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6
현질 전사
- 6권 22화
마력량이라면 훈련을 통해서 증진할 수 있었다.
그걸 위한 상태 증진 스킬을 획득하지 않았던가!
급하면 돈으로도 구입이 가능했으니 크게 염려될 바는 아니었다.
"만약에 상점을 Lv7로 업그레이드하면 네가 알아서 스킬을 사용하는 게 가능해질지도 모르겠군."
<그럴 수도 있겠지요.>
"문제는 역시......."
<돈입니다.>
"크윽, 1조원이라......."
그 어마어마한 금액을 머릿속에 굴려 보던 정대식은 문득 질문을 던졌다.
"그나저나, 데모크리토스는 그 돈을 받아다가 어디다 쓰는 거야? 좀 웃기지 않아? 신인데도 이쪽의 금전이 필요하나?"
<데모크리토스 님은 대가를 요구하는 것뿐입니다.>
"그러니까, 그 대가가 돈이라는 게 이상하잖아? 다른 신들은 숙명이니 뭐니 그런 걸 요구하는데. 없어 보이게시리."
<그것은 대상이 정대식 님이라서 그렇습니다.>
"응?"
<정대식 님이 무엇보다 우선하는 가치가 돈이라서 그렇습니다.>
"뭐야...... 그럼 내가 정의감 넘치는 그런 사람이었더라면 대가가 달랐을 거라는 말이야?"
<그랬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럼 데모 어쩌구 그 신의 궁극적인 목적은 돈이 아니라......."
<정대식 님을 강하게 만드는 것이겠지요.>
정대식은 별안간 머리가 혼란스러워졌다.
"날 강하게 만들어? 강하게 만들어서 뭐 하게?"
엔트로피는 대답이 없었다.
정대식은 인상을 찡그렸다.
"여태까지 잘 대답하다가 왜 갑자기 말이 없어?"
<그것은 공개되어 있지 않은 정보입니다.>
그 말을 듣고서야 정대식은 엔트로피가 오늘 따라 데모크리토스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마도 레벨이 높아짐에 따라 그에 대한 새로운 정보가 업데이트되었나 보다.
정대식은 미간을 모으며 말했다.
"좋아, 그럼 공개된 정보는 뭔데?"
<신들의 전쟁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신들의 전쟁이라니?"
엔트로피의 이야기는 이랬다.
우주의 여러 차원에는 다양한 신들이 존재하고, 그들은 자기 목적을 위하여 서로 경쟁해 왔다.
그것을 위해 어떤 신들은 생명을 창조했고, 어떤 신들은 파괴했다.
또 어떤 신들은 자신이 선택한 종족에게 특별한 힘을 부여했다.
"그게 각성자란 말이지?"
<각성자는 비단 인간에게만 국한되어 있지 않습니다.>
"뭐, 우주 저기 있는 외계인들도 신들의 선택을 받았단 말이야?"
<그렇습니다. 인간들은 그것을 몬스터라고도 부릅니다.>
"몬스터라고?"
<그렇습니다.>
정대식은 쇼킹한 기분을 느꼈다.
몬스터가 신의 선택을 받은 존재라니?
그는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잠깐만, 그게 무슨 말이야? 몬스터도 일종의 각, 각성자라는 말이야?"
<그렇습니다. 다만 인간과는 다른 결말을 맞았을 뿐이지요.>
"헐......."
그러고 보니 말이 됐다.
몬스터들은 보통 인간은 범접할 수 없는 특별한 능력을 갖고 있었다.
뛰어난 체력과 근력, 민첩성은 물론이거니와 놀라운 재생력이나 회복력을 갖고 있기도 하고, 주술이나 마법을 부리기도 하며, 언데드 퀸처럼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아나 온갖 기괴한 능력을 발휘하기도 했다.
어떤 몬스터들은 신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위대한 능력을 갖고 있기도 했으니, 각성자라 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뭐야, 그럼...... 인간도 몬스터도, 신의 선택을 받아서 그 목적인지 뭔지 하는 것 때문에 서로 싸우고 있다는 말이야?"
<그렇습니다.>
"나도 그 장기말의 일부이고?"
<장기말이라는 표현은 적절치 않습니다. 정대식 님이 장기말이었다면 데모크리토스 님의 선택을 받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도대체 뭔 말인지...... 그 신의 목적이라는 게 뭔데?"
<우주의 순환입니다.>
"뭐어?"
<신들은 우주의 영속성, 존재의 불멸성을 위하여 까마득한 시간 동안 수없는 전쟁을 치러 왔습니다. 이번에는 이 차원이 그 장소로 선택된 것입니다.>
"나 참! 누구 맘대로 지구를 전쟁터로 쓰래? 이래저래 피 보는 건 우리들인 거 아냐? 왜 우리가 신들 의지를 따라서 몬스터와 싸워야 하는 거야?"
<그렇게 간단하게 설명될 문제가 아닙니다.>
"그럼 간단하게 설명해 봐!"
<간단하게 말씀드리면, 현재 지구는 기로에 서 있습니다. 신들이 선택한 전장은 전부 이와 같은 상황에 놓인 세계였습니다. 조만간 닥칠 전쟁에서 승리한다면 지구는 진화할 것이고, 패배한다면 쇠퇴할 것입니다.>
"그러니까, 누구 맘대로 그러는 거냐고. 우리가 전쟁을 할 이유가 없잖아!"
<명백히 있습니다. 만약에 신들의 선택이 시작되지 않았더라면 지구는 어떤 기회도 얻지 못하고 몰락의 길을 걸었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갑작스런 엔트로피의 반문에 정대식은 말문이 탁 막혔다.
그는 무엇도 알지 못했지만 확장 현실 세계가 시작되기 전의 세상이 암울했다는 사실만은 알고 있었다.
석유가 동이 나며 전 세계는 전례 없던 오일 쇼크를 겪었다.
대체 에너지의 개발은 실패를 거듭했고, 소량 남아 있는 석유 쟁탈을 위한 세계 3차 대전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가 만연했다.
극점의 빙하가 녹아 해수면의 상승으로 몇몇 유서 깊은 도시가 물에 잠겼으며, 이상 기후가 극성을 부려 자연재해가 끊일 날이 없었던 것이다.
<신들의 선택을 받은 것은 인류에게는 기회일 것입니다. 각성자들이 이계의 존재를 처단하여 보다 강해지고, 닥쳐올 전쟁에서 승리한다면 지구는 새로운 시대를 맞아 번영하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패배한다면 국물도 없다는 건가?"
<예정된 멸망이 가까워질 뿐입니다.>
* * *
엔트로피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괜히 신경이 쓰였다.
'최후의 전쟁이라.'
그게 자신과 무관한 이야기라면 지구가 망하든 말든, 상관하지 않겠지만 그 전쟁이라는 것은 그리 멀지 않은 게 분명했다.
최근 일어나는 몬스터 브레이크에 대해 이런저런 말들이 많았던 것이다.
[가장 신빙성 있는 가설은 이것이 전조라는 것이지요.]
[전조라고요?]
[그렇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두 번째 몬스터 브레이크도, 세 번째 몬스터 브레이크도 사실상 최초의 몬스터 브레이크와는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었습니다.]
[첫 번째 몬스터 브레이크는 처음으로 던전이 생겨났던 때니까요.]
[맞습니다. 하마터면 인류가 멸망할 뻔한 순간이었죠.]
[각성자들의 존재가 없었더라면 그리 되었겠지요.]
[인류의 존속을 위협할 정도로 큰일이었다는 말입니다. 사실 두 번째도, 세 번째도 최초의 몬스터 브레이크에 비하면 몬스터 브레이크라고 부를 만한 수준이 아닙니다.]
[이번 몬스터 브레이크는 일부 지역에서만 일어났고요.]
[맞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현상은 전 세계적으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국지적인 몬스터 브레이크가 지구촌 곳곳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일어났지요. 이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이러한 현상이 반복되다 보면, 언젠가는 최초의 몬스터 브레이크에 준하는 대형 재난이 일어날 겁니다. 그때는 그것이 최후의 몬스터 브레이크가 될지도 모른다는 겁니다.]
정대식은 엔트로피를 통해서 재생한 인터넷 방송을 심각하게 들여다보고 있었다.
만약에 저 가설이 맞다면, 몇 번인가 이러한 자잘한 몬스터 브레이크가 일어나다 어느 순간에 '뻥!' 하고 대형 몬스터 브레이크가 터질지도 모른다는 거였다.
그럼 던전 밖으로 모조리 뛰쳐나온 몬스터들과 각성자들 사이에 전면전이 벌어질 것이고, 그것은 전쟁이라고 부르기에 무리가 없을 것이다.
'그 전쟁에서 지면 지구가 망한다는 말인가?'
최초의 몬스터 브레이크를 능가하는 최후의 몬스터 브레이크가 일어나, 그것을 막지 못한다면 인류 문명이 내리막길을 걷게 되리라는 것은 자명해 보였다.
굳이 신들의 전쟁이니 뭐니 골치 아프게 생각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전조라면 닥쳐올 본론에 대비를 해야 했다.
정대식은 이재우가 다가오는 것을 보고 허공에서 재생되던 화면을 껐다.
그러자 이재우가 그를 향해 말했다.
"다들 준비 끝났습니다."
"그래? 그럼 가자."
정대식은 도열해 선 펜리르 부대원들에게로 발길을 옮겼다.
정대식은 그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눈여겨보았다.
잘하면 여기 있는 이 녀석들과 최후의 전쟁을 치르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심사가 복잡했다.
'젠장...... 언제 그게 터질지 모르니 괜스레 마음만 조급해지는군. 어쩔 수 없지.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수밖에.'
정대식은 부대원들 앞에 서서 뒷짐을 지고 말했다.
"알다시피 우리의 임무는 이 일대에 숨어들었을 잡몹들을 찾아 처치하는 일이다. 그다지 돈도 안 되고 보람도 없는 일이지만 마땅히 우리가 해야 할 일이기도 하지."
부대원들의 표정은 태평해 보였다.
정대식은 그 느긋한 얼굴에 긴장감을 불어넣어 줄 만한 말을 했다.
"또한, 새로운 도약을 할 기회이기도 하다. 바로 지금부터, 너희들에게 에메랄드 스톤의 대가를 돌려주겠다."
정대식이 그들을 강하게 만들어 주겠다고 약속하자 다들 눈이 번쩍 뜨였다.
정대식은 김태희가 이 자리에 없는 것을 아쉬워하며 한 사람씩 앞으로 나오게끔 했다.
그리고 그들에게 차례대로 스킬을 적용시켰다.
"대상 지정 마력 증진."
정대식은 시동어를 읊조리며 그들의 이마를 가볍게 터치했다.
그러자 정대식의 손끝에서 그의 마력이 상대의 몸으로 옮겨 갔다.
그로써 정대식의 마력이 그들의 신체 상태를 활성화할 터였다.
모든 부대원들에게 스킬을 사용한 정대식은 말했다.
"지금부터는 훈련을 하는 만큼 마력이 늘어날 것이다. 즉, 본인 하기 나름이라는 거지. 그러니 의욕 고취를 위해...... 간단한 게임을 하겠다. 지금부터 열두 시간 동안, 가장 많은 몬스터를 처치하는 대원에게 특별한 선물을 하도록 하지."
"그거 좋습니다."
부대원들이 흥분과 호승심에 상기된 얼굴을 하고 씩 웃었다.
정대식은 "가라!"라고 소리쳐 신호를 보냈다.
그러기가 무섭게 부대원들이 빠른 속도로 숲을 향해 흩어졌다.
남겨진 정대식은 엔트로피에게 명령을 내렸다.
"엔트로피, 지금부터 열두 시간 동안 펜리르 부대원들에게 돌아가며 마력 증진 스킬을 걸어 줘라. 네가 갈 수 있는 최대 거리가 얼마나 늘어났지?"
<8km입니다. 단, 링크는 5km에 국한됩니다.>
"스킬을 갱신해야 하는 대원들과 8km 거리를 벗어나지 않도록 해야겠군. 다른 대원들의 갱신 시간과 이동 방향에 따라 내가 어디로 가야 할지 지시해 줘. 할 수 있겠지?"
<있습니다.>
"그럼, 갈까?"
<출발하겠습니다.>
"신속."
파앗!
그의 다리가 땅을 박참과 동시에 정대식은 사냥과 훈련을 한 번에 해치우기 위해 달렸다.
다른 대원들과 구역이 겹치지 않게끔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그는 얼마간을 내달려 갔다.
정대식은 이윽고 인적이 완전히 사라진 깊은 숲속에 이르렀다.
벼랑처럼 깎아지른 능선 아래 물이 말라 버린 깊은 계곡이 있었는데, 그 계곡 아래 어렴풋이 몬스터의 기척이 느껴졌다.
정대식은 주의를 기울이며 그 계곡으로 엔트로피를 날려 보냈다.
엔트로피는 계곡을 따라 한동안 날아갔다.
엔트로피의 시야에 곧 고라니를 뜯어먹고 있는 한 떼의 몬스터가 잡혔다.
'레드캡이다.'
정대식은 엔트로피를 돌아오게 하고 신중하게 놈들에게 접근했다.
그리고 은신 스킬을 써서 몸을 숨긴 채 마기전으로 그들을 겨누었다.
"마기장."
팟! 팟! 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