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5
현질 전사
- 6권 21화
천둥이 작렬하는 소리를 듣고 광필두가 중얼거렸다.
"최희가 이쪽에 와 있었나 보네요."
"예, 탈로스라면 그녀가 처치할 겁니다."
'최희'라는 말에 가까이 섰던 대원들 몇몇의 얼굴이 요상하게 변했다.
그들은 김태희가 야산 쪽으로 날아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아마 두 사람의 대화에서 김태희가 최희가 아닌가 하는 추측을 하고 있을 것이다.
수군수군.
대원들이 술렁거리는 가운데 정대식은 광필두를 보고 말을 이었다.
"그럼 당신네들이 오거를 맡아 주시죠. 우리는 부상자를 수색해 치료하고 안전한 곳으로 이동시키겠습니다."
"곧 군대와 함께 구조대가 이쪽으로 올 겁니다. 그들과 협력해 주시죠."
"알겠습니다."
광필두는 곧 동료들과 함께 오거들을 처치하러 달려가 버렸다.
정대식은 모여선 헌터들을 향해 말했다.
"우리들은 둘씩 짝을 지어 다니며 부상자를 찾겠습니다. 부상자는 찾는 즉시...... 저기 저 은행 건물로 옮겨 주십시오. 잠시 후에 구조대가 도착하면 그들에게 부상자를 인계하고 몬스터가 접근하지 못하도록 막겠습니다. 그럼 가죠!"
정대식은 엔트로피와 함께 일대를 돌아다니며 그렌델이 온 방향 쪽으로 달려가 부상자를 찾아 헤맸다.
그렌델이 시가지를 아수라장으로 만들어 놓았기에 미처 달아나지 못한 민간인이 많았다.
정대식은 지하에 고립되어 있던 한 무리의 사람들을 구조해 내고 부상자를 치료한 뒤, 움직일 수 있는 사람들을 넷씩 짝지어 내보내 또 다른 부상자를 찾게 했다.
그런 식으로 서로가 서로를 도와 부상자들을 교차로 옆에 있던 은행 건물로 모았다.
곧 군대의 지원을 받은 구조대가 도착하여 부상자들을 실어 날랐고, 헌터들은 그들을 호위하며 주위를 경계했다.
그러고 있노라니 곳곳에서 오거들이 괴성을 지르는 소리가 들렸다.
그때마다 불꽃이 펄펄 일어나는 게 광필두가 활약을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던전이 있는 야산 쪽에서도 몇 차례 번개가 번쩍였다.
그렇게 잠시간이 흐르고 나자, 일대의 몬스터가 전부 퇴치되고 광필두의 팀이 제자리로 돌아왔다.
"인근의 오거는 모두 소탕했습니다. 우리는 그럼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헬기가 도착하기를 기다리고 있던 광필두는 곧 투다다다, 하는 프로펠러 소리를 듣고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 헬리콥터가 착륙할 수 있게 그렌델 시체를 한쪽으로 치우게 하고 정대식에게 문득 손을 내밀었다.
"그럼, 다음에 또 뵙죠."
광필두답지 않은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으나 정대식은 그 손을 맞잡고 가볍게 흔들었다.
"예, 몸조심 하십시오."
광필두의 팀은 도착한 헬기에 몸을 싣고 사라졌다.
정대식도 대원들과 함께 타이탄 공격대가 있다는 의정부시 쪽으로 가서 합류하기로 했다.
그러자 김송근이 쭈뼛거리며 입을 열었다.
"저, 김태희는...... 같이 안 갑니까?"
정대식은 짧게 말했다.
"그녀는 따로 할 일이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이동한다!"
그들은 지프에 올라타고 차가 치워진 고속도로를 달려갔다.
Chapter 36. 대상 지정 상태 증진 스킬
의정부시에서 타이탄 공격대와 합류하고 이틀 간.
정대식은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의정부시에 있는 던전에서 튀어나온 온갖 몬스터를 잡으러 다니느라 온종일 끼니도 거른 채 이리 뛰고 저리 뛰었다.
의정부시의 보스몹들은 정대식이 도착했을 때 이미 전부 처치된 상태라 그곳엔 잡몹들만 가득했다.
놈들은 그리 위험하지는 않았으나 수가 많아서 몹시 성가셨다.
잘못해서 하수도나 폐건물 등지에 둥지라도 틀면 곤란해지는 관계로, 놈들을 일일이 찾아서 처치하느라고 으슥한 곳은 모조리 뒤지고 돌아다녔다.
이틀 동안 의정부시에 돌아다니는 몬스터를 몰아낸 정대식은 숨 돌릴 겨를도 없이 과거 비무장 지대였던 천연자원보호구역에 투입되었다.
그곳은 민가가 없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몬스터들이 연인산을 타고 넘어 그 일대와 설악산 깊숙한 곳으로 숨어들었던 것이다.
정대식은 펜리르 부대원들과 함께 그곳으로 보내져 몬스터 박멸을 도맡게 되었다.
물론 산속에 숨어든 잡몹을 처치하는 것은 펜리르 부대에 아무런 도움이 안 됐다.
돈도 안 되고 훈련 거리도 되지 못한다.
몬스터 소탕 작전에 투입되면 일정 기간 세금을 면제해 준다고는 하나, 이미 면제받고 있는 정대식에게는 해당 사항이 없는 이야기였다.
자칫하면 시간 낭비에 불과할 수 있었기에 정대식은 1분 1초도 허투루 쓰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이 일을 훈련의 기회로 만들기 위하여, 상점을 Lv6으로 업그레이드했던 것이다.
상점을 Lv5로 업그레이드할 때도 충격이 상당했는데,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정대식은 상점을 업그레이드하기 무섭게 코피를 한 바가지는 쏟았고 하루 종일을 원인 불명의 두통에 시달려야 했다.
하지만 그만한 보람이 있기는 했다.
<에메랄드 스톤을 판매하고 정산받은 금액이 880억, 원래의 잔액을 더해 총 1,201억 6,800만 원가량이 있었습니다. 거기에서 상점 업그레이드로 1,000억을 차감하고 현재, 201억 6,800만 원이 남아 있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엔트로피의 모습은 예전과는 사뭇 달랐다.
지나가는 베이스캠프의 사람들이 이상하다는 듯 쳐다볼 지경이었다.
엔트로피의 겉모습은 거의 보통 사람 같았다.
정확히는 한 열 살가량의 어린아이로 보였다.
정대식조차도 잔액을 고지하는 엔트로피를 새삼스레 보게 됐다.
<왜 그러십니까?>
말투는 여전히 그대로인 엔트로피를 보고 정대식은 고개를 기울였다.
"아니, 네 그 모습...... 참, 적응 안 된다."
<상점 업그레이드에 따른 결과입니다. 정대식 님이 원하는 방향으로의 성장을 이루어 냈기에.......>
"난 로리콤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왜 그런 몰골인 거야?"
원래 엔트로피가 말풍선이던 시절에 푸르스름한 바탕에 빛을 내는 형식이었기 때문인지, 현재 엔트로피는 금발 벽안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누가 보면 외국인 자녀라고 할 만해서 더 눈길을 끌었다.
<제 레벨이 더 높아진다면 이 모습도 달라질 겁니다.>
"궁극적으로는 쭉쭉빵빵이 되기라도 한다는 거야, 뭐야?"
<그건 저도 확답을 드릴 수 없습니다.>
"에휴, 그렇겠지. 그나저나 너, 인형 옷 더 이상 안 맞아서 어떡하냐?"
엔트로피는 황급히 구해 온 아동복을 걸치고 있었다.
인근 마트에서 대충 산 거라 그다지 보기가 좋지는 않았다.
하지만 용모가 인형이 사람으로 변한 것처럼 반듯해서 그냥저냥 봐줄 만했다.
인형 옷 이야기가 나오자 엔트로피는 약간 시무룩한 표정이 됐다.
진짜로 그 프릴이 너풀거리는 옷이 마음에 들었었나 보다.
그걸 보자 어째 우스워서 정대식은 피식거리며 엔트로피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하긴, 그런 게 잘 어울리긴 하더라. 이 일 마치고 돌아가면 원피스라도 한 벌 사 줄게."
<알겠습니다.>
"아무튼, 상점 업그레이드되면서 추가된 기능이 뭐가 있는 지나 좀 말해 봐."
<스킬뿐만 아니라 아이템의 구매가 가능해졌습니다. 또한 바라시던 타인의 상태에 관계하는 스킬의 획득도 가능해졌습니다. 바로 대상 지정 근력, 마력, 체력, 오감, 민첩, 행운 증진 스킬입니다.>
"역시, 좋았어!"
정대식은 흥분으로 눈을 빛냈다.
그가 1,000억이나 되는 거액을 써 가며 상점을 업그레이드하려고 기를 썼던 것은 그 스킬의 획득이 목적이었다.
혹시 레벨 6단계에서는 그런 스킬이 없으면 어떡하나 싶었는데, 다행한 일이었다.
레벨 5에서 자신의 상태를 증진시키는 스킬이 있었으니, 6에서는 타인에게도 적용 가능한 스킬이 있을 거라 생각한 추측이 맞아떨어진 것이다.
"좋아, 스킬 획득은 지금 바로 가능하겠지?"
<그렇습니다.>
"그럼 대상 지정 상태 증진 스킬 6종류를 모조리 획득하겠다."
<대상 지정 근력, 마력, 체력, 오감, 민첩, 행운 증진 스킬을 구입하고 6천만 원을 차감합니다.>
"그리고 그 스킬들을 전부 레벨 2로 업그레이드해."
<대상 지정 근력, 마력, 체력, 오감, 민첩, 행운 증진 스킬을 Lv2로 업그레이드하고 60억 원을 차감합니다.>
"나를 대상으로 한 상태 증진 스킬도 마찬가지야. 레벨 2로 만들어."
<근력, 마력, 체력, 오감, 민첩, 행운 증진 스킬을 Lv2로 업그레이드하고 60억 원을 차감합니다.>
"이제 잔액이 얼마지?"
<81억 800만 원가량입니다.>
"그럼......."
정대식은 잠시 생각하다 말했다.
"영구적으로 아이템의 기능을 증진시킬 수 있는 스킬은 없나? 뭐, 새로운 성능이나 속성을 부여한다든가, 하다못해 내구성이나 공격력을 높인다든가 하는 거 말이야."
<그런 것이라면 영구 강화 스킬이 있습니다.>
"영구 강화 스킬이라고?"
<정대식 님의 강화 스킬의 효과를 영구적으로 적용시킬 수 있는 겁니다.>
"어? 그렇다면......."
<이것은 생물을 대상으로는 효과가 없습니다. 생명체의 마력은 고정되어 있지 않으므로 영구 강화를 적용시켜도 금방 효과가 사라집니다. 마력이 고정된 상태인 무생물을 대상으로만 효과가 있습니다.>
"그렇군. 그래도 그게 어디야. 일단 그것도 획득하지."
<영구 강화 스킬을 획득하고 천만 원을 차감합니다.>
"만약을 위해 나머지 금액은 남겨 두겠어. 이것 말고 뭐, 또 달라진 건 없어? 네 성능은 뭐가 개선됐지? 그 외모 말고 말이야."
정대식의 질문에 엔트로피가 즉각 답했다.
<스킬의 사용이 가능해졌습니다.>
정대식은 눈을 휘둥그레 떴다.
"정말이야? 스킬을 발동시키는 게 아니라...... 사용 자체가 가능해졌다고?"
<그렇습니다. 하지만 정대식 님의 마력을 함께 사용하는 것이니, 엄밀히 말해서 제가 스킬을 사용한다기보다는 두 가지 스킬을 동시에 쓰는 것이 가능하다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그럼 네가 알아서 스킬을 쓰는 것도 가능한가?"
<그건 불가능합니다.>
엔트로피가 스스로 스킬의 사용이 어렵다면 정대식이 구상하는 에고 웨펀에는 한 발짝 못 미치는 수준이었다.
그래도 그게 어딘가.
여태까지는 스킬의 발동만이 가능했기에, 엔트로피의 역할을 보조적인 부분으로 한정 지어 놓을 수밖에는 없었다.
하지만 엔트로피가 직접 스킬을 사용할 수 있다면 그를...... 아니, 이제는 그녀라고 부르는 게 더 맞겠다.
아무튼 그녀를 전투에 투입하는 것이 가능한 것이다.
정대식은 확인을 위해서 재차 물었다.
"그러니까 무적권과 강력권을 동시에 쓸 수 있게 되는 거지?"
<그렇습니다. 하지만 강화를 동시에 발동시킬 수는 없겠지요.>
"그래도 강화는 시동어만 외치면 되는 거잖아? 뭐, 엄밀히 말해 시동어를 외쳐야 하니까 동시에 발동되는 것은 아니지만, 강화 하나 말하는 데 긴 시간이 필요한 건 아니니까."
<그보다는 마력의 소모를 걱정하는 것이 맞습니다. 저와 정대식 님이 동시에 강화 강력권과 강화 무적권을 사용한다면 마력이 다량 소비될 것입니다.>
"그거야 그렇겠지. 마력량은 지금보다 늘리는 게 맞다. 그건 많으면 많을수록 좋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