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9
현질 전사
-4권 24화
상상도 못한 이야기에 정대식은 입을 쩍 벌렸다.
그런 그의 반응을 보고 이정연이 재미있다는 듯이 웃었다.
"대부분의 몬스터는 독이 있어 식용으로 쓰기에는 적합하지 않죠. 하지만 알다시피 몬스터엔 수많은 종류가 있어요. 개중에는 먹기에 적당한 것도 있어요. 오히려 건강에 큰 도움이 되는 것도 있지요. 식량 보유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미국 같은 경우에는 이런 쪽의 연구가 벌써 상당히 진전되어 있어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몬스터를 어떻게 먹습니까?"
"어머, 뭘 모르시네. 용고기 같은 경우는 없어서 못 팔 지경이라고요."
헌터들 사이에 용고기가 다이아몬드보다 더 큰 가치를 갖는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짐꾼이었을 적에는 그것을 스태미나 음식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다.
몸에 좋다면 뭐든 집어먹는 게 사람 심리이니 말이다.
하지만 정대식은 몬스터 고기를 먹는 것을 거리껴하는 쪽이었다. 던전에 고립되어 식량이 떨어진 헌터들이 몬스터 고기를 먹고 몬스터가 되었다는 괴담 때문만은 아니었다. 실제로 짐꾼들 중에서 이상한 소문을 주워듣고 몬스터 고기를 먹었다가 죽거나 병에 걸린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었던 것이다.
"무엇보다 몬스터는 굳이 지구에서 사육할 필요가 없죠. 만약 안전한 던전을 확보하게 된다면 거기에서 사육을 해도 돼요. 던전을 농장화하는 거죠. 물론 주기적으로 나타나는 보스몹이나 공략 문제가 있겠지만, 최소한 쓰레기장으로라도 쓸 수가 있으니까요. 실제로 인도나 이란 등지에서는 수입한 폐기물을 공공연히 갖다 버린다고 하더라고요. 일본이나 러시아도 골칫덩어리이던 핵폐기물을 던전에 버릴 궁리를 하고 있고요."
"아니, 몬스터가 방사능에 어떤 반응을 일으킬지 알고 그런 위험한 짓을 한다는 겁니까? 몬스터가 인간보다 방사능에 더 강하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잖아요? 종류에 따라 더 괴이하게 진화하기도 하는데 어떻게 그런 짓을......."
"그냥 그런 논의가 있다는 거예요. 제가 하고 싶은 말은...... 당신들 헌터는 몬스터를 쳐 죽여야 할 적으로 생각하고 던전을 무슨 악마 소굴처럼 여기는지 모르겠지만, 외부의 시선은 다르다는 거예요. 조만간 던전은 금광이 될지도 몰라요. 돈을 벌고 싶다면 이러한 흐름을 파악하고 있는 게 좋겠죠."
적응력이 빠르다고 해야 할지, 두려움이 없다고 해야 할지.
정대식은 인간이 현명한 것인지, 멍청한 것인지 헷갈린다고 생각했다.
첫 번째 몬스터 브레이크가 일어난 지 그리 오랜 세월이 흐르지는 않았다.
확장 현실 세계가 시작된 지 고작 10년이었다.
하지만 세상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었고, 그 속도는 점점 가속화되는 것 같았다.
'확실히 첫 번째 몬스터 브레이크와는 달리, 지난번에 있었던 두 번째 몬스터 브레이크에서는 별다른 충격이 없었다. 이미 사람들은 몬스터에 익숙해져 버린 거야. 그걸 돈벌이로 생각할 정도가 되었다는 거지.'
뭔지 모를 아연한 기분과는 별개로, 돈벌이가 된다니 혹하는 기분이 들기는 했다.
만약 몬스터 관련 사업이 크게 일어난다면, 당연히 몬스터에 대한 정보를 소유한 사람이 선점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을 비롯한 각국에서 몬스터 연구에 열을 올리기 시작한 것도 마찬가지 이유에서일 터였다.
정대식은 자신이 가진 현질 능력을 떠올리며 생각했다.
'관측 스킬을 계속 업그레이드해 나가다 보면 굳이 몬스터를 붙잡아서 연구하지 않아도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관측뿐만이 아냐. 상점 업그레이드를 통해 더 효율적인 스킬을 획득한다면 누구보다 빠르게 몬스터에 대해 파악하고 그 정보를 써먹을 수 있겠지.'
정대식은 기회가 되면 이런 부분을 한번 연구해 봐야 되겠다 생각하며 입을 다물었다.
이정연과 대화를 나누는 새, 앞선 차량들이 던전을 빠져나가고 정대식이 탄 지프가 통과할 때가 되었던 것이다.
모든 감각이 일시에 사라져 버리는 것 같은 오싹한 기분이 지나고, 다음 순간 정대식은 던전 밖에 나와 있었다.
그리고 깜짝 놀랐다.
'아니?'
던전 입구가 사람들로 미어터질 정도였다.
개중 대부분은 취재를 나온 기자들이었다.
던전 입구에 포토라인이 설치가 되어 있고 그 바깥에 카메라를 들고 선 기자들이 수두룩 빽빽했다.
플래시가 쉼 없이 터지고 있어 눈이 다 멀어 버릴 지경이었다.
'이게 웬 난리야?'
나동일로 인해 세간의 관심이 쏠려 있다는 이야기는 들었으나, 이 정도인 줄은 몰랐다.
아니, 그 때문이라 하더라도 좀 이상하다.
이 실종 사건의 주인공인 나동일과 최선은 아까 전에 던전 밖으로 실려 나갔던 것이다.
그들은 서둘러 병원으로 이송되었을 테니, 기자들도 그들을 따라가야 했다.
그런데 여전히 이곳에 진을 치고 있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어리둥절해하는 정대식을 보고 이정연이 휘파람을 휙, 불었다.
"취재 열기가 대단한데? 정대식 씨, 오늘 고생 좀 하겠어요."
"예? 제가 왜요?"
의아해하는 정대식을 향해 이정연은 정말로 몰라서 묻느냐는 듯이 말했다.
"이 사람들, 다 정대식 씨를 보러 온 거잖아요?"
"저를요?"
"그게 아니라면 왜 여태껏 이러고들 있겠어요?"
그러고 보니 기자들의 관심이 죄다 이쪽으로 쏠려 있었다.
정대식은 갑자기 속이 거북한 걸 느꼈다.
이렇게까지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받아 본 것은 난생 처음이었다.
창문을 닫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긴장해서 머리가 멍해지며 절로 표정이 굳었다.
타이탄 공격대가 탄 차량은 던전 입구를 둘러싸고 있는 인파로 인해 좀처럼 도로로 빠져나가지 못하고 있었다.
지프가 제자리에 한동안 서 있자, 포토라인이 우르르 무너져 내렸다.
기자들을 통제하고 있던 경찰들이 어찌할 바를 몰라 하는 새, 기자들이 정대식이 타고 있는 차에 개미 떼처럼 달라붙었다.
"정대식 씨! 창문 좀 내려 주세요!"
"얼굴 좀 보여 주세요, 정대식 씨!"
"한 말씀만 부탁드립니다!"
"잠깐만 인터뷰에 응해 주세요!"
기자들의 열화와 같은 요청에 차가 다 흔들거렸다.
보다 못한 다른 대원들이 차에서 내려 기자들을 밀어내려 했으나 그들은 무슨 산삼이라도 삶아 먹은 것처럼 힘이 셌다.
"정대식 씨!"
"정대식 씨!"
그들이 불러 대는 소리에 귀가 따가웠고, 무엇보다 주위가 완전히 아수라장이라 가만있어서는 안 될 것 같았다.
정대식은 마음을 굳히고 차 문을 열었다.
그리고 차에서 내렸다.
"......."
왜인지 모르겠지만 그가 차에서 내리는 순간 일순 정적이 흘렀다.
정말로 정대식이 나와 줄 거라고는 예상을 못한 것인지, 기자들이 동시에 입을 다문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플래시가 쉴 새 없이 터지며 기자들이 우르르 마이크며 휴대폰이며 녹음기 따위를 들이밀고 제각기 소리를 치기 시작했다.
"정대식 씨! 어떻게 실종자들을 찾아낸 겁니까?"
"실종자들을 삼킨 몬스터를 직접 처리하셨다는데, 그게 사실입니까?"
"트리플리스트로 올인원이 될 가능성이 있는 겁니까?"
"불과 얼마 전까지 짐꾼이었는데 어떻게 갑자기 강해진 거지요?"
일단 차에서 내려 기자들 앞에 서기는 했는데, 무슨 말부터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언론 앞에 나서는 게 처음이기도 하고, 말주변이 있는 편도 아니라 참으로 난감했다.
그런데 그때, 별안간 기자들이 모세의 기적처럼 양옆으로 갈라섰다.
웬일인가 싶어 쳐다보자 놀랍게도 최희가 그들 사이로 걸어오고 있었다.
그녀는 놀라는 정대식의 옆에 나란히 섰다.
그리고 위엄 있는 표정으로 좌중을 한 번 둘러보았다.
정말이지, 압도적인 카리스마였다.
최희의 시선 한 번에 기자들이 모조리 입을 다물었다.
마구잡이로 날뛰던 그들이 순한 양처럼 얌전해진 것이다.
순식간에 주도권을 끌어온 최희는 기자들이 조용해지자 비로소 생긋, 미소를 지어 보였다.
TV에서 자주 보아 왔던 최희 전용의 백만 불짜리 미소였다.
그 미소에 기자들의 입가에도 덩달아 미소가 떠오르고, 최희는 차분하게 말했다.
"공사다망한 와중에도 이번 실종 사건에 큰 관심과 격려를 보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수많은 국민들이 희망을 가져 주신 덕분에, 제 여동생인 최선과, 헌터 사회에 이바지하고 있는 나동일 씨가 무사히 구조될 수 있었습니다."
최희는 고개를 숙여 보였고 정대식도 가만있기 뭐해서 덩달아 살짝 고개를 수그렸다.
그러자 고개를 들어 올린 최희가 옆에 선 정대식을 눈짓하며 말했다.
"그 구조 작업에 여기 계신 정대식 씨가 큰 역할을 해 주셨습니다. 이루 말할 수 없는 은혜를 입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최희는 한 발짝 물러서 정대식에게 정중히 고개를 숙여 보였다.
정대식도 서둘러 맞절했고, 최희는 기자들이 사진을 찍기를 기다리듯 잠시 그러고 있었다.
곧 다시금 고개를 들어 올린 그녀는 기자들을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정대식 씨는 강대한 몬스터를 물리치고 실종자들을 구조하느라 전력을 다하셨습니다. 누구도 해내지 못한 일을 해내고 이제야 막, 지옥과도 같은 그곳에서 지구로 돌아왔으니, 오늘 하루만은 집으로 돌아가 충분한 휴식을 취하셔야 할 것입니다. 남은 이야기는 차후, 타이탄 공격대 본사에서 있을 기자 회견에서 마저 들으실 수 있을 겁니다."
궁금한 건 그때 가서 묻고 오늘은 얌전히 보내 주라는 말에 기자들은 이렇다 할 반박을 하지 못했다.
최희는 자연스럽게 몸을 돌려 차 문을 열어 주었다.
정대식은 그녀의 행동에 이끌려 도로 차에 올라탔다.
그러자 최희가 따라 타서 차 문을 닫았다.
마침 앞에서 교통정리가 끝이 났는지 차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차가 도로로 빠져나가는 가운데, 이정연이 최희를 보고 감탄하며 말했다.
"역시, 대단하시군요! 과연, 슈퍼스타다우세요."
이정연은 최희를 가까이서 마주하고 약간 흥분한 상태였다.
최희는 그런 그녀에게 가벼운 눈인사를 보내었다.
그런데 웬일인지 얼굴이 몹시 창백했다.
이마에는 땀까지 송글송글 맺혀 있어, 정대식은 의아해 물었다.
"어디 안 좋아요? 안색이......."
최희는 힘없이 웃고는 그대로 정대식의 무릎으로 쓰러졌다.
정대식은 황급히 그녀를 끌어안고 외쳤다.
"최희 씨? 최희, 최희!"
최희를 붙잡고 흔들던 정대식은 아연해서 손을 들어 올렸다.
그녀를 만진 손에 피가 흥건히 묻어 있었다.
이게 어찌 된 일인가 싶었던 정대식은 곧 그 이유를 깨달을 수가 있었다.
'여동생을 구하기 위해서......! 자신의 마력을 지우기 위해서 자해를 했구나!'
정대식은 입술을 꾹 깨물었다 놓고 황급히 치료를 시전했다.
하지만 그의 치료 스킬은 레벨이 신통찮아 임시방편밖엔 되지 않았다.
그는 운전자를 향해 황급히 소리쳤다.
"빨리 병원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