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질 전사-172화 (172/297)

# 172

현질 전사

-7권 23화

조금만 더 했더라면 정대식과 펜리르 부대가 몸을 숨기고 있는 것이 들킬 판국이었다

나무들이 대거 쓰러지고 나자 하늘이 트이면서 마침내 브세슬라브의 전신이 드러나 보였다.

'크다.'

크다, 는 말밖에는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목격담은 울프헤딘의 서너 배쯤 되는 것처럼 말을 했는데, 실제로 보니 다섯 배는 넘게 큰 것 같았다.

빌딩이 걸어 다니고 있다는 착각이 일 정도였다.

과연 초대형종이라고 해야 할까?

다행히 브세슬라브는 펜리르 부대를 눈치챈 것 같지는 않았다.

그는 오만한 거인이었다.

높이 자리한 놈의 머리는 아래를 쳐다보지 않았다.

검은 털로 휩싸인 늑대 머리는 먼 곳을 응시하고 있었고, 한 손에는 지붕만 한 양날 도끼를 들고 다른 한 손은 자연스레 늘어트린 채로 숲을 걷고 있었다.

꿀꺽.

침 넘어가는 소리가 지나치게 크게 들리는 가운데, 거치적거리는 나무들을 죄다 잘라 버린 브세슬라브는 쿵, 쿵, 하는 발소리를 내며 펜리르 부대를 지나쳐 갔다.

브세슬라브가 곁을 지나는 동안 정대식은 나무 기둥에 등을 딱 붙인 채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

인간을 포함한 짐승이라면 누구나 느낄 법한 본능적인 공포심.

그것이 정대식을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그러나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던 것도 잠시.

정대식은 신호를 보냈다.

그로써 전투가 시작되었다.

* * *

"마기력!"

파츠츠츠츠츠츠!

그의 선공을 필두로 해서 부대원들이 작전대로 제 역할을 도맡아 움직이기 시작했다.

"와이어!"

정대식이 쏘아 낸 마기력이 일시 브세슬라브의 발목을 휘감았다.

브세슬라브 입장에서야 조금 몸이 짜릿한 정도였겠지마는 놈을 제자리에 멈추게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브세슬라브가 멈칫해 걸음을 멈추기 무섭게 허미래가 자신이 가진 마력을 총동원해 와이어로 놈을 칭칭 감았던 것이다.

그러자 일이 어떻게 된 것인지를 깨달은 브세슬라브가 분노의 울음을 터트렸다.

"크워어어어어어엉!"

"크윽!"

피어가 귓속을 파고들며 전신이 파르르 떨렸다.

다행히 정대식은 블랙 드래곤 스킨 아머를 걸치고 있기에 피어가 먹히지 않았다.

그는 신속하게 피어로 인해서 얼어붙었을 부대원들을 향해 스킬을 사용했다.

"각성!"

다행히 다들 정신을 차렸는지 브세슬라브가 선 숲의 앞뒤로 시동어가 울려 퍼졌다.

"작품명, 타이탄!"

"1분형, 거상 등장!"

쿠우우우우우!

브세슬라브의 앞과 뒤로 이재우의 작품과 김송근의 분신이 나타났다.

이재우가 불러낸 타이탄은 호프론과 스피어로 무장한 상태였고, 전신에 청동 빛의 갑옷을 걸치고 있었다.

김송근의 분신 역시도 본체와 마찬가지로 네피림 블레스트 플레이트를 착용하고 있었는데 그 크기가 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브세슬라브만큼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놈을 상대하기에는 충분한 정도였다.

"공격해!"

정대식이 외치자 짠 듯이 타이탄과 거대 분신이 동시에 브세슬라브를 박차고 들었다.

그러자 브세슬라브가 몸을 낮추며 전신에 힘을 주었다.

우드드드득!

"으으으으!"

허미래가 와이어를 유지하려 용쓰는 소리가 들렸으나 무리였나 보다.

파랗게 빛나던 마력 와이어가 파바방, 끊어져 버리며 브세슬라브가 순식간에 자유의 몸이 되었다.

브세슬라브는 곧장 앞쪽에서 치고 들어오는 이재우의 타이탄을 어깨로 들이받았다.

콰앙!

그리고는 뒤로 허리를 틀며 거대 분신의 턱주가리를 양날 도끼의 손잡이로 후려쳤다.

"커억!"

본체에까지 데미지가 닿았는지 김송근의 신음 소리가 들리는 순간, 타이탄이 방패인 호프론으로 브세슬라브의 머리통을 갈겼다.

쩌엉!

생명체를 때렸다고는 생각할 수 없을 만치 큰 소리가 울리며 브세슬라브의 머리가 휙 돌아갔다.

그러나 동시에 브세슬라브가 앞으로는 양날 도끼를 내찔렀고, 뒤로는 채찍을 휘둘렀다.

쫘아아아악!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요동친 채찍이 거대 분신을 후려쳐 그 다리를 휘감아 당겼다.

쿠당탕!

거대 분신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쓰러졌다.

그 틈을 타 브세슬라브가 타이탄과 무시무시한 공방을 벌였다.

콰광! 쾅! 쾅! 꽈르르릉!

무슨 번개가 치는 것처럼 브세슬라브의 양날 도끼와 타이탄의 호프론이 쉴 새 없이 부딪쳤다.

곧 타이탄이 스피어로 브세슬라브의 옆구리를 찌르려 들었으나, 놀랍게도 브세슬라브가 스피어를 옆구리와 팔 사이에 끼워 그대로 부러트리고 말았다.

우지직!

"으앗!"

이재우가 탄식의 소리를 내뱉었고, 브세슬라브의 이빨이 타이탄의 모가지를 콱 물었다.

타이탄은 목을 물리면서도 브세슬라브의 머리통을 호프론으로 연신 후려갈겼으나 놈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오래지 않아 '뿌드득!' 목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자 타이탄이 연기처럼 사라졌다.

그때, 몸을 일으킨 거대 분신이 브세슬라브의 등 뒤에서 뛰어들었다.

그리고 놈의 머리를 팔에 끼워 넣고 헤드록을 걸었다.

브세슬라브가 몸부림을 치며 양날 도끼로 거대 분신의 머리를 반으로 쪼개려고 들었으나.......

"공간 왜곡!"

서지원의 훼방으로 도끼날이 허공에서 일시에 사라졌다.

그 틈을 타 기철민과 김태희가 앞으로 뛰쳐나갔다.

"블랙홀!"

"천광 쇄도!"

번개 같은 속도로 두 사람이 양쪽으로 엇갈리며 브세슬라브의 가슴팍으로 뛰어들었다.

번-쩍!

섬광과도 같은 마력의 빛이 번뜩이자 브세슬라브의 가슴이 쩍, 하고 갈라졌다.

동시에 파츠츠츠 얼어붙어 얼음 조각이 튀어 올랐다.

파악!

얼어붙은 피가 후두둑 떨어져 내렸으나 브세슬라브의 양쪽에 내려앉은 기철민과 김태희는 낭패한 표정이었다.

상처가 얕았던 것이다.

두 사람의 공격은 브세슬라브의 가죽에 생채기를 내는 정도밖에는 되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이 브세슬라브의 성미를 돋우는 꼴이 되어, 브세슬라브가 사납게 울부짖으며 발을 굴렀다.

"쿠워어어어어!"

쾅! 쾅! 쾅!

브세슬라브가 거칠게 발을 구르자 땅이 들썩거리며 부대원들이 균형을 잡지 못하고 우르르 쓰러졌다.

분노한 브세슬라브는 자신의 옆에서 알짱거리는 기철민과 김태희를 짓밟으려 연거푸 발을 놀렸다.

기철민과 김태희는 그 공격을 피해 가며 공격을 계속해, 브세슬라브에게 자잘한 상처를 안겼다.

물론 그 정도 공격으로는 브세슬라브를 쓰러트리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브세슬라브의 방어력을 기철민과 김태희의 양공으로는 뚫지 못하는 것이다.

정대식은 부대원들에게 미리 지시를 내려 두었던 두 번째 작전을 실행했다.

"서지원! 제2안으로 간다!"

"알겠습니다!"

기철민과 김태희가 브세슬라브를 약 올리며 시간을 끄는 새, 서지원과 고덕화가 출격했다.

"공간 이동!"

쉬싯!

브세슬라브에게서 멀찍이 떨어져 있던 서지원이 감쪽같이 모습을 감추었다.

그러자 기철민과 김태희가 훌쩍 뛰어 브세슬라브의 곁에서 떨어졌다.

두 사람뿐만 아니라 정대식과 허미래, 김송근과 이재우도 황급히 브세슬라브에게서 떨어지기 위해 뒤돌아 달렸다.

오로지 고덕화만이 제자리에서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었다.

갑자기 사방으로 뿔뿔이 흩어지는 헌터들을 보고 브세슬라브가 채찍을 높이 치켜들었다.

촤아아아악!

그 채찍이 허공을 휘갈기자 가뜩이나 난도질된 숲이 다시금 우두두둑 잘려 나갔다.

정대식은 머리 바로 위에 번개가 치는 기분을 느끼며 황급히 제자리에 엎드렸다.

채찍이 일으키는 거센 바람에 숲 바닥에 깔려 있던 눈이 안개처럼 자욱하게 일어났다.

거기에 숨은 채로 정대식은 엎드려 있던 몸을 뒤집어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러자 거대한 브세슬라브의 바로 뒤로 공간 이동을 한 서지원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그의 리치 서클렛이 음울한 빛을 발했다.

"마력 흡입!"

쏴아아아아아아!

브세슬라브에게서 일어난 사력이 서지원에게로 흡수되자 서지원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얼마나 그 기운이 강대한지 놀랍게도 서지원의 온몸에 검은 털이 삐죽삐죽 솟아나기 시작했다.

예상치 못한 일에 서지원이 기겁을 하며 뒷걸음질을 쳤다.

"으헉!"

짐승처럼 털이 곤두선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비틀거리는 그를 김태희가 재빨리 낚아챘다.

그리고 그들을 쫓아 몸을 돌리는 브세슬라브를 고덕화의 천강벽수선이 후려쳤다.

"백년풍진!"

콰과과과과과과과과과!

실라이론의 가세로 한층 더 강력해진 분쇄의 바람이 브세슬라브를 휩쓸었다.

브세슬라브의 길고 시커먼 털이 어지럽게 날리며 푸확! 하고 붉은 안개가 주변으로 일었다.

고덕화의 일격을 받아 전신에 상처를 입은 것 같은데, 딱 거기까지였다.

백년풍진은 고덕화가 모든 마력을 다 쏟아부어야 하는 강력하고도 무시무시한 공격이었다.

보통 사람이나 몬스터라면 백년풍진을 맞는 순간 일시에 먼지가 되어 사라져 버렸을 것이다.

한데도 브세슬라브는 전신에서 피를 뿜어내고 있을지언정, 제자리에 멀쩡히 서 있었다.

치명타를 입히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고서, 고덕화의 얼굴이 창백하게 변했다.

'아무래도 안 되겠군. 세 번째 작전으로 가는 수밖에!'

정대식은 다시금 브세슬라브 쪽을 향해 달렸다.

그리고 엔트로피를 불러내 시동어를 외쳤다.

"구현!"

<변신.>

"강화!"

파아아아아앗!

엔트로피의 모습이 마력의 빛으로 감싸이며 부피가 커졌다.

빛이 사그라들었을 때 엔트로피는 철갑을 몇 겹이나 두르고 거대한 검을 들고 있는 형상이 되었다.

정대식은 엔트로피에게 손을 뻗으며 외쳤다.

"엔트로피, 날아!"

정대식의 팔 위로 엔트로피가 발을 디딘 채 웅크렸다.

정대식이 있는 힘껏 팔을 휘두르자 그 반동으로 엔트로피가 총알처럼 브세슬라브를 향해 날아갔다.

곧 놈의 심장을 노리고 엔트로피가 검을 찔러 들어갔다.

콰아악!

엔트로피가 든 검이 브세슬라브의 가슴 한복판을 정확히 찔렀다.

그러기가 무섭게 브세슬라브가 엔트로피를 양날 도끼로 후려쳤다.

퍼억!

엔트로피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러나 그 자리엔 이미 정대식이 자리해 있었다.

정대식은 주먹을 말아 쥐고 내찔렀다.

"강화 강력권!"

쿠아아아아앗!

정대식의 주먹이 엔트로피의 검이 가 박혔던 그 자리에 정확히 꽂혔다.

그러자 브세슬라브가 거대한 신음을 내뱉으며 비틀거렸다.

"크어............!"

그러나 쓰러지는가 싶던 브세슬라브는 금세 다시 자세를 가다듬었고, 파리채를 휘두르듯 양날 도끼를 휘둘러 정대식을 뿌리치려고 들었다.

"신속!"

공중에서 몸을 뒤집어 그 양날 도끼를 피한 정대식은 잠시 거기에 발을 디뎠다.

그리고 그것을 박차 뛰어오르며 다시 한 번 공격을 가했다.

"삼켜라!"

야마환이 일순 공간을 뒤흔들어 놓았다. 섬광도, 굉음도 없는 찰나의 공격이 브세슬라브를 강타하고 지나쳐 갔다.

"크워어어어어어어!"

정대식이 허공에서 떨어져 다시금 땅에 발을 디뎠을 때, 브세슬라브의 가슴팍에는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었다.

기철민과 김태희가 가죽을 뚫었고, 서지원과 고덕화가 합동으로 방어력을 약화시켜 놓은 상태에서 엔트로피와 정대식이 연이어 공격한 결과였다.

"됐어!"

이재우가 일이 다 끝났다고 생각했는지 쾌재를 불렀다.

가슴팍에 브세슬라브의 주먹만 한 구멍이 뚫렸으니 쓰러지리라고 생각하는 게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정대식은 잠자코 어금니를 깨물었다.

이 정도로 쓰러진다면 다행이지만, 이 정도로 쓰러질 몬스터였더라면 애초에 이 던전이 위험 등급으로 분류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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