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5
현질 전사
-8권 21화
"아무리 그래도 언데드는 언데드입니다. 특히 언데드는 열기에 취약한 편이라서요. 용암 거신을 쓰러트리기엔 무리가 있지 않을까요?"
"누가 헤르보르를 쓰러트리라고 했나? 서펜트의 역할은 물을 끼얹는 정도면 충분해. 가까이 접근할 필요도, 육탄전을 벌일 필요도 없다. 그냥 헤르보르를 끊임없이 식혀 주기만 하면 된다."
"제 역할은 그게 다라고요?"
"헤르보르를 쓰러트리는 것은 내가 할 것이다."
타다다다다다다다다!
곧 베이스캠프에서 전투 헬기가 떠올랐다.
동시에 해변으로 아담이 유태훈을 호위할 대원들을 이끌고 나타났다.
그의 손엔 정대식이 요청한 비상 탈출용 수중 로켓 장치와 함께 MFP 수류탄이 줄줄이 달린 가슴 벨트가 들려 있었다.
그들은 곧 유태훈과 정대식의 곁으로 다가왔고, 아담이 손에 든 것을 정대식에게 넘겨주며 말했다.
「저희 쪽 준비는 끝났습니다. 네크로맨서께서는 헬기로 이동하여 상공에서 서펜트를 조종하시지요. 피닉스 공격대에서 가장 우수한 대원 중 한 명인 소환 술사와 마법사가 네크로맨서님과 동승하게 될 것입니다. 다른 두 대의 헬기가 네크로맨서께서 탄 헬기를 보호할 것이고, 나머지 대원들이 세 개 보트에 나눠 타고 해상에서 대기할 겁니다. 헬기가 추락할 경우를 대비하기 위해서지요. 그러니 네크로맨서께서는 염려 말고 서펜트를 조종하는 데만 주력하시면 됩니다.」
정대식은 벨트를 가슴에 두르고 장치를 등에 멨다.
그리고 유태훈과 호위 팀을 태우기 위하여 헬기가 내려오는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프로펠러가 요란한 소음을 내며 가까워지는 가운데, 뒤늦게 헤르보르 공략 작전이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눈치챈 파견대가 달려왔다.
"대장님!"
"대장님!"
그 선두에는 기철민과 김태희가 포함이 되어 있었다.
우르르 몰려온 그들은 당혹한 표정으로 목소리를 높였다.
"이게 어찌 된 일입니까?"
"저희더러 대기하라 하셨다고요?"
"헤르보르 공략을 하려는 것 아닙니까?"
"지시를 내려 주십시오!"
프로펠러 소리에 언성을 높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정대식은 목청을 한껏 돋우고 말했다.
"파견대는 베이스캠프를 지키며 혹시 있을지도 모르는 몬스터들의 습격에 대비한다!"
정대식의 말에 놀란 대원들이 아우성을 쳤다.
"뭐라고요? 저희를 두고 가시려고요!"
"어째서 피닉스 공격대만 데리고 가시는 거죠?"
"이건 말도 안 됩니다!"
"저도 데려가 주십시오!"
"우리도 헤르보르와 싸울 수 있습니다!"
거세게 항변을 쏟아 내는 대원들을 보고 정대식은 잘라 말했다.
"헤르보르는 나 혼자서 처치하겠다. 너희들은 베이스캠프를 지켜라!"
"대장님......!"
수긍하지 못하고 난리를 치는 대원들을 향해서 결국 그는 윽박을 질렀다.
"나를 신뢰하지 못하는 대원들은 데리고 가 봤자 거추장스럽기만 할 뿐이야! 지금도 봐라, 내 명령을 무시하고 있질 않나!"
그 말에 모두가 합죽이처럼 입을 딱 다물었다.
정대식은 싸늘하게 그들을 일별하며 내뱉었다.
"이게 마지막이다. 베이스캠프로 돌아가라!"
투다다다다다다다!
헬기가 내려앉고 유태훈이 이쪽을 힐끔거리며 피닉스 공격대원들과 함께 헬기에 올랐다.
곧 그 헬기가 다시 떠오르며 베이스캠프 쪽에서도 헬기 두 대가 추가로 떠올랐다.
아담을 비롯한 나머지 대원들은 모터보트 세 대를 끌고 바다로 나갔고, 곧 그들의 모습이 짙어지는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정대식은 더 이상 우두커니 선 대원들을 신경 쓰지 않은 채, 하늘에서 내리는 어둠을 끌어당겼다.
그리고 그것을 날개 삼아 허공으로 솟구쳐 올라 빅아일랜드로 향했다.
Chapter 49. 헤르보르 공략
블랙 드래곤 스킨 아머의 성능은 과연 훌륭했다.
SSS급의 무구답게 응용하기에 따라 그 활용도가 무궁무진했다.
블랙 드래곤 스킨 아머가 어둠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게 해 주었기에, 정대식은 어둠 속에 몸을 숨기는 것도, 어둠을 끌어와 그림자를 만들어 내는 것도 가능했다.
뿐만 아니라 어둠을 내리게 하여 적을 교란시킬 수도 있었으며, 어둠을 이용한 원초적인 공포를 피어처럼 써먹을 수도 있었다.
어둠을 일종의 구현화하는 것도 가능했는데, 바로 지금과 같은 경우였다.
정대식은 어둠을 날개처럼 펼치고 큰 새와 같이 하늘을 활강했다.
그러자 바다 위에 밤이 내린 가운데 거대한 횃불이 솟은 것처럼 활활 불타는 용암 거신의 형체가 선명해졌다.
'저것이 헤르보르인가?'
미리 영상 자료를 봐 두기는 했으나 실물을 보니까 그 위용이 실로 대단했다.
불의 신이 강림한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헤르보르는 그 크기만도 60m에 달했고 전신에서 불길을 뿜어내고 있어 실제로는 더 거대해 보였다.
뿐만 아니라 한 손에는 몸길이의 두 배쯤 되어 보이는 창을 들고 있었는데, 그것은 마치 빛으로 빚어낸 기둥 같아 보였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중심이 새파랗게 타는 것이 보여 그것이 엄청난 온도로 타오르는 불기둥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해 볼 수가 있었다.
전설 속 무기의 이름을 빌어 이곳 사람들이 '티르빙'이라고 부르는 그 검을 짚고 선 헤르보르는 불타는 눈으로 전방을 주시하고 있었다.
다름 아닌 유태훈이 탄 헬기 쪽이었다.
헬기 세 대가 내는 프로펠러의 소음이 요란했기에 헤르보르가 그것을 발견하지 못하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부질없는 기대였다.
헤르보르는 자신에게로 접근하는 헬기들을 쏘아보다가, 문득 손을 들어 올렸다.
세 가닥으로 갈라진 손가락 사이에 두 개의 불구슬이 끼워져 있었다.
헤르보르는 구슬치기라도 하는 것처럼 그 불구슬을 허공으로 집어던졌다.
물론, 그것은 헬기를 향해 정확히 날아갔다.
그러나 그것은 헬기를 직격하지 못했다.
퍼엉!
퍼엉!
허공에 방어막이 나타나며 불구슬이 공중에서 터져 버린 것이다.
헤르보르는 아랑곳하지 않고 또다시 불구슬을 손가락 사이에 만들어 내었으나, 2격은 이어지지 못했다.
바다 속에서 무언가 거대한 것이 솟구쳐 오른 탓이다.
다름 아닌 언데드 서펜트였다.
촤아아아아아아악!
서펜트가 기다란 목을 휘며 수면 위로 뛰어올랐다가 배를 뒤집으며 가라앉자 그것만으로도 엄청난 파도가 일어났다.
그것이 헤르보르가 선 해안으로 밀려가 용암이 이글거리고 있는 놈의 발밑을 휩쓸었다.
그러자 '푸확!' 하고 폭발이라도 일어난 듯 엄청난 증기가 솟구치며 헤르보르의 시야를 가려 버렸다.
"카르르르르르르!"
분노한 헤르보르가 고함을 토해 내며 전신을 확 불태웠다.
붉은빛에 가까워 보이던 헤르보르가 순식간에 푸른빛으로 변하며 모든 것을 순식간에 불사를 만한 열기를 뿜어내었다.
화아아아악!
그에 질세라 언데드 서펜트가 뒤쪽으로 파도를 일으켰다.
아까 정대식이 막아 냈던 것과 같은 거대한 파도였다.
질세라 헤르보르가 발을 크게 굴렀고, 그러자 바닥이 쩍 갈라지며 붉은 용암이 뭉클뭉클 새어 나와 바다로 쏟아져 나왔다.
실로 자연재해와 자연재해가 싸우는 것 같은 광경이었다.
그 난리에 넋이 나갈 지경이었으나 한가하게 굴 때가 아니었다.
언데드 서펜트를 운용하는 데는 엄청난 마력이 필요하니, 유태훈이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는지 몰랐다.
언데드 퀸의 심장을 쓰고 있고 마력석까지 다량 들고 있겠지만 그래도 한계는 있을 것이다.
정대식이 관측해 본 바로 헤르보르의 약점은 가슴 정중앙이었다.
바닷물이 끼얹어질 때마다 헤르보르의 전신이 식었고, 그렇게 온도가 내려갈수록 약점이 더욱 선명하게 보였다.
그것은 헤르보르의 온도가 낮아질수록 약해진다는 뜻이었다.
서펜트뿐만 아니라 보다 강력한 냉각 방법이 필요했다.
정대식은 엔트로피를 불러내 말했다.
"엔트로피, 엔다이론 소환 스킬을 Lv10으로 높여. 그리고 엘레스트라 소환 스킬을 획득한다."
<엔다이론 소환 스킬을 Lv10으로 업그레이드하고 90억을 차감합니다.>
<엘레스트라 소환 스킬을 획득하고 1천만 원을 차감합니다.>
"엘레스트라 소환 스킬을 Lv10으로 업그레이드해, 그다음은 정령왕 엘라임이다! 엘라임 소환 스킬을 획득한다!"
<엘레스트라 소환 스킬을 Lv10으로 업그레이드하고 90억을 차감합니다.>
<정령왕 엘라임 소환은 불가능합니다.>
"뭐?"
정대식은 흠칫했다.
"왜? 돈이 부족하진 않을 텐데? 스킬 획득은 무조건 1천만 원 아니었어?"
<일부 스킬의 경우 획득에 특정 조건이 필요합니다. 정령왕 엘라임을 소환하기 위해선 소환 스킬이 만렙에 달해야 합니다.>
"만렙이라고? 만렙이 몇인데?"
<100입니다.>
"망할......."
정대식은 욕설을 중얼거렸으나 별수 없었다.
"엘레스트라로 만족하는 수밖에는 없겠군. Lv10 정도나 되니까 그래도 써먹을 만은 하겠지. 엘레스트라, 소환!"
쏴아아아아아아아!
별안간 정대식이 떠 있는 바다 위가 소용돌이치며 그 속에서 물기둥이 솟구쳐 나왔다.
그 물기둥은 곧 성숙한 여인의 모습으로 변했다.
다름 아닌 물의 최상급 정령 엘레스트라였다.
그녀는 엔다이론이나 운다인에 비해서 훨씬 더 그 형상이 또렷하여, 마치 살아 있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엘레스트라의 푸른 눈을 보며 정대식은 말했다.
"엘레스트라! 가서 헤르보르를 식혀 버려!"
엘레스트라는 몸을 돌려 홀연히 헤르보르를 향해 날아갔다.
곧 그녀의 형체가 허공에서 사라져 버리고 대신에 서펜트가 뒤집어씌운 바닷물과 헤르보르가 뿜어내는 열기로 인해 일어났던 증기가 순식간에 응결되었다.
그것은 폭우가 되어 헤르보르의 머리 위로 쏟아져 내렸고, 헤르보르는 질세라 더 많은 용암과 불길을 끓어 올렸다.
하지만 그럴수록 언데드 서펜트의 공세도 강해졌고 더 많은 증기가 생겨났다.
그것은 엘레스트라로 인해 족족 비로 변해서 헤르보르의 몸을 식혀 놓았다.
결국, 더 이상 안 되겠다고 생각한 것인지 어쩐 것인지, 별안간 헤르보르가 발열을 멈추었다.
파스스스스---------!
증기가 잦아들며 어느 순간 헤르보르의 몸이 새카만 숯 덩어리처럼 변했다.
열을 내고 있는 것은 오로지 헤르보르가 들고 있는 티르빙뿐이었다.
헤르보르의 열이 꺼지자 티르빙이 한층 더 환한 빛을 발했다.
어찌나 그 빛이 뜨겁고 눈부신지 번개 한 줄기를 손에 들고 있는 것과 같았다.
시선이 전부 티르빙으로 모이는 가운데, 헤르보르가 느닷없이 그것을 든 팔을 휘둘렀다.
슈와아아아아아아악!
티르빙에서 솟구친 빛이 허공을 가로질러 날아가는 것을 보고 정대식은 크게 고함을 질렀다.
정확히는 고함을 지르려고 입을 크게 벌렸다.
그러나 소리는 목구멍 밖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 전에 티르빙이 쏜 빛줄기가 헬기 한 대를 정확히 꿰뚫었던 것이다.
퍼엉! 콰아아앙! 콰아아아!
헬기에 탔던 대원들이 황급히 탈출하기 무섭게, 헬기가 폭발해 오르며 불타는 잔해가 바다 위로 풍덩풍덩 떨어져 내렸다.
놀란 나머지 헬기들이 황급히 물러났다.
다행히 유태훈이 타고 있던 헬기는 무사했다.
하지만 당황해 집중력에 문제가 생긴 것이 분명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