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4
현질 전사
-7권 25화
그러자 마력이 어느 정도 차오르며 다급한 대로 몇 가지 스킬을 쓸 정도가 되었다.
"엔트로피."
<부르셨습니까?>
"일대를 한 번 둘러보고 와."
<알겠습니다.>
엔트로피를 정찰 보내고 나서 정대식은 의식을 집중해 주의 확장으로 주변에 또 다른 몬스터가 없는지를 살폈다.
그런데 순간 소름이 쭉 끼치며 근처에 무언가 도사리고 있다는 사실이 느껴졌다.
'진짜로 브세슬라브가 끝이 아니었단 말인가? 보스몹이 또 있는 건가?'
브세슬라브를 쓰러트리는 데 전력을 다했기에, 정대식은 더 이상 싸울 수 없는 상태였다.
그건 부대원들 대부분이 마찬가지였다.
작전대로 훌륭히 싸워 주기는 했으나 여력을 남기지는 못했던 것이다.
정대식은 잠시 고민했다.
'일단은 철수를 해야 하나? 그렇게 되면 임무엔 실패하는 것이 되는데.'
이것은 펜리르 부대의 첫 공식 임무였다.
그걸 성공시키지 못하고 그냥 돌아갈 생각을 하니 찜찜하기 짝이 없었다.
강영후를 실망시키기도 싫었고 무엇보다 자기 자신이 실망하는 게 싫었다.
정대식은 부대원들에게 솔직히 지금 상황을 털어놓았다.
"브세슬라브를 쓰러트리고도 마정석이 안 나왔으니 공략을 끝마쳤다 할 수 없다. 그래서 그런지 근처에 무언가가 느껴지고 있다. 그게 보스몹일 수는 있으나...... 알다시피 현재로써는 남아 있는 전력이 없다. 더 이상 싸울 수 없는 상태이니 이대로 돌아가는 게 마땅하다.
하지만 이것이 우리의 첫 임무인데, 보스몹의 정체조차 확인하지 못하고 돌아가는 것은 내키지 않는다. 적어도 보스몹이 어떤 놈인지를 보고 재정비를 하고 나서 다시 공략할 방법을 찾는 게 맞다고 생각이 된다. 그러나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독단으로 결정하기보다는 여러분의 의견을 묻고 싶군. 일단 무언가 있다고 생각되는 방향으로 가볼 것인지, 이대로 퇴각할 것인지......."
정대식의 말에 부대원들의 얼굴에도 일순 고민의 기색이 떠올랐다.
그러다가 이재우가 어깨를 들썩이며 말했다.
"보스몹이 어떤 놈인지, 관찰하고 오는 정도라면 괜찮지 않을까요? 이대로 물러서긴 찝찝하잖아요."
이재우의 말에 김송근도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비상용으로 가져온 마력석도 남아 있고 하니, 마력을 좀 보충해서 살펴보는 것 정도는 무리가 없을 것 같습니다."
기철민도 동의하는 눈치였다.
"이 고생을 했는데 건지는 게 없어선 억울하겠죠. 나중을 기약할 수 있어야 합니다."
김태희나 허미래도 이견을 보이지 않았다.
유일하게 반대하고 나선 사람은 고덕화였다.
"굳이 위험을 무릅쓸 필요가 있겠습니까? 일단 던전 밖으로 나가서 전력을 회복하고 나서 와도 늦지 않습니다."
그 말에 곧장 김태희가 반박했다.
"던전을 공략하지 못한 상태면 몬스터의 영역 복귀가 빨라진다. 다음번에 들어올 땐 위어울프 떼나 울프헤딘을 상대해야함은 물론이거니와, 또다시 브세슬라브와 마주칠지 모른다는 말이야. 결국 똑같은 상태가 될 거라는 거지. 그럴 바엔 지금 확인하는 게 나아."
고덕화는 김태희의 말에 불만스러운 기색을 드러냈다.
그러나 결국 결정권은 부대장인 정대식에게 있었다.
그리고 정대식은 김태희의 말에 동의했다.
"공격이 아닌 정찰만이라면 지금 상태로도 문제없다. 절대 싸우지 않는다. 보스몹의 정체만 확인하고 돌아오겠다. 그럼 잠시 후에 출발하도록 하지."
정대식은 남은 비상식량을 모조리 털어먹었다.
그리고 깨끗한 눈까지 긁어모아 한 바가지를 삼켜 간신히 배고픔을 가라앉혔다.
그러고 나서 부대원들을 이끌고 엉망진창으로 파괴된 숲을 가로질렀다.
얼마를 걸으니 전방의 엔트로피가 무언가를 발견했다.
<동굴입니다.>
"안에 뭐가 있나?"
<지금 들어가 보겠습니다.>
정대식은 진행을 멈추고 잠시 엔트로피에게 신경을 집중했다.
링크된 시야를 통해 엔트로피가 보고 있는 광경이 그대로 보였다.
잭오랜턴으로 밝혀진 동굴의 내부는 일전에 아스모데우스와 싸웠던 곳처럼 그리 크지는 않았다.
그러나 인공적으로 만든 것처럼 사면이 잘 깎여 있었고, 동굴 가장 안쪽에 돌로 만들어진 제단이 보였다.
'저게 도대체 뭐지?'
정대식은 의식을 집중해 엔트로피에게 뜻을 전달했다.
'엔트로피, 제단 위에 뭐가 있는지 살펴봐.'
<제단 위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만. 제단 안쪽에서 사력이 느껴집니다.>
'제단 안에 뭐가 있나? 제단을 열어 볼 수 있겠어?'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곧 엔트로피가 돌로 만들어져 무겁기 짝이 없는 제단의 위쪽을 들어냈다.
그러자 제단 상부가 마치 상자 뚜껑처럼 열렸고, 안에 빈 공간이 드러나 보였다.
그 공간에 미처 예상치 못한 것이 자리하고 있었다.
정대식은 저도 모르게 혼잣말을 했다.
"저게 뭐지?"
그러자 정대식이 뭘 보고 있는지 알 길 없는 부대원들이 의아해 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엔트로피가 뭘 발견한 거죠?"
정대식은 미간을 찡그리며 말했다.
"내가 보기엔 심장 같아 보이는데."
심장이라는 말에 부대원들이 헉, 놀랐다.
그러자 기철민이 신빙성 있는 이야기를 내놓았다.
"아주 간혹 가다가 심장이나 뇌 따위의 약점 부위를 별도로 보관하는 몬스터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브세슬라브도 그런 것인가?"
"그럴 가능성이 높죠. 그래서 브세슬라브를 처치하고도 마정석이 나타나지 않은 것인지도요."
"브세슬라브를 완전히 처치한 게 아니라서 그런 것이군."
정대식은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일단 그곳으로 가 보겠다."
펜리르 부대는 한달음에 달려 엔트로피가 있던 동굴의 제단 앞에 당도했다.
그 제단 안에는 인간의 것이라기에는 지나치게 커다란 심장이 자리해 있었다.
푸르스름한 사력으로 둘러싸여 보호받고 있는 그 심장은 아직까지도 살아 있는 듯 쿵, 쿵, 박동 소리를 내며 뛰고 있었다.
정대식은 그 심장을 주의 깊게 살펴보았다.
사력으로 보호되고 있으니 마구잡이로 찔렀다간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것이다.
그는 신중을 기하기 위하여 스킬을 썼다.
"관측."
스킬이 발동되자 시야가 확 밝아지는 기분이 들면서 심장에 대한 정보가 떠올랐다.
'브세슬라브의 심장'이라고 쓰인 이름 옆에 보스몹을 뜻하는 왕관 표시가 있었다.
그게 푸른빛을 띠고 있는 것을 보아하니 최소 사파이어급의 마정석이 나올 가능성이 높았다.
그리고 그 아래 생명력 수치가 떠 있었는데, 공교롭게도 이번 역시 약점과 강점 부위를 분간할 수가 없었다.
전부 약점 부위처럼 표시되어 있어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사력이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는 판단이 불가능했다.
'관측 레벨 2로는 관찰에 한계가 있는 모양이군...... 희귀 몬스터가 들끓는 위험 등급 던전을 공략하려면 아무래도 관측 스킬을 업그레이드하는 편이 좋겠어. 엔트로피! 관측 스킬을 업그레이드해.'
<관측 스킬을 Lv3으로 업그레이드하고 10억을 차감합니다.>
확!
눈이 뜨뜻해지는 기분이 들어 정대식은 눈꺼풀을 몇 번 깜박거렸다.
곧장 관측 스킬을 다시 사용해 보자, 보다 많은 정보가 제단 위에 떠올라 있었다.
그게 머릿속에 입력되듯이 흘러 들어와 정대식은 브세슬라브의 심장에 대해 단번에 여러 가지 사항을 확인할 수가 있었다.
'심장을 감싸고 있는 사력은 방부제의 역할을 할 뿐, 딱히 위험하지는 않은 모양이군. 다만 이대로 내버려 두면 브세슬라브의 몸뚱이가 재구성되어 다시 나타난다. 그 전에 처치를 해야 하는데, 그냥 칼로 찌르거나 해머로 뭉개도 되지만 더 좋은 방법이 있는 모양인데......?'
정대식은 레벨 3의 관측으로 얻을 수 있는 정보에 놀라워하며 부대원들을 향해 말했다.
"역겹다고 생각될지도 모르지만 내 말을 끝까지 들어라. 내가 올인원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겠지?"
부대원들이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고 정대식은 계속해 말을 이었다.
"이것은 올인원의 능력으로 간파한 사실이다. 아무래도 브세슬라브의 심장이 따로 보관되어 있는 데는 이유가 있는 것 같다. 브세슬라브의 심장 자체가 이 던전에서 획득할 수 있는 최고의 아이템이기 때문이다."
그 말에 이재우가 어리둥절해 고개를 갸웃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무슨 말이냐면, 브세슬라브의 심장을 살아 있는 상태로 섭취하면 신체 기능이 향상이 되는 모양이다."
브세슬라브의 심장을 날 것 채로 먹어야 한다는 말에 허미래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놀라기는 다른 부대원들도 마찬가지였다.
수런거리는 그들을 보고 정대식은 말을 이었다.
"간혹 심장을 먹거나 피를 마시는 것만으로도 영약이 되는 몬스터들이 있다. 대표적인 예가 드래곤이지. 드래곤의 심장을 먹으면 불사가 된다는 소문까지 있을 정도니, 다들 드래곤의 심장을 앞에 두고선 망설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정대식은 서슴없이 브세슬라브의 심장에 사냥칼을 꽂아 넣었다.
칼이 박히고도 브세슬라브의 심장은 여전히 살아서 쿵, 쿵, 뛰고 있었다.
정대식은 그것을 여러 조각으로 갈랐다.
부대원들의 숫자만큼 여덟 개로 나누어 한 덩어리씩 나누어 주었다.
"아직 사력이 고여 있어 다소 부작용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감수할 만한 가치가 있을 거야. 내가 먼저 먹어 보겠다."
정대식은 피가 뚝뚝 흐르는데도 꿈틀꿈틀 살아 있는 브세슬라브의 심장 덩어리를 입 안에 쑤셔 넣고 꿀꺽, 삼켰다.
야마환 때문에 아직도 배가 고파서 그런지 예상보다는 잘 넘어갔다.
그 광경을 보고 다른 부대원들도 일제히 브세슬라브의 심장을 먹었다.
허미래만이 끝까지 주저하고 있었으나 자기만 빠질 수 없다고 생각했는지 울상을 한 채로 그걸 입 안에 집어넣었다.
"우욱......."
삼키고 나서 입 안에 가득한 피비린내에 허미래가 연거푸 헛구역질을 했다.
하지만 정대식이 "괜찮나?" 하고 묻자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였다.
별안간 제단이 쩌저적, 하고 갈라지더니 양옆으로 무너졌다.
그리고 그 자리가 일그러지며 마침내 마정석이 모습을 드러냈다.
파아아아아아아!
눈부신 빛을 뿌리며 나타나는 마정석을 보고 정대식은 미소를 지었다.
'예상대로 사파이어급이군.'
허공에 등장한 마정석은 눈이 시리도록 새파란 푸른색이었다.
보통의 블루 스톤과는 차원이 다른 투명함과 선명함을 품고 있어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곧 아래로 떨어지는 그것을 공중에서 낚아채어, 정대식은 임무의 종료를 알렸다.
"마정석을 획득했으니 임무를 완수했다. 이 시간부로 SJ1D는 공략되었다."
첫 번째 공식 임무를 무사히 수행해 냈다는 안도와 기쁨에, 부대원들이 환성을 질렀다.
"와아아아아!"
그런 그들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정대식은 짧게 치하의 말을 했다.
"다들 수고했다. 여기까지 잘 와 주었어."
"아닙니다, 다 부대장님 덕분입니다."
"부대장님 최고!"
"와아아!"
다들 즐거워하며 정대식을 번쩍 들어 올렸다.
그들이 있는 곳이 좁은 동굴 안이 아니었더라면 헹가래를 쳤을 것이다.
정대식은 하마터면 동굴 천장에 머리를 박을 뻔했으나, 설령 그랬다 해도 괜찮았을 만큼 기분이 최고였다.
'단 한 명의 부상자도 없이 8성급의 몬스터를 쓰러트렸다! 이들과 함께라면 내가 꿈꾸는 공격대를 창건하는 것도 어렵지는 않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