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0
현질 전사
-7권 11화
"그러니까 SSS급이죠. 이 슈트는 스스로 마력을 호흡해요."
"마력을 호흡한다니, 그게 무슨 뜻입니까?"
"주위에 자연적으로 흩어져 있는 마력을 끌어들인다는 말이에요. 알고 계시겠지만, 드래곤들은 마력에 구애를 받지 않는 존재죠. 그들은 인간이나 보통의 몬스터들처럼 체내의 마력을 이용하는 게 아니라, 자연의 마력을 자유자재로 쓸 수가 있어요.
피부로 마력을 호흡한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그렇기에 블랙 드래곤 스킨으로 만들어진 무구는 마력을 끌어모으는 성질이 있어요. 소진된 마력량을 급속하게 재충전해 주지는 못해도, 마력량을 보다 빠르게 회복시켜 주는 기능이 있죠."
"그렇군요."
실로 엄청난 기능의 무구인지라, 정대식은 다른 아이템을 구경하고 싶다는 생각을 깡그리 잊어버리고 말았다.
연신 블랙 드래곤 스킨 아머를 쓰다듬으며 감탄을 하기에도 바빴다.
그러자 장한나가 계속해서 말을 했다.
"단 한 가지, 이 무구의 단점이라면 다른 종류의 드래곤을 만나면 위험하다는 거예요."
"그래요?"
"네, 특히 블랙 드래곤은 흉포하면서도 강대한 존재라 다른 드래곤에게도 위협이 된다고 알려져 있어요. 그래서 그런지 유난히 블랙 드래곤의 부산물로 만들어진 아이템을 착용하고 있으면 드래곤들의 적의를 산다고 하더라고요."
"같은 블랙 드래곤을 만나면 어떻게 됩니까?"
"음, 블랙 드래곤 자체가 희귀해서 그런 것까지는 알려져 있지는 않아요. 하지만 둘 중에 하나가 아니겠어요? 적의를 사거나, 호의를 사거나. 뭐, 그 정도는 충분히 감수할 만한 물건이긴 하죠. 각종 신체 상태를 활성화시키고 신체를 보호하는 기능은 당연한 거고......."
장한나는 그 후로도 블랙 드래곤 스킨 아머에 대한 온갖 말을 늘어놓았다.
대부분이 미사여구를 첨가한 찬양에 가까운 칭찬이었다.
아마도 정대식이 블랙 드래곤 스킨 아머에 감탄한 나머지 다른 것을 생각지 못하게 하려는 수작인 듯했다.
하지만 정대식이 누구냐?
그는 방금 전에 자신이 무엇을 뒤로하고 왔는지 잘 알고 있었다.
블랙 드래곤 스킨 아머라니, SSS급 아이템인 만큼 엄청나게 대단하기는 하지만, 어차피 정대식의 소유도 아니고 팔아 치울 수도 없으니, 지금 정대식에게 가장 간절한 금전 문제에는 크게 도움이 안 됐다.
정대식은 블랙 드래곤 스킨 아머를 착용한 채로 지나가는 말처럼 말했다.
"그럼 방어구는 됐고, 다음은 무기를 좀 봐야겠습니다."
정대식이 하는 말에 장한나는 순간 기가 막힌다는 표정을 했다.
그건 우두커니 서 있던 담당자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세상에 둘도 없이 뻔뻔한 인간을 보듯이 쳐다보았으나, 정대식은 개의치 않고 말했다.
"설마 방어구 하나로 퉁칠 생각은 아니었겠죠? 방어구는 어디까지나 방어구니까, 당연히 무기도 필요합니다. 그래서 저번에도 배틀 슈트와 너클 글러브를 같이 가져갔잖아요. 이번에도 그래야죠. 물론, 저번에 가져갔던 아이템은 반납할 생각입니다. AAA급 아이템 대신 SSS급을 가져가는 셈이니까요."
얼렁뚱땅 SSS급 아이템을 하나 더 내놓아야 한다는 식으로 말하는 정대식을 보고 장한나는 입술을 뻐끔거렸다.
그러나 오늘만큼은 그녀가 약자의 입장일 수밖에 없었으므로, 그녀는 금세 입씨름을 포기하고 말했다.
"좋아요. 그럼 너클 글러브와 같이 근거리 타격용 무기면 되는 건가요?"
"예, 주먹에 직접 착용하는 식이면 좋겠습니다만. 이왕이면 이 블랙 드래곤 스킨 아머와 궁합이 잘 맞는 것으로요."
장한나는 다시 목록을 꺼내 넘겨보다가, 문득 생각났다는 듯 옆에 선 담당자를 돌아보았다.
"여기 뭐가 있는지는 관리자인 당신이 제일 잘 알 거 아니에요? 정대식 씨의 요구 조건을 만족시키는 아이템이 있나요?"
그는 미간을 찡그리고 말했다.
"비슷한 게 있기는 합니다만......."
"그런데요?"
"SSS급이 아닙니다. 그건 M급 아이템이라."
M급 아이템이라는 말에 눈이 번쩍 떠졌다.
정대식은 너스레를 떨며 말했다.
"M급 아이템이라면 저야 더 좋죠."
"앗, 잠깐만요! SSS급 아이템과 M급 아이템은 이야기가 달라요! 집행자들조차 M급 아이템은 국가 기물 금고에서 반출할 수 없어요! 최희가 가져간 호라갈레스조차 SSS급이라고요!"
"그렇지만 어차피 제게 내주기로 한 마기전 역시도 M급 아닙니까? 그런데 하나 더 내준다고 무슨 차이가 있다고요?"
"하지만 그건 겨우 한 파츠일 뿐이잖아요!"
"어라, 그럼 한미란 씨가 한 말이 옳다는 뜻인가요?"
한미란이 겨우 파츠 하나로 정대식을 잡아 두려는 것이냐고 한 말을 상기하고 장한나는 입술을 깨문 채로 얼굴이 빨개졌다.
그러자 줄곧 과묵하게 있던 담당자가 나서서 한마디를 했다.
"이미 M급 무구를 갖고 있다니 잘 알겠군요. M급 무구는 아무나 쓸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거기에 내재된 파괴력은 둘째치고서라도...... 경우에 따라 사용자를 희생시키기까지 하는 성능의 무구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걸 하나도 아니고, 두 개씩 쓰겠다고요? 당신이 과연 그럴 재주가 있는 사람입니까?"
정대식은 씩 웃었다.
"방금 들으신 것 같은데요? 제가 최초의 올인원이라고. 제가 그럴 재주가 없다면 누구에게 그 재주가 있다는 말입니까?"
담당자는 항변할 말을 찾지 못했는지 턱에 주름이 가도록 입을 꾹 다물었다.
정대식은 굳이 장한나나 그에게 반감을 사고 싶은 마음이 없었기에, 조금은 겸손한 태도를 보이며 말했다.
"당연히 제아무리 저라고 하더라도 M급의 무구를 몇 개씩 다루기는 힘들겠지요. 제게도 벅찬 일이니 SSS급 무구 중에서 제가 원하는 성능의 무기가 있다면 그걸 가지고 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M급 무기 중에 있다 하니 선택의 여지가 없지 않습니까?"
물론, 다분히 계산된 발언이었다.
정대식은 이미 담당자가 하는 말에서 SSS급 무기 중에서는 너클 종류가 없다는 사실을 간파했다.
그랬다면 애초에 M급 무기에 대한 말도 꺼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자 장한나가 한숨을 폭 내쉬며 말했다.
"어쩔 수 없죠. 이렇게라도 해야지 당신을 잡아 둘 수 있을 것 같으니까요."
담당자는 이미 상부에서 국가 기물 금고에 있는 어떤 물건이든지 간에, 정대식에게 내주라는 지시가 내려왔음을 짐작하고 잠자코 다른 상자를 들고 왔다.
그건 블랙 드래곤 스킨 아머가 들어 있던 것보다는 훨씬 작았다.
보통 너클이나 글러브가 들어갈 만한 크기도 아니었다.
기껏해야 반지나 귀고리 같은 게 들어가려나?
누가 봐도 반지 케이스처럼 보이는 조그만 상자를 들고 담당자는 마찬가지로 봉인을 풀었다.
예상대로, 안에 담겨 있는 것은 반지였다.
남자가 낄 법한 볼드한 디자인에 다소 으스스해 보이는 기운을 품고 있는, 오래되어 보이는 아이템이었다.
담당자는 그것을 상자째로 정대식에게 건네고 말했다.
"이것은 야마환이라는 것입니다."
"야마환?"
"출처가 불분명한 아이템이기에 무엇이, 어떻게 깃들어 있는지는 정확하게 알려져 있지는 않습니다. 그저 성능을 보아 아귀, 식신, 혹은 대식마 등이 깃들어 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잠깐만요, 저는 주먹을 쓰기에 용이한 무기를 보여 달라고 했습니다만......."
"음, 말로 하는 것보다는 보여 드리는 게 더 빠르겠군요. 단, 주의하십시오. 부작용이 있으니까."
담당자는 부작용이 뭔지 말도 안 하고 그 반지를 껴 보라 말했다.
뭐, 경고를 않는 것으로 봐선 죽기야 하겠냐 싶어서 정대식은 그 반지를 껴 보았다.
그러자 담당자가 마법으로 허공에 무언가를 불러내었다.
파드드득!
그는 마치 마술사처럼 희게 빛나는 새 한 마리를 만들어 냈다.
그리고 반지를 낀 오른손으로 한번 공격해 보라고 턱짓했다.
정대식은 사양 않고 주먹을 내질렀다.
파앗!
그러고 나자 그 새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정대식이 어리둥절해하고 있으니 담당자가 흘러내린 안경을 추어올리며 말했다.
"그런 겁니다."
"아니...... 하나도 모르겠는데요?"
보기에 갑갑했는지 결국 장한나가 끼어들어 말했다.
"그 반지는 닿는 모든 것을 삼켜 버려요."
"삼킨다고요?"
"네, 반지를 낀 손으로 주먹을 내지르면 거기에 깃든 무언가가 주먹에 닿는 것을 먹어 버린다는 거지요. 정확히는 사라지게 한다고 해야 할까? 이건 저도 무어라 말로 설명하기가 힘드네요. 어쨌든 그 공격력만큼은 보통의 무기와는 비교가 안 돼요. 사용자가 쓰기에 따라서 원거리 공격도 가능하니까요. 아마 직접 사냥을 나가 사용해 보면 무슨 말인지 이해를 할 거예요."
"그럼 부작용이라는 건 뭡니까?"
"M급 아이템이니만큼...... 엄청난 성능을 자랑하는 대신에 감수해야 할 부분이 있죠. 그건 바로 허기예요."
"허기요?"
다소 황당한 말에 정대식이 반문을 던지자 장한나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네, 그게 그 반지에 야마환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예요. 사용을 하면 할수록 배가 엄청나게 고프거든요."
"고작 배고픈 정도가 부작용이라니......."
"어머, 정대식 씨는 굶어 본 적 없어요? 그냥 배가 고픈 게 아니에요. 진짜로 극심한 허기가 찾아들어요. 굶주리는 것과 마찬가지죠."
굶는 것이라면 정대식도 일가견이 있었다.
그가 어릴 적 보육원을 전전할 때는 툭하면 끼니를 챙기지 못해 굶곤 했었으니까 말이다.
막 보육원을 나와 자립할 때는 돈이 없어서 사흘 동안 밀가루 죽만 먹고산 적도 있었다.
그때의 고통을 떠올리자 어렴풋하게나마 그 부작용이란 게 대충 이해는 갔다.
"부작용을 무시하고 계속 사용하면 기아와 비슷한 상태가 돼요. 살이 빠지고 몸이 마르면서 몹시 앙상해지죠. 잘못하다가는 아사를 할 수도 있어요. 야마환을 사용하면 할수록, 그러니까 무언가를 먹이면 먹일수록 그 증상이 심해지니 아귀 반지라는 표현이 딱 걸맞지요."
"부작용을 벗어나려면 어떡해야 하죠?"
"간단해요. 먹으면 돼요. 단, 엄청나게 먹어야겠지만요. 야마환을 사용하면서 소실한 칼로리를 채울 만큼 먹어 줘야 해요."
"그럼 식비가......."
정대식은 아연하게 중얼거렸다.
그리고 불만스레 야마환을 내려다보았다.
블랙 드래곤 스킨 아머는 마음에 꼭 들었지만 이건 부작용이 만만찮을 것 같아서 크게 내키지가 않았다.
그러나 M급 무기라고 하니 이걸 포기하고 다른 걸 택하기에도 애매했다.
정대식이 야마환 말고 다른 것을 보여 달라고 하면, 장한나는 대번 여기에는 적당한 물건이 없다며 SS급 이하에서 고르라고 말을 할 것이다.
'공격력 하나는 확실하다고 그랬으니 어쩔 수 없지. 일단 가져가 보자.'
정대식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좋습니다. 대여할 무구는 이거 두 개로 하지요. 그럼...... 마기전의 다른 파츠라는 것을 좀 보여 주시죠."
* * *
정대식이 마지막으로 건네받은 상자에 든 것은 마기전의 다른 부분이었다.
최선에게 받은 것이 왼쪽 완갑, 즉 레프트 뱀브레이스라면, 국가 기물 금고에 들어 있던 것은 오른쪽 각갑, 라이트 퀴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