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질 전사-140화 (140/297)

# 140

현질 전사

- 6권 16화

* * *

정대식의 명령을 듣기는 들었으나, 계속되는 공격에 대원들은 몸을 빼내지 못하고 있었다.

정대식은 그런 그들에게 시간을 벌어 주기 위하여 갖고 있던 공격용 스크롤을 모조리 투척했다.

콰과광! 쾅! 퍼엉! 빠지지직! 파바바밧!

폭염과 빙결이 동시에 일어나며 사방팔방에 불꽃과 얼음 조각이 비산했다.

연기와 증기가 뭉게뭉게 피어오르고 시야가 가리는 틈을 타 대원들이 몸을 돌려 복도를 향해 달렸다.

정대식도 곧 그 뒤를 따라 달리려고 했으나, 그를 앞질러 날아가는 손톱이 보였다.

그게 채찍처럼 바닥을 후려치며 달아나는 대원들을 낚아채려 했다.

"어딜!"

정대식은 몸을 날려 그 손톱들을 깔아뭉갰다.

손톱은 휘리릭, 그의 몸을 휘감아 공중으로 내팽개쳤다.

절로 비명이 났으나 정대식은 어금니를 꾹 물었다.

여기서 소리를 치기라도 했다가는 상황을 알아차리고 대원들이 되돌아올지도 몰랐다.

대신에 링크된 엔트로피에게 명령했다.

'가서 대원들을 복도 저편으로 보내! 그리고 문을 닫으라고 해!'

엔트로피는 잠깐 정대식을 쳐다보고는 공중으로 휙 날아갔다.

엔트로피의 모습이 보이면 대원들이 정대식도 함께 있다고 착각할 가능성이 높았다.

그렇게 엔트로피를 보내고 나자, 곧 문이 닫혔다.

쾅!

비로소 정대식은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방금 자신이 무슨 짓을 한 건지 깨달았다.

'내가 뒤에 남기로 작정한 건가?'

맹세코 의도한 바가 아니었다.

그냥 그 상황이 그랬다.

대원들은 필사적으로 도망치고 있었고, 그 뒤를 언데드 퀸의 마수가 따라붙고 있었다.

누군가 막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었는데 하필 제일 뒷전에 정대식, 본인이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자신은 펜리르 부대를 책임지고 있는 부대장이다.

자신 외에 누가 뒤에 남아 언데드 퀸을 가로막는다는 말인가?

'제기랄! 이럴 생각은 아니었는데.'

소강두를 위해 자진해서 와이번의 둥지에 남았던 그때와는 상황이 다르다.

당시에는 살아서 빠져나올 자신이 있었다.

결코 죽음을 자초한 꼴은 아니었다.

그런데 지금은 죽기를 각오했다고밖에는 볼 수 없었다.

살기 위해서는 언데드 퀸의 공격을 무시하고 복도로 내달렸어야 했다.

그리고 생명력을 짜내서라도 신속을 써서 다른 대원들을 앞지르고, 그들이 언데드 퀸에게 당하는 동안에 도망쳤어야 했다.

그게 살아남는 방법이었다.

만약에 선택을 고민할 시간이 있었더라면 갈등했을 것이다.

어쩌면 서슴없이 살아남는 쪽을 택했을지도 모른다.

정대식은 이계의 존재를 처단하는 것도, 위대한 헌터가 되는 것도, 지금보다 더 강해지는 것도 관심 없었다.

그가 원하는 건 오로지 '돈'이었다.

거기에 동료애니 뭐니 하는 걸 끼우고 싶지는 않았다.

만약에 동료애 같은 게 필요하다면 돈을 위해서였을 것이다.

동료애를 저버려야지만이 돈을 벌 수 있다면 당연히 그 길을 선택한다.

그게 정대식이라는 인물이었다.

그런 그에게 돈만큼 중한 것이 있다면 자기 자신의 목숨뿐이다.

일단 살아 있어야 돈을 버는 것도 의미가 있으니까 말이다.

한데 잠깐의 판단 착오로 자신의 목숨을 저버리는 짓을 한 것이다.

그랬다, 판단 착오였다.

자기 자신을 희생해서 부대원들을 구한다?

이런 생각은 정대식의 머릿속에 존재하지 않았다.

그냥, 상황이 하도 급박하여 어쩌다 보니 이렇게 된 것이었다.

그렇다 보니 동료들만은 무사히 도망갔으리라는 안도감도, 자신이 남들을 위해 희생하고 있다는 자부심도 느껴지지 않았다.

정대식은 억울함과 비참함 속에서 한탄을 했다.

'멍청하긴! 도망을 쳤어야지! 거기서 남길 왜 남아!'

그렇게 자기 자신을 욕해 봤자 이미 늦었다.

정대식은 언데드 퀸의 손톱에 칭칭 휘감긴 채 언데드 퀸의 코앞에 행차하는 꼴이 됐다.

언데드 퀸은 정대식을 붙잡은 상태로 잠시 한눈을 팔고 있었다.

아마 다른 대원들을 쫓느라 그런 것일 테다.

하지만 다 놓쳐 버린 게 분명했다.

그것을 인식한 언데드 퀸은 곧 분노에 찬 표정으로 정대식을 돌아보았다.

달아난 놈들을 대신해서 정대식을 가장 비참한 방법으로 죽일 준비가 되어 보였다.

'망할! 차라리 자살해? 그 편이 더 나을 것 같기도 하고.'

정대식은 혼란스러운 심정으로 언데드 퀸을 보았다.

지금 상황에서 그가 살아남는 방법은 단 한 가지뿐이었다.

언데드 퀸에게 영혼이 삼켜져 구울이 되는 것이다.

그 꼴이 과연 살아 있다고 볼 수 있을지는 의문이지만 아무튼 간에 그랬다.

언데드 퀸은 주변을 배회하는 유령들을 성가신 듯 쫓아냈다.

그리고 정대식을 가까이로 끌어당겼다.

언데드 퀸과 정담을 나눌 만큼 가까워진 정대식은 언데드 퀸이 입을 쩍 벌리는 것을 보았다

또 독무를 토해 내는 것인가 생각했으나 아니었다.

언데드 퀸의 입 안에는 어둠뿐이었다.

뻥 뚫린 구멍 같은 그곳이, 숨을 훅 들이켜자 뱃속에서 무언가가 울컥 치밀어 올랐다.

"으헉."

정확히는 말초 신경에서부터 감각이라고 해야 할지, 무어라 설명할 수 없는 게 빠져나가는 느낌이었다.

그러면서 목구멍이 불타는 듯 뜨거워지고, 강력한 토기가 치밀었다.

정대식은 발끝, 손끝에서부터 빠져나온 자신 안의 무언가가 입 밖으로 밀려 나오는 것을 느꼈다.

빌어먹게도 그게 영혼인지, 생명력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정대식에게 아주 중요한 무언가인 것만은 맞는 것 같았다.

'이거 실화냐? 나 여기서 죽는 거야?'

정대식이 도무지 믿기지 않는 현실 앞에서 몸부림치던 그때였다.

"어디다 그 더러운 주둥이를 갖다 대?"

신경질적인 목소리가 울리며, 희극적인 장면이 펼쳐졌다.

공이에 가시가 돋친 커다란 절구가 날아와 언데드 퀸의 관자놀이를 후려친 것이다.

"꺄아아악!"

코앞에서 그 광경을 보게 된 정대식은 언데드 퀸의 얼굴이 소보로빵처럼 찌그러지는 것을 보았다.

언데드 퀸이 엄밀히 말해서 살아 있지 않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그 살과 뼈가 썩다 말았기에 소보로빵의 토핑처럼 살점들이 후두둑, 떨어져 나갔다.

동시에 검기가 번쩍, 하고 지나갔다고 느낀 순간 정대식을 붙잡고 있던 손톱이 끊어졌다.

정대식은 아래로 떨어지다 자세를 잡고 바닥에 착지했다.

그리고 한 사람도 빠짐없이 모조리 회랑으로 되돌아와 있는 대원들을 보았다.

'아니?'

* * *

정대식은 대원들이 늘어선 광경을 보고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그러다가 곧 얼굴을 일그러트리고 말했다.

"어떻게 된 거야? 탈출에 실패했나?"

대답한 사람은 서지원이었다.

"아닙니다. 공간 복구는 성공했습니다."

"그런데 왜 다들 여기 있어?"

정대식이 무슨 짓이냐고 따지듯이 묻는 말에 이재우가 말했다.

"그럼, 우리가 부대장을 버리고 가겠어요?"

"그럴 순 없죠!"

허미래가 주먹을 불끈 쥐며 말하자 김송근도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부대장을 남겨 놓고 우리만 살겠다고 도망칠 만큼 염치가 없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기철민만큼은 표정이 불만스러워 보였다.

그는 입을 꾹 다물고 있다가 정대식의 눈길이 그쪽을 향하자 짜증스레 내뱉었다.

"참고로 말하지만 난 반대했습니다.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부대장은 상관없다고 했지 않습니까?"

기철민은 정대식이 예전에 한 말을 기억하고 있었다.

최선과 나동일이 실종되었을 때, 자신이라면 낙오해 버림받더라도 동료들을 원망하지 않겠다, 고 말한 적이 있었던 것이다.

그때 일로 기철민이 화를 냈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은 몰라도 기철민이 돌아온 것은 의외의 일이었다.

왜 돌아왔냐는 듯 묵묵히 묻는 시선을 보고 기철민은 고개를 휙 돌렸다.

"하지만 다른 대원들이 전부 부대장을 구하러 가겠다 하니 어쩔 수 없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혼자 몸을 빼내는 것보다 함께 행동하는 편이 안전하다 판단한 겁니다."

대원들은 차갑게 말하는 기철민을 향해 못마땅한 눈총을 날렸으나 정대식은 그들의 선택에 통탄을 금할 수가 없었다.

정대식의 기분도 모르고 김태희는 심지어 분노를 하고 있었다.

"어떻게 혼자서 여기 남을 수가 있죠? 정말이지...... 어이가 없어서!"

그러나 그보다 더 분노한 사람은 정대식이었다.

정대식은 자신이 답지 않게 한 일이 아무런 소용이 없어졌다는 사실을 깨닫고 역정을 냈다.

"이건......! 이건 명령 불복종이다! 내가 틀림없이 도망치라고 했을 텐데! 누가 돌아오라고 했어!"

그 말에 줄곧 말다운 말을 단 한마디도 안 하고 있던 고덕화가 입을 열었다.

"동료를 희생시켜 살아남을 바에야, 차라리 같이 죽겠습니다."

그가 그리 말하는 것은 무게가 달랐다.

그는 이미 부대원들이 몰살당하다시피한 경험이 있었다.

그런 그가 그렇게 말하자 정대식도 더는 할 말이 없었다.

그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고 더 이상 왈가왈부할 여유도 없었다.

곧장 정신을 차린 언데드 퀸이 반격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키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귀청을 찢어 놓는 피어를 시작으로 언데드 퀸이 스펑키를 뿌렸다.

그게 허공에서 펑펑 터지며 시야를 교란했고 그 틈을 타 예의 손톱 공격이 날아들었다.

그러자 고덕화가 풍창파벽으로 그 공격을 날려 보냈고, 김송근의 분신들이 언데드 퀸에게로 달려가 그 팔을 구속했다.

언데드 퀸에게 가 닿자마자 분신들의 몸이 썩어 내리기 시작했으나 어차피 분신이었기에 상관없었다.

김송근은 재차 분신을 만들어 내어 언데드 퀸의 다리에 달라붙었다.

동시에 허미래가 포스 오브 그래비티로 언데드 퀸을 억류했고, 위켄 디펜스로 방어력을 약화시켜 놓았다.

그리고 기철민과 이재우의 철갑 기사가 양쪽에서 언데드 퀸을 베어 들어갔다.

"천래일섬!"

그 광경을 보고 정대식은 크게 놀랐다.

대원들이 다들 마력을 회복해 있었던 것이다.

어찌 된 일인지 영문을 몰랐으나 방법을 물을 새가 없었다.

콰과과과과!

썩어 가는 김송근의 분신과 함께 기철민이 언데드 퀸의 오른팔을 잘라 냈다.

철갑 기사도 언데드 퀸의 왼손을 메이스로 뭉개 놓았다.

"캬아아아아아아!"

언데드 퀸이 비명을 터트리자 또다시 유령들이 미쳐 날뛰기 시작했다.

곧 사방이 시커멓게 물들며 언데드 퀸의 모습을 가렸다.

언데드 퀸은 유령들 뒤로 숨으며 죽음의 독무를 한 바가지 토해 놓았다.

절대 닿아서는 안 되는 그 독무가 사방으로 번지고, 고덕화가 다시 한 번 바람을 일으켜 독무를 밀어내려고 했으나 유령들이 천강벽수선을 에워싸고 그를 방해하고 있었다.

유령들이 뒤덮인 그 광경은 그야말로 아비규환.

무슨 수를 썼는지는 몰라도 다들 마력을 회복한 상태인데도 불구하고 언데드 퀸을 상대하기가 만만치 않았다.

그런데 항상 조용하기만 하던 허미래가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젠 싫어......."

분명 작게 말하고 있는데 바로 귓전에서 속삭이는 것 같은 울림을 가지고 사방으로 퍼지고 있었다.

"너 때문에 부대장님이 죽을 뻔했잖아!"

허미래가 답지 않게 화를 내는 가운데, 정대식은 갑자기 누군가 팔을 건드리는 것을 느끼고 깜짝 놀랐다.

그가 반사적으로 움찔거리자 김태희가 나타나 그 손에 무언가를 쥐어 주었다.

정대식은 그걸 들어 보고는 눈을 크게 떴다.

"이건......?"

김태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마력석이에요."

"서지원이 만든 겁니까?"

정대식이 묻는 말에 김태희가 고개를 저었다.

"아뇨, 이건 내가 갖고 있던 겁니다. 설명할 시간이 없으니 빨리 섭취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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