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3
현질 전사
-7권 24화
무엇보다, 정대식은 브세슬라브가 나타났을 때 이미 관측 스킬을 써 봤다.
브세슬라브의 약점과 강점 부위를 파악하기 위해서 한 일이었지만...... 그 결과를 부대원들에게 알리지 않고 무시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
브세슬라브에게는 약점이 없었다.
브세슬라브의 전신이 다 강점인 탓이다.
놈을 구성하는 뼈와 살, 근육과 가죽, 털 한 올에 이르기까지 놈은 완전체였다.
온몸이 강력하기 짝이 없었으므로 특정 부위가 약해서 그곳을 공략하면 된다거나 하는 법칙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심장이나 뇌 같은 것도 없는 것 같았다.
가슴에 저만한 구멍이 뚫렸음에도 브세슬라브는 멀쩡했다.
아니, 멀쩡한 것까지는 아닌 것 같았지만 반사적으로 다시금 공격을 가하기 시작한 것이다.
쿠와아아아앙!
양날 도끼가 내리 찍히는 것을 보고 정대식은 반사적으로 몸을 날려 피했다.
연거푸 양날 도끼가 그를 내리찍기 위해 날아들었고, 발길질과 채찍 역시 사방에 난무하고 있었기에 아차 하다가는.......
"커억!"
정대식은 양날 도끼를 피하다가 미처 브세슬라브의 발끝을 피하지 못하고 거기에 걷어차였다.
공중으로 붕 날아가는 그를 다시금 등장한 김송근의 거대 분신이 낚아채 바닥으로 내려놓았다.
곧 체급이 엇비슷한 적의 등장에 브세슬라브가 입에 거품을 물며 거대 분신에게로 달려들었다.
둘이 엉켜 숲 바닥으로 넘어지자 대지진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땅이 심하게 흔들렸다.
퍼엉!
브세슬라브에게 물어뜯긴 거대 분신은 오래 견디지 못했다.
아까 첫 번째 분신을 만드는 것만으로도 상당량의 마력을 소비했을 김송근은 두 번째 분신을 잃고 나서 숨 쉬는 것도 벅차 하고 있었다.
제아무리 마력량을 늘렸다고 하더라도 분신을 만들어 내고 그것을 운용하는 데 있어서는 막대한 마력이 들어가는 것이다.
그때였다.
"네팅!"
허미래의 디버프가 그물처럼 브세슬라브의 머리 위로 내려앉았다.
"와이어!"
곧 그 그물 끄트머리에서 와이어가 길게 뻗어 나와 땅 속에 못 박혔다.
"포스 오브 그래비티!"
그것이 중력의 힘으로 땅 속 깊숙이 파묻히자 브세슬라브가 잠시나마 억류되었다.
그 틈을 타서 이재우가 커다란 와이번을 한 마리 불러내어 브세슬라브를 공격하게 했다.
부대원들이 시간을 끄는 것을 보고 정대식은 기철민과 김태희를 불러 모았다.
정대식은 뻐근한 옆구리를 붙잡은 채 가까이 다가온 두 사람에게 지시를 내렸다.
"너희 두 사람이 한 번 더 브세슬라브를 공격해 줘야 되겠다. 할 수 있겠지?"
그 말에 기철민이 근심스런 기색을 드러내었다.
"할 수는 있습니다만 보셨잖습니까? 저희 두 사람의 공격력으로는 부족합니다."
"너희 두 사람만의 공격력으로는 그렇겠지. 하지만 날 믿어라."
정대식이 하는 말에 둘은 고개를 끄덕였고, 정대식은 몸을 추스르며 말했다.
"허미래가 오래 버티지는 못할 거다. 그녀의 디버프가 와해되는 시점에 공격해!"
"알겠습니다!"
두 사람을 앞서 보내고 정대식은 주의 깊게 와이번과 씨름하고 있는 브세슬라브에게로 접근했다.
아무래도 여태까지 머릿속으로 구상하고 있던 일을 시험해 봐야 할 것 같은 시점이었다.
"엔트로피."
<네.>
"내 계획은 알고 있겠지? 준비하고 있어라."
<알겠습니다.>
"쿠워어어어어어!"
와이번의 공격에 분노한 브세슬라브가 힘으로 구속을 끊어 내기 시작했다.
오래지 않아 뿌득뿌득, 하는 소리와 함께 브세슬라브를 뒤덮고 있던 와이어와 네트가 모조리 끊어지고 말았다.
그러기가 무섭게 몸을 일으킨 브세슬라브가 공중의 와이번을 낚아채 바닥으로 메다꽂아 발로 짓밟았다.
이재우가 만들어 낸 와이번은 곧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고, 그때 김태희와 기철민이 튀어 나갔다.
그들의 뒤를 따라, 정대식과 엔트로피도 달려 나갔다.
정대식은 김태희에게로, 엔트로피는 기철민에게로 붙었다.
그리고 동시에 스킬을 사용했다.
<"변화!">
파아아아아앗!
스킬의 대상자가 된 김태희와 기철민에게서 놀랄 만한 변화가 일었다.
두 사람이 든 무기가 순식간에 자라났던 것이다.
그것은 흡사 거대한 곡도와 같이 보였다.
숙련된 헌터답게 둘은 당황하지 않고 그대로 날아올랐다.
그들의 변화된 무기에 정대식과 엔트로피는 버프를 더했다.
<"강화!">
슈와아아아앗!
높이 뛰어오른 두 사람은 서로 엇갈리며 브세슬라브의 목을 갈라놓았다.
콰드드드드드드드!
이번엔 그들의 공격이 브세슬라브의 가죽을 찢는 데 그치지 않고 살과 근육 깊숙한 곳으로 파고든 게 틀림없었다.
뼈 갈라지는 소리가 났던 것이다.
그러자 피가 분수처럼 사방으로 솟구쳤다.
쏴아아아아아아!
터져 나오는 피 분수를 맞으며 김태희과 기철민이 양옆으로 굴렀다.
그러나 브세슬라브의 머리를 자르는 데는 실패하고 말았다.
목 절반 가까이가 도끼라도 맞은 것처럼 푹 팬 상태에서도 브세슬라브는 서 있었다.
심지어는 양손에 쥔 무기를 놓치지도 않았다.
비틀거리지도 않은 채 우뚝 서서 무서운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그리고 그 시선이 가 닿는 자리에, 엔트로피와 정대식이 서 있었다.
정확히는.......
무기화한 엔트로피와 정대식이었다.
엔트로피의 모습은 인간형이던 예전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그녀는 예전의 형태를 찾아볼 수 없었다.
온 전신이 무기화하여, 정대식의 왼손과 결합해 있었다.
정확히는 마기장과 결합한 상태였다.
그렇기에 정대식은 왼손에 거대한 대포와 같은 물건을 끼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주포와 같은 입구가 앞으로 길게 뻗어 나가 있었고, 거기에서 기묘한 빛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그것을 브세슬라브의 머리통으로 겨눈 채 정대식은 외쳤다.
"마기포!"
구우우우우우우우웅--------------------.
정대식은 남아 있는 모든 마력을 짜내어 마기전에 주입했다.
그 마력이 마력을 방출하는 왼손의 마기석으로 일시에 모였다.
본래대로라면 거기에 압축된 마력이 단번에 일섬으로 쏘아져 나갔겠지만, 이번만큼은 달랐다.
엔트로피가 마기전과 결합해 있었기에, 그것은 전혀 새로운 무기가 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엔트로피가 마기석에 맺힌 마력을 한층 더 증폭시키는 동시에, 압축했던 것이다.
"크아아아앗!"
그 여파로 정대식의 왼팔에 소용돌이와 같은 기운이 일었다.
마력이 증폭과 압축을 반복하며 생기는 현상이었다.
그 바람에 정대식의 주변으로 회오리가 일었고, 숲 바닥에 흩어져 있던 온갖 것들이 어지럽게 몰아쳤다.
"크아아아아!"
폭풍처럼 회전하는 힘의 기류 한가운데서 정대식은 비명을 올렸다.
거대한 힘이 왼손으로 다 모이다 보니 금방이라도 손과 팔이 터져 나갈 것 같았다.
블랙 드래곤 스킨 아머를 착용하고 있지 않았더라면 이미 그랬을지도 모른다.
증폭된 마기포를 쏘아 내는 과정이 더 길었더라도 그랬을 수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 정대식이 마기포를 외치고 공격을 가하기까지의 시간은 찰나에 불과했다.
다른 사람들이 느끼기엔 정대식이 마기포를 외치고 한 호흡이 지나기 무섭게 시야를 불태우는 섬광이 눈을 꿰뚫고 지나쳤다.
"으악!"
"크아!"
다들 눈을 질끈 감으며 웅크리는 가운데, 엄청난 에너지가 브세슬라브를 향해 쏘아져 나갔다.
동시에 주변의 수목이 광풍을 맞은 것처럼 옆으로 확 쓰러졌다.
그 힘은 브세슬라브를 꿰뚫고 먼 하늘까지 쏘아져 나가 구름을 명중시켰다.
공격이 지나간 자리에는 공기와 소리까지도 찰나 사라져 버렸다.
잠시 눈이 멎었고, 사방이 지독히도 고요한 가운데 부대원들은 잠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눈을 떠 고개를 들어 올렸다.
바람도 불지 않고 어떤 소리도 들려오지 않아, 부대원들은 자신들의 감각이 마비되거나 심지어 귀가 먹은 게 아닌가 의심을 했다.
브세슬라브 가까이 서 있던 허미래는 시야 또한 캄캄한 기분을 느꼈다.
지나치게 밝은 빛에 노출되는 바람에 도리어 눈이 흐려지고 만 것이다.
서서히 정신을 차린 부대원들은 반사적으로 브세슬라브를 쳐다보았다.
브세슬라브는 여전히 제자리에 우뚝 선 채였다.
마치 고대의 거대한 석상을 보듯이 멈춰 서 있었다.
그러나 놈의 어깨 위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머리가 완전히 날아가 버린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건히 제자리에 서 있으니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공격의 여파로 뒤쪽으로 튕겨 나가 나동그라져 있던 정대식도 그 광경을 보았다.
'아직 이 정도 레벨로는 안 되는 것인가?'
정대식은 아스모데우스의 환영 속에서 엔트로피를 통해 얼마만큼의 공격력을 자아낼 수 있는지 잠시나마 보았다.
그것을 기억해 내어 엔트로피를 새롭게 응용해 마기전의 출력을 한계까지 끌어올렸으나...... 브세슬라브는 머리를 잃어버리고도 아직 제자리에 서 있는 것이다.
양날 도끼와 채찍을 움켜쥔 양손은 언제든지 다시 움직일 것처럼 보이기까지 했다.
그러나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정대식은 힘겹게 상반신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오른 주먹을 앞으로 내뻗으며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삼켜라, 모조리 먹어 치워."
그러기가 무섭게 브세슬라브의 전신이 결딴나기 시작했다.
여태까지와는 달리 브세슬라브를 다 먹어 치우라고 명령했고, 브세슬라브가 워낙에 크기에 부대원들은 야마환에서 튀어나온 그 아귀라는 게 놈을 씹어 뜯는 광경을 볼 수가 있었다.
아귀의 형체는 불분명하게 보였으나 입이 쭉 찢어진 호랑이와 엇비슷한 모습이었다.
그것이 브세슬라브의 몸뚱이에 달라붙어 턱을 쩍 벌려 몇 입 만에 브세슬라브를 물고 뜯고 꿀꺽꿀꺽 삼켰다.
덕분에 브세슬라브가 사라지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곧 브세슬라브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정대식은 위장이 찢어지는 것 같은 극심한 허기로 신음했다.
'......부산물이 필요할 때 야마환은 못 쓰겠군.'
그리고 바닥난 마력으로 인해 헐떡거리다 기절해 버렸다.
* * *
"부대장님, 정신이 좀 드세요?"
정대식은 눈을 깜박이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깨어나자마자 잠시 의식을 놓쳤다는 사실을 깨닫고 한심스런 기분이 찾아들었다.
'전투 중에 이랬으면 어쩌려고......!'
정대식은 걱정하며 부축하는 부대원들을 밀어내고 말했다.
"브세슬라브는?"
"걱정 마세요. 부대장님이 멋지게 처치하셨잖아요!"
"놈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어요."
"진짜 굉장했다고요!"
부대원들이 흥분해 떠드는 사이 정대식은 극심한 굶주림으로 눈앞이 핑 도는 것을 느꼈다.
그러자 고덕화가 고칼로리의 프로틴 음료가 담긴 캔을 내밀었다.
"이거라도 드시죠."
정대식은 서둘러 그걸로 입을 적셨다.
물론 그 정도로는 야마환을 쓴 부작용이 해결될 리 없었다.
부대원들이 비상식량을 모조리 털었고 정대식은 에너지 바를 입에 쑤셔 넣으며 말했다.
"마정석은 어디 있지?"
그 말에 김태희가 이상스럽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분명히 브세슬라브를 흔적도 없이 처치했음에도 마정석은 나타나지 않았어요."
그러자 허미래가 겁먹은 기색으로 말했다.
"설마 브세슬라브가 이 던전의 보스몹이 아니었던 걸까요?"
"으헥! 더 강한 놈이 버티고 있다는 말이야?"
질겁하는 김송근을 보고 정대식은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 없다고는 생각되는데. 모르는 일이지."
정대식은 급히 허기를 달래고 비상용으로 갖고 온 마력석 하나를 깨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