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4
현질 전사
-7권 5화
혼란스러운 가운데 소강두의 몸이 울룩불룩 커졌다.
벌써 230cm쯤 되는 거구였는데 거기서 더 커지고 있었다.
더불어 뿔도 길고 두텁게 자랐고, 터질 듯한 근육이 팽창하면서 마기장과 마기력을 분쇄하려 하고 있었다.
파창!
결국 소강두는 정대식이 마기전으로 만들어 낸 족쇄를 부수고 말았다.
"그워어어어어어!"
그가 울부짖으며 자리에서 일어서자 미노타우르스가 아니라 발록이라도 나타난 것 같았다.
"그워어어어어어어!"
그의 울음소리가 동굴 안을 쩌렁쩌렁 울리는 가운데, 정대식은 소강두를 되돌릴 방법이 있기는 한 것인지 의심했다.
외인부대에 있을 적에, 소강두 스스로 리칸트로피 능력의 위험성에 대해 말을 한 적이 있었던 것이다.
'사실을 말하자면 정확히 몇 단계까지 변신이 가능한지는 나도 몰라. 5단계 정도만 되도 이성이 날아가 버리니까 말이야. 하지만 이성을 잃은 상태에서 변신을 거듭하면 어떤 꼴이 되는지는 알고 있지. 이성이 없는 리칸트로피는 그저 괴물일 뿐이야. 몬스터와 마찬가지가 되는 거라고.'
소강두는 자신의 한계치가 5단계라고 그랬는데 벌써 9단계에 이르렀다.
이렇게 되면 인간으로서의 지성은 눈곱만큼도 남아 있지 않다고 보는 게 옳았다.
정대식은 잠시 갈등했다.
'어떡하지? 이대로라면 소강두를 멀쩡한 상태로 되돌리는 건 불가능하다. 결국 부상을 입히더라도 극단적인 수를 쓰는 수밖에는 없는 것일까?'
"크우우우우우!"
그때 소강두가 유성추를 다시 날렸다.
정대식은 그걸 피해 몸을 날렸고, 곧장 엔트로피가 정대식의 앞을 가로막아 소강두를 훼방 놓았다.
그러자 유성추로 엔트로피를 후려친 소강두가 곧장 정대식에게로 달려들었다.
한층 더 날카롭게 갈린 뿔이 정대식의 가슴팍을 치고 들어왔다.
주먹으로 그걸 빗겨 쳐내며 정대식은 마음을 정했다.
'어쩔 수 없지. 짧고 굵게 끝낸다!'
정대식은 소강두를 거꾸러트릴 생각으로 엔트로피에게 의식을 보냈다.
곧 엔트로피가 소강두의 뒤쪽으로 날아가고 정대식은 주먹을 단단히 말아 쥐었다.
"간다...... 강화 강력권!"
그러자 엔트로피도 동시에 스킬을 발동시켰다.
<강화, 강력권.>
콰아아아아아앗!
앞과 뒤, 전후에서 일시에 강력권이 작렬했다.
그것은 정확히 소강두의 명치를 때렸다.
엔트로피 역시 마찬가지로 등 뒤에서 명치가 있는 위치를 가격했다.
퍼어어억!
어지간한 주먹으로는 꿈쩍도 안 할 만한 부피와 강도의 근육 덩어리 몸이었으나, 그냥 강력권도 아니고 강화된 강력권을 앞뒤로 얻어맞고 멀쩡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나마 몸에 구멍이 뚫리지 않은 것은 만에 하나를 위해 정대식이 내린 조치 덕분이었다.
엔트로피가 사용한 공격은 엄밀히 말해 강화된 강력권이 아니었다.
그냥 강력권이었다.
엔트로피는 정대식의 지시대로 강화의 대상을 자신이 아닌, 소강두로 지정했던 것이다.
덕분에 몸이 강화된 상태의 소강두는 앞뒤에서 직격하는 공격을 버텨 냈다.
그렇기에 몸에 주먹만 한 구멍이 나지 않은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소강두가 멀쩡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커......억!"
소강두는 입에서 피를 한 바가지는 토해 냈다.
그리고는 비틀거리며 바닥으로 쓰러져 버렸다.
정대식은 소강두가 변신한 채로 죽어 버리지는 않을지 걱정했다.
그런데 다행히도 소강두가 완전히 의식을 잃어버리자 변신이 해제되었다.
스스스슥, 부풀어 올랐던 신체의 크기가 줄어들며 평범한 인간의 모습을 한 소강두가 누더기가 된 옷을 걸친 채로 쓰러져 있었다.
"후유."
그가 살아 있다는 사실에 안도한 정대식은 서둘러 치료 스킬을 그에게 시전했다.
그러고 나서 상황을 살펴보니, 세 명의 헌터가 쓰러져 있었고 두 명의 헌터가 포박 상태였으며 나머지 세 명이 아직 항전하는 중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곧 진압이 될 듯했다.
김태희가 신기에 가까운 몸놀림으로 그들을 교묘하게 때려눕히고 있었던 것이다.
그 무식하게 큰 절구를 써서 상대한다기에는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누가 보면 암기를 쓴다 할 만큼 날렵하고 은밀한 몸동작으로 세 명의 헌터들을 한꺼번에 제압했다.
그러자 김송근의 분신들이 우르르 달려들어 그들을 내리눌렀고, 곧 허미래가 각성 스크롤을 써서 그들을 서번트의 술법에서 해방시켰다.
정대식은 소강두를 둘러메고 그쪽으로 다가갔다.
"다친 사람은 없나?"
"없습니다. 그보다, 마력이 빠른 속도로 사라지고 있어요."
기철민이 하는 말에 정대식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 공간 자체가 아스모데우스의 영역이다. 석션을 당하고 있어."
마력이 얼마 없는 와중에도 부대원들은 임무를 잘 해 주었다.
본인들은 물론이거니와 서번트가 되었던 헌터들까지 무사했던 것이다.
겉보기로는 소강두의 상태가 제일 안 좋아 보였다.
피를 한 바가지나 쏟아서 가슴팍이 벌겋게 젖어 있었다.
정대식은 민망한 기분으로 소강두를 내려놓고 서지원에게 말했다.
"이들을 서둘러 밖으로 내보내. 할 수 있겠나?"
그러자 서지원이 울상을 하고 말했다.
"여긴 너무 깊습니다. 지상으로부터...... 그러니까 제가 특정할 수 있는 장소로부터 지나치게 멀어요. 마력도 부족한 상태라 여기서 공간 이동으로 이들을 날려 보냈다가는 어떻게 될지 모릅니다."
서지원의 공간 이동에는 거리의 제약이 컸다.
그가 이동시킬 수 있는 거리라고 해 봤자 몇 미터 수준이었으므로, 제아무리 마력석으로 마력을 보충할 수 있다 해도 여덟 명이나 되는 헌터를 옮길 수는 없는 모양이었다.
정대식은 잠깐 고민했다.
이 작전은 아스모데우스를 처치하는 것도 있지만, 서번트가 되어 인질로 끌려간 헌터들의 안전을 확보하는 것도 중요했다.
그는 마음을 굳히고 말했다.
"그럼 서지원과 김송근, 이재우와 고덕화는 부상자들을 데리고 밖으로 나가라. 그리고 아직 밖에 있을 다른 부상자들과 베이스캠프로 돌아가서 대기해라."
그 말을 듣고 서지원을 제외한 세 사람이 동시에 눈을 휘둥그레 떴다.
"예? 그게 무슨......."
"아직 아스모데우스가 남아 있지 않습니까!"
"맞습니다, 놈을 잡아야죠!"
정대식은 고개를 저었다.
"그건 나와 나머지 부대원들이 할 일이다. 헌터들을 안전하게 이송하는 것도 중요한 임무다! 마력을 계속 강탈당하고 있으니 어물대다가는 누구도 못 구하는 수가 있다!"
세 사람은 불만스러운 표정을 했으나 정대식의 명령에 거역하지는 못했다.
이재우는 즉석에서 정대식이 만들어 낸 것과 비슷한 성능의 산소마스크를 여러 개 만들어 내 헌터들과 서지원, 김송근에게 씌우고 자신도 썼다.
그러자 김송근이 분신을 여러 명 만들어 부상자들을 한 명씩 맡았다.
그리고 정대식이 운디네를 소환해 고덕화의 천강벽수선에 달라붙어 있게끔 했다.
천강벽수선에 깃든 운디네가 물살을 거슬러 올라갈 수 있도록 도움을 줄 것이다.
만에 하나의 상황이 있으면 즉시 공간 이동을 할 수 있도록 서지원을 딸려 보내며, 정대식은 돌아가는 부대원들에게 당부했다.
"베이스캠프로 돌아가 여섯 시간 동안 대기해라. 그 이후로도 어떤 소식이 없으면 본대에 연락을 취하고 필요한 명령을 받아라. 알겠나?"
"알겠습니다!"
"그럼 소강두를...... 헌터들을 부탁한다."
부상자들을 데리고 서지원과 김송근, 이재우와 고덕화가 어두운 물속으로 들어갔다.
그들은 라이트를 밝힌 채 천강벽수선과 운디네의 도움으로 왔던 물길을 거슬러 올라가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정대식은 곧 그들에게서 시선을 돌리고 남은 사람들을 쳐다보았다.
"아스모데우스는 우리끼리 상대해야겠군."
남은 사람은 기철민과 허미래 그리고 김태희, 이 세 사람이었다.
구성으로는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며 정대식은 전투가 벌어졌던 장소 저편을 바라보았다.
일견 암흑에 휩싸여 있는 것처럼 어두운 그곳에는 기묘한 그림자가 일렁이고 있었다.
뚫어져라 보면 무언가 보일 것 같기도 한데, 실제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그런 어둠이었다.
그것을 보고 김태희가 말했다.
"아스모데우스의 둥지일 겁니다."
정대식은 고개를 끄덕이고 마력석을 깨트려 마력을 보충한 뒤, 발길을 옮겼다.
Chapter 38. 아스모데우스 공략
정대식은 잭오랜턴의 불빛에 기대어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을 헤쳐 나갔다.
그러면서 엔트로피에게 마음속으로 말을 걸었다.
'엔트로피, 내게도 석션과 같은 스킬이 있겠지?'
<예, 있습니다. 마력 강탈입니다.>
'그걸 획득하겠다. 10억은 없어도 천만 원은 있으니까.'
<마력 강탈 스킬을 획득하고 천만 원을 차감합니다.>
아스모데우스의 석션에 비해 레벨 1짜리 마력 강탈이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마냥 마력을 뺏기고 있을 수만은 없지 않은가?
없는 것보다는 나으리라 생각하고 정대식은 발길을 옮겼다.
그러자 서서히 어둠이 어떠한 형체를 띠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엔가 그들은 검은 안개가 자욱한 숲 속을 걷고 있었다.
"이곳은......?"
정대식이 무심코 중얼거린 말에 김태희가 대꾸를 했다.
"아스모데우스가 둥지를 만든 겁니다. 놈들이 현실 세계에 똬리를 틀게 되면 마치 던전과 유사한 환경을 만들어 내지요."
미처 처치 못한 몬스터들이 한곳에 모여 영역을 설정하고 둥지를 만들게 되면 놈들이 서식하기 좋도록 던전과 유사한 환경이 된다.
지금 그들이 있는 아스모데우스의 둥지 역시 마찬가지였다.
숲 속의 수종이나 지형 자체는 낯이 익었으나 허공을 떠도는 검은 안개나 무어라 콕 집어 말할 수 없는 불쾌한 냄새, 끈끈한 공기의 질감 같은 것이 던전에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아스모데우스는......."
"저깁니다!"
기철민이 별안간 목소리를 높이며 어디론가 손가락질을 해, 정대식은 곧장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숲 속 비탈에 툭 튀어나온 바윗돌 위에 아스모데우스가 웅크리고 있었다.
엄밀히 말해 그 모습을 정확히 볼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검은 안개가 어떤 형체를 띠고 그곳에 우글우글하게 모여 있었다.
그러자 김태희가 전투태세를 갖추며 소리를 질렀다.
"조심하세요! 안개가 흩어지고 나면 놈이 환영을 쓸 겁니다! 본인이 가장 두려워하는 모습으로 변할 테니까 흔들리지 말고 공격해야 해요!"
김태희가 그렇게 말하기 무섭게 파바밧, 하고 바윗돌 위에 모여 있던 검은 안개가 확 흩어져 버렸다.
그리고 그곳에서 아스모데우스가 매우 낯익은 모습을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정대식은 김태희가 환영이라고 경고한 그 모습을 보고 아연실색하고 말았다.
"아니......?"
하마터면 자신이 보고 있는 아스모데우스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입 밖으로 내어 말을 할 뻔했다.
정대식은 김태희를 의식해 황급히 입단속을 했으나 왜 아스모데우스가 저런 형태로 나타난 것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정대식이 보는 아스모데우스는, 어이없게도 최희의 모습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도대체가 이게 무슨...... 내가 가장 무서워하는 게 최희라는 말인가?'
최희를 보고 있는 것은 정대식뿐만인 게 틀림없었다.
다른 사람들은 제각기 다른 모습을 보고 경악하거나 분노를 하고 있었다.
도대체 그들은 무엇을 보고 있는 걸까, 짧게 의문하는데 최희의 얼굴을 하고 있는 아스모데우스가 별안간 손을 뿌렸다.
그러자 최희가 한 명도 아니고 무려 다섯으로 분리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