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질 전사-165화 (165/297)

# 165

현질 전사

-7권 16화

"광필두가 그걸 가만 놔두겠습니까?"

"사실 조디악 공격대 덩치가 크잖아요? 워낙에 공격대원들 숫자도 많고, 벌이는 사업도 많아서 제아무리 광필두 씨라고 하더라도 혼자서 그걸 막아 내기에는 무리가 있죠. 그만큼 광필두 씨를 편들어 주는 무리가 있어야 하는데 아시다시피 그런 쪽은 발달해 있지를 않는 사람이라서요."

"사회성이 없어 보이기는 했죠."

"어쨌든 자금 문제도 얽혀 있고 하니, 여러 가지가 복잡한 모양이에요. 하지만 조만간 무슨 일이 일어날 것만은 확실해요."

그렇게 떠들던 한미란은 곧 술 한 잔으로 목을 축이고 화제를 돌렸다.

"그나저나, 그 마기전이라는 건 대체 뭐예요?"

"그건 무구를 말하는 겁니다. 제가 우연찮게 그 무구의 팔 한 짝을 갖게 되었는데, 알고 보니 전신을 커버하는 무구라고 하더군요. 장한나 씨가 그 무구의 다른 파츠를 갖고 있어서, 제가 그걸 받게 된 겁니다."

"흐응, 그렇지만 각성자도 아닌 장한나 씨가 그런 무구를 갖고 있을 리가 없잖아요? 정대식 씨 말은, 국가 기물 금고에 있다는 거죠?"

애초에 국가 기물 금고에 출입할 당시, 비밀 유지 서약에 서명했으므로 정대식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가 "글쎄요"라고 모호하게 대답하자 한미란은 왜 그러는지 다 이해한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였다.

"정부에서 국가 기물 금고를 갖고 있다는 것은 알 만한 사람은 다 짐작할 수 있는 사실이죠. 비밀 유지 서약을 강요하는 게 이상한 노릇이에요. 아무튼, 제 제안을 걷어차고 그 무구의 전체도 아닌, 겨우 파츠 하나를 택할 정도라면 굉장한 성능을 가진 것인가 보죠? 최소한 SSS급...... 이상? 마스터? 레전드급인가요?"

한미란이 눈을 반짝거리며 묻는데 곧이곧대로 말을 하기가 부담스러웠다.

방금 들었다시피, 한미란은 모르는 게 없는 소식통이었다.

그런 그녀에게 마기전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간 어떤 식으로 말이 흘러 나갈지 몰랐다.

그래서 정대식은 적당한 대답을 신중하게 골라 했다.

"그렇게까지 대단한 물건은 아닙니다. 그리고 제가 한국에 머물기로 한 것도 단순히 그 이유 때문만은 아니고요."

"에이, 뭔데요. 말 좀 해 줘 봐요. 응?"

한미란은 정대식의 옆에 바짝 다가앉아 그의 팔을 껴안았다.

그러자 팔꿈치가 그녀의 푹신한 가슴팍에 파묻혔다.

한미란은 그야말로 쭉쭉빵빵이라서 팔다리는 길고 호리호리한데 가슴과 엉덩이는 비너스를 연상시킬 만큼 풍만했다.

정대식은 한미란의 애교 공세에 넘어가는 대신 태연하게 술잔을 기울였다.

"한미란 씨가 궁금해할 만한 이야기가 아니에요. 성능만 놓고 보면 B급 수준이고, 일부만을 갖고 있어서 사실상 제 기능을 못하고 있는 상태죠. 그걸 다 모으면 또 모를까......."

"흐음, 알겠어요. 혹시 그와 비슷한 물건이 있으면 정대식 씨에게 알려 드릴게요. 제가 이래 보여도 이것저것 아는 게 많아서요. 아는 사람도 많고. 혹시 만나고 싶은 연예인 있으면 말씀해 주세요. 누구든지 다리 놔 드릴 테니까. 저희 오빠가 연예 기획사를 운영하고 있거든요."

"그래요?"

"네, 영은하 씨가 우리 오빠 회사 소속이에요. 영은하 씨 알고 있죠? 최근에 모 스포츠 음료 CF 촬영한 아이돌 출신 배우 말이에요. 요샌 최희 씨 아성을 위협할 정도로 잘나가고 있는데. 그분이 글쎄 정대식 씨 팬이라고 하잖아요?"

"저요?"

"예, 정대식 씨가 지금처럼 안 유명할 때...... 헌터가 된 지 얼마 안 됐을 때 두 번째 몬스터 브레이크가 터졌잖아요. 그때 정대식 씨가 버스에서 여러 사람을 구했죠? 개중에 영은하 씨의 할머니가 계셨어요."

"아! 누구인지 알 것 같네요."

그 버스 안에서 할머니라고 하면 한 분밖에는 없었다.

정대식이 이제는 가물가물해진 할머니의 얼굴을 떠올리자 한미란이 씩 웃었다.

"그 후로 줄곧 정대식 씨의 행보를 주목해 온 모양이더라고요. 지금은 너무 확 떠 버려서...... 공공연히 정대식 씨를 응원하고 있다는 사실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지만, 아무튼 정대식 씨 팬인 것만큼은 확실해요."

"그거 감사한 일이네요."

톱스타가 자신과 인연이 있었다니 신기한 일이었지만 정대식은 연예계에 별 관심이 없었다.

그에게는 아직까지 최희가 대한민국에서 최고로 잘나가는 유명 인사였으므로 톱스타라고는 해도 얼굴만 어렴풋이 알고 있는 정도였다.

그래서 반응을 하고 말고 할 것도 없었는데, 한미란이 정대식의 어깨에 기대며 말했다.

"후후, 정대식 씨...... 참 매력 있는 남자예요. 그거 알아요?"

정대식은 능청을 떨었다.

"올인원의 능력 중에 매력도 있나 보죠."

한미란은 그윽한 눈으로 정대식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저번에도 그렇고 이번에도 그렇고, 제 제안을 두 번이나 거절했으니 오늘은 거절하지 않겠죠?"

정대식은 차마 거절한다고 말할 수가 없었다.

거절할 이유도 없어서, 술값을 계산하고 앞장서 가는 한미란을 따라 자리를 옮겼다.

* * *

엔트로피의 짐작은 정확히 들어맞았다.

며칠 지나지 않아 랭킹 순위가 확 올랐던 것이다.

정대식은 그 사실을 윤현민의 연락을 통해 알았다.

녀석이 온갖 호들갑을 떨며 장문의 메시지를 보내 왔던 것이다.

-형, 진짜 완전 최고! 오늘 랭킹 순위 198위! 파워 랭킹도 57위까지 올라갔어요! 이대로라면 100위권 진입도 어렵지 않겠어요. 올인원이 되었다더니 역시 뭐가 다르긴 다르네요! 진심으로 존경합니다!

정대식은 피식 웃고 메시지를 닫았다.

그러자 사무실에서 함께 대기 중이던 펜리르 부대원들 중 이재우가 말했다.

"애인이라도 생기셨습니까? 뭘 혼자 웃고 계세요?"

정대식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 윤현민이야. 기억나지? 그 중3짜리 꼬맹이 녀석."

"아! 그 녀석 말이죠? 짜식이, 나한테는 시험 기간이라고 바쁘다더니만. 순 거짓말이었네!"

이재우는 그날 윤현민과 만난 이후 그 녀석과 꾸준히 연락을 주고받는 모양이었다.

이재우가 좀 철딱서니 없는 데가 있고 윤현민이 헌터들에 대해서는 빠삭하다 보니 이야기가 잘 통할 것 같기는 했다.

정대식은 휴대폰을 갈무리해 넣으며 "질투하지 마라"라고 농담을 했다.

그러자 이재우가 픽픽 웃으며 "코흘리개한테 인기 많아 좋겠습니다"라고 받아쳤다.

그 대화를 잠자코 듣고 있던 서지원이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고 말했다.

"코흘리개한테만 인기 있는 게 아닌 것 같던데요?"

"그게 무슨 소리야?"

이재우의 반문에 서지원은 원망 섞인 눈으로 정대식을 노려보며 중얼거렸다.

"최근에 한미란 씨하고 만나셨다면서요? 두 분이 데이트하셨다던데. 사실입니까?"

정대식은 뜻밖의 이야기에 질문을 던졌다.

"한미란과 아는 사이였나?"

서지원은 한숨을 푹 쉬었다.

"좀 잘나간다 하는 헌터들은 죄다 그분하고 알고 있을 걸요? 저도 예전에 스카우트 제의를 한 번 받은 적이 있어요."

이재우가 그 말을 듣고 킬킬거렸다.

"저도 받은 적 있습니다. 아서라, 그 여자 완전 헌터 킬러야! 서지원 너같이 순진한 놈한테는 안 어울린다!"

"헌터 킬러라니! 되는 대로 말하지 말라고!"

"아냐, 그거 사실이지 않냐? 야, 김송근. 뭐라고 말 좀 해 봐."

휴대폰 게임에 골몰해 있던 김송근은 귀찮은 듯이 발로 툭툭 치는 이재우의 다리를 밀어냈다.

그러자 김송근 대신에 고덕화가 대신 말했다.

"헌터 킬러인지는 모르겠지만, 수완이 대단한 여자인 것은 확실합니다. 공대장님에게도 몇 번이나 접근했었다고 하더군요."

강영후야 워낙에 난 인물이니까 스카우터라면 누구나 침 흘릴 만도 했다.

게다가 그만하면 얼굴도 깔끔하니 잘생겼고 체격도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하니 한미란이 환장하고 덤볐다 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러자 잠자코 듣고 있던 김태희가 한마디를 했다.

"누군지 알겠네. 남자 헌터들만 찾아다니며 해외 이민 알선하는 그 여자 말이지?"

그 말에 이재우가 웃음을 흘렸다.

"해외 이민 알선이라니까 되게 이상하네."

김태희가 뾰족하게 대꾸했다.

"사실이지, 뭐. 국내 헌터들을 해외로 빼 가는 일을 하고 있잖아."

그러자 잠자코 앉아서 검을 닦고 있던 기철민이 한마디를 했다.

"엄밀히 말해서 헌터들을 데려가는 건 그 여자가 아니고 강대국이지. 듣자하니 제의하는 조건이 어마어마하다고 하던데. 누구나 혹할 만한 정도라 실제로 많이들 건너간다고 하더라고."

기철민이 하는 소리를 듣고 이재우가 들썩거렸다.

"왜, 부럽냐? 넌 그 여자 못 만나 봤지? 네 능력이라 봤자 별 볼 일 없으니까 스카우트 제의 같은 건......."

기철민은 대답 대신 검집을 들어 올리는 척하며 이재우를 후려쳤다.

이재우가 "악!" 하고 소리를 지르자 싸늘한 웃음을 지으며 사과했다.

"아, 미안."

"너, 이씨......! 너, 일부러 그런 거지?"

"그럼, 실수로 그랬을까 봐?"

이재우과 기철민은 또 시끄럽게 투닥거리기 시작했다.

주로 기철민이 빈정거리고 이재우가 성을 내는 거였지만 어쨌든 시끄러웠다.

그러던 중에, 뭉클뭉클 풍겨 오는 불길한 기운을 느끼고 둘은 싸움질을 멈췄다.

그러더니 걱정스런 눈치로 구석 자리에 앉아 있던 허미래를 쳐다보았고, 한 마리, 두 마리...... 검은 나비를 피워 올리던 허미래가 울먹이며 중얼거렸다.

"부대장님, 한미란 씨랑 진짜로 데이트하셨어요?"

엉뚱하게 화살이 자신에게 날아오자 정대식은 저도 모르게 변명하듯 대답했다.

"어? 데이트는 아니고...... 그냥 만나서 밥 한 끼 먹었지."

"왜 그런 여자랑 밥을 드신 거죠?"

"일 문제로 만났을 뿐이야."

"스카우터랑 일 문제로 만났다고요?"

정대식의 대답에 놀란 건 이재우였다.

뿐만 아니라 다른 부대원들까지 모조리 정대식을 바라보았다.

정대식은 황급히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스카우트 제안을 거절하려고 만난 거야. 설령, 내가 다른 곳으로 옮길 생각이었다 하더라도 다 같이 간다. 그러니 쓸데없는 생각은 하지 마라."

부대원들은 곧 안심하는 기색을 드러냈으나 허미래는 아니었다.

그녀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로 말했다.

"정말이에요? 그 여자랑 아무 일도 없었죠? 밥만 먹고 그냥 헤어진 거죠?"

아니라고 딱 잡아떼야 하는데, 그럼 거짓말이 되는 관계로 정대식은 머뭇거렸다.

그러자 허미래가 당장에 "으흑!" 하고 울음을 터트렸다.

"으아아앙!"

푸확!

검은 나비 떼가 확 날아오르며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정대식이 그것들을 손으로 헤집고 있으려니 김송근이 허미래를 필사적으로 달랬다.

기철민도 정대식을 보고 윽박 아닌 윽박을 질렀다.

"아니잖아요! 그냥 밥만 먹고 헤어지신 거 맞죠? 그렇다고 말해요!"

"어, 응. 그래, 밥만 먹고 헤어졌어."

김송근이 어르고 달래어 허미래는 간신히 울음을 그쳤다.

그녀는 훌쩍거리면서 "부대장님은...... 우리 모두의 부대장님이어야 해요" 하고 고집을 피웠다.

그러는 모습을 보아하니 애인이라도 만들었다간 큰 사달이 날 것 같았다.

그때 마침 사무실로 전갈이 날아들었다.

다름 아닌 강영후의 호출이었다.

"공대장께서 사무실로 올라오라는군. 다 같이 가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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