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질 전사-170화 (170/297)

# 170

현질 전사

-7권 21화

엔트로피를 정찰 보낼 수도 있겠지만 눈보라가 심해서 살필 수 있는 게 거의 없었다.

"가까운 곳에 아무래도 울프헤딘이 있는 것 같다...... 한 마리가 아니고 두 마리야."

"피해 가는 편이 좋겠습니까?"

"그럼 울프헤딘의 영역을 온전히 지나쳐야 하는데 그건 내키지 않는군. 울프헤딘도 기본적으로는 무리 생활을 한다. 위어울프처럼 떼로 몰려다니지는 않아도 잘하면 암컷이나 새끼를 마주칠 수도 있으니 경계를 벗어나는 건 안 돼. 일단은 조금 더 전진해 보도록 하겠다."

허미래가 사소한 재주를 부려 위장막을 펜리르 부대원들의 머리 위로 덮었다.

눈보라가 치고 있으니 언뜻 봐서는 그들을 발견하지 못할 터였다.

여차하면 은신 스킬도 있으니까 정대식은 주의 확장에 정신을 집중한 채로 조심스레 부대원들을 이끌었다.

그러다가 잇새로 바람 소리를 내뱉으며 재빨리 명령을 내렸다.

"엎드려!"

다들 반사적으로 눈밭에 납작하게 엎드렸고 그들의 모습을 위장막이 가려 주었다.

곧 땅이 '쿵!' 하고 울리는 느낌이 들면서 별안간 눈보라가 멎었다.

정대식은 숨죽인 채 위장막을 살짝 걷어 냈다.

그리고 놀라운 광경을 목격했다.

'울프헤딘인가!'

그들 앞에 거대한 늑대 한 마리가 우뚝 서 있었다.

그것은 펜리르 부대에 등을 보이고 선 채였다.

거리가 매우 가까워 제아무리 위장막을 쓰고 있다 해도 한 번 뒤를 힐끗 보기만 하는 것만으로 그들을 발견할 수 있을 터였다.

혹은 소리, 냄새에 신경을 기울이기만 해도 충분했다.

하지만 그 울프헤딘은 제자리에서 꼼짝을 않고 있었다.

바람이 울프헤딘 쪽에서 불어오는데다가 눈발이 굵어져 시야가 어지러웠던 것이다.

게다가 놈은 전신의 털을 빳빳하게 곤두세운 채 전방을 뚫어져라 주시하고 있었다.

정대식은 처음엔 그 울프헤딘이 뭘 쳐다보고 있는지 몰랐다.

미간을 찌푸린 채 안광을 돋우고 나서야, 가까이 선 울프헤딘이 노려보는 곳에 선 또 다른 울프헤딘을 발견할 수가 있었다.

펜리르 부대 앞에 선 울프헤딘의 털이 새카만 반면, 멀리 선 울프헤딘은 털이 새하얘 알아보는 데 한참이 걸렸다.

'뭐지? 영역 싸움인가?'

정대식이 그쪽에 신경을 집중하고 있는데, 머리 위를 가리고 있는 위장막이 달달 떨렸다.

왜 이러나 싶어 뒤를 돌아보자 위장막 아래 몸을 숨긴 부대원들이 이를 악물고 있었다.

알고 보니 울프헤딘 두 마리가 귀에는 들리지 않을 정도로 나지막이 으르렁거리고 있었다.

그게 피어와 같은 효과를 발휘해 부대원들이 겁을 집어먹고 있었다.

곧 우뚝 선 채로 점점 귀를 눕히며 자세를 낮추던 검은 울프헤딘이 압박감을 참지 못한 듯 앞으로 뛰쳐나갔다.

그 발이 박찬 눈 더미가 펜리르 부대원들을 가린 위장막 위로 쏟아져 내렸다.

정대식은 황급히 시야를 가리는 위장막을 치워 버리고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러자 눈밭 저 너머에서 엎치락뒤치락 치열하게 싸우는 늑대 두 마리가 보였다.

서로의 목덜미를 노리고 으르렁거리던 울프헤딘들은 어느 순간엔 늑대 가죽을 뒤집어쓴 거인의 모습으로 변모했다가, 또 어느 순간엔 다시 늑대로 변신했다.

늑대 모습을 한 울프헤딘이 목을 노리고 덤벼들면 거인으로 변한 울프헤딘이 팔뚝으로 그 주둥이를 막아 내고는 다른 팔로 헤드록을 걸어 목을 졸랐다.

그러자 늑대 모습을 바꾸어 거인이 된 울프헤딘이 몸을 거꾸로 뒤집어 헤드록에서 벗어나 허공에서 다시 늑대로 변신해 상대의 목을 물었다.

기상천외하면서도 어마어마한 싸움이 한동안 이어졌다.

얼어붙는 피어가 눈보라를 꿰뚫고 쩌렁쩌렁하게 울렸으며 울프헤딘이 땅을 구를 때마다 눈 더미가 들썩이며 땅이 경련을 일으켰다.

그렇게 한참을 엎치락뒤치락한 끝에, '우두둑!' 하고 목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곧 검은 울프헤딘이 거인의 모습을 한 채 쓰러졌다.

늑대 모습을 한 하얀 울프헤딘이 입에 거인의 목을 문 채로 몇 번 고개를 흔들었다.

그러자 붉은 피가 하얀 설원에 사방팔방으로 튀며 피 보라를 일으켰다.

"크우우우우우."

곧 승리자가 된 하얀 울프헤딘이 물고 있던 거인의 모가지를 놓았다.

그리고 붉게 젖은 주둥이와 그만큼 붉게 번들거리는 눈을 하고 정확히 이쪽을 돌아보았다.

정대식은 제자리에서 박차고 일어나며 고함을 질렀다.

"온다!"

이미 펜리르 부대의 존재를 눈치채고 있던 것처럼, 하얀 울프헤딘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달려왔다.

달리면서 도중에 늑대 모습으로 변해, 공중에서 크게 도약해 곧장 펜리르 부대원들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크아아아앙!"

"마기장!"

정대식은 곧장 마기장을 넓게 펼쳤으나 울프헤딘이 더 빨랐다.

쩍 벌린 울프헤딘의 주둥이가 미처 피하지 못하고 섰던 허미래의 몸을 덥석 물었다.

"꺄아아아악!"

찢어지는 듯한 비명 소리가 울리고, 피가 솟구쳤다.

정대식은 눈이 뒤집어져 주먹을 날리며 소리쳤다.

"삼켜!"

그가 오른손에 끼고 있던 야마환이 번쩍, 빛을 뿜었다.

* * *

퍼엉!

굉음이 울리며 믿기지 못할 광경이 눈앞에 벌어졌다.

아니, 섬광을 뿜었다거나 굉음이 일었다거나 하는 표현은 적절치 않았다.

그저 어떤 충격 같은 게 일순 모든 감각 기관을 때리고 지나갔다.

그리고 그 찰나가 지나고 났을 때 보인 것은 등부터 시작해 몸에 커다란 구멍이 뚫린 울프헤딘의 모습이었다.

정확히는 거대한 입을 가진 무언가가 울프헤딘의 몸뚱이를 우악스럽게 깨물어 먹은 것 같았다.

허미래를 입에 물고 있던 울프헤딘은 고통에 겨워 주둥이를 벌렸고, 거기에서 허미래가 툭 떨어졌다.

그런 그녀에게로 김송근이 몸을 날리자 서지원이 공간 이동으로 두 사람을 한꺼번에 뒤쪽으로 이동시켰다.

전 같았으면 한 번에 둘을 옮기는 일은 무리였겠지만 마력량이 대폭 상승한데다가 리치 서클렛까지 끼고 있는 현재에는 문제가 없었다.

피를 철철 흘리며 기절한 허미래에게 고덕화와 김송근이 달라붙어 치료 포션을 있는 대로 쏟아부었다.

그러는 동안 정대식은 뱃속을 엄습하는 허기에 놀라서 휘청거렸다.

'으윽......! 이게 장한나가 경고했던 그 허기라는 거구나!'

단순한 배고픔으로는 설명될 수 없는 허기였다.

마치 몇 날 며칠을 오래 굶주린 사람처럼 배가 고파서 뱃가죽이 등에 달라붙는 기분이었다.

동시에 당이 떨어질 때처럼 온몸에 기운이 빠지고 손끝이 떨렸다.

그러나 그 허기에 정신을 팔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정대식은 휘청거리는 울프헤딘을 빙 둘러서 달려가며 소리쳤다.

"김태희, 기철민!"

파바바밧!

순식간에 정대식의 양옆으로 김태희와 기철민이 따라붙었다.

정대식은 엔트로피와 함께 그들의 머리 위로 강화를 뿌렸다.

곧 김태희가 새하얗게 얼어붙은 절구의 공이로 울프헤딘의 머리통을 후려쳤다.

꽈아앙!

"캐애앵!"

울프헤딘이 비명을 지르며 휘청거리자 연이어 기철민이 땅을 박차고 뛰어올라 검을 치켜들었다.

"천노참격!"

콰아아아아아!

빛의 검인 양 눈부시게 솟구쳐 나온 검기가 울프헤딘의 두툼한 모가지를 두 쪽으로 갈라놓았다.

주체를 잃어버린 몸뚱이가 바닥으로 쓰러지고, 울프헤딘의 머리통이 눈밭으로 떨어져 피를 뿌리며 굴렀다.

그러나 그게 끝이 아니었다.

울프헤딘의 머리통은 몸에서 분리된 채로도 살아 있었다.

그게 주둥이를 빠르게 움직여 엄청난 속도로 눈밭을 기어갔다.

놈이 향하는 곳에는 허미래와 김송근, 그리고 고덕화가 있었다.

정대식은 고함을 질렀다.

"막아!"

그러자 동료들 앞을 이재우가 가로막았다.

"작품명......! 해머를 든 거인!"

그리고 그런 그의 앞에 홀연히 거인이 나타났다.

엄청난 크기의 해머를 든 그 거인이 크게 팔을 휘둘러 해머로 울프헤딘의 머리통을 내리찍었다.

꾸와아아앙!

발이 들썩일 정도의 진동과 함께, 울프헤딘의 머리가 박살이 나 버렸다.

사방팔방으로 뇌수와 뼛조각, 그리고 피가 난무했다.

눈밭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만큼의 피바다가 펼쳐진 가운데, 꿈틀거리고 경련을 일으키던 울프헤딘의 몸뚱이도 움직임이 멎었다.

상황이 종료되었음을 알고 정대식은 곧장 허미래에게로 뛰어갔다.

한데 허미래를 치료하고 있어야 할 김송근과 고덕화가 도리어 그녀에게서 물러나고 있었다.

보아하니 고통과 공포에 넋을 놓은 허미래의 몸에서 마력이 뭉클뭉클 새 나오고 있었다.

그녀는 눈물을 흘리며 중얼거리고 있었다.

"아파...... 무서워...... 죽기 싫어......!"

푸확!

폭발하듯 검은 나비 떼가 그녀의 몸에서 튀어나와 사방을 뒤덮었다.

순식간에 시야가 어두워지고 정대식은 소리를 쳤다.

"허미래!"

이대로 마력을 몽땅 방출해 버리면 돌이킬 수 없는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

정대식은 시선을 가로막는 검은 나비 떼를 쫓아냈다.

그리고 각성이든 치료든, 무슨 방법이라도 써 보려 하던 차에, 별안간 허미래가 뿜어낸 마력이 어딘가로 죄다 빨려 들어갔다.

그리고 검은 구름처럼 뭉게뭉게 일어나던 마력이 별안간 환한 빛으로 변했다.

파창!

'메이크 오버인가!'

눈을 찌르는 섬광에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가, 간신히 시야가 원래대로 돌아왔을 때는 놀라운 광경이 보였다.

허미래가 마치 천사같이 눈부신 광휘를 몸에 두른 채로 서 있었다.

허미래가 갖고 있는 네거티브의 디버프 능력이 전혀 반대되는 속성으로 변모한 것이었다.

마력에 둘러싸일 때면 검은 나방처럼 보이던 징그러운 외양도 빛의 날개를 달고 있어 신성하게 보였다.

파아아아앗!

그녀는 이마에서 더듬이처럼 길게 솟구친 빛의 촉수로 어깨와 가슴팍을 거쳐 옆구리와 배를 뚫은 상처를 훑었다.

그러자 놀랍게도 감쪽같이 그 상처가 아물어 버렸다.

정대식은 놀라서 눈을 크게 떴다.

디버프이던 그녀의 능력이 버프로 바뀌며 버프의 궁극적인 형태라고 할 수 있는 힐로 바뀐 것이다.

타고난 능력의 계열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기본적으로 힐러들은 어느 정도 버프의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상처를 치료하는 것 자체가 신체의 재생 기능을 가속화, 또는 활성화시키는 것이다 보니 그 강도를 조절하여 헌터들의 움직임을 빠르게 한다거나, 힘을 강하게 만들어 준다던가 하는 게 가능한 것이다.

그렇다 보니 허미래의 디버프 능력이 버프로 바뀌며 버퍼를 넘어 힐러로 변모한 것이다.

허미래는 방금 전까지만 해도 아프고 무섭다며 울부짖었다고는 생각할 수 없을 만치 평온하고 담대한 표정으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곧 이마에 돋아난 필러가 꼿꼿이 선 채로 파르르 흔들리자 그녀가 발산하는 마력의 입자가 반딧불처럼 폴폴 날아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러자 정대식을 괴롭히고 있던 극심한 허기가 완화되는 느낌이 났다.

굶주림에서 해방되었을 때의 포만감 비슷한 기분이 찾아들어 정대식은 침착을 되찾았다.

서서히 내뿜던 마력을 거두어들인 허미래는 평소의 모습대로 돌아왔다.

그녀는 이루 말할 수 없이 신기하다는 듯, 양 손목에 차고 있는 브레이슬릿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감격한 표정으로 정대식을 향해 말했다.

"보, 보셨어요? 제 능력......."

"그래. 굉장했다. 인상적이었어."

"칙칙하기만 한 능력이었는데...... 제게 치유 능력이 생겼어요. 마치 힐러처럼 힐을 쓸 수 있게 되었다고요!"

"잘됐군. 우리 팀에는 전문 힐러가 없으니까. 네 능력이 크게 도움이 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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