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질 전사-204화 (204/297)

# 204

현질 전사

-9권 5화

「그렇다면...... 광필두가 이능 파괴의 능력을 가졌단 말입니까?」

「그 사실을 100% 확신할 수는 없어도, 광필두 씨로 인해 여진주 씨의 이능이 사라졌다는 것만큼은 확실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충격을 받은 건 정대식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광필두가 가진 능력이 이능을 파괴하는 능력이라니!

그렇다면 같은 각성자를 상대로는 무적이나 다름없었다. 어쩌면 광필두를 제거하려는 것이 단순히 7성 무구를 모으려 한다는 것뿐만이 아닌지도 몰랐다.

그 짐작을 증명이라도 하듯 리즈가 침울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능 파괴의 능력을 가진 이상, 각성자들은 광필두를 두려워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각성자들이 일반인으로 돌아가게 될 경우, 몬스터를 상대할 방법이 사라져버리게 되니까요. 각성자인 이상은 그에게 거역할 수 없게 된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광필두는 이능 파괴의 능력을 가졌다는 것만으로도 지극히 위험합니다. 그런 그가 여신급의 힘까지 손에 넣는다는 것은 재앙이나 다름없을 겁니다.」

리즈는 곧 상자 결계 안에 갇힌 광필두를 바라보며 확신했다.

「지금 여기서 그를 제거해야 합니다.」

정대식은 그 말에 아무런 반박도 할 수 없었다. 광필두가 가진 능력이 위험하다는 데는 이견이 없었다. 그가 그 능력을 평생 사용하지 않았다면 모를까. 이미 7성 무구를 갖기 위하여 여진주의 이능을 파괴하지 않았던가? 또다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는 것이다.

어쩌면 리즈의 말이 옳은 것인지도 몰랐다.

마찬가지로 김태희도 아무 말 하지 않았다.

설유란도 침묵을 지키고 있었고, 이 일에 가담한 제이드 팔머 역시 입을 꾹 다문 채였다.

죽음에 이르는 정적.

그 침묵을 깨트린 것은 광영식이었다.

그는 온몸을 비틀며 소리를 쳤다.

"그만둬! 무, 무슨 말들 하는 건지 정확히는 몰라도...... 우리 형 이야기를 하는 거지?"

날카로운 외침에 모두의 시선이 그쪽으로 돌아갔다. 광영식은 몸부림을 치면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우리 형은 그런 사람 아냐! 형은 좋은 사람이란 말이야! 유란 누나! 누나는 알고 있잖아...... 형이 누나의 목숨을 구해줬잖아!"

그 말을 듣고 설유란은 몸을 움찔 떨었다. 그녀는 가까스로 광영식의 시선을 피하고 있었으나 광영식은 눈물을 줄줄 흘리며 말했다.

"다른 팀장들이 부대장 자리를 뺏길까 봐 누나를 없애려고 했을 때 형이 알아차리고 구해주었잖아! 공대장 아저씨를 죽게 한 것도 형이 아니라고! 누나를 부대장으로 지명한 데 불만을 가진 사람들이 한 거잖아! 형이 다치게 한 사람들도 고의로 그런 게 아니란 말이야. 정정당당하게 싸웠을 뿐이야!"

정대식은 그 말을 듣고 저도 모르게 물었다.

"그게 정말이야?"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광영식은 목 놓아 우느라고 정대식의 질문을 듣지 못했다. 정대식은 제정신이 아닌 광영식 대신 설유란을 보고 물었다.

"저 말이 사실인가?"

설유란은 창백한 얼굴로 말했다.

"......여진주나 박태산과는 어찌 된 건지 나도 몰라요. 하지만 강철우에 대한 것은 사실이에요. 그는 한동안 비어있었던 부대장의 자리에 나를 지명할 생각이었어요. 그러자 거기에 반발한 다른 팀장들이 나를 제거하려 했어요. 그런데 광필두가 그 사실을 알아차리고 날 구해주었고...... 그것이 공대장에게까지 알려져, 제명당할 것을 겁낸 팀장들이 모의해 그를 죽인 거예요."

"그럼 광필두가 어떻게 7성 무구의 검을 손에 넣은 거지?"

"날 구해준 게 광필두란 사실을 알고 팀장들이 그를 억류해놓았죠. 광필두는 그들이 공대장을 죽일 작정이라는 사실을 알았고, 그것을 막기 위해 달려갔다가 그 검을 넘겨받게 되었어요."

"잠깐, 넘겨받았다면 강철우가 직접 그 검을 주었다는 말인가?"

"그래요."

"그렇다면 광필두는 강철우의 유지를 이어받은 셈인데, 어째서......."

"왜 그가 공대장을 죽인 것처럼 되었냐고요?"

"그래."

설유란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건 광필두 탓도 있어요. 그는 자신이 받은 오해에 대해 어떤 해명도 하지 않았어요. 공대장을 죽인 팀장들에게 보복을 하지도 않았죠. 팀장들의 악행을 고발하는 대신에 공대장 자리를 꿰어찼을 뿐이에요. 전 그것이 나름대로 조디악 공격대를 생각하는 의미에서 그런 것이라고 여겼는데...... 그게 다 7성 무구와 교환하기 위해서였다니......."

좌절하는 설유란의 등 뒤로 광영식의 비명이 울려 퍼졌다.

"으아악!"

울부짖다 못해 이능을 쓰려고 마력을 내보낸 탓이다. 그러기가 무섭게 그를 묶고 있는 밧줄이 더 환한 빛을 내며 작은 몸을 옥죄어 들었다.

"형, 혀엉...... 형, 살려줘. 살려줘......."

어린아이가 울면서 고통받고 있는 광경이 보기가 힘들었다. 정대식은 리즈의 팔을 붙잡고 말했다.

「저걸 풀어요! 어린애잖아요!」

리즈는 매섭게 외쳤다.

「어린애라도 능력자예요!」

「내가 컨트롤 하겠어! 저 아인 건드리지 마!」

정대식이 손아귀에 힘을 주며 윽박지르자 리즈가 마지못한 기색으로 밧줄을 거두어들였다. 가엾게도 풀려난 아이는 아무런 힘을 못 쓰고 축 늘어졌다. 힘이 다 빠진 채 눈물만 줄줄 흘리고 있는 그 애를 추스르는데, 문득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살려줘...... 우리 형을 살려줘...... 형은 아직 아무 짓도 안 했단 말이야. 왜 하지도 않은 일로 형을 나쁜 사람 취급해......?"

그 말에 정수리가 싸해졌다.

찬물 맞은 기분으로 정대식은 깨달았다.

'그래. 광필두는 아직 아무 짓도 하지 않았다. 설유란의 말이 사실이라면 그의 능력이 위험하다는 것도, 7성 무구를 모으는 짓이 위험하다는 것도 다 짐작일 뿐이잖아?'

정대식은 줄곧 자신을 괴롭히던 물음에 답을 얻었다. 광필두를 함정에 빠트려 죽이려는 것이 부당하게 느껴지는 이유를 알아낸 것이다.

그러자 잠자코 있을 수 없게 되었다. 정대식은 버서커들에 의해 피투성이가 되어 가고 있는 광필두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광영식을 김태희에게 떠밀며 말했다.

"그만둬!"

상자 결계 안으로 몸을 날리는 그를 보고 리즈가 헉하고 소리쳤다.

「안 돼!」

그러나 이미 정대식은 상자 결계 안으로 뛰어든 뒤였다.

Chapter 51. 종말의 탄생

정대식이 상자 결계로 뛰어들었을 때 이미 광필두는 만신창이였다.

그가 이능을 파괴하는 능력을 갖고 있는지는 몰라도, 그게 몬스터에겐 별 효과가 없는 것인지 맨몸으로는 도리가 없는 모양이었다. 그나마도 마력으로 몸을 보호할 수 있었기에 버티고 있는 거였지, 그런 재주마저도 없었다면 진즉에 피떡이 됐을 테다.

정대식은 상자 결계 안에 내려앉기가 무섭게 엔트로피를 불러냈다. 구현, 변화, 강화, 이 세 단계를 거쳐 무기화시킨 엔트로피에게 버서커를 상대하게끔 해놓고 정대식은 광필두에게 아공간에 넣어두었던 치료 포션을 꺼내 던졌다.

"일단 그것부터 마셔라!"

엉겁결에 그걸 받아든 광필두는 못 믿겠다는 눈치로 정대식을 쳐다봤다.

"......정대식?"

"뭘 하는 거야! 얼른 마셔!"

광필두는 사양 않고 포션 뚜껑을 부수고 내용물을 마셨다. 온 데가 피 칠갑이라 그게 효과가 있는 건지 없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광필두는 빈 병을 내버리고 말했다.

"뭔가, 무기로 쓸 만한 게 있으면 좋겠는데."

"마침 괜찮은 게 있지."

정대식은 헤르보르에게서 얻어낸 티르빙을 꺼냈다. 그리고 그걸 건네주며 신신당부를 했다.

"미리 말하는 거지만 이건 빌려주는 거다."

"알겠다."

"꼭 반납하라고."

광필두는 티르빙을 봉인하고 있는 천 쪼가리를 벗겨냈다. 그러자 티르빙의 크기가 훅 커지며 대검 수준이 되었다. 원래 불꽃 검을 사용하던 녀석이라 그런지 빛의 검인 티르빙을 움켜쥔 모습이 꽤 그럴싸했다. 정대식은 그 모습을 바라보고 짧게 혀를 찼다.

"그간 모은 7성 무구는 어디에다 던져둔 거냐."

광필두는 티르빙을 가볍게 돌리며 말했다.

"이런 일이 생길까 봐 은밀한 곳에 숨겨두었다."

"네 말은 이게 함정이라는 걸 알았다는 말이냐?"

"확신한 건 아냐. 그러니까 왔지. 확인해보고 싶은 것도 있었고."

"확인해보고 싶은 거라니?"

광필두는 그 말에 대답하는 대신 앞으로 뛰쳐나갔다. 그리고 티르빙을 있는 힘껏 휘두르며 버서커를 베어갔다.

파아악!

시퍼런 불꽃이 티르빙의 칼날을 타고 흐르며 단번에 버서커를 베어냈다. 허리가 동강 난 버서커는 그 자리에서 절명해 사라졌고 그 자리엔 버서커가 입고 있던 용아갑만 남았다.

"쓸 만한데."

광필두는 단번에 버서커를 쓰러트리는 티르빙을 보고 감탄사를 흘렸다.

"이런 걸 어디서 구했지?"

"오다가 주웠다!"

정대식은 강화 무적권으로 우르르 몰려드는 버서커를 한 번에 밀어냈다. 마기전이 있으면 더욱 편하게 싸울 수 있을 텐데 그놈의 정장을 차리느라 비무장 상태였기에 몸으로 때우는 수밖에는 없었다. 그래도 엔트로피가 있으니 서로 죽이 잘 맞았다.

"엔트로피!"

<강화 강력권.>

"강화 강력권!"

엔트로피와 앞뒤로 동시에 버서커를 후려치자 가슴에 구멍이 뻥 뚫리며 버서커가 사그라졌다. 바닥에 남은 용아갑을 걷어차자 광필두가 버서커를 한 마리 더 쓰러트리는 광경이 보였다.

남은 건 넷!

정대식은 광필두에게 말했다.

"협공하자! 엔트로피, 변화!"

엔트로피가 광필두에게 날아가자 그가 움찔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를 뒤덮듯이 형체가 흐려진 엔트로피는 광필두의 상반신을 감싸고 티르빙과 결합했다. 그러자 티르빙의 검날이 한층 더 길게 자라났다. 정대식은 황급히 고개를 수그리며 말했다.

"몽땅 베어버려! 강화!"

광필두는 그 말에 응답이라도 하듯 한 발을 크게 앞으로 내디디며 검을 휘둘렀다. 창만큼이나 길어진 칼날이 순식간에 버서커 네 마리를 휩쓸었고 순식간에 놈들의 허리가 동강 났다.

'대단하군!'

제아무리 강화를 입혔다지만 5성급이나 되는 몬스터를 일격에 네 마리나 쓰러트리다니! 티르빙의 위력이 실감 나는 순간이었다.

물론, 제아무리 무구가 좋다고 하더라도 쓰는 사람의 실력이 형편없어서야 제 위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법이다.

티르빙이 전력을 낼 수 있었던 것은 그것을 다루는 광필두 덕분이기도 했다.

맨몸으로 서 있을 땐 샌드백이나 다름없더니, 티르빙을 쥐여주자 마치 범이 날개를 단 듯했다. 빛나는 장검을 움켜쥐고 서 있는 모습이 빛의 신을 보는 것 같았다.

버서커를 모조리 처치한 광필두도 티르빙의 위력에 놀란 것 같았다.

그는 다시 장검 정도의 길이로 되돌아간 티르빙을 이리저리 살펴보며 중얼거렸다.

"......오다가 주웠다고?"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중요한 건 어떻게 이 상자 결계를 벗어나느냐다.

광필두가 티르빙으로 버서커를 순식간에 처치해버리는 광경을 보고 제이드와 리즈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반면 설유란과 김태희의 표정은 좀 복잡해 보였다.

"어떻게 여기서 나가느냐가 문제로군."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는 광필두에게 정대식은 물었다.

"설유란이 한 말이 사실인가? 네가 강철우를 죽인 게 아니라고?"

"그래."

"그런데 왜 오명을 뒤집어쓰고 있었지?"

"별 상관없었으니까."

"그럼 애초에 7성 무구를 목적으로 하고 있던 게 아니잖아? 왜 7성 무구를 모으기 시작했지? 우연히 7성 무구 중 하나가 네 손에 들어왔으니 나머지도 모아야겠다 싶었나?"

"유언이었다."

"뭐?"

정대식은 멈칫했고 광필두는 덤덤하게 말을 이었다.

"강철우가 내게 딜라이트 소드를 건네면서 나머지도 다 모으라고 했다."

"그럼 넌 강철우의 유언을 지키고 있던 거였나?"

"여태까지 나를 인정해준 사람은 그자가 유일했으니까."

광필두는 약간 주저하다 말했다,

"이능 파괴의 능력을 가진 나를 한 사람의 헌터로 봐주었으니까."

정대식은 눈을 크게 떴다.

'이능 파괴 능력을 갖고 있는 게 사실이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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