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질 전사-193화 (193/297)

# 193

현질 전사

-8권 19화

그러자 함정조의 대원들이 일제히 외치며 미리 제작해 두었던 장치를 작동시켰다.

"함정 발동!"

"함정 발동!"

촤아아아아악!

파츠으으으으!

신비 금속으로 제작된 와이어가 해변으로 나온 서펜트의 목과 머리를 뒤덮었다.

오리하르콘을 섞어 만든 물건이라 절대로 끊어지지 않는 물건이었다.

그러나 와이어가 바닥에 고정되지 않는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그들이 있는 장소는 해변이었고 사방이 모래 천지인지라 보통의 방법으로는 와이어를 고정해서 서펜트를 붙잡아 놓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들에겐 허미래가 있었다.

와이어가 허공을 날기가 무섭게 허미래가 시동어를 외쳤다.

"포스 오브 그래비티!"

콰아악!

퍼억!

콰악!

와이어의 끄트머리가 엄청난 무게로 땅속에 틀어박히자 와이어가 팽팽하게 당겨져 서펜트를 짓눌러 놓았다.

분노한 서펜트가 함정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을 치기 시작했다.

"쉬아아아아아악!"

피어가 섞인 엄청난 울음소리가 천지를 울려 대부분의 대원들이 기겁을 하고 제자리에 주저앉았다.

멀쩡히 선 것은 공격조뿐이었다.

정대식이 공격조에게 가 닿자마자 그들의 머리 위로 마력장을 한 겹 더 씌워 보호했던 것이다.

그리고 기철민에게 말했다.

"허미래가 오래 버틸 수는 없다. 기회는 한 번뿐이다! 준비됐겠지?"

기철민이 긴장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고, 그러자 기철민의 등 뒤로 엔트로피가 달라붙었다.

마치 포옹하듯 두 손으로 엔트로피가 기철민을 감싸고, 곧 스킬로 인해 그 모습이 빛을 내뿜으며 변화하기 시작했다.

"구현."

<변화.>

"강화."

파아아아아앗!

모든 스킬의 적용이 끝났을 때 엔트로피는 기철민의 전신을 지지하는 무구와 같은 모습이 되어 있었다.

기철민의 골격과 관절 부위뿐만 아니라 그가 들고 있던 검과도 결합했다.

기철민의 오른손이 엔트로피로 인하여 거대하게 변모한 검 손잡이에 완전히 맞붙어 있었던 것이다.

"키아아아아아앗!"

팽! 타당! 패앵!

구속에서 벗어나려고 날뛰는 서펜트로 인해 땅이 울렸다.

동시에 절대로 안 끊어진다던 와이어가 끊어지며 허미래가 비명을 질렀다.

"대장니임!"

더 이상 못 버틴다는 신호에 이재우와 김송근이 아껴 두었던 능력을 발휘했다.

"작품명, 속박의 사슬!"

"2분형, 거상 등장!"

파아아아아아앗!

이재우의 그림이 허공을 나르고 거기에서 흘러나온 먹물이 곧 커다란 사슬의 모습으로 변모했다.

추가 수십 개나 달린 그 사슬을 낚아채 김송근의 거대 분신들이 몸을 날렸고, 거대 분신 하나가 서펜트의 모가지를 붙들어 매 놓는 동안 나머지 거대 분신이 사슬을 서펜트의 주둥이에 채웠다.

집채만 한 크기의 추가 주렁주렁 매달린 사슬이 입에 감기자 몸부림을 치던 서펜트의 머리가 모래밭으로 쿵 처박혔다.

그 틈을 타서 거대 분신 하나가 사슬에 이어진 추들 중 하나를 붙잡아 당기며 서펜트의 모가지에 올라탔다.

다른 거대 분신 하나도 서펜트가 꼼짝하지 못하게 그 뒤에 올라탔다.

그러나 서펜트의 힘이 워낙에 강하고, 사슬도, 거대 분신도 어찌 보면 허상에 가까웠으므로 그리 오래 버티지는 못할 터였다.

서펜트가 진정한 능력을 발휘하기 시작한 것이다.

콰아아아아아아아!

해변에 있던 대원들은 서펜트의 등 뒤로 일어나는 파도를 보고 얼굴이 새파랗게 질렀다.

그것이 모든 것을 휩쓸어 버릴 기세로 가까워지고 있었다.

파도가 덮치면 거대 분신도, 사슬도 전부 소용이 없어질 터였다.

정대식은 서둘러 옆으로 비켜서며 기철민에게 소리를 질렀다.

"가라!"

기철민은 가대한 파도가 일어나고 있는 해변으로 달려 나갔다.

서펜트가 일으킨 무시무시한 쓰나미가 모든 것을 쓸어버리려 하고 있는 와중, 기철민은 이를 악문 채 벌써 목을 반쯤 들어 올린 서펜트에게로 뛰어들었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

기합을 내지르며 허공으로 솟구쳐 오른 기철민이 전력을 다해 검을 내리쳤다.

"천노-참격!"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

새파란 빛을 내뿜는 검이 허공을 두 쪽으로 가르며 서펜트의 머리 위로 떨어져 내렸다.

"쉬아아아아아아악!"

서펜트의 괴성이 울렸고 곧 기철민이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촤아악!

그의 머리 위로 서펜트의 시퍼런 피가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기철민은 마치 '해냈다'라는 표정으로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러나 서펜트는 채 죽지 않았다.

머리 가운데에 커다란 상처가 나 있어 거기에서 피가 폭포처럼 쏟아지고는 있었으나 아직까지 살아 있었다.

기철민은 서펜트가 입을 쩍 벌리는 광경을 보고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서펜트가 기철민을 잡아먹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터였다.

서펜트의 거대한 주둥아리가 기철민에게로 내리꽂힌 것은 찰나였다.

그러나 그 찰나의 순간.

기철민은 보지 못했으나 서펜트의 머리 위로 누군가의 발끝이 사뿐히 내려앉았다.

그것은 다름 아닌 김태희였다.

그러나 그녀의 손에는 평소 들고 다니던 절구가 없었다.

두 손은 아무것도 없이 텅 빈 상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태희는 거리낌 없이 그 손을 아래로 내리꽂았다.

"호라갈레스!"

곧 '번쩍!' 하는 빛과 함께 번개가 그 손 안에 작렬했다.

눈부신 섬광을 튀기는 검 한 자루가 나타나 서펜트의 머리를 일점으로 꿰뚫었다.

"------------------!"

하늘과 땅을 두 쪽으로 가르는 일격에 서펜트는 단말마도 내지르지 못했다.

서펜트는 주둥이를 벌리고 기철민을 삼키면서 바닥으로 쿵, 하고 떨어져 내렸다.

그러기가 무섭게 힘이 다한 허미래가 제자리에 주저앉으며 서펜트의 몸을 고정하고 있던 와이어가 몽땅 끊어져 사방팔방으로 튕겨져 나왔다.

잘못 맞았다가는 몸이 두 쪽으로 분리될 위험이 있었으나, 사실 그건 위험 축에도 속하지 못했다.

진짜 위험한 건 서펜트가 일으켜 놓은 엄청난 크기의 파도였다.

서펜트가 죽었다고 하더라도 한 번 일어난 파도가 곧장 가라앉지는 않는 것이다.

태산 같은 파도는 쓰나미처럼 섬을 몽땅 쓸어버릴 기세로 밀려들어 왔다.

거기에 휩쓸렸다간 해안에 흩어져 있는 대원들은 물론이거니와 MFP가 설치된 베이스캠프까지도 떠내려갈지 몰랐다.

그것만큼은 무슨 일이 있어도 막아야 하는 관계로, 정대식은 전에 없던 일을 했다.

"마력장!"

파아아아아아아아아앗!

그는 자신이 가진 마력을 몽땅 짜내어 마기전을 통해 쏟아 내었다.

그러자 그의 왼손에서 뻗어 나간 마력이 커다란 방패가 되었고, 곧 거대한 장벽이 되었다.

해안 양옆의 벼랑을 기둥 삼아 해변을 전부 아우르는 방어막을 친 정대식은 극심한 마력의 소모로 인해 눈앞이 캄캄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그러나 여기서 정신을 놓을 수는 없었으므로 두 눈을 부릅뜨고 이를 악문 채로 버텼다.

"으으윽!"

곧, 파도가 방어막에 부딪쳤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

"으아아악!"

"우와아아아!"

해변의 대원들이 놀라서 제자리에 엎드리거나 무언가를 붙잡거나 높은 곳으로 달려가거나 했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파도는 그들을 덮치고 섬을 휩쓰는 대신, 큰 벽에 부딪친 것처럼 전신을 뒤흔들었다.

곧 넘친 물이 방어막을 넘어왔고 그 바닷물이 폭우처럼 머리 위로 쏟아져 내렸다.

그러나 파도는 결코 정대식이 친 마기장을 넘어오지 못했다.

그것은 몇 번인가 몸부림을 치다가 서서히 무너져 내렸다.

그와 함께 마기장도 천천히 소실되어 사라졌다.

그러기가 무섭게 정대식의 무릎이 꺾이며 몸이 무너져 내렸다.

그런 정대식을 어느새 되돌아온 김태희가 부축해 주었다.

정대식은 김태희에게 매달린 채로 기운 없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것까진 예상하지 못했는데."

김태희, 아니 최희는 다정하게 마주 웃어 주었다.

그리고 그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

별거 아닌 접촉이었지만 정대식은 왜인지 크나큰 보상을 받은 기분을 느낄 수가 있었다.

* * *

서펜트를 죽인 것을 보고 해안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대원들이 해변으로 우르르 모여들었다.

그들은 거대한 몸뚱이를 축 늘어트린 채 죽어 있는 서펜트를 보고 감탄사를 연발했다.

"히야, 가까이서 보니 진짜 크네!"

"이놈이 군함 수십 척을 작살내 놨단 말이지!"

"이렇게 거대한 몬스터도 머리를 두 쪽으로 갈라놓으니 단박에 죽는구나!"

지쳐서 모래밭에 아무렇게나 주저앉아 있는 정대식의 곁으로 아담이 다가와 축하의 말을 했다.

「결국 해내셨군요. 대단합니다. 처음 계획을 들었을 때만 해도 미심쩍은 기분이었는데.」

쓴웃음을 지으며 손을 내미는 그의 손을 마주 잡으며 정대식이 말했다.

「이게 다 피닉스 공격대의 올리버 씨가 잘해 준 덕분입니다.」

아담은 저쪽에서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서펜트를 찔러 보고 있는 올리버에게로 시선을 주었다.

「저 친구는 제가 잘 알죠. 타고난 능력이 있는 친구긴 하지만 정대식 씨 당신이 없었더라면 이만한 일을 해내지 못했을 겁니다. 결과적으로 서펜트를 끝장낸 건 펜리르 부대원들이 아닙니까?」

아담은 정대식의 옆에 있던 김태희와 기철민에게도 악수를 청하며 치하했다.

「당신들의 활약으로 하와이 바다의 오랜 골칫거리였던 서펜트를 처치할 수 있었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를 표시하고 싶군요.」

「별일 아닙니다. 피닉스 공격대가 잘 버텨 준 덕분이죠.」

「저희야 대장님의 지시를 받아 그대로 움직였을 뿐입니다.」

김태희와 기철민이 각자 한마디씩을 하고 나자 아담은 올리버에게도 칭찬을 하러 자리를 떠났다.

그러자 김태희가 뒤쪽으로 시선을 돌리면서 말했다.

"유태훈의 준비가 끝난 것 같습니다."

"그래? 그럼 가서 해변을 정리하고 유태훈이 집중할 수 있게 도와줘."

"예, 그러죠."

김태희까지 자리를 떠나고 나자 기철민만이 곁에 남았다.

그가 왠지 할 말이 있는 것 같아서 정대식은 잠자코 기다렸다.

그러자 기철민이 오래 주저하지 않고 입을 열었다.

"엔트로피까지 동원해 절 도와주셨는데, 제 능력으로는 역부족이었습니다."

정대식은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그만하면 잘해 준 거지. 김태희가 마무리를 잘해 줬잖아."

그 말을 듣고 기철민이 쓴웃음을 지었다.

"엄밀히 말해 김태희가 아니라 최희가 아닙니까? 최희의 뇌전 능력으로 호라갈레스를 통해서 서펜트를 처치했으니까요."

정대식은 눈살을 찌푸렸다.

"정확히 하고 싶은 말이 뭐냐? 최희의 능력으로 쓰러트린 것이니 반칙이라고 말하고 싶은 거냐?"

정대식은 평소 김태희를 펜리르 부대의 일원으로 대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최희의 능력에 기대어 작전을 계획하거나 실행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이번에도 김태희가 호라갈레스로 뇌전을 끌어낸 것은 그녀가 독단으로 결정한 일이었다.

그런데 그걸 두고 기철민이 뭔가를 오해하고 있는 것 같았다.

"어차피 제 공격은 서펜트를 쓰러트릴 만한 일격이 되지 못했습니다. 그렇다면 처음부터 저를 배제하고 최희를 보냈어야 하는 게 아닙니까? 저를 투입한 것은 그저 구색을 갖추기 위한 것이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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