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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질 전사-110화 (110/297)

# 110

현질 전사

- 5권 10화

머신 건으로 무기를 변환한 박무원이 그 트롤들에게 폭포수같이 마력탄을 내쏘았다.

"디스터브!"

허미래가 다시금 교란 스킬을 썼으나 트롤 주술사도 가만있지 않았다.

"타르카르타!"

트롤 주술사가 이상한 말을 외치자 허미래의 마력이 허공에서 분쇄되어 버렸다.

"앗?"

놀란 허미래가 외마디 소리를 치자 트롤 주술사가 주문을 연거푸 외웠다.

"타르카르르르!"

트롤 주술사의 주문에 힘입어 트롤들의 몸이 돌덩어리처럼 단단해졌다.

가뜩이나 재생력이 좋아서 죽이기 힘든데 이제는 상처를 입히기도 힘들어진 것이다.

그 상태로 뒤쪽의 트롤 두 마리가 그들의 앞을 가로막고 선 대원들에게 육박해 들어왔다.

박무원이 계속해서 마력탄을 퍼부었으나 그것은 트롤의 강화된 살갗을 뚫고 들어오지 못했다.

결국 근접전을 예상한 유태훈이 이를 악물고 쌍괴를 꺼내어 드는 순간.

"어어?"

대원들은 물론이거니와 트롤들도 놀라서 멈칫했다.

별안간 대원들의 존재감이 흐려지면서 트롤들이 당황했다.

그들의 공격이 비껴 나간 그 순간.

"강화...... 무적권!"

정대식에게서 솟구친 마력이 번개가 내리치는 것처럼 수차례 번뜩였다.

퍼버버버버벅!

다음 순간.

대원들은 놀라운 광경을 보았다.

앞뒤로 그들을 포위하고 있던 트롤의 머리가 일시에 터져 오른 것이다.

퍼어억! 콰드득! 콰작!

갖은 소리를 내며 터진 트롤의 머리 조각이 사방팔방으로 튀어 나가고, 트롤들 다섯 마리의 몸이 일시에 무너졌다.

아니, 여섯 마리였다.

세 마리 트롤의 뒤쪽에 서 있던 트롤 주술사까지 전부 죽어 버린 것이다.

쿠웅! 털썩! 털푸덕!

여섯 마리나 되는 트롤의 시체가 바닥을 구르는 가운데, 트롤들의 녹색 피를 뒤집어쓴 대원들은 얼굴을 타고 흘러내리는 뇌 조각을 닦아 낼 생각도 못하고 망연해 있었다.

그들을 이끄는 김시온조차도 완전히 얼이 나가서 어느새 커맨드 모드조차 해제가 되어 있었다.

그녀는 트롤의 고약한 피 냄새가 풍기는 입가를 훔치고 중얼거렸다.

"이게 대체......?"

놀라지 않은 사람은 오로지 정대식뿐인 것 같았다.

트롤 부산물을 뒤집어쓰지 않고 말끔한 사람도 그뿐이었다.

정대식은 약간 멋쩍은 모습으로 김시온을 향해 말했다.

"상황이 급한 것 같아서, 명령 전에 행동했습니다."

김시온은 눈을 휘둥그레 떴다.

"정대식, 네가......?"

비로소 정신을 차린 다른 대원들도 전부 경악해 한마디씩 신음 같은 소리를 내뱉었다.

"세상에!"

"트롤 여섯 마리를 한 번에......?"

"말도 안 돼! 정확히 머리를 노렸다고 해도...... 트롤인데!"

"움직이는 게 보이지도 않았다고!"

김시온은 재빨리 이성을 되찾고 물었다.

"어떻게 한 거지?"

정대식이 설명했다.

"은신과 교란 스킬을 동시에 사용해 대원들을 공격하려는 트롤들의 주의를 흩트렸습니다. 그리고 그 틈을 타...... 한 번에 처치한 거죠."

"아니, 잠깐만. 그 한 번에 처치했다는 부분을 설명해 봐."

"어, 제가 보유한 근접용 공격 스킬이 두 가지인데 하나는 아시다시피 강력권이고, 다른 하나가 무적권...... 음, 그냥 커맨드 모드를 쓰세요."

김시온은 커맨드 모드를 다시 발동했고 모든 대원들의 의식이 연결된 상태에서 정대식은 정신을 집중해 트롤들을 처치했을 때의 상황을 보내었다.

그러나 대원들의 놀라움은 가라앉지 않았다.

그들은 정대식이 은신과 교란이라는 두 가지 스킬을 한 번에 사용하고, 강화와 무적권을 거의 시간차 없이 시전했다는 사실을 믿기지 않아 했다.

정대식은 그 이유를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대신 엔트로피를 불러들였다.

커맨드 모드 상태인지라 그것만으로도 대원들은 엔트로피가 정대식을 보조하는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렇기에 정대식이 전보다 더 빠른 속도로 여러 능력을 한꺼번에 구사하는 신기를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이다.

유태훈은 혀를 내두르며 말했다.

"엔트로피라 했던가? 저런 보조체 하나만 운용하는 것도 충분히 힘들 텐데 다른 능력까지 동시 다발적으로 쓰다니. 정말이지 부러운 마력량이군."

유태훈은 네크로맨서인지라 항상 마력량에 허덕이는 입장이었다.

총 마력량이 얼마나 되느냐에 따라 능력의 수준이 크게 차이가 나는 관계로 정대식이 부러운 눈치였다.

기철민은 이제 감탄하기도 지쳤다는 표정이었고, 소강두는 역시 같이 훈련을 했었어야 했다, 는 소리를 꿍얼거렸다.

최선이나 박무원처럼 과묵한 사람들은 별말 하지 않았으나, 허미래는 얼굴이 새빨개져서 연신 감탄사를 내뱉었다.

"정말 대단해...... 굉장해! 멋있어!"

허미래가 제자리에서 팔짝팔짝 뛰며 하는 말에 정대식은 너털웃음을 흘렸다.

그런 정대식을 바라보며 김시온이 미간을 찡그렸다.

"정대식, 너 스테이터스 측정을 한 게 언제였지?"

"타이탄 공격대에 들어오면서 했습니다."

"그 이후로는 해 본 적이 없나?"

"없습니다."

"아무래도 네 등급을 조정해야 할 것 같은데. 돌아가는 즉시 스테이터스 측정을 다시 해 봐."

"알겠습니다."

그들은 지원 팀에게 연락해 트롤 사체를 처리하라 이르고 다시금 길을 떠났다.

미로를 따라 걸으며 수차례, 트롤들이 습격해 왔으나 아무 문제가 없었다.

보통 트롤들은 엔트로피가 미리 감지해 내어 신속히 처리를 했고, 주술을 쓰는 놈이 끼어 있어 모습을 감추고 나타난다 하더라도 정대식의 주의 집중으로 손쉽게 잡아냈다.

영악한 놈들이라 간혹 위기의 순간이 닥치기는 했으나, 압도적인 정대식의 무력 앞에서는 한낱 샌드백이나 마찬가지였다.

정대식은 수박을 깨는 것보다 더 손쉽게 맞닥뜨리는 트롤들의 머리통을 족족 깨부숴 놓았다.

오죽했으면 활약할 기회가 없다고 소강두가 울상을 했을까?

언데드를 만들어야 하는 유태훈은 손가락 하나 까닥하지 못했다.

그의 능력은 마력량을 다량 소모하는 관계로 전력이 충분하다면 굳이 쓸 필요가 없었다.

결국, 그들은 던전에 진입한지 네 시간 만에 보스몹을 마주했다.

예상된 시간의 절반도 못 미치는 동안 미로를 단숨에 주파한 것이다.

나타나는 트롤들을 피한 것도 아니었다.

만나는 대로 다 죽였으니 지원 팀은 일복이 터진 셈이다.

던전 공략을 목표로 들어온 것이라 짐꾼들을 많이 고용하지 않았으니, 호위 인력까지 전부 팔을 걷어붙여야 했을 것이다.

아무튼 간에 이 던전의 보스몹인 트롤 소서러는 보통 트롤보다 머리 하나는 큰 체격이었다.

비록 대형종이 아닌 중형종이라고는 하지만 보기만 해도 위협적인 메이스를 들고 있었고, 갑옷까지 걸친 데다가 주술을 쓸 줄 알았다.

디버프에 특화되어 있기에 마력을 위주로 싸우는 헌터들의 전력을 절반 이하로 깎아 낼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었으나.......

불행히도 그 능력을 뽐낼 기회는 없었다.

놈이 나타나기가 무섭게 정대식의 강화 강력권이 작렬한 탓이다.

트롤 소서러는 무어라 반항 한 번 제대로 해 보지 못하고 즉사했다.

머리가 통째로 날아가 벌러덩 자빠진 트롤 소서러의 사체를 보고 김시온은 쓴웃음을 지었다.

"준비를 단단히 하고 왔는데, 이건 뭐......."

준비한 보람이 없다고 해야 할까.

던전 공략은 예상보다 시시하게 끝났다.

대원들은 던전에 들어와서 생채기 하나 나지 않은 상태로 철수를 하는 게 말이 되느냐, 고 투덜거렸다.

그리고 몬스터를 잡아 죽이는 대신 엉뚱한 일에 매진해야 했다.

다름 아닌 몬스터 부산물 처리다.

그들은 부족한 일손을 대신해 몬스터 사체를 이고 진 채로 던전을 나왔다.

* * *

부우우웅-.

진동으로 해 두었던 휴대폰이 몸을 떨어 정대식은 도착한 메시지를 확인해 보았다.

일전에 연락처를 주었던 윤현민이 온갖 이모티콘으로 도배된 메시지를 하나 보내온 참이었다.

-형! 완전 대박! 진짜 대단하세요! 어떻게 며칠 만에 랭킹이 200위나 뛰어요? 존멋 보스! 최고예요!

윤현민은 메시지에 랭킹 화면 캡처 이미지를 첨부해 놓았다.

정대식은 그것을 확인하고 혀를 쯧 찼다.

'200위나 올랐는데도 400위권이잖아? 이래 가지고 언제 100위권에 올라가지? 도대체 내 위에 있는 400명 넘는 놈들은 누구야? 나만 해도 이미 괴물처럼 강하다는 소리를 듣고 있는데, 이놈들은 어떤 괴물 딱지라는 거야?'

정대식은 휴대폰을 집어넣고 고개를 들었다.

타이탄 공격대 본부 로비 한가운데, 엔트로피가 천연덕스러운 얼굴을 하고 서 있었다.

그 애를 둘러싸고 여자 헌터들이 꺅꺅거리며 난리도 아니었다.

"귀여워!"

"너, 말은 할 줄 아니?"

<할 줄 압니다.>

"으앙! 말도 할 줄 알아!"

정대식은 그 광경을 보며 미간을 찡그렸다.

'귀엽다고?'

엔트로피에 대한 첫인상이 별로였어서 그런지 정대식은 그런 생각을 눈곱만큼도 가질 수가 없었다.

허공에 떠 있는 말풍선 시절부터 알았는데 이제 와 새삼 귀엽다느니 하는 소감이 드는 게 이상할 노릇이다.

정대식은 그쪽으로 다가가며 말했다.

"야, 엔트로피!"

엔트로피는 여자 헌터들 사이를 빠져나와 정대식 쪽으로 다가왔다.

공중을 날아다니면 사람들이 놀라는 일이 많아서 엔트로피를 실체화해 두었을 때는 가급적 평범하게 걸어 다니라고 해 둔 탓이다.

물론 평소에는 실체화를 해 둘 필요가 없었다.

한데 지난번 타이탄 공격대의 서버에 업로드된 전투 영상을 보고 동료들이 엔트로피의 존재를 엄청나게 궁금해했던 것이다.

타이탄 공격대는 비밀리에 이루어지는 활동을 제하고, 일반적인 임무 내용에 대해서는 모든 내용을 대원들에게 공개하고 있었다.

전투 영상도 그중 일부였다.

다른 부대가 싸우는 것을 보며 전투 방법을 공유하고 자신의 능력을 계발하기 위한 취지라고 하겠다.

그간 정대식이 참가했던 임무들의 영상도 대부분 공개가 되어 있었는데, 그의 영상은 타이탄 공격대 내에서 인기가 제일 많았다.

일격 필살의 호쾌한 전투 방식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즐거움을 줄 뿐만 아니라, 트리플리스트는 어떤 식으로 싸우는지 다들 궁금해하는 탓이었다.

특히 지난번 트롤과의 전투 장면은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여섯 마리나 되는 트롤을 단번에 쓰러트리는 광경을 보고 여러 말들이 많았다.

대원들은 정대식이 한층 더 강해진 이유가 엔트로피의 등장 덕분이 아닌가 생각했다.

그렇기에 엔트로피를 직접 보고 싶어 했던 것이다.

정대식 입장에서도 실체화를 해 두는 편이 엔트로피와 대화를 하기가 편했다.

링크를 하면 맘속으로도 대화가 가능하다지만 가끔은 자문자답하는 기분이 들 때가 있어서 이상했던 것이다.

직접 말을 하는 편이 생각을 정리하기에도 좋았고, 실체화를 해 놓아야 혼잣말을 하는 것 같은 괴상한 장면을 연출하지 않을 수가 있었다.

아무튼 그런 이유로 실체화시켜서 좀 데리고 다녔더니, 지금은 여자 헌터들의 애정을 독차지하고 있었다.

뭐, 그들 눈에야 엔트로피가 걸어 다니는 인형쯤으로 보일 테니까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정대식은 발길을 옮기면서 말했다.

"엔트로피, 너 지금 헌터 랭킹 바로 확인 가능하지?"

<물론입니다.>

정대식은 잠깐 생각하다가 물었다.

"그럼 강영후 랭킹은 몇 위야?"

<89위입니다.>

"헉, 꽤 높네? 강영후 말고 우리 공격대에서 100위권에 드는 사람은 또 없어?"

<없습니다.>

"하긴...... 음, 그럼 광필두는 지금 몇 위야?"

<광필두는 153위입니다.>

엔트로피의 대답에 정대식은 깜짝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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