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질 전사-124화 (124/297)

# 124

현질 전사

- 5권 24화

"젠장! 마력이 동이 났어요! 포션도 다 썼다고요, 서지원에게서 마력석을 받아야......."

사실 이재우의 마력은 이 정도로 바닥날 수준이 아니었다.

그의 마력량은 5등급에 준할 정도로 방대했고 부대원들 중에서도 최고였다.

한데 막 던전에 들어와 첫 번째 포워르 무리를 맞닥뜨렸을 때, 자신만만하게 전방으로 나섰던 이재우는 자신의 실력을 뽐내려고 무리한 짓을 했다.

소형종인데다가 수가 많고 무리를 지어 다니는 포워르에게는 해당 사항이 없는 능력을 펼쳤던 것이다.

그 바람에 애꿎은 마력을 몽땅 낭비해 버렸다.

그 여파가 지금에야 나타나고 있는 상황이었다.

정대식은 이재우를 서지원에게로 밀치며 말했다.

"내가 탱킹할 테니 가서 마력석을 받아!"

그때 다시 포워르 떼가 우르르 몰려왔다.

곳곳에서는 거대 유령인 스프리건이 솟아오르고 있었고, 포워르 사이에 뒤섞인 키홀들이 살인 광선을 내뿜고 있었다.

'완전히, 아수라장이군.'

어디서부터 일이 꼬였는지 모르겠다.

이재우가 명령을 무시하고 거만을 떨어 대던 순간부터였을까?

아니면 쌀쌀맞은 김태희의 태도에 상처받은 허미래가 당황하기 시작했을 때부터였을까?

그도 아니라면 김송근의 능력을 계산에 넣지 못한 자신의 탓인지도 모르겠다.

하여간에 완전히 엉망진창이었다.

정대식은 어금니를 꽉 물었다.

'정신을 차려야지.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야.'

그는 재빨리 전열을 가다듬었다.

"고덕화, 내 옆에 서! 기철민과 김태희가 허미래를 가운데 끼우고 2열에 선다! 김송근과 이재우가 3열에서 공격을 준비한 후 내 신호를 기다려! 이번에도 멋대로 행동했다간 가만 안 두겠다! 서지원은 후방에서 뒤를 방어하고 몰려오는 포워르를 가능한 한 막아!"

정대식이 고래고래 고함을 치자 어설프게나마 다시금 싸울 만한 상황이 되었다.

정대식은 앞으로 달려나가며 고덕화에게 소리쳤다.

"날 무시하고 스프리건들을 날려 버려!"

"풍창파벽!"

콰아아아아아아아!

정대식의 명령에 고덕화가 천강벽수선을 크게 부치며 마력을 싣자 엄청난 강풍이 등 뒤에서부터 불어왔다.

정대식은 부유 신체로 몸을 무겁게 해 그 바람을 버텨 내며 달렸다.

"아르르르르!"

"우아아아아아!"

세찬 바람에 영체인 스프리건이 몽땅 흩어져 버렸다.

다시 모이기야 하겠지만, 그때까지는 다소 시간이 걸릴 터였다.

남은 것은 포워르 떼거지와 키홀들이었다.

정대식은 김송근과 이재우가 제 실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마력을 보충할 시간을 벌어 주기 위하여 링크된 엔트로피와 스킬을 썼다.

"도발!"

<적의 집중.>

수많은 몬스터의 시선이 한 번에 정대식에게로 꽂혀 들었다.

그들의 신경을 몽땅 제 쪽으로 끌어다 놓고 정대식은 마기전을 사용했다.

"마기력!"

파츠츠츠츠츠!

그의 손에서 마력이 마치 고압 전기처럼 진저리를 치며 사방팔방으로 뻗어 나갔다.

그게 번개처럼 포워르 무리를 덮쳐들었고 포워르가 비명을 지르며 죽어 나갔다.

"뀌에에엑!"

"뀌아아아!"

"허억!"

마기력을 마구잡이로 휘두르던 정대식은 오래지 않아 공격을 거두어들여야 했다.

영혼까지 빨리듯 마력이 쑥 닳아 가는 게 느껴졌던 것이다.

'최선이 경고했던 대로다! 마기전은 강력한 효과를 발휘하는 대신에 그만큼의 마력을 소진해 버려!'

그의 주변에 있던 포워르들은 마기력에 구워져 이미 죽었으나 포워르의 숫자가 워낙에 많았다.

공중에 떠 있던 키홀들도 죄다 멀쩡했다.

놈들은 일점 사격을 하듯 동시에 정대식에게로 살인 광선을 쏴 냈다.

"마기장!"

정대식은 마기장을 방패처럼 휘둘러 살인 광선을 튕겨 냈다.

반사된 광선이 몇몇 포워르들을 족쳤으나 티도 안 났다.

그만큼 포워르의 수가 많았다.

2열의 김태희와 기철민은 허미래를 지키며 접근하는 포워르를 상대하기도 바빴고, 3열은...... 정대식이 아직도 멀었느냐고 소리를 치려던 찰나였다.

"30분형!"

"......작품명, 염소 잡아먹는 열두 마리 뱀!"

이재우가 한 발짝 늦기는 했으나, 아무튼 3열이 제 기능을 하기 시작했다.

무려 서른 명이나 되는 분신을 만들어 낸 김송근이 분신들과 함께 사방팔방으로 뛰쳐나갔고, 이재우가 만들어 낸 열두 마리의 큰 뱀도 염소 머리를 한 포워르를 닥치는 대로 잡아먹기 시작했다.

덕분에 좀 여유가 생긴 김태희와 기철민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천랑비검!"

"블랙홀!"

허미래도 조금쯤 여유를 되찾고 디버프를 걸었다.

"미스테이크!"

그녀가 허공에 날려 보낸 검은 나비가 달라붙은 포워르들이 자기네들끼리 공격하기 시작했다.

서지원도 전황이 변한 것을 알고 보다 침착하게 마법을 구사했다.

"공간 분리!"

포워르의 전열이 흐트러지며 놈들이 속수무책으로 당하기 시작했다.

정대식은 포워르를 나머지 대원들에게 맡기고 키홀을 처치하기 위해 허공으로 몸을 날렸다.

<신속.>

"강력권!"

정대식은 마기전으로 자신을 보호하는 동시에, 허공을 날아다니는 키홀을 정확히 한 마리씩 잡아 죽였다.

키홀은 본디 겁이 많아 자기네의 수가 줄자 뿔뿔이 도망가 버렸다.

스프리건도 흩어지고 키홀도 사라지자 겁을 상실하고 있던 포워르들도 갈팡질팡했다.

결국 정대식의 명령으로 서지원이 그들을 도망치게 했다.

"헉, 헉."

"후우, 후."

몬스터 떼가 사라지자 다들 기진맥진해 자리에 주저앉았다.

정대식은 차가운 눈으로 그들을 내려다보았다.

솔직히 말해 완전히 기대 이하였다.

대원들은 손발이 하나도 안 맞았다.

안 맞다 뿐이랴, 서로 싸우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이다.

만약에 포워르의 수령인 발로르가 나타나기라도 했더라면 누구 하나는 기어코 죽거나 크게 다쳤을 것이다.

별다른 피해 없이 몬스터를 물리친 건 천운이라고 할 만했다.

정대식은 이를 뿌득 갈았고, 대원들은 고개를 푹 수그린 채 정대식의 눈치를 봤다.

정대식이 타이탄 공격대에서 가장 강한 자들이라고 직접 선발했는데, 정식 임무도 아닌 훈련에서 엉망진창이었으니 눈치를 볼 법도 했다.

맘 같아서는 정대식도 크게 한 소리 하고 싶었으나, 그러지 않았다.

이 같은 사태를 예측 못한 본인 잘못도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능력 외 부분은 전혀 고려를 하지 않은 탓일까? 한 명 한 명을 보면 나쁘지 않은데 다 같이 모아 두고 보니 최악이다.'

서지원은 공간 마법이라는 대단한 능력을 지니고 있는 마법사였다.

능력으로만 본다면 타이탄 공격대 내에서도 최고이고, 현존하는 마법사들 중에서도 손에 꼽을 만했다.

하지만 상황 판단이 느리고 자주성과 과감성이 부족했다.

급박한 전투 중에 정대식이 모든 사항을 일일이 지시를 해 줄 수는 없었다.

어느 정도는 본인이 알아서 판단하고 대처해야 하는데 그런 쪽의 능력이 전무했다.

상상력이나 응용력도 떨어져서 본인이 가진 능력을 전투 상황에서 제대로 발휘하지 못했다.

즉, 마법사치고는 머리가 나빴다.

머리 나쁜 마법사라니!

듣도 보도 못한 일이다.

정대식은 마법사는 전부 천재라는 자신의 편견을 내다 버리고 고덕화를 바라보았다.

그 역시도 실력은 나쁘지 않았으나 협조성이 꽝이었다.

전투 도중에 종종 넋을 놓는 경우도 있었고, 명령에 따르기는 하지만 의욕이 전무해 보였다.

크툴루 부대에 있을 때 겪은 일 때문인지, 다른 대원들과 거리를 두려 하는 모습이 확연했다.

전투 상황에서도 그런 거리감이 고스란히 드러나 제 몫을 못하고 있었다.

그나마 김송근, 기철민, 김태희, 이 세 사람이 나았는데 그들조차도 전부 따로 놀았다.

김송근은 분신 술사라 그런지 또 다른 자신과 싸우는 데만 익숙해 보였다.

그의 분신이 다른 대원의 공격 범위로 뛰어든다든지 진로를 방해한다든지, 걸리적거리는 일이 많았다.

김태희는 전투 실력도 우수하고 상황 판단도 뛰어나고 싸우는 데 있어서는 나무랄 데가 없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을 신경 쓰지 않고 싸우는 것은 그녀 역시도 똑같았다.

타 부대에 있다 온 것이 아니라 그런지 팀을 꾸려 사냥하는 상황 자체가 어색해 보였다.

더욱이 그녀가 가진 가장 폭발력 있는 스킬을 주위 사람들 때문에 못 쓰고 있어 불만이 있는 것 같았다.

최악은 역시, 이재우였다.

정대식은 던전으로 들어와서야 몇 번이나 여수희가 왜 그를 내보내고 싶어 했는지를 비로소 알 것 같았다.

이재우는 종이 술사로, 본인이 종이 위에 그려 내는 거라면 뭐든지 실체화시킬 수가 있었다.

구현계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종류의 능력이고, 소환술이나 정령술, 강신술에 준할 정도의 구현이라 그 효과가 대단히 뛰어났다.

문제는 이재우의 그 성난 망아지 같은 성격이었다.

그는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지 못해 안달 난 관심종자로 보였다.

약간은 ADHD 성향이 있는 것 같기도 했다.

그는 기분이 들쭉날쭉했고 한시도 가만있지 못했다.

수시로 다른 대원들을 귀찮게 구는가 하면, 별것 아닌 일로 시비를 걸거나 화를 냈다.

기본적으로는 정대식에게 호감을 갖고 있어 아직까진 잘 보이려고 애를 쓰고 있는 만큼 큰 문제는 일으키지 않고 있었지만, 그의 성격 자체가 문제라면 문제였다.

던전에 들어와 첫 전투가 벌어진 상황에서 일어난 일도 그랬다.

포워르를 상대할 만한 걸 만들어 내라고 했는데 엉뚱하게도 거인을 만들어 내었던 것이다.

그 거인이 어찌나 큰지 목이 하늘을 뚫을 지경이었다.

얼굴도 보이지 않을 정도이니 마력을 얼마나 썼겠는가.

이재우는 그걸 만들어 놓고서 의기양양하게 몬스터를 쓸어버리라고 소리쳤다.

하지만 부대원들 전부가 몬스터들 가운데 있었던지라, 포워르를 쾅쾅거리고 짓밟는 거인의 발에 오히려 부대원들이 깔릴 지경이었다.

결국, 정대식이 그 거인을 도로 없애게 했고, 그것 하나로 이재우는 마력을 몽땅 소진해 버려 정작 위기 상황에 왔을 땐 아무런 도움이 안 됐다.

'믿을 건 기철민뿐이군.'

기철민은 사방에 아수라장이 벌어져도 침착하게 자신의 싸움을 펼쳐 나갔다.

정대식의 명령도 즉각 알아듣고 그대로 이행했으며 돌발 상황에서도 적합하게 대처를 했다.

또한, 그는 전황을 읽을 줄 아는 재주가 있어서 정대식이 무어라 말하지 않아도 빈틈이 있으면 그곳으로 달려갈 줄 알았다.

물론, 기철민이라고 아무 문제가 없는 건 아니었다.

그는 기본적으로 성격이 좀 삐뚤어져 있고 입이 험했다.

정대식과 있었던 일을 돌이켜 봐도 그렇고, 지금도 날카로운 혀로 비호감을 자처하고 있었다.

"......선발전까지 치러 가며 들어온 부대에 얼간이가 둘이나 있을 줄이야."

기철민이 한숨을 내쉬며 하는 말을 듣고 당장에 이재우가 눈을 부라렸다.

"뭐야?"

기철민은 그런 이재우를 보고 얄밉게 어깨를 으쓱였다.

"왜, 찔리나 보지? 그 얼간이 중 한 명이 너라는 말은 안 했는데?"

"이 자식이!"

정대식은 당장에 기철민의 멱살을 잡는 이재우를 보고 일갈했다.

"그만!"

정대식이 한 말은 그 말 한마디뿐이었으나 순식간에 분위기가 얼어붙었다.

정대식이 간신히 형편없는 전투에 대한 소감을 애써 누르고 있는데 대원들끼리 싸우고 있으니, 기름에 불을 붙인 격이다.

정대식은 서늘한 눈으로 대원들을 한 번씩 노려보고는 몸을 돌렸다.

"오늘은 이만 돌아간다."

정대식은 발로르를 쓰러트려 마정석을 획득하겠다는 기존의 생각을 접어 넣고 철수를 명령했다.

대원들은 죽상을 한 채 왔던 길을 되돌아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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