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2
현질 전사
- 6권 18화
정대식은 그것을 아공간에 털어 넣고 마지막으로 마정석도 집어넣으려다가 멈칫했다.
그는 링크된 엔트로피에게 의식을 통해서 물었다.
'이 마정석의 값어치는 얼마나 하지?'
<880억입니다.>
정대식은 엔트로피와 머릿속으로 대화하고 있다는 사실을 깜박하고 헉, 하는 소리를 내뱉을 뻔했다.
'이게 880억이나 한다고?'
<그렇습니다.>
'굉장하군! 그럼 이것만 처분하면 상점을 업그레이드할 수 있겠어!'
마침내 고대하고 고대하던 상점 업그레이드가 가능해진다는 말에 정대식은 환호작약했다.
하지만 곧 현실적인 문제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이런, 이것은 펜리르 부대와 함께 획득한 거라서 정식 절차를 거쳐서 처분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마정석의 가격이 확 떨어질 텐데...... 엔트로피, 이만한 마정석의 시가가 지금 얼마지?'
<대략 200억 가량입니다.>
마정석치고는 엄청난 가격이었다.
그러나 880억에 비해서는 형편없는 금액이기도 했다.
'안 돼! 죽어도 200억엔 못 팔아! 680억을 어떻게 손해를 본단 말이야? 하지만 마정석을 상점에다 처분하고 880억이 생겨도 상점을 업그레이드하고 나면 돈을 다 써 버리는 셈이니 대원들에게 정산해 줄 돈이 없어진다.'
타이탄 공격대를 통해 처분하면 얼마의 금액이나마 정산을 받을 수 있겠지만 정대식의 상점 업그레이드에 써 버리고 나면 대원들은 10원 한 장, 땡전 한 푼도 받을 수 없는 것이다.
아무리 상점 업그레이드가 급하다 하더라도 아무런 상의도 없이 그런 짓을 할 수는 없었다.
어떻게 포장해도 정대식이 마정석 하나를 꿀꺽하는 셈이 되어 버려, 부대장으로서의 의무를 저버리는 행동일 뿐만 아니라 타이탄 공격대에서도 방출될지 모르는 중대한 잘못이었다.
정대식은 마정석을 만지작거리며 생각에 잠겼다.
그러자 김송근이 의아한 듯이 물었다.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정대식은 고민하다 말했다.
"아무래도 여기서 바로 결정해야 할 것 같군. 내 말이 다소 뜬구름 잡는 것 같다고 하더라도 이해해 주길 바란다."
정대식이 그렇게 말하자 엔트로피가 즉각 알려 왔다.
<알고 계시겠지만 데모크리토스 님에 대한 사항은.......>
'그래, 비밀이지. 알고 있다. 내 현질 능력에 대해서 털어놓으려는 게 아냐.'
정대식은 말문을 열었다.
"다들 내가 짐꾼이다가 짧은 시간 내 지금 이 자리에까지 온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또한 현재 네 가지 능력을 보유하고 있는 관계로 올인원이 될 가능성이 가장 높은 인물로 평가되고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겠지. 여기 몇몇은...... 그 사실과 방법에 의문을 품고 있을 것이다."
그 말을 하면서 정대식은 김태희를 쳐다보았다.
자신의 정체를 숨기면서까지 펜리르 부대에 들어오다니.
분명 그녀를 올인원으로 만들 방법이 없다고 말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강해지고자 하는 집념이 대단했다.
기철민은 또 어떠한가?
그는 부대원에 선발되지 못했으면서도 스스로 자원해 이곳에 들어왔다.
정대식이 아무것도 모르던 초보 시절을 기억하는 그로서는 정대식의 휘하에 들어오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대식에게 무어라도 얻고자 하는 마음에 자존심을 숙이고 있는 거였다.
그러니만큼 부디 이 방법이 두 사람에게, 아니 모든 대원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정대식은 말을 이었다.
"나 또한 나의 능력에 여러 가지 생각을 갖고 있었다. 개중 가장 주된 생각은 내 능력을 타인에게 나누어 줄 수 없는가, 하는 것이었지. 누군가의 질문에서 비롯된 이 생각은 점점 구체화되었고...... 몇 가지 조건이 갖추어진다면 불가능한 일이 아닐 것이라는 결론에 다다랐다."
그 말을 듣고 대원들이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그럴 만도 했다.
정대식은 지금 그들에게 자신의 능력을 나누어 줄 수도 있다고 말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다른 사람도 아닌 다중 능력자인 정대식이 말이다.
"그 조건이라는 데는 이 마정석이 필요하다. 그래서 여기서 묻고 싶다. 이 마정석을 내게 넘겨주고, 내 능력을 나눠받겠는가? 만약 한 사람이라도 반대한다면 마정석은 원래대로 타이탄 공격대로 가져간다. 그리고 현금으로 정산 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
술렁술렁.
대원들이 또 한 차례 수런거렸고, 곧 이재우가 질문을 던졌다.
"부대장님의 능력을 나눠받는다면...... 부대장님과 같은 이능을 갖게 된다는 말입니까? 여러 가지 종류의, 그런 능력 말입니다."
정대식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정확하게는 아니다. 내가 말을 잘못했군. 마력량을 늘려 준다는 말이 더 맞겠다."
그 말에 경악하듯 김송근이 말했다.
"마력량을 늘려 준다고요? 그게 가능한 일입니까?"
정대식은 고개를 끄덕였다.
"날 보면 알 텐데. 내 마력량은 처음엔 기껏해야 7, 8등급 수준으로 보잘것없었다. 하지만 점차 상승하여 지금은 5등급에까지 다다랐지. 마력량만 본다면 4등급에도 못지않다. 다들 알다시피 마력량만 늘어도 이능을 쓰는 데는 큰 도움이 되지. 공격의 질이 달라진다. 물론 이재우와 같이 마력량이 지금도 넘쳐나는 경우에는 내 제안이 별로 매력적이지 않을 수 있겠지만 다른 대원들에게는 마력량이 절실하리라고 본다."
"그럼 왜 처음부터 마력량이라 하지 않고 능력을 나누어 준다는 식으로 표현한 거죠?"
김태희의 날카로운 질문에 정대식은 말실수를 하지 않으려고 애쓰며 말을 이었다.
"내가 향상시켜 줄 수 있는 건 비단 마력뿐만은 아니기 때문이지. 체력, 근력, 민첩 등 기본적인 신체 상태뿐만 아니라 행운과 같은 것도 향상시켜 줄 수가 있다. 전반적으로는, 각자가 원하는 방향으로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도록 내가 도울 수 있다는 말이다."
그때까지 묵묵하던 고덕화가 한마디를 던졌다.
"거기에 필요한 것이 마정석이란 말입니까?"
"그래. 매번 마정석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이 마정석이 필요하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갈등하는 것인가?
그렇게 생각하기가 무섭게 기철민이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전 찬성입니다. 정산 같은 건 안 받아도 좋아요. 지금보다 더 강해질 수 있다면야......."
그는 주먹을 한 번 꾹 말아 쥐고 말을 이었다.
"사실 오늘 우리는 죽을 뻔했죠. 김태희가 갖고 있던 마력석이 아니었더라면, 일이 어떻게 되었을지 모릅니다. 그러니 오늘의 승리는 진정한 승리라고 할 수 없습니다. 요행이었죠. 하지만 오늘처럼 내 목숨을 운에 기대어 살아가고 싶지는 않습니다. 난 강해지고 싶습니다. 그걸 위해서라면 뭐든 아깝지 않아요."
기철민이 하는 말에 김태희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나도 마찬가지입니다. 난 강해지고 싶습니다. 그게 내 사명이니까. 강해져서...... 이계의 존재를 처단해야 합니다."
김태희의 힘 있는 말에 문득 이재우가 중얼거렸다.
"이계의 존재를 처단하라......."
"그리하면 힘을 얻을지니......."
서지원이 연이어 뇌까렸고, 그 역시도 고개를 끄덕이며 마정석 사용에 동의했다.
"저도 찬성입니다. 공간 마법이라는 능력을 갖고 있으면서도 전 항상 포탈 제작자와 비교되었어야 했죠. 마력량이 부족해서 제 능력은 반 토막밖에는 되지 않았으니까요. 마력량을 늘려 준다면야, 뭐든지 할 수 있습니다."
김송근도 마찬가지였다.
"저도 같습니다. 마력량이 늘어난다면 더 강력한 분신을 많이 만들어 낼 수 있겠죠. 제 능력은 순전히 마력량의 수준에 의해 결정 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니까. 정산쯤은 안 받아도 상관없습니다."
허미래도 냉큼 나섰다.
"저도요! 저도...... 이 불행의 능력을 벗어날 수만 있다면야......!"
마지막으로 고덕화가 조용히 동의했다.
"크툴루 부대에 있을 때와 같은 일이 두 번 다시 없을 수만 있다면. 전 상관없습니다."
그렇게 단 한 사람도 빠짐없이 마정석을 정대식 임의대로 쓰는 것에 합의했다.
정대식은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좀 희한한 기분을 느꼈다.
'이 녀석들, 사기당하기 딱 좋겠군. 내가 아무리 자기네 부대장이라고 하더라도 내 뭘 믿고 몇백억짜리 마정석을 맡긴다는 거지? 내가 거짓말을 하는지도 모르는 일이잖아? 그냥 입 싹 닦고 마정석을 혼자 꿀꺽할 수도 있는 건데. 그리고 내 말이 진짜라고 해도 그래. 이 마정석을 나누면 그래도 몇십억의 재산이 한 번에 생긴다. 그걸 날려 먹겠다니, 아깝지도 않나?'
정대식은 그 이유를 대원들에게 물어보고 싶었으나 쓸데없는 불안감을 줄까 봐 입을 닫았다.
사실 묻지 않아도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다.
헌터들은 대부분 강해지는 데 혈안이 되어 있었다.
비단 기철민이나 최희뿐만이 아니라, 다들 돈이 아닌 강해지는 데 목적을 두고 있는 것이다.
그러자 문득 헌터의 사명을 강조하던 강영후의 말이 떠올랐다.
'신에게 선택받아 마땅히 사명을 이행해야 한다고 했던가? 이계의 존재를 처단하는 것만이 헌터를 진정 강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라고.......'
어쩌면 헌터의 존재 목적 자체가 거기에 있는 것인지도 몰랐다.
정대식은 그 생각에서 자신과의 괴리를 느꼈다.
'내가 다른 헌터들의 신념에 동조할 수 없는 것은 엉뚱한 신의 선택을 받아서인지도 모르지. 재물과 탐욕, 대가의 신에게 선택받았으니 오죽하려고.'
정대식은 쓸데없는 상념을 그치고 말했다.
"좋아. 그럼 이 마정석은 내가 가져가겠다. 대신에 이번 사냥에서 획득한 아이템으로 발생한 수입에서 내 몫은 제외하겠다."
"아니...... 그럴 필요까지야......."
만류하려 드는 이재우의 입을 막고 정대식은 짧게 덧붙였다.
"우선은 던전을 나간다. 여기서 일어난 일이 어떻게 된 것인지 알아봐야 할 것 같으니까."
Chapter 35. 몬스터 브레이크
3층에 있어야 할 구울 나이트가 2층에서 떼거지로 나왔고, 8층에나 있어야 할 보스몹 언데드 퀸도 2층에서 등장했다.
이건 범상한 일이 아니었다.
가능성은 두 가지였다.
첫 번째, 던전 공략 시기를 놓친 것이다.
두 번째, 몬스터 브레이크가 터진 것이다.
이 두 가지 가설을 놓고 던전 밖으로 나가는 동안 대원들은 계속해서 설전을 벌였다.
아니, 설전이라는 표현은 정확하지 않았다.
대부분 두 번째가 아니길 바라며 첫 번째일 가능성이 높다는 식으로 몰아가면서 두 번째 가능성을 애써 부정하는 대화였다.
그리 높은 층수까지 올라간 것이 아니었기에, 펜리르 부대원들은 그렇게 오래지 않아 던전을 벗어날 수가 있었다.
던전 밖의 날씨를 흐렸고 외진 곳에 있는지라 사방은 조용했다.
펜리르 부대원들은 일사불란하게 지프에 나눠 타고 일단은 타이탄 공격대 본부가 있는 남양주시로 이동하기로 했다.
운전은 김태희에게 맡기고 차에 탄 정대식은 곧장 엔트로피를 불러내 물었다.
"밖에 별일은 없어? 뭐 새로운 소식이 없냐고."
던전 안에서는 온라인망이 구축되어 있지 않기에 엔트로피도 별 쓸모가 없었다.
타고난 웨이버인 나동일이라면 또 모를까, 온라인에 접속할 수 있는 환경이라야 했다.
그렇다고 치더라도 엔트로피의 정보 검색 기능은 폄하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