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6
현질 전사
-7권 7화
놀라서 묻는 그들을 보고 정대식은 짐짓 태연하게 대꾸했다.
"너희들이 훈련할 동안 나는 놀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겠지."
그렇게 대답하는 정대식을 향해 김태희가 척척 걸어왔다.
그녀는 정대식에게 악수를 청하듯 손을 내밀었고, 정대식이 그 손을 맞잡자 손을 확 당기며 고개 숙여 말했다.
"올인원이 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나와 한 약속을 잊은 건 아니겠지?"
일순 최희로 돌아간 그녀를 보고 정대식은 짧게 말했다.
"그건 불가능하다고 했을 텐데."
그녀를 더 강하게 만들어 주는 것은 가능해졌지만 올인원으로 만들어 주는 것은 불가능하다.
상점을 레벨 6까지 업그레이드했어도 마찬가지였다.
김태희는 실망하는 기색을 드러내지는 않았다.
그녀는 붙잡은 손을 놔주고 말했다.
"그나저나, 엔트로피라는 그 서번트의 운용이 인상적이로군요."
엔트로피의 강화 강력권과 연이어 강화 강력권을 먹였기에 아스모데우스를 단번에 처치하는 것이 가능했다.
김태희는 그 활약이 인상적이었다고 평했으나 진짜 인상적이었던 것은 아스모데우스의 환영 속에서 보았던 모습이었다.
'레벨 100의 스킬을 적용시킨 엔트로피는 그런 식으로 변화하는 것인가?'
짧은 의문 속에서 엔트로피의 대답이 머릿속으로 들려왔다.
<실제로 그런 형태가 되리라고 장담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실제가 아닌, 정대식 님의 잠재의식에서 끌어낸 환영이었으니까요. 많은 것이 왜곡되어 있었습니다.>
엔트로피의 말을 듣고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랬다.
병기화된 엔트로피는 고작 한 마리의 몬스터를 상대하기에는 지나치게 거대했다.
그 마력포도 마찬가지다.
진짜로 그런 걸 쐈다가는 일대가 죄다 날아가 버렸을 테다.
실제로 엔트로피를 그 정도까지 성장시킬 수 있다면 보다 효율적인 형태로 만들어야 할 것이다.
무심코 그렇게 생각한 정대식은 실제로 엔트로피를 최종 병기화 시키는 일이 불가능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돈만 있으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지. 그래, 환영을 통해 이미 봤잖아?'
엔트로피뿐만이 아니었다.
만약 구현과 변화, 강화 등 엔트로피를 병기의 모습으로 만들어 낼 수 있는 스킬의 조합을 부대원들에게도 쓸 수 있다면, 모두의 전력이 대폭 올라갈 터였다.
'부대원들 모두에게 내 마력으로 구현화한 무구를 적용시킨다면? 전원이 엔트로피처럼 싸우게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엔트로피처럼 즉각 내 의식에 반응해 움직일 수야 없겠지만, 엔트로피와는 달리 스스로의 판단 속에 싸울 수 있고 각자의 특기를 갖고 있으니까 엔트로피보다 못하다고 할 수는 없겠지.'
그러자 앞으로 정대식이 만들어 갈 공격대의 모습이 구체화되었다.
'그래. 내 공격대는 나의 마력과 스킬로 만들어진 공격대가 될 것이다. 물론 그렇게 하려면 지금 수준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마력과 스킬이 필요하다. 내가 가진 능력을 대폭 업그레이드할 필요가 있어. 그러기 위해서 필요한 건...... 당연히 돈이겠지.'
오늘 정대식은 잔액 부족으로 각성 스킬을 업그레이드하지 못했다.
그래서 소강두를 힘으로 때려서 정신을 차리게 하는 수밖에는 없었다.
이와 같은 상황은 언제든지 다시금 발생할 수 있는 일이었다.
만약 부대원 전원의 목숨이 경각에 달해 있는 상태에서 믿을 것은 현질뿐이라면?
무엇보다 돈이 있어야 했다.
'지금과 같은 사냥 방법으로는 돈을 빠르게 벌 수 없어. 상태 포인트를 구입하지 않는 방향으로 스킬을 운용해 강해진다고 하더라도 내가 현질을 하는 속도를 따라잡는 것은 무리다. 돈을 벌 만한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해.'
정대식은 또다시 그의 발목을 잡는 돈에 대한 염려는 일단 접어 둔 채 베이스캠프와의 통신을 시도했다.
아스모데우스가 환영으로 만들어 낸 둥지가 사라졌으니 통신이 가능해졌을 것이다.
비록 깊은 굴속이라 음질이 고르진 못해도 엔트로피를 통해 아스모데우스를 처치했다는 사실을 알렸다.
곧 귀환하겠다는 말을 남기고 정대식은 부대원들을 손짓했다.
"이제 이곳을 벗어나자. 베이스캠프로 돌아간다."
* * *
대략 한 달 가까이의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3차 몬스터 브레이크로 인한 몬스터 토벌 작전이 종료되었다.
다행히 서울, 경기 지역에 한하는 몬스터 브레이크였던지라 피해가 그리 크지 않았다.
시가지에 출몰한 몬스터들은 헌터들의 자발적인 활약으로 빠르게 처리가 되었고, 시외로 달아난 몬스터들은 정부 주도하에 여러 공격대들이 협력하여 조직적으로 박멸했다.
그러나 2차, 3차 몬스터 브레이크가 짧은 시일 내 연달아 일어남으로써 언젠가 닥쳐올지도 모를 대형 몬스터 브레이크에 대비해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그리하여 예전부터 추진 중이던 새로운 정부 기관이 출범했다.
여러 부처에 흩어져 있던 각성자 관리청, 던전 안전청, 괴수 대책반이나 몬스터 조사반 등이 전부 통합되어 국가안전부 산하의 확장현실관리청이 되었다.
명칭이 지나치게 길다는 이유로 순식간에 확관청으로 불리게 된 이 조직은 던전 관리실, 각성자 조직실, 괴수 정보실, 신비 자원 경제실, 몬스터 재난 관리실 등등으로 나뉘었고, 더불어 몬스터와 던전의 위험 등급이 새로이 조정되었다.
몬스터는 별의 개수로 위험도가 표시되었고, 던전은 난이도 상·중·하 등으로 그 수준을 알아볼 수가 있게 되었다.
또한 각 공격대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한 지정 구역을 배정받았다.
아마도 본사의 위치를 기준으로 한 것 같은데, 예를 들어 몬스터 브레이크와 같은 대형 재난이 일어나게 되면 타이탄 공격대의 경우 본사 건물이 있는 남양주시 일대를 도맡아 방어하게 되어 있었다.
몬스터 브레이크가 터지면 제일 먼저 남양주시에 있는 세 개의 던전 중에 가장 위험 수준이 높은 NY3D 던전의 입구를 봉쇄하고 보스몹을 처치해야 하는 임무를 도맡게 된 것이다.
그에 따라 타이탄 공격대원들은 전부 남양주시에 있는 던전의 정보를 고지받았다.
강영후도 몬스터 브레이크가 터질 시에 출몰 가능성이 있는 몬스터에 대해 상세히 숙지하라고 명령했다.
그리고 당분간은 각 부대의 전력을 향상시키는 데 힘쓰기를 당부했다.
그것이야말로 정대식이 바라던 바였으므로, 그는 복귀하여 부대원들에게 이틀 간의 휴식을 주고 즉시 훈련을 시작했다.
어디까지나 실전에 치중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관계로, 훈련은 곧 사냥이었다.
정대식은 구울 나이트와 언데드 퀸, 그리고 아스모데우스를 처치하고 얻은 각종 무구와 언데드 퀸의 심장, 환영의 서클 등을 처분하고 벌어들인 돈으로 대상 지정 마력 증진 스킬과 대상 지정 체력 증진 스킬을 업그레이드했다.
덕분에 부대원들은 몬스터 부산물을 정산한 금액만을 받았을 뿐, 아이템을 판 돈은 받지 못했다.
마력과 체력의 증진을 위해 전부 정대식이 가져다 쓰는 데 동의를 했던 것이다.
'그래 봤자 두 가지 종류의 상태 증진 스킬을 레벨 3으로 업그레이드했을 뿐이다. 내 상태 증진도 마력과 근력만 레벨 3으로 만들 수 있었어.'
더불어 상비용 마력석과 스크롤, 포션 등등을 사고 났더니 금세 잔액이 24억 1천만 원으로 떨어졌다.
'이래 가지곤 안 돼. 돈이 모자라......!'
정대식은 훈련을 겸해서 펜리르 부대원들을 이끌고 제법 돈이 되는 마정석이 나옴직한 던전의 공략을 쉴 새 없이 했다.
정식 임무가 아니었기에 정대식은 몬스터 부산물은 변장수를 통해서 처분하고, 아이템은 대리인을 통해 경매에 부치고, 마정석은 상점에 파는 식으로 되는 대로 돈을 벌어들였다.
그리고 몬스터 부산물과 아이템을 판 돈은 부대원들에게 나눠 주고 마정석을 판매한 금액은 계속 모았다.
그렇게 한 달을 보내고 났더니 다시금 잔액이 220억 7천만 원 수준으로 회복이 되었다.
그게 가능했던 것은 부대원들의 실력이 나날이 성장한 덕분이었다.
부대원들은 한 명도 남김없이 스테이터스 측정에서 등급을 한 단계씩 올려놓았다.
마력과 체력이 대폭 늘었다 보니 등급이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실전과 다름없이 거듭되는 훈련으로 전투 감각이 크게 발전했음은 물론이거니와, 대원들 간의 호흡도 척척 잘 맞았다.
사소한 손발이 맞지 않아 눈에 불을 켜고 싸우던 때를 상상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이제는 서로 눈빛만으로도 무슨 공격을, 어떤 순서로 할 것인지 알아차릴 정도라서 정대식이 입 아프게 별도의 명령을 내릴 필요도 없었다.
힘을 합쳐 싸워야 할 때는 자연스럽게 협력했고, 각개 전투를 벌여야 할 때는 개개인의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특히 눈부신 성장을 보인 것은 서지원과 기철민이었다.
그들은 애초에 기술보다는 마력의 총량에 좌우되는 능력을 갖고 있었다.
서지원의 경우에는 공간 마법의 범위가 크게 늘어났다.
거기에는 마력의 상승뿐만 아니라 체력이 향상 또한 한몫을 했는데, 예전에 서지원은 운동이라고는 안 하는 전형적인 인도어 파였다.
그렇기에 조금만 힘이 달려도 쉬이 집중력이 떨어져 마법의 정확도가 대폭 내려갔다.
그로 인해 사람을 이동시키거나 하는 일에는 몹시 자신 없어 했다.
하지만 마력과 더불어 체력이 향상되면서 지치는 일이 줄어들자 마법에 놀라운 진척을 보였다.
그가 가진 마법의 종류가 달라지지는 않았으나, 그 효과에 대해서는 괄목할 만한 성과를 이루어 냈다.
그것은 기철민 또한 마찬가지였다.
기철민은 조작계로 어찌 보면 참으로 평범한 능력을 갖고 있었다.
능력 자체도 별 볼 일 없고 마력량은 더 별 볼 일 없었다.
본인의 부단한 노력으로 그 평범함을 메우고 있다가, 다량의 마력을 얻게 되자 거의 환골탈태 수준으로 성장을 했다.
공격력만이라면 정대식이나 김태희에 준할 정도가 되어 버린 것이다.
거기에 기철민이라는 캐릭터 자체가 노력과 인내를 어려워하지 않다 보니, 늘어난 마력량에 걸맞는 새로운 기술도 몇 개나 개발해 냈다.
갖고 있던 컴포즈 메탈 검도 팔아 버리고 추가로 들어온 수입으로 새 검을 장만해 사람이 달라 보일 지경이었다.
다른 대원들도 서지원이나 기철민 정도로 두드러지게 성장하진 않았어도 나름대로 놀랄 만한 결과를 얻었다.
아니, 결과라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정대식이 계속해서 상태 증진 스킬을 적용해 주고 있으니 하루가 다르게 계속해서 강해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만큼 정대식의 갈증도 심해져 갔다.
Chapter 39. 새로운 무구
'돈을 더 벌어야 해.'
정대식은 펜리르 부대의 사무실에서 상점 창을 띄워 놓고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현재 잔고는 220억 7천만 원.
보통 사람은 억, 소리를 내며 넘어갈 만한, 실로 엄청난 거금이었다.
그러나 그걸 보는 정대식의 눈은 무미건조했다.
아니, 오히려 불만족스러웠다.
'220억...... 이걸로 내 상태 증진 스킬과 대상 지정 상태 증진 스킬을 모조리 업그레이드할 수 있겠지. 하지만 그래 봤자 레벨 3, 4 수준이다.'
물론 그 정도로도 부대원들에게 큰 도움이 되기는 할 테다.
마력과 체력을 증진시킨 것만으로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던가.
근력, 오감, 민첩 등등 다른 상태까지 전부 향상시킨다면 다들 부쩍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