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7
현질 전사
- 6권 13화
마기포를 쓸 수야 있겠지만 그럼 마력이 다 동나 버린다.
여기서 철수한다 하더라도 돌아가야 할 길이 남아 있고, 다른 대원들이 나머지 구울 나이트를 다 쓰러트린다는 보장도 없었다.
아무래도 위험 부담이 있어서 정대식은 구울 나이트와 공방을 벌이며 엔트로피에게 말했다.
"안 되겠다, 새 공격 기술이 필요해! 엔트로피, 일전의 그걸......."
<구입하시겠습니까?>
"그래, 산다! 사겠다! 그리고 레벨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해 줘!"
<알겠습니다.>
엔트로피는 즉각 정대식의 말을 시행했다.
<반격권 스킬을 구입하고 천만 원을 차감합니다.>
<반격권 스킬을 Lv2로 업그레이드하고 10억을 차감합니다.>
최근에 정대식은 잠자기 전 상점에 어떤 스킬이 있고, 무슨 기능이 있는지 탐색하다가 잠을 청하곤 했다.
그러다가 발견한 이 공격 스킬이 꽤 탐난다고 생각을 했으나, 상점 업그레이드를 위해 한창 돈을 모으는 중이었기에 구입을 안 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마력을 아껴야 하다 보니 마기전을 계속해서 펑펑 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강력권보다 더 강력한 한 방이 필요하다 판단하고 반격권을 구입한 정대식은 즉시 그 스킬의 사용을 시도했다.
"반격권!"
우우우웅-.
정대식의 전신에서 푸르스름한 빛이 감돌던 그때.
정대식이 스킬을 내지르는 것보다 구울 나이트의 공격이 한 발 더 빨랐다.
구울 나이트의 해머가 그의 심장이 자리한 부분을 정확히 노리고 들어왔다.
쇠머리 부분이 아닌, 반대편에 붙어 있는 날 부분이 정대식의 가슴팍으로 파고들었다.
꽈아아아앙-!
단순히 칼날에 찔렸다고 생각할 수 없는 굉음이 터졌다.
방어구까지 입고 있는데 거기 한 번 찔렸다고 치명타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구울 나이트도 당연히 그 사실을 알고 있을 터.
고위급 몬스터가 갖고 있는 특수한 능력.
사람으로 치자면 마력에 해당되는 기운, 사력(邪力)이 실린 공격이 정대식의 배틀 슈트를 찢어 놓았다.
푸확!
"커억!"
비록 해머의 날은 정대식의 살갗을 꿰뚫지 못하고 튕겨 났으나, 사력은 그의 전신에 충격을 떠안겼다.
강철 신체가 아니었으면 이미 죽은 목숨이었을 테다.
그러나 강철 신체로 한 번의 공격을 버텨 낸 정대식은,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는 다리를 경련하며 피가 섞인 기침을 한 번 토해 냈다.
"쿨럭."
하지만 그 얼굴은 웃고 있었다.
정대식은 약간 실성한 것처럼 웃더니, 그를 아예 끝장내기 위해 다시 한 번 더 해머를 치켜드는 구울 나이트에게 주먹을 뻗었다.
"이거나 먹어랏!"
쐐애애애액!
주먹이 그 짧은 거리를 이동한다고는 생각할 수 없을 만큼, 공기와 세차게 마찰했다.
거기에 휘감기는 기운이 엄청난 속도로 추락하는 유성과 마찬가지 현상을 일으켰다.
소용돌이치며 정대식의 주먹과 손목, 팔과 팔꿈치, 어깨를 온통 휩싸고 도는 그 기운은 두 가지였다.
푸른빛의 마력과, 붉은빛의 사력이다.
그 두 가지가 뒤섞여 불길한 보랏빛을 내뿜었다.
그게 찰나의 순간, 구울 나이트에게로 파고들어 갔다.
쿠------------콰아아아아아앙!
여태까지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의 섬광과 굉음이 터져 올랐다.
보라색으로 작렬하는 그 빛은 파이어 드래곤 본으로 만들어진 너클 글러브의 효과와 맞물려 유성이 바다에 추락한 것과 같이 엄청난 폭발과 불꽃, 연기와 증기를 한꺼번에 일으켰다.
콰아아아아아아!
무슨 폭탄이라도 터진 것처럼 소규모의 뭉게구름이 일어났다.
그 난리가 얼마나 대단했던지 한창 싸우고 있던 구울 나이트와 다른 대원들까지 모조리 그쪽을 쳐다볼 정도였다.
회랑을 떠받친 기둥이 흔들거리고 땅이 쩍 소리를 내며 갈라질 지경이라 쳐다보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쉬이이익-.
잠시간이 흐르고 간신히 후폭풍이 가셨을 때, 정대식은 원래 서 있던 자리에서 반대쪽으로 날아가 처박혀 있었다.
누가 보면 그가 공격을 당했다고 착각할 만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정대식이 끙, 하는 신음을 흘리며 금세 자리에서 일어난 반면에, 그와 대적하고 있던 구울 나이트의 상태는 그만큼 좋지가 못했다.
구울 나이트는 가슴에 커다란 구멍이 뻥 뚫려 있었다.
사실상 상반신은 거의 다 날아갔다고 봐도 무방했다.
양쪽 팔이 간신히 모가지와 붙어 있던 어깨에서 덜렁 떨어져 나갔고, 그러자 투구를 쓴 머리도 아래로 힘없이 꺾여 바닥을 굴렀다.
절명한 구울 나이트를 보며 정대식은 피가 묻은 입가를 닦으면서 씩 하니 웃었다.
"공격에 성공해서 기분 좋았냐? 이 개자식아! 이게 바로 반격권이라는 거다."
반격권은 정대식이 현재 상점에서 구입할 수 있는 근거리 공격 중에 가장 강력한 스킬이었다.
한데 이 스킬에는 단점이라고 해야 할지 제약이라고 해야 할지, 그런 조건이 하나 붙어 있었다.
스킬을 시동하고 나서 반드시 적의 공격을 한 방 맞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고 나서야 비로소 이쪽에서 공격을 가할 수가 있었다.
반격권의 특징은 적의 선제공격이 강하면 강할수록, 반격의 위력도 더 커진다는 사실이었다.
적이 이쪽을 죽이려 든다면, 이쪽에서도 상대의 목숨을 결딴낼 공격을 가할 수가 있었다.
단, 선제공격을 허락해야 한다는 제한 조건 때문에 위험 부담이 상당했다.
만약 상대의 공격력이 이쪽의 방어력보다 더 높다면 즉시 사망에 이르기 때문에 반격권의 사용이 의미가 없다.
반격을 할 기회조차 얻지 못하고 스스로 공격을 자초하여 개죽음 당하는 꼴이 된다.
반격권을 시동하고 나서 상대가 공격을 하지 않아도 문제였다.
반드시 상대의 선제공격을 한 번 허락해야 반격권의 효과가 발휘되기 때문에, 이쪽에서 먼저 공격을 해 버리면 그냥 주먹을 쓰는 것과 하등 다를 바가 없었다.
반격권을 시동하느라 애꿎은 마력만 낭비하게 되는 셈이었다.
그러나 일단 한 번 사용해 보니 확실히 그러한 부분을 감수하고서라도 쓸 만한 스킬이기는 했다.
위기의 순간에 이르러 한 번에 전세를 역전시킬 수 있는, 카운터와 마찬가지 역할을 하는 것이다.
쓰기에 따라서 비장의 무기가 될 수 있는 스킬이었다.
'아우...... 근데 이거 완전히 몸으로 때우는 거라 좀 아프네.'
정대식은 구울 나이트가 도로 재생하지 못하도록 재빨리 터닝 스크롤을 찢었다.
그리고 신음을 삼키며 몸을 살펴보았다.
목숨을 결딴내려 파고들었던 사력은 반격권으로 도로 방출되어 그에게 어떤 영향도 미치지 못했다.
하지만 해머로 인한 공격은 유효했기에 한 방 얻어맞은 가슴팍이 욱신욱신 쑤셨다.
무엇보다 속상한 건 배틀 슈트가 상했다는 거였다.
정대식의 신체는 스킬의 작용으로 치명타를 입지 않았으나 방어구였던 배틀 슈트는 사정이 달랐다.
날이 파고들었던 부분이 길게 찢어져 수선이 필요해 보였다.
그걸 보고 울상을 한 정대식을 향해 엔트로피가 어떤 사실을 주지시켜 주었다.
<그 방어구는 자가 수복 기능을 갖추고 있습니다.>
"아, 그렇지!"
정대식은 마력을 그 자리에 흘려 넣었다.
그러자 배틀 슈트가 찢어진 자리에서 푸르스름한 실이 돋아나 자동적으로 엉겨 붙었다.
금세 찢어진 자리는 감쪽같이 사라져 버렸고 우그러진 보호대도 다시 펴졌다.
'이거 진짜 편리하네! 역시 AAA급 아이템답다.'
감탄하던 정대식은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주변에선 다른 대원들이 구울 나이트와 필사적으로 싸우고 있는 상황이었다.
정대식마저도 새 스킬을 사용해서 처치할 수 있었을 정도였으니, 대원들이 구울 나이트를 처치하기에는 무리가 있을 터였다.
무엇보다 이미 100마리나 되는 구울을 죽이느라 많이 지친 상태일 것이다.
정대식은 즉시 그들에게로 달려가려다가, 잠시 생각을 바꿨다.
배틀 슈트의 또 다른 기능이 머릿속에 떠올랐을 뿐만 아니라 그가 대신 나서서 싸워 주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판단되었기 때문이다.
* * *
정대식은 가장 가까이에 있는 김송근과 고덕화에게로 달려갔다.
두 사람은 닥치는 대로 공격을 가하느라 기진맥진한 상태였다.
구울 나이트를 잘 상대하고는 있었으나 둘 다 놈을 결딴낼 만한 결정적인 한 방을 터트리지 못하고 있었다.
김송근이 닥치는 대로 분신을 만들어 내어 구울 나이트를 포박하고, 그사이에 고덕화가 일격을 먹이려 했다.
하지만 구울 나이트가 만만치 않아 김송근의 분신을 계속해서 죽이고 있었다.
거기에 마력을 소모해 버린 김송근은 더 이상 분신을 만들어 낼 상황이 안 되는 것 같았다.
그가 만들어 내는 분신은 전부 노인이거나 어린아이였다.
힘을 쓸 만한 모습, 즉 청년의 모습을 한 분신은 한 명도 없었다.
급기야 김송근 본인이 구울 나이트에게 달려들어 놈을 가로막은 채, 고덕화를 향해서 악을 쓰고 있었다.
"난 상관 말고 어서 공격하라니까! 내 분신술은 이제 한계에 다다랐단 말이야!"
그러나 고덕화는 김송근의 말을 무시하고 있었다.
그는 별 타격도 안 되는 자잘한 공격만을 가할 뿐, 김송근을 신경 쓰느라 제대로 된 일격을 가하지 못하고 있었다.
사실 김송근의 제안대로 하려면 분신들로 구울 나이트의 억류가 가능할 때 진즉 공격을 했어야 했다.
하지만 무슨 연유에선지 공격의 타이밍을 놓쳐 소모뿐인 지지부진한 싸움을 계속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김송근의 마력이 다 소진되어 버리면 끝장이었으므로, 김송근은 계속해서 소리를 쳤다.
"공격해! 제발 공격하라고! 설령 내가 죽는다고 해도 원망하지 않을 테니까!"
정대식이 보기에 그건 좋은 방법이 아니었다.
고덕화는 김송근이 하는 말을 듣고 무표정하던 얼굴로 인상을 찌푸렸다.
그는 김송근을 다치게 하면서까지 구울 나이트를 공격할 수 없는 것 같았다.
천강벽수선을 쥐고 있는 그의 손이 미미하게 떨리고 있었던 것이다.
정대식은 그쪽으로 달려가며 배틀 슈트의 보호대 옆에 붙은 다이얼을 돌렸다.
그리고 엔트로피의 실체화를 해제했다.
그러자 그의 모습이 순식간에 주위 풍경에 녹아나듯 흐릿해져 버렸다.
배틀 슈트에는 위장 기능이 있어 완벽하게 모습을 감추지는 못한다고 하더라도 혼란스러운 전투 상황에서는 얼마든지 들키지 않고 적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가 있었다.
그 상태로 고덕화를 스쳐 지나가며 재빨리 명령을 내렸다.
"나 부대장이다! 내가 김송근을 대신해서 구울 나이트를 붙잡아 놓겠다. 그 틈을 타 공격해!"
고덕화는 정대식이 가까이 온 걸 모르고 있었다가 움찔 놀랐다.
하지만 금세 침착을 되찾고 말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김송근이 쓰러지자마자 공격해라!"
정대식은 고덕화를 지나쳐 김송근 및 그의 분신들과 뒤엉켜 악다구니를 쓰고 있는 구울 나이트에게로 다가갔다. 구울 나이트는 쉴 새 없이 나타나 자신을 방해하는 분신들이 성가셔 미쳐 버릴 것 같은 게 분명했다.
괴성을 터트리며 김송근의 늙고 어린 분신들을 잔혹하게 도륙하고 있었다. 그 바람에 점점 분신이 아닌 김송근이 직접 구울 나이트를 상대하는 횟수가 늘어나고 있었다.
"고덕화! 빨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