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질 전사-106화 (106/297)

# 106

현질 전사

- 5권 6화

"정말이야?"

정대식은 뛸 듯이 기뻐했다.

"진짜 그런 스킬이 있단 말이지?"

엔트로피는 좀 아니꼽다는 듯이 말했다.

<정대식 님의 판단이 옳았습니다. 레벨 5의 상점에는 상태 향상에 도움을 주는 스킬이 있습니다.>

"아싸!"

<단, 조건이 있습니다.>

조건이 붙는다는 말에 정대식은 급속도로 시무룩해졌다.

"뭐, 뭔데?"

<조작계를 획득하셔야 합니다.>

"어...... 그건 돈 1천만 원짜리 아냐?"

<그렇습니다.>

정대식은 다시 희희낙락했다.

"그 정도야 껌값이지. 이참에 그냥, 모든 계열의 능력을 다 획득해 버리는 게 어떨까?"

<정대식 님의 선택에 달린 문제입니다만, 권장하지는 않습니다.>

"아니, 왜?"

<방금 전, 상점을 업그레이드할 때 정대식 님의 두뇌에 다량의 정보가 한꺼번에 주입되어 충격을 받으셨습니다. 한 가지 능력이라면 모를까, 네 가지 능력을 한꺼번에 개화하시면 또다시 충격을 받을지도 모릅니다.>

"음, 내 몸이 받아들일 여유가 필요하단 말이군. 그럼 어쩔 수 없지. 일단 조작계 하나만 획득하겠어."

<조작계 능력을 개화하고 천만 원을 차감합니다.>

차르르르르!

잔액이 내려가고 갑자기 눈앞이 새하얘졌다.

정대식은 전후좌우를 분간하지 못하고 비틀거렸다.

온몸의 피가 거꾸로 치솟다가 무중력 공간에 내동댕이쳐진 것 같은 어지러움이 덮쳐들어 왔다.

격심한 혼란이 지나치고, 정대식은 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이번엔 코피가 터지지는 않았으나, 확실히 네 가지 능력을 한꺼번에 획득했더라면 위험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대식은 소파에 털썩 앉아 말했다.

"으음...... 엔트로피, 네 말을 듣길 잘했어. 하지만 스킬 획득 정도는 가능하겠지?"

<이미 상점이 업그레이드되었을 때 Lv 5단계 스킬의 모든 정보가 정대식 님의 두뇌에 입력된 상태입니다. 스킬의 획득은 엄밀히 말해서 그것을 활성화시키는 것이므로 문제가 없습니다.>

"그렇군. 좋아. 그럼 신체 상태를 개선시킬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스킬을 다 획득해."

<근력 증진 스킬, 마력 증진 스킬, 체력 증진 스킬, 오감 증진 스킬, 민첩 증진 스킬, 행운 증진 스킬을 획득하고 6천만 원을 차감합니다.>

이로써 남은 잔액은 28억 4,600만 원.

또다시 알거지가 된 기분이라고 생각하며 정대식은 별안간 밀려오는 극심한 피로에 까무룩 곯아떨어지고 말았다.

* * *

여섯 종류의 상태 증진 스킬을 획득한 정대식은 당장에 수련에 나섰다.

제아무리 상태 증진 스킬을 획득했다고는 해도, 이것은 상태 포인트를 구입하는 것과는 달랐다.

상태 포인트는 구입하는 즉시 상태가 향상되어 그 효과가 발휘되었지만, 상태 증진 스킬은 기본적으로 수련을 필요로 했다.

몸을 단련하지 않으면 백날 상태 증진 스킬을 발동해 봤자 별 소용이 없다는 말이다.

물론 상태 증진 스킬을 발동하고 일상생활을 하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효과가 있기는 했다.

예를 들어 근력 증진 스킬을 발동하고 움직이면 계단을 오르거나 가방을 들어 올리는 등의 간단한 움직임만으로도 근력이 향상되었다.

그러나 그 수준이 미미했다.

상태 증진 스킬을 발동시켰을 때 소모되는 마력량을 생각해 보면 낭비에 가까웠다.

상태 증진 스킬을 발동하고 있으면 생각보다 많은 마력이 소모되는 관계로, 스킬의 효력이 있는 상태에서는 수련을 하는 것이 최상의 결과를 뽑아낼 수가 있었다.

그리고 정대식의 생각에 최고의 수련 방법은 다름 아닌 사냥이었다.

'왜 레벨업팟 같은 게 따로 있겠어? 백 번의 연습보다 한 번의 실전이 더 낫다는 말이지. 거기에서 얻어지는 수입은 보너스고.'

타이탄 공격대 내에는 여러 종류의 최첨단 시설이 자리해 있었다.

홀로그램 룸에서 모의 전투를 할 수도 있었고, 전문 트레이너의 도움을 받아 몸을 만들거나 전투 기술을 습득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돈을 버는 게 지상 최대의 과제인 정대식은 그런 훈련 방법이 애먼 시간을 까먹는 것으로밖엔 느껴지지 않았다.

사냥을 하면 수련도 되고, 돈도 벌고 일석이조가 아닌가?

무엇보다 타이탄 공격대는 임무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대원들의 개인 활동을 제지하지 않았다.

얼마든지 썰자팟이나 레벨업팟, 레이드팟 등등에 참가할 수 있다는 말이다.

물론 요전에 정대식이 한 것처럼 임무 도중에 딴 주머니를 챙기는 건 별개의 문제였다.

퇴출을 당하거나 징계를 먹지는 않아도 경고를 받을 만한 일인 것이다.

정대식도 그걸 알기에 남몰래 사냥을 하고, 남몰래 부산물을 처리해 왔다.

들키지만 않으면 상관없다고 생각하고 있기에 앞으로도 그 짓은 계속할 작정이었다.

'어쨌든 지금은 임무 중도 아니니까 자유롭게 던전에 가서 사냥을 겸한 훈련을 할 수 있다는 말이지. 보자, 어떻게 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일까?'

정대식은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레벨업팟에 참가하는 것을 고려해 보았다.

그러나 역시, 수입을 나눠야 한다는 게 마뜩잖았다.

게다가 정대식은 헌터들 사이에서 얼굴이 팔릴 대로 팔린 상태였다.

지난번 일의 여파가 채 가시지 않은 관계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움직이기가 성가셨다.

'그냥 혼자 하는 편이 낫겠다. 그 편이 시간 제약도 안 받고 좋겠지.'

정대식은 김시온을 통해 일정을 확인하고 대략 보름 정도의 시간을 확보했다.

본래는 다음 임무를 위한 여러 가지 사전 작업이 있었지만 김시온은 정대식이 개인 수련을 하려 한다는 말에 흔쾌히 시간을 빼 주었다.

정대식이 다른 대원들과 함께 움직이는 것보다 실력을 더 높여 오는 편이 외인부대의 전력 증강에도 도움이 된다고 판단한 것이다.

정대식은 김시온에게 감사 인사를 표하고 짐을 꾸렸다.

보름 동안 던전 안에서 아예 나오지 않을 생각으로 아공간에 비상식량과 포션, 스크롤 등등을 털어 넣었다.

그리고 오토바이를 몰아 서울에서 가장 규모가 크다는 S5 던전으로 향했다.

S5 던전은 첫 번째 몬스터 브레이크가 터졌을 때 악명을 떨친 장소였다.

그곳에는 온갖 언데드가 출몰을 하는데 던전이 거대한 관계로 보스몹을 찾아 처치하기가 쉽지 않았던 것이다.

지금은 공략 방법이 잘 알려져 있어서 보스몹을 처치하는 것과는 별개로, 보스몹이 있는 곳까지 가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은 오로지 공략을 위한 루트였고, 그 외 던전의 규모나 출몰 몬스터에 대해서는 다 밝혀져 있지가 않았다.

아직 미지로 남아 있는 구역이 여럿 있는 관계로, 서울 한복판에 자리해 있는 던전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헌터들과 마주칠 확률이 적었다.

보름 동안 방해받지 않고 실컷 수련을 하고 싶었던 정대식에게는 적합한 장소라고 할 수 있겠다.

정대식은 S5 던전의 입구에서 혹시 몰라 터닝 스크롤을 몇 개 더 구입했다.

던전 앞에서 사는 것이고, 정화 계열 스크롤이 흔히 그렇듯 가격이 오지게 비쌌다.

무려 장당 5천만 원!

정대식은 피눈물을 흘리며 2억을 주고 그걸 네 장 구입했다.

그리고 던전 안으로 오토바이를 가지고 발길을 옮기는데, 누가 그의 어깨를 턱 하니 붙잡았다.

"정대식?"

정대식이 뒤를 보자 간만에 보는 얼굴이 자리해 있었다.

"석우원?"

정대식이 그의 이름을 부르자 그가 씩 하니 웃어 보였다.

"용케도 내 이름을 안 잊어버렸네?"

"잊어버릴 리가. 그래도 내가 신세를 많이 졌으니까."

그와는 막 헌터가 되었을 무렵에 함께 어울려 다니며 여러 번 사냥을 했다.

처음으로 케르베로스를 잡은 것 역시도 석우원네 파티와 있을 때였다.

그가 정공을 만든다고 할 때 스카우트 제의도 받았었지만 당시에는 생각이 없어 거절을 했었다.

그 이후로는 만날 일이 없었는데 오늘 우연히 마주친 것이다.

"오랜만이다. 못 본 사이 유명인이 다 되었던데?"

"어쩌다 보니...... 사냥 나온 참인가?"

"그래. 이쪽은 내 공격대의 대원들."

석우원은 자랑스러운 기색으로 뒤쪽에 도열해 선 헌터들을 턱짓해 보였다.

개중에는 낯익은 얼굴들이 많았다.

석우원의 고정팟이 공격대로 성장한 것이다 보니 당연한 일이었다.

정대식은 그들과 가볍게 눈인사를 하고 말했다.

"근사한데? 대단하군. 공격대를 만들다니."

"뭐, 헌터면 다들 한 번쯤 꿔 보는 꿈 아니겠어? 아직은 신생이라 서툴기는 해. 너는 타이탄 공격대에 들어갔지? 거긴 어때?"

"음, 나쁘지 않아."

"오늘은 보아하니 공격대의 일로 온 것 같지는 않고. 혼자 사냥 나왔나?"

"그래. 수련도 할 겸해서."

정대식이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하는 말에 석우원이 냉큼 물었다.

"그럼 우리 공격대와 같이 가지 않겠어? 보스몹에 도전해 보려는데."

"보스몹이라면, 뱀파이어 듀크 말인가?"

"그래. 이 던전의 공략 기한이 얼마 남지 않았거든. 지금 보스몹을 처치하면 정부에서 나오는 지원금을 받을 수 있으니까."

그래서 그런지 던전이 좀 붐비는 것 같다고 생각하며 정대식은 점잖게 거절을 했다.

"미안하지만 사양할게. 난 보스몹을 잡으러 온 게 아니고...... 아무래도 소속된 공격대가 있으니까 다른 공격대와 어울리긴 좀 그래."

"역시 그렇겠지? 내가 무리한 부탁을 한 것 같군. 신경 쓰지 마."

"아니야, 괜찮아. 건승을 빌지."

"그래, 너도 몸조심하고."

정대식은 석우원과 덕담을 몇 마디 나누고 몸을 돌렸다.

그런데 그 대화로 인해 여태껏 긴가민가하던 사람들이 정대식의 정체를 알아보았다.

다들 그를 힐끔거리며 서로 귓속말을 수군거렸다.

"저 사람이 트리플리스트 정대식인가?"

"실물은 첨 보는데?"

"화면발을 별로 안 받나 봐. 실물이 낫네."

"저게 말로만 듣던 탈로스 방어구인가?"

"별로 그렇게까지 강해 보이지는 않는구먼."

이런저런 말들이 귓등을 스쳐 지나가고, 정대식은 그들의 관심을 모르는 체하며 발길을 옮겼다.

그런데 막 던전 안으로 들어가려는 그를 한 떼의 여자들이 가로막았다.

"잠깐만요! 당신, 정대식이죠?"

"......그런데요?"

"아! 정말이었군요! 진짜 정대식이야. 만나서 반가워요!"

여자는 눈을 찡긋거리며 정대식에게 악수를 청했다.

정대식은 그 손을 붙잡아 가볍게 흔들기는 했으나 무뚝뚝한 태도를 잃지 않았다.

"제게 무슨 볼일이라도?"

"던전 앞에서 볼일이랄 게 달리 있겠어요? 보아하니 혼자인 것 같아서. 괜찮으면 우리랑 같이 사냥 가지 않을래요?"

그들은 총 네 명이었는데, 하나같이 개성적이면서도 미모가 뛰어났다.

보아하니 여자들끼리 어울려 고정팟을 꾸리고 강해 보이는 헌터를 꼬셔서 같이 사냥을 하는 모양이었다.

복장은 요란하지만, 외적인데 치중이 되어 있어 그다지 강해 보이지는 않았다.

아마 같이 사냥을 가면 셔틀 꼴이 나겠구나 싶어서 정대식은 바로 거절을 하려고 했다.

"미안하지만......."

그때 또 다른 헌터 한 무리가 그들 사이에 끼어들었다.

"이봐! 정대식. 이 여자들하고 가 봤자 별 볼 일 없을 거야. 그보단 우리랑 가는 게 어때? 우리 파티는 전부 7등급이고 이 던전에 대해선 소상하게 알고 있어. 뭘 잡으러 가는지는 모르겠지만 도움이 되어 줄 수 있지."

커다랗고 시커먼 덩치의 사내들이 정대식을 낚아채려는 걸 보고 여자들이 당장 얼굴을 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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