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질 전사-191화 (191/297)

# 191

현질 전사

-8권 17화

"정확히는 대장님이 아닌 피닉스 공격대의 그 테이머를 못 믿는 겁니다. 만약 테이머가 우리 부대였거나 적어도 외인부대였더라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았을 테니 마음을 놓았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일면식도 없는 타 공격대의 대원이 아닙니까? 그의 뭘 믿고 이런 중대사를 맡긴다는 말입니까?"

"나 스스로를 믿고 맡긴 것이다."

"예?"

"만약에 일이 잘못된다고 하더라도 난 그 누구도 희생시키지 않을 자신이 있다."

당당한 정대식의 말에 고덕화는 말문이 막힌 듯했다.

정대식은 짧게 설명했다.

"서펜트 한 마리를 잡는 것은 우리 파견대만으로도 충분한 일이다. 좀 무리를 한다면 펜리르 부대로도 가능하다고 감히 자신할 수 있다. 그런데도 이렇게까지 복잡한 방법을 사용하는 것은 헤르보르 때문이다. 놈을 공략하기 위해선 온전한 형태의 서펜트가 필요하거든. 하지만 우리의 능력으로는 서펜트를 죽일 수는 있어도, 멀쩡한 형태로 숨통만 끊는 것은 어렵다."

"서펜트를 우리의 능력만으로 처치할 수 있다면...... 헤르보르를 상대할 땐 피닉스 공격대와 미군의 도움을 받으면 되지 않습니까?"

끝까지 항변하는 고덕화를 보고 정대식은 그가 간과하는 점을 지적했다.

"헤르보르 한 마리만 본다면 그렇겠지. 하지만 헤르보르를 처치해도 하와이 섬에는 거기에 둥지를 틀고 있는 온갖 몬스터가 득시글거린다. 더욱이 하와이 섬은 빅아일랜드라고 불릴 만큼 크다. 거기에 도사린 몬스터를 상대할 여력을 남겨 두어야 안전해."

정대식은 팔짱을 끼고 말을 이었다.

"내 친절함은 여기까지다. 납득하지 못한 대도 하는 수 없어. 내 설명은 여기까지다. 하지만 다음번에 또다시 내 판단력을 의심하고 작전을 중단하라는 둥, 그런 소릴 할 생각이라면 펜리르 부대에서 방출당할 각오를 하는 게 좋을 거다."

고덕화는 "죄송합니다" 하고 고개를 꾸벅한 뒤 밖으로 나갔다.

그의 모습이 사라지고 정대식은 한숨을 쉬며 팔짱을 풀었다.

'아직까지 크툴루 부대에서 겪었던 일이 발목을 잡고 있는 모양이군. 능력치는 키워 줄 수 있어도 심적인 부분까진 내가 해결해 줄 수 없는 문제지. 시간이 약이라고 차츰 나아지길 바라는 수밖에.'

* * *

고덕화가 돌아가고 정대식은 간단히 아침 식사를 한 뒤 곧장 올리버와 유태훈의 훈련에 돌입했다.

정대식은 엔트로피를 올리버에게 붙이고, 자신은 유태훈과 함께 다니며 스킬의 효력이 다하는 두 시간마다 대상 지정 마력 증진 스킬을 계속 걸어 주었다.

그리고 그들 두 사람에게 섬에 남아 있는 수백 마리 몬스터를 모조리 처치하도록 했다.

잠도 단 네 시간만 재우고 다음 날엔 라나이 섬으로 가서 몬스터를 소탕했고, 그 다음 날엔 마우이 섬으로 가서 몬스터를 도륙했다.

그리고 하루를 푹 쉬게 하여 마력량을 회복할 수 있게끔 해 주자, 두 사람 다 스스로 놀랄 만큼의 마력량을 갖추게 되었다.

「이건...... 대단하군요! 정말 믿을 수가 없어요! 이게 정말 가능한 일이었다니!」

경탄하는 올리버를 보고 유태훈이 한마디를 했다.

「대장이 지휘하고 있는 펜리르 부대원들은 전부 이 같은 방법을 써서 비약적으로 강해졌지. 펜리르 부대는 우리 타이탄 공격대에겐 부러움의 극치야.」

올리버는 눈을 반짝거리며 정대식의 손을 덥석 잡았다.

「정말로 굉장하십니다! 이런 분이 중소 규모의 공격대에 머물고 계시는 것은 너무나도 아까운 일입니다. 부디 우리 피닉스 공격대로 와 주실 순 없겠습니까?」

올리버의 말에 정대식은 선웃음을 지으며 좋게 거절을 하려고 했다.

그런데 그때 옆에서 기회를 놓치지 않고 다른 사람의 목소리가 날아 들어왔다.

「미국으로 오신다면 최고의 원조를 약속드릴 수 있어요. 당신의 능력과 우리 미국의 기술력이 만난다면 실로 엄청난 위력을 발휘하게 되겠죠.」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리즈였다.

정대식이 그녀를 향해 무어라고 말을 하기도 전에 리즈가 그의 남는 손을 꼬옥 붙잡고 말을 이었다.

「올인원이라는 사실만으로도 당신의 값어치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수준이죠. 한데 그 어떤 방법으로도 불가능하다고 알려진 마력량의 한계를 극복하는 능력이라니...... 이제는 값을 논할 수가 없군요. 하지만 감히 값을 매긴다면 그 대가를 지불할 수 있는 곳은 미국뿐일 겁니다. 그 어떤 요구라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으니 다시 한 번 PCC로의 이적을 생각해 볼 수 없겠어요?」

올리버와 리즈가 양옆에서 손을 붙잡고 그런 요구를 하니 적잖이 난처했다.

그러자 보다 못한 유태훈이 그들 사이에 억지로 끼어들어 손을 떼 놓게 하고 말했다.

「대장님이 소속을 바꿀 마음이 있었더라면 진즉에 무슨 이야기가 있었겠죠. 아무 말이 없다는 것은 그럴 생각이 없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평안 감사도 본인이 싫다면 그만이지요.」

유태훈은 평안 감사라는 단어를 어떻게 번역해야 할지 모르는 것 같았다.

그는 평안 감사를 그냥 한국어로 말했고, 당연히 영어권의 올리버나 리즈는 무슨 말인지 이해를 하지 못했다.

그러자 유태훈이 당황해서 무어라고 더 설명을 하려고 했으나, 그의 영어 실력으로는 거기까지가 한계였다.

정대식은 적당한 타이밍에 나서서 그를 만류하고 올리버와 리즈에게도 거절을 말했다.

「지금 당장은 눈앞에 닥친 문제에 주력하는 것이 옳겠지요. 초대형종의 몬스터를 한 마리도 아니고 두 마리나 상대하려는 지금, 제 거취 문제로 골머리를 썩고 싶지는 않습니다.」

「제 말이 실례였다면 죄송합니다. 전 그저 정대식 씨와 같이 일하고 싶은 맘에.」

올리버는 순순히 물러났으나 리즈는 그러지 않았다.

「저도 사과하고 싶군요. 하지만 이대로 물러나진 않을 거예요. 아직 시간이 많이 있으니, 말씀하신 대로 당면한 문제가 해결되고 나면 그때 다시 이야기하도록 하죠.」

성가신 인사가 물러가고 정대식은 올리버와 유태훈을 바라보며 말했다.

「두 사람이 느끼기에 어떤가? 준비가 된 것 같은가?」

두 사람은 잠깐 주저했다.

단시일에 엄청나게 강해지기는 했으나, 서펜트를 상대로 하려니 자신이 없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정대식은 귀를 후비며 말했다.

「아니면 훈련을 계속하고.」

두 사람은 질겁해 고개를 흔들었다.

「아, 아닙니다! 준비가 됐습니다.」

「저도요!」

사흘 간의 훈련이 실로 혹독했기에 둘의 얼굴이 백짓장처럼 창백하게 변했다.

아무리 강해지는 게 좋다지만 또다시 그런 지옥을 경험할 바에야 서펜트와 맞붙는 편이 낫다고 여기는 모양이었다.

정대식은 내심 치밀어 오르는 웃음을 내리누르며 말했다.

「좋다. 그럼 작전을 시작하지!」

* * *

쏴아아아-.

쏴아아아-.

사파이어처럼 새파란 바다는 그 뱃속에 무엇을 숨기고 있든지 간에 지상 낙원을 보듯이 아름다웠다.

조금만 방심하면 기분이 느슨하게 풀어지고 마는 천혜의 절경인지라, 여기저기서 아쉬움이 섞인 탄식이 터져 나왔다.

"이런 곳은 신혼여행 때나 와야 하는 것인데."

"네가 결혼을 할 수 있을지 부터 의심해야 하는 거 아니냐?"

정대식은 시답잖은 소리를 하는 이재우와 기철민에게 주의를 주었다.

그리고 해변에 도열한 파견대와 피닉스 공격대원들을 둘러보고 아담에게 말했다.

"그럼 지금부터 작전이 끝날 때까지는 피닉스 공격대의 지휘권을 넘겨받도록 하겠습니다."

아담은 고개를 끄덕였다.

"뜻대로."

"그럼, 작전 시작하겠습니다."

정대식은 우선 실체화한 엔트로피를 바다 속으로 들여보냈다.

서펜트의 움직임을 관찰하기 위해서였다.

그런 뒤 허미래와 함정조에게 마력장으로 만든 헬멧을 씌우고 그들을 물이 들어오고 있는 해변으로 내보냈다.

넷씩 짝을 지어 두 개로 갈라진 함정조는 해변에 너른 거리를 두고 펼쳐 섰다.

제일 가장자리에 선 함정조의 대원들은 바닷물이 가슴팍에 찰 정도로 깊이 들어갔다.

갈수록 수위가 높아지고 있으니 나중에는 바닥에 발이 닿지 않을 터였다.

그러나 함정조는 전부 수영이 능숙한 인물들로 골랐고 마력장을 쓰고 있었기에 물속에서도 숨 쉬는 데 무리가 없었다.

또한 피닉스 공격대가 보유하고 있는 특수 장비까지 등에 메고 있으니 만약의 사태가 일어나도 탈출하기에 용이할 터였다.

백사장 위에는 김시온과 방어조가 자리하게 되었다.

이재우와 김송근, 그리고 피닉스 공격대에서 어그로가 가능한 탱커들이 여기에 포함이 되었다.

그들 뒤로 기철민, 김태희, 서지원, 단 세 사람으로 이루어진 공격조가 대기했다.

그리고 좁은 해변을 둘러싸고 있는 양쪽 벼랑 위에는 아담과 함께 엄호조가 자리를 했다.

마지막으로 정대식은 올리버와 소강두, 박무원 등이 속해 있는 유인조를 이끌었다.

정대식이 포함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짐작할 수 있듯이, 이번 작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역할은 유인조가 맡고 있었다.

유인조가 서펜트를 해변까지 끌어오지 못하면 작전은 시도조차 못해 보고 끝이 날 터였다.

그만큼 유인조가 제일 위험하기도 했다.

서지원은 군인들이 끌어 오는 제트 스키를 보고 창백하게 질렸다.

"정말 저걸 타고 서펜트가 있는 바다로 나가야 하는 겁니까?"

정대식은 짧게 대꾸했다.

"그렇다."

피닉스 공격대원들은 전부 제트 스키를 몰 줄 알았기에, 그들이 운전을 담당하고 파견대가 그들과 함께 동승하여 제 역할을 하게 될 터였다.

제트 스키에는 갓 도축해 피가 줄줄 흐르는 고기가 매달려 있어 물속에 들어가는 그 순간부터 엄청난 피 냄새를 풍기게 될 예정이었다.

곧 피 냄새를 맡고 사방팔방에서 물속의 몬스터들이 몰려오게 될 것이다.

마력장으로 만든 헬멧을 쓴 채로 유인조는 제트 스키를 끌고 바다로 나아갔다.

달리 나루터가 없어 제트 스키를 물 위에 띄우고 거기에 올라서는 일부터가 쉽지 않았다.

그나마 피닉스 공격대가 제트 스키를 다루는 데 능숙하여, 그들의 도움을 받아 총 다섯 대의 제트 스키가 바다로 출발했다.

부아아아아아앙!

제트 스키 특유의 요란한 소음이 울리면서 물보라가 화악 번져 올랐다.

제트 스키는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채 해변을 등지고 먼 바다로 나아갔다.

달려가는 제트 스키의 뒤로 붉은 피가 긴 궤적을 그리며 번져 나갔다.

정대식은 제트 스키를 모는 피닉스 공격대원의 등 뒤에 매달린 채로 엔트로피를 불렀다.

'엔트로피, 아직이냐?'

'보시다시피 서펜트는 보이지 않습니다. 다만...... 몬스터들이 피 냄새를 맡은 것 같습니다.'

링크된 시야로 바다 속에서 우르르 몰려오는 몬스터들이 보였다.

그들은 대부분 워킹 머맨으로, 우스꽝스러운 팔다리를 몸에 딱 붙이고 물고기처럼 빠른 속도로 헤엄쳐 오고 있었다.

그 광경을 보고 정대식은 통신기를 통해 곧장 다른 유인조의 대원들에게 경고를 날렸다.

「놈들이 온다!」

부아아아아아앙!

제트 스키 다섯 대가 옆으로 크게 선회를 하며 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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