를까, 지금 단계에서 스킬 업그레이드에 무작정 돈을 투자하는 일은 바보짓이었다.

스킬의 만렙이 무려 100이니, 초기 단계의 스킬을 만렙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엄청난 돈이 드는 것이다.

무엇보다, 아직까지 상점에 없는 것이 있었다.

'레벨 6단계의 상점에서는 MAX 상태의 스킬이 없다. 획득하는 것만으로도 완전한 스킬이 없다는 소리지.'

정대식이 생각하기에 가장 금전적으로 효율이 높은 것은 획득하는 것만으로도 MAX를 찍는 완전 스킬이었다.

그런 스킬은 일단 획득하기만 하면 더 이상 돈을 투자할 필요가 없었다. 자린고비인 정대식에게 그것만큼 유용한 스킬이 또 어디 있겠는가?

그런데 레벨 6단계까지의 상점에는 그런 스킬이 없었다.

레벨 7로 간다고 그런 스킬이 있으리라는 보장은 없지만, 어쨌든 간에 상점 업그레이드는 하고 볼 일이었다.

최소한 레벨 7로 업그레이드를 하면 엔트로피가 성장할 수 있었다. 스스로 스킬을 사용하는 에고 웨펀의 경지에 이를 수도 있는 것이다.

'문제는 돈이다...... 젠장.'

정대식은 나오는 한숨을 집어삼켰다. 그리고 어째서 천억이나 되는 자산을, 그것도 현금으로 갖고 있으면서 돈 걱정을 해야 하는 거냐고 허공을 쳐다보며 욕설을 중얼거렸다.

그런 뒤 단돈 백만 원이라도 더 벌기 위해 사방에 널려있는 몬스터 사체 주위를 돌아다니며 해체 스킬을 사용했다.

"해체."

파앗!

레벨이 5라서 어지간한 크기의 몬스터는 대부분 처리가 되었으나 3m짜리 몬스터는 해체 스킬을 두 번씩 사용해야 했다.

해체를 사용하고 나니 몬스터 사체가 각 부위별로 깨끗이 나뉘어 따로 손댈 것이 없었다.

그렇게 정리된 몬스터 사체를 압축 상자에 집어넣자 깔끔하게 마무리가 되었다. 압축 상자의 크기는 기껏해야 우체국 1호 박스만 한 크기였으므로, 매우 간편했다.

아공간이 있는 정대식으로선 그걸 들고 다닐 필요도 없었다. 작업이 끝나면 아공간에 털어 넣으면 그만이다.

정대식이 해체 스킬을 사용하는 것을 보고 군인들뿐만 아니라 부대원들은 눈을 휘둥그레 떴다. 몬스터 사체가 아깝기는 그들도 마찬가지인지라 최대한 돈 되는 부위만 신중을 기해 골라내고 있었던 것이다.

말이 골라내는 것이지 몬스터 처리 작업은 살과 뼈를 발라내는 일이다 보니 험하기 그지없었다. 사방에 피와 살점이 튀는 데다 솜씨가 신통찮으면 부산물의 값어치를 떨어트리기 마련이었다.

물론 짐꾼 출신인 정대식은 해체 스킬을 획득하기 전에도 부산물 발라내는 솜씨 하나는 기가 막혔다. 감정 스킬을 이용해 딱 돈 될 만한 것 몇 가지만 골라서 귀신같이 처리해버리곤 했던 것이다.

그런데 한층 업그레이드되어 시동어만 중얼거리면 몬스터 사체가 다 정리되어 버리니, 다들 신기하다는 소감을 넘어 부럽다는 표정으로 정대식을 바라보았다.

"대장님 재주는 날이 갈수록 신묘해지는군요."

그 무뚝뚝한 고덕화가 한마디 하는 말에 이재우가 눈치 없이 투덜거렸다.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사람이 번다더니......."

그런 이재우의 머리를 기철민이 후려쳤다.

"우리가 잡은 몬스터를 대장님이 혼자서 꿀꺽할 것 같냐? 지금 우리가 몬스터 사냥을 하는 이유가 뭔데? 다 우리 실력 향상을 위한 훈련이 아니냐? 그깟 돈이 중요해?"

이재우는 금방 잘못을 깨닫고 깨갱 했다. 정대식은 몬스터 해체를 계속하며 말했다.

"여긴 내가 처리할 테니까 너희는 이만 가서 쉬어라. 오늘도 고생했다."

"그래도 되겠습니까?"

"쉬어야 지금보다 더 강해지지. 얼른 가라!"

정대식은 미적거리는 부대원들을 쫓아냈다. 그리고 죽어 자빠진 몬스터를 찬찬히 살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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