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질 전사-207화 (207/297)

# 207

현질 전사

-9권 8화

마기전의 파츠들 중, 투구 격인 아멧이 어디 있는지 떠올리며 다우징을 쓰자 끄트머리에 매달린 추가 팽팽 돌았다.

하지만 계속 빙글빙글 돌기만 할 뿐 특정한 지점을 가리키지 못했다.

"이거 왜 이래?"

정대식이 추를 흔들며 묻자 엔트로피가 당연한 걸 왜 묻느냐는 듯이 말했다.

<아마도 아멧은 지구가 아닌 다른 차원, 즉 던전에 있을 겁니다. 그러니 레벨 1 다우징으로는 찾아내지 못하는 것입니다.>

"젠장! 업그레이드해야 한다 이거냐?"

<그렇습니다.>

"어쩔 수 없지. 레벨 2로 업그레이드해!"

<다우징 스킬을 Lv2로 업그레이드하고 10억을 차감합니다.>

"다우징!"

서둘러 다시금 다우징을 사용해보자 어지럽게 돌던 추가 어딘가를 딱 가리켰다. 추가 가리키는 지점을 살펴보고 정대식은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러시아?"

<러시아에 있는 던전을 가리키고 있군요.>

"무슨 던전이야?"

<이름은 딱히 없는 것 같습니다. 알다시피 러시아는.......>

"그래, 엉망진창이지. 그런데 어째 위치가 모스크바인 거로 봐서는 불길한 예감이 드는데."

첫 번째 몬스터 브레이크 때 가장 큰 피해를 본 지역 중의 하나는 바로 모스크바였다.

거기에서 튀어나온 거대 괴수가 일대의 모든 것을 파괴했고 수많은 몬스터가 쏟아져 나와 인간들은 혹한이 몰아치는 땅으로 쫓겨 가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 러시아 정부가 파괴되어 몇 년 동안 무정부 상태가 이어졌다.

첫 번째 몬스터 브레이크의 충격이 지나가고 간신히 이반 이바노비치 이바노프라는 인물이 남아있는 군대를 끌어 모아 정부를 다시 수립했다.

하지만 폭정에 가까운 독재정치를 펼쳤고, 결과적으로 반란이 일어나 얼마 남아있지 않은 인간들의 땅마저도 전쟁통이나 다름없었다.

"만약에 이 던전이 모스크바를 쑥대밭으로 만든 체르노보그의 소굴이라면 곤란한데. 놈은 모스크바에 나타났지만 처치되지 못했어. 헤르보르와 마찬가지로 모스크바 부근을 자신의 영역으로 만들어 버렸단 말이야. 그렇다면 그 던전으로 가게 될 경우, 체르노보그와 마주칠 경우를 가정하고 움직여야 한다는 것인데...... 엔트로피, 성급으로 따지면 몇 성급이지?"

엔트로피는 무정하게 말했다.

<15성급입니다.>

"15성급! 일전에 처치한 헤르보르도 10성급이었는데...... 엄청나군."

정대식은 턱을 쓰다듬다가 말했다.

"꼭 투구부터 먼저 찾으란 법은 없지. 가까이 있는 것부터 찾는 방향으로 하면 되잖아?"

정대식은 재차 다우징을 사용해 이번엔 브레스트 플레이트를 찾으려고 해봤다. 그런데 이게 어찌 된 일인지 추가 또 모스크바를 가리키고 있는 게 아닌가!

"뭐야? 설마......."

혹시나 하는 기분으로 연거푸 다우징을 사용해 다른 파츠도 찾아보았으나, 혹시나가 역시나였다. 모든 경우를 놓고 봐도 추가 모스크바의 던전으로 향해 있어 탄식이 절로 흘러나왔다.

"이런, 마기전의 나머지 파츠가 몽땅 다 거기 있나 본데. 마기전의 원출처가 그 던전이기라도 한가?"

<거기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습니다.>

"젠장...... 이러니저러니 해도 저곳으로 가는 수밖엔 없는 것인가."

정대식은 입술을 씹었다. 모스크바에 있는 던전이라고 꼭 체르노보그가 있는 던전이라고 할 수 없었다. 모스크바가 워낙 큰 도시였으니까 인근에 던전이 여러 개 더 있을 테니까 말이다.

설령 체르노보그가 있던 던전이라 하더라도 마정석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 이상, 반드시 놈과 싸워야 할 이유는 없었다. 놈을 피해 살짝 마기전만 가지고 나오는 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언제나 최악을 상정하고 움직이는 편이 낫다. 정대식은 모스크바 체르노보그가 있는 곳에 마기전의 나머지가 있다고 판단했다.

"모스크바...... 러시아라. 그곳엔 스보보...... 뭐였지?"

<알렉세이입니다.>

"그래. 이상한 이름을 가진 반군 주동자 말이야."

<이상하지 않습니다. 러시아 남자들의 대다수가 알렉세이란 이름을 갖고 있습니다.>

"그럼 스보보...... 그건 뭐야?"

<정석대로 하자면 알렉세이 알렉세예비치 스보보디나가 맞습니다. 성을 앞장세워 말하느냐 이름을 먼저 말하느냐의 차이입니다.>

"더럽게 헷갈리네. 아무튼, 듀라한이라 불리는 그자가 7성 무구 중 하나를 갖고 있지?"

<그렇습니다. 그가 델라니포스라 불리는 마갑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조만간 광필두도 그것을 가지러 가기 위해 러시아로 가겠군."

<그보다는 국가기물금고에 있는 뢰가 먼저가 아니겠습니까.>

"그래, 그렇지."

정대식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국가기물금고를 지키고 있으면서 광필두가 나타나길 기다려 처치할 것인가? 아니면 마기전의 완성을 우선으로 모스크바에 갈 것인가?

고민하던 그는 금방 결론을 내렸다.

"지난번에 광필두는 7성 무구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만약 7성 무구를 모조리 갖고 나타난다면 막아내기 힘들지도 몰라. 난 아직 마기전을 다 갖추지 못했고...... 솔직히 말해서 놈의 이능 파괴 능력이라는 것도 마음에 걸려. 무엇보다 신경 쓰이는 건 국가기물금고의 위치다."

<국가기물금고가 시가지 한복판에 있는 것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래. 지하에 있다고는 하지만 그건 엄연히 서울 한복판에 있다고. 만약 광필두를 막아낸답시고 거기서 전투를 벌였다간 주위에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닐 거야. 차라리 뢰를 그냥 넘겨주는 편이 나을 수도 있어. 그건 어차피 주인 없는 물건이니까."

<뢰를 포기하시겠다는 겁니까?>

"대신에 듀라한에게 가서 광필두에 대해 경고해줄 수 있겠지. 그럼 광필두의 능력에 대해 모르고 있다가 맥없이 당하지는 않을 거라고. 듀라한 그자는 파워 랭킹에 있어서 나나 광필두를 훨씬 상회하고 있으니까."

알렉세이는 공식 랭킹에서는 100위 언저리였으나 파워 랭킹에서는 그 순위가 10위권 내에 항상 머무르고 있었다.

그는 현재 러시아에서 전설적인 존재로 신적인 추앙을 받고 있었는데, 그도 그럴 것이 러시아 정부가 내팽개치고 있는 몬스터들을 상대하면서 사람들을 구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 실력이 실로 대단하여 그와 그의 반군이 잡아 죽이는 몬스터가 러시아를 먹여 살린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맘만 먹으면 정부를 뒤엎는 것도 일은 아니겠으나 현재로썬 권력을 쟁취하는 것보다는 점차 확장되고 있는 몬스터들의 둥지를 파괴하는데 더 주의를 기울이고 있었다.

"어차피 7성 무구는 완성되지 않으면 큰 의미가 없어. 뢰를 넘겨준다고 하더라도 나머지가 없으면 안 돼. 그러니 포기할 건 포기하고 델라니포스를 지키는 데 집중하는 게 좋을지도 몰라. 그리고 그동안 나는 마기전을 완성해 놓는 거지."

정대식은 턱을 쓰다듬으며 한 마디를 덧붙였다.

"무엇보다 여기엔 다른 헌터들이 많아. 최희도 있고, 강영후도 있고, 세계에서 손꼽히는 헌터들이 수두룩 빽빽하지. 뢰가 국가기물금고에 보관되어 있는 이상, 광필두가 그곳을 노릴 거라는 사실은 자명해. 이미 그의 습격에 대비하기 위해 무슨 준비를 해도 해놨을 거야."

그때, 정대식의 추측에 답이라도 하듯 그의 휴대폰이 울렸다.

받고 보니 장한나였다.

-정대식 씨?

"장한나 씨."

-목소리를 들으니 마음이 놓이네요. 무사히 귀환하셨군요.

"예. 상황이야 어찌 되었든 무사합니다."

-그렇담 잠시 만나죠. 급히 드릴 말씀이 있어요.

"좋습니다. 어디서 볼까요?"

두 사람은 일전에 만났던 커피숍에서 보기로 하고 전화를 끊었다. 다시 외출 준비를 하면서 정대식은 엔트로피에게 말했다.

"조만간 난 러시아로 갈 거야. 펜리르 부대와 함께."

엔트로피는 고개를 끄덕이고 물었다.

<귀환 명령을 발송해놓을까요?>

"그래, 부탁해. 가능한 한 빨리 귀국하라고 전해줘. 그리고 오는 길에 내 무구도 잊지 말라 말해놓고."

<알겠습니다.>

엔트로피가 시야에서 사라지고 정대식은 다시금 부가티에 몸을 싣고 약속장소로 달려나갔다.

* * *

"정대식 씨."

커피숍으로 들어서는 정대식을 보고 장한나가 화사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 어느 때보다 그를 반기는 모습이었으나 정대식은 마뜩잖은 표정으로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

"뭐 드시겠어요? 슬슬 날이 차가워지는데, 따듯한 거라도......?"

"음료는 됐습니다. 그보다 제게 하실 말씀이라는 게 뭡니까?"

무뚝뚝한 정대식의 태도에 장한나가 약간 섭섭한 기색을 드러내며 말했다.

"그래도 오랜만에 뵙는 건데 안부 인사 정돈 할 수 있잖아요?"

"그건 전화로 끝내지 않았습니까."

"팔머 가의 저택에서 광필두와 일이 있었다는 이야기는 들었어요."

"그렇담 PCC에서 제이드와 손잡고 광필두를 잡기 위한 수작을 부렸다는 것도 알고 있겠군요."

"엄밀히 말해 PCC가 아니라 각성자 총연맹에서 합의한 일이에요."

장한나는 대답이 없었다. 정대식은 그 반응을 보고 입술을 비틀어 물었다.

"왜 제게 그 일을 언급하지 않았습니까?"

"어차피 광필두와 얼굴을 마주하게 되는 이상, 그와 부딪치게 될 거라는 건 예상하지 않았나요?"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속을 떠보는 정도였지 그자를 죽일 생각은 없었단 말입니다."

"정대식 씨더러 죽이라고 한 것도 아니잖아요."

"저를 만의 하나의 상황에 밀어 넣으려고 한 거잖아요! PCC의 계략이 실패할 경우를 대비해 날 보낸 거 아닙니까? 내 동의도 없이 그런 짓을 한 것은 MFP를 얻기 위해서입니까?"

장한나는 보란 듯이 팔짱을 꼈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래요. 그런데 듣자 하니 광필두를 도와서 오히려 그를 놔주는 데 일조했다더군요."

"처음부터 사실대로 말했으면 그럴 일은 없었을 겁니다."

"사실대로 말했으면 정대식 씨가 과연 광필두 사냥에 동의했을까요?"

정대식은 버럭 화를 냈다.

"애초에 내가 그를 해치지 않을 거라는 걸 예상하고 나까지도 함정에 빠트린 거잖습니까!"

"그래도 설마 도울 줄은 몰랐어요."

"누군들 죄 없는 사람이 눈앞에서 죽어 가는 데 돕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죄 없는 사람이라고요? 그는 제이드 팔머를 살해했어요."

"그건 그 작자가 7성 무구를 미끼로 광필두를 죽이려 했으니까 그런 거잖아요! 광필두를 섣불리 건드려 놓은 건 바로 당신네들이란 말입니다!"

정대식은 장한나가 입을 꽉 다문 것을 보고 자신이 지나치게 언성을 높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흥분을 가라앉히고서 음울한 표정으로 말했다.

"광필두가 강철우를 죽였다는 것은 오해였습니다. 강철우는 그에게 7성 무구를 모으라는 유언을 남겼고 그는 그것을 실천하고 있었던 것뿐이라고요. 그 힘으로 무얼 어떻게 하겠다는 생각은 없었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주위에서 자신을 죽이려고 드니 살심을 품을 수밖에요. 광필두를 악당으로 만든 건 다름 아닌 당신네들이란 입니다."

장한나가 눈살을 찌푸렸다.

"비약이 지나치네요."

"과연 그럴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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