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질 전사-208화 (208/297)

# 208

현질 전사

-9권 9화

정대식은 어깨를 으쓱하고 말을 이었다.

"다른 건 몰라도 광필두가 제이드를 죽이도록 몰아간 건 맞잖아요. 그를 함정에 빠트리지 않았더라면 제이드는 아직 살아있었을 겁니다. 광필두는 7성 무구만 손에 넣고 순순히 떠났겠죠."

"이미 지난 일이니 왈가왈부하는 것은 그만하죠."

"잘못을 인정하는 겁니까?"

"그게 중요한가요? 중요한 건 광필두가 실질적인 위협이 되었다는 사실이에요. 제이드 팔머를 죽이고 브릴리언트 아우라 아머를 탈취해 갔으니 다음 목표가 무엇인지는 불을 보듯 뻔하겠죠."

"국가기물금고에 있다는 것 말이군요."

"그래요. 그래서 말인데...... 당신이 국가기물금고를 지켜줘야겠어요. 더불어 광필두를 잡기 위한 작전에도 협조해주었으면 해요."

정대식은 코웃음을 쳤다.

"내가 왜 그래야 하죠? 날 이미 공짜로 부려먹지 않았습니까."

"공짜로 부려먹다뇨. 마기전을 손에 넣었잖아요?"

"그건 하와이 제도 탈환을 도운 대가라고 생각했는데요."

"그래도 당신은 국가로부터 월 300억씩이나 되는 돈을 받고 있어요. 엄밀히 말해 국가에 귀속된 몸이란 말이에요. 국가가 요청하면 응당......."

듣다 보니 진짜 기가 막혔다.

정대식은 더 이상 장한나가 늘어놓는 강압적인 헛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을 마음이 없었다. 그는 보란 듯이 휴대폰을 꺼내 들어 연락처를 찾았다. 그러자 장한나가 미간을 찡그리고 말했다.

"뭐하시는 거예요?"

"지금 당장 한미란 씨에게 전화할 겁니다."

"뭐라고요?"

"미국 측에도 유감이 있으니 아무래도 중국 쪽으로 가는 게 낫겠군요. 아! 물론 블랙 드래곤 스킨 아머는 반납하겠습니다. 하지만 마기전은 내놓을 수 없어요. 이건 내가 정당한 대가를 치르고 갖게 된 물건이니까."

"정대식 씨!"

"세상에서 하나뿐인 올인원을 이런 식으로 취급하는 곳에는 붙어있을 생각이 없습니다. 국가에 귀속되었다고요? 천만에!"

정대식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며 으름장을 놓았다.

"난 어디에도 귀속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그 어떤 능력도 날 제한하지 못해!"

그는 그대로 몸을 돌려 커피숍을 나왔다. 등 뒤에서 장한나가 요란하게 불러대며 쫓아왔으나 무시한 채 곧장 차에 올라 달렸다.

* * *

정대식은 그 길로 타이탄 공격대를 찾아갔다.

곧장 사무실에 머무르고 있던 강영후를 찾아 마주하기가 무섭게 다짜고짜 말했다.

"죄송합니다만 타이탄 공격대를 떠나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강영후는 눈을 휘둥그레 뜨더니 일단 그를 자리에 앉히고 입을 열었다.

"......나도 오랜만이군. 미국에 갔던 일은 잘되었나? 원하던 것은 얻었고?"

정대식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직 자초지종을 잘 모르시나 보군요."

"그 자초지종이라는 게 뭔지 들어보고 싶군."

"이야기가 좀 깁니다."

정대식은 빠른 어조로 그간 있었던 일을 늘어놓았다. 광필두와 마기전, 제이드 팔머와 각성자 총연맹이 벌인 만행에 이르기까지. 눈살을 찌푸린 채로 신중히 그 말을 듣고 있던 강영후는 마지막에 이르러 물었다.

"그래서, 정말로 중국으로 갈 생각인가?"

그때쯤엔 머리꼭대기까지 치솟았던 열기가 다소 식어 있었다. 강영후의 침착한 태도 덕분이기도 했다. 정대식은 마주 잡은 손을 주무르며 말했다.

"열 받아서 그렇게 말을 해놨지만 사실 제가 중국에 가서 뭘 하겠습니까? 전 그냥 제가 그런 일에 이용당한 것이 기분 나빴을 뿐입니다."

고개를 끄덕인 강영후는 턱을 쓰다듬으면서 중얼거렸다.

"기분 나쁠 만도 하지. 아무래도 각성자 총연맹에선 자넬 한번 떠보고 싶었던 모양이야."

"예? 그게 무슨 말입니까?"

"......이런 말 하면 뭣하지만 자네는 지나치게 강해지고 있어."

"그것이 이거랑 무슨 상관입니까?"

"각성자 총연맹에서는 난생처음 탄생한 올인원이라는 존재에 불안감을 느낀 거야. 그 와중에 이능을 파괴하는 능력을 가졌을지도 모르는 남자가 7성 무구를 모아서 여신급의 힘을 손에 넣으려 하고 있고. 만약에 광필두와 자네가 손잡게 된다면......."

정대식은 뜨악해 말했다.

"아니, 전 전혀 그런 생각해 본 적 없습니다."

"자네 생각은 중요하지 않아. 이런 종류의 일은 그냥 그럴지도 모른다는 가정만으로도 공포스러운 일이니까."

"공포스럽다고요? 허 참...... 기가 막혀서."

세상을 구하려고 애쓰는 게 누군데, 억울하기 짝이 없는 노릇이라 절로 표정이 구겨졌다.

강영후는 정색하는 정대식을 보고 찬찬히 말을 이었다.

"진정하고 생각을 해보게. 만약 자네가 올인원이 아닌 보통의 각성자...... 아니, 다른 각성자들의 안위를 걱정하는 그런 제3의 인물이라 치지. 그렇다면 올인원과 이능파괴자가 동시에 등장하는 이 상황을 어떻게 보겠나?"

"......글쎄요."

"나 같으면 당연히 그 두 사람을 예의 주시할 수밖에 없을 거야. 실제로 난 각성자 총연맹의 임원도 아니지만 자네나 광필두에게 관심이 많지. 대부분의 각성자들이 그럴걸? 그런데 개중 한 사람이 위험한 길을 가고 있고, 다른 한 사람은 한계 없이 강해지고 있어. 둘이 힘을 합치게 될 경우, 전 우주적인 재앙이 일어날지도 모른다고 추측하는 것이 과연 말도 안 되는 일일까?"

정대식은 인상을 쓰고 말했다.

"저는 제가 광필두의 대항마로 취급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만."

"그런 분위기가 조성된 것은 어느 정도 의도적인 부분도 있을 거야. 하지만 자네 개인적으로는 광필두에게 적의를 드러내거나 한 적이 없지. 사실상 자네랑은 상관없는 인물이니까. 오히려 임시로나마 같은 공격대에서 일한 적도 있고, 방금 자네가 하는 말을 들어 보아하니 오히려 호의적인 기색이 느껴지는군."

정대식은 약간 뜨끔해서 변명처럼 들리지 않기를 바라며 대답했다.

"그것이...... 강철우의 죽음에 대한 부분이 오해라는 사실을 알았으니까요. 눈앞에서 그런 함정에 빠지기까지 했으니까, 제 적의가 그가 아닌 다른 곳에 돌려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닙니까?"

강영후는 정대식의 말을 주의 깊게 들으며 이야기를 계속했다.

"그 부분은 각성자 연맹에서도 미처 생각지 못한 일이었겠지만...... 아무튼 간에, 자네는 광필두에게 대항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지만 그만큼 강대한 힘을 갖고 있어 위험하기도 하다 이거지. 자네 두 사람이 서로 손을 잡는 것은 상상도 하기 싫은 일일 거야. 그러니 누군가들은...... 그 일을 기획한 각성자 연맹의 어떤 인물들은 자네에 대해서 확신을 가지고 싶었겠지. 자네와 광필두가 적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말이야."

"그러니까, 저와 광필두를 접촉시켜 제 반응을 살펴보려 했다는 말입니까?"

"어쩌면 광필두와 자네를 빼도 박도 못하는 상황에 빠트려 영구한 적으로 만들고자 했던 건지도 모르지."

정대식은 놀랐다.

강영후의 말이 옳았다.

만약 그 함정에서 광필두가 자력으로 살아났고, 그로 인해 정대식과 맞붙게 되었더라면 두 사람은 꼼짝없이 적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기획자들의 의도와는 다르게, 정대식은 광필두를 도우려 했고 그로 인해 둘의 관계가 무어라고 정의내리기에는 애매해진 상태였다.

정대식은 광필두가 비정하게 사람을 죽이는 모습을 눈앞에서 보았고, 그가 본인 입으로 악당이 되겠다고 말을 한 것이나 다름없는 상황이었으므로 현재로썬 그에 대해 호감을 갖기 어려운 입장이었다.

하지만 목숨을 걸고서라도 막아야 할 적이냐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대답하기엔 한 30%쯤 모자라는 기분이었다. 광필두가 그 지경이 되도록 몰아간 잘못이 다른 쪽에 있다고 생각하는 탓이었다.

"이랬든 저랬든 제게 거짓말을 한 것은 사실이죠. 이 부분에 대해 호락호락하게 넘어갈 생각은 없습니다."

"그럼, 앞으로 어떡할 거지? 각성자 연맹에 대해 반기를 들고, 그들을 적으로 돌리기라도 하겠다는 건가?"

"그건 지나치게 극단적인 이야기로군요. 기분 좀 상한다고 그럴 생각은 없습니다. 게다가 제가 각성자 연맹에 적대적인 액션을 취한다면 그쪽의 멍청이들이 저를 광필두의 편이라 생각하겠지요."

"그래. 그 말이 맞다. 각성자 연맹을 섣부르게 배척하면 안 돼. 광필두가 어디로 튈지 모르는 공이 된 이상은 더더욱......."

강영후는 문득 고개를 들고 정대식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팔머 가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서는 내게 맡겨주게."

정대식은 눈을 둥그렇게 떴다.

"공대장님이요?"

"내 부하를 사전 협의도 되지 않은 일에 끌고 가서 위험에 빠트린 것은 간과할 수 없는 일이지. 내가 각성자 총연맹과 PCC에 조정을 거쳐 그 대가를 톡톡히 받아내겠어."

"직접 나서주신다면...... 저야 감사한 일이지요. 그러잖아도 저는 지금 할 일이 있습니다."

"할 일이라니?"

"펜리르 부대가 도착하는 대로 그들을 데리고 러시아로 갈까 합니다."

"러시아로?"

"거기에 제가 모으고 있는 무구, 마기전의 나머지 파츠가 있는 것 같습니다. 광필두가 7성 무구를 다 모으기 전에 저도 그만한 힘을 갖추고는 있어야 할 거 같아서요."

"알다시피 러시아는 위험한 곳이야. 자네가 러시아 어디로 가는지는 몰라도......."

"어쩌면 디재스터급의 던전에 가게 될지도 모릅니다. 모스크바의 체르노보그가 출몰하는 던전에요."

"뭐?"

강영후는 놀라서 몸을 뒤로 젖혀 말했다.

"체르노보그라면 러시아를 쑥대밭으로 만든 그......."

"예."

"상대할 수 있겠나?"

"아직 놈을 만나게 될는지 어떨지는 모릅니다. 제가 가려는 던전이 그놈이 있는 곳인지 아닌지 확실치가 않아서요. 하지만 만약에 체르노보그를 쓰러트리고 그 던전까지 공략하게 된다면 엄청난 대가를 얻게 될 겁니다."

"그야 그렇겠지. 그렇담 나로서도 반대할 이유가 없네만. 염려스럽기는 하군."

걱정스러운 표정이 된 강영후에게 정대식은 재빨리 말을 이었다.

"각성자 총연맹이나 PCC와의 협의 외에도 한 가지 부탁드릴 일이 있습니다."

"그게 뭔가?"

"남아있는 7성 무구의 세 개 중 하나가 국가기물금고에 있습니다."

"국가기물금고라고?"

"비밀유지에 서약했지만 이제 와서 그게 중요한 것 같지는 않군요. 아무튼, 조만간 광필두가 그것을 탈취하러 국가기물금고를 습격할 겁니다. 조금 전에 그 일을 막아달라는 부탁을 거절하고 왔죠."

"그럼 내게 자네를 대신해서 그것을 지켜달란 소릴 하러 온 건가?"

정대식은 고개를 흔들었다.

"현실적으로 보면 광필두가 국가기물금고에서 뢰를 꺼내 가는 것을 막을 방법은 없습니다. 보안이 철저하게 되어 있다고는 하나, 그가 7성 무구를 꺼내 가지고 와서 두드리면 막아내기 힘들 겁니다."

"그렇겠지."

"제게 그 일을 거절당했으니, 정부에서는 분명 그 일을 여러 공격대의 강자들이나...... 혹은 최희에게 맡길지도 모릅니다. 그걸 막아달라는 것입니다."

"그럼, 자네 말은 정부에서 광필두를 막는 일을 막아달라는 건가? 7성 무구를 그냥 넘겨주라고?"

"국가기물금고에 있는 뢰를 지키려고 애쓰면 애쓸수록 사상자가 많이 나올 겁니다. 국가기물금고의 위치가 서울에 있으니 어쩌면 일반인이 다치게 될지도 모르고요. 무엇보다 광필두는 이능 파괴 능력이 있습니다. 그와 맞대결을 하다가 뛰어난 능력자들이 무능력자가 되는 것만은 막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사실을 말하자면 최희가 제일 걱정되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