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0
현질 전사
-4권 5화
근래에야 관련법이 개정되어 각 자동차 회사들은 헌터들을 대상으로 한 던전 전용 차량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보다 단단하고 가벼우면서도, 소음이 적고 충격에 강한 차를 개발하기 위해서는 던전에서 생산되는 온갖 신소재의 도입이 필요할 뿐만 아니라, 헌터들의 모니터링 또한 필요했다.
그래서 타이탄 공격대는 H 사에서 차량을 무상으로 이용하는 대신, 던전에 들어갈 때 새로 개발한 차량을 테스트해 주거나, 각성자들의 이능, 혹은 던전 자원과 결합한 아이디어를 제공하거나 했다.
물론 타이탄 공격대원들이 H 사의 차를 타고 다니면서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홍보 효과도 무시 못한다.
예를 들어 최희가 해외 모 기업의 미니카를 타고 다녔을 때는 그야말로 대0박이 났다.
그 기업은 한국에서는 상대적으로 인지도가 낮았다.
한데 최희가 다른 값비싼 슈퍼카를 마다하고 미니카를 타고 다니자 관심이 폭발했던 것이다.
그 미니카는 디자인도 귀여운데다가 가성비 끝판왕이라 한국에서 대 히트를 쳤다.
그 유행이 해외로까지 번져 나가 현지에서도 역수입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였으니, 유명한 헌터 한 사람이 가지는 영향력이 얼마만한지 짐작이 될 터였다.
실제로 연예계에서는 헌터들에게 스타 자리를 다 뺏겼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였다.
대한민국의 헌터들은 세계 최강이었고, 하나같이 젊었다.
확장 현실 세계가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으니 대부분 각성자들의 나이가 많으면 40대, 적게는 10대였다.
간혹 나이 많은 각성자가 있기도 했으나 이들은 보통 던전에서 헌터로 활약하지는 않았다.
그렇다 보니 헌터들이 대중의 관심과 사랑을 받는 것도 당연했다.
그래서인지 H 사에서 제공한 자가용은 가장 최근에 나온 모델이었다.
날렵한 몸체와 젊은 감각의 디자인으로 각광받고 있는 세단이었다.
젊은 층이 구매하기에는 다소 가격대가 있었지만, 그런 부분을 감수하고서라도 갖고 싶어지는 차였다.
정대식은 휘익, 휘파람을 한 번 불고 운전석에 올라탔다.
핸들이 손에 착 감겼고 좌석도 매우 편안했다.
국내 차종답게 실내가 널찍하고 근사해서 운전할 기분이 났다.
모처럼만의 운전이라 실수를 하지 않을까 염려스러워하면서, 정대식은 조심스럽게 차를 몰아 차고를 빠져나갔다.
그래도 온갖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차를 몰아 본 경험이 있답시고, 운전에는 그리 어려움이 없었다.
이 일대가 신도시라 도로 정비가 잘 되어 있는 덕분이기도 했다.
서울 인근의 몇몇 위성 도시는 몬스터 브레이크가 일어났을 때 큰 피해를 입었다.
그나마 국가 수도인 서울은 국방부에서 나서서 필사적으로 방어를 했으나, 다른 지역은 그렇지 못했던 것이다.
고립되어 있으면서 던전이 열린 곳 같은 경우는 아직까지도 몬스터 소굴이었다.
특히 울릉도나 완도 같은 섬들은 완전히 초토화되어 던전이나 다름없는 상태가 되어 있다고 봐야 했다.
그나마 제주도는 많은 부분을 복구하였으나 아직까지도 다섯 개나 되는 던전에서 튀어나온 몬스터들이 곳곳에 바글바글했다.
그나마 한국 같은 경우에는 사정이 나은 편이다.
나라 자체가 섬으로 이루어져 있는 일본 같은 경우는 답이 없었다.
특히 일본 근해의 해저에서는 어느 던전에서 기어 나왔는지도 모를 엄청난 몬스터가 튀어나와 자위대가 완전히 박살이 났다.
그 결과 일본은 삿포로와 오키나와를 영영 잃어버렸다.
자칫 잘못하다간 일본 본토가 통째로 몬스터에게 집어삼켜질 지경이었으나, 그 위기에서 일본을 구해 낸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한국 사람이었다.
일본을 습격했던 거대 괴수, 일명 메두사와 사투를 벌인 그는 끝내 목숨을 잃었으나 지금은 일본에서 신에 버금가는 추앙을 받고 있었다.
한때는 대한민국이 일본의 속국이었다고는 하나, 지금은 완전히 입장이 반대가 된 셈이다.
일본은 아직도 그때의 충격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였고, 던전 공략의 많은 부분을 한국에 의존하고 있는 상태였다.
실제로 많은 공격대들이 종종 외교부의 요청을 받고 일본에 출장을 나가곤 했다.
정대식은 한동안 차를 달렸다.
약 한 시간 가까이를 밟아 도착한 곳은 다름 아닌 사설 몬스터 부산물 처리소였다.
정대식이 알아본 바로는 여기가 일대에서 가장 높은 금액을 쳐주는 곳이었다.
세금 감면 혜택을 받고 있어 공인 업체를 가도 수입이야 짭짤하겠지만, 몬스터를 사냥한 방법이 구리다 보니 좀 마음에 걸렸다.
외인부대로 파견을 나가 있으면서 몰래몰래 사냥해 집어 온 것들이라 공인 업체를 가면 그 사실을 들킬지도 몰랐다.
물론 징계나 경고가 없을 수도 있지만, 괜히 다른 대원들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체면 문제도 있어서 사설 업체를 이용해 은밀히 처리하는 편이 낫겠다 싶었던 것이다.
어차피 랭킹 순위 같은 건 확인도 안 하고 있으니 공인 업체를 고집할 이유도 없었다.
"계십니까!"
사설 업체라 그런지 건물은 몹시 허름했다.
차를 주차한 공터엔 잡풀이 자라나 있었고 몬스터 부산물을 보관하는 대형 냉장고와 컨테이너들이 그대로 밖에 나와 있었다.
심지어 자리를 지키는 사람도 없었다.
정대식이 잘못 찾아왔나 하고 낭패해 있으니, 뒤늦게 누군가 나타났다.
"아이고, 어서 오십쇼!"
나타난 것은 50대쯤 되어 보이는 중년 남자였다.
알로하셔츠에 반바지를 걸치고 있었는데 얼굴에는 수염이 까칠하고 배가 남산만 하게 튀어나와 있었다.
심지어는 입에서 술 냄새가 지독했다.
정대식은 아직도 술이 안 깼는지 얼굴이 벌건 그 남자를 보고 미간을 찡그렸다.
번지수를 잘못 찾았나 싶었지만, 상대가 술주정뱅이인 편이 흥정에는 더 유리할지도 모른다.
그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말했다.
"짐은 어디다 부리면 되겠습니까?"
"아, 예. 양이 얼마나 됩니까?"
"상당합니다. 달리 선별을 안 하고 가져온지라."
"흐음, 보아하니 짐차가 있는 것 같지도 않은데. 디멘션 포켓이라도 있나 보죠?"
남자는 헛헛 웃음을 터트리며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방수포를 들고 나와 그것을 공터에 펼쳤다.
물론 혼자서는 무리였으므로 그는 정대식을 부려 먹었다.
보아하니 다른 직원이 있는 것 같지도 않아 마지못해 그를 도와 방수포를 펼쳤다.
"자! 어디 꺼내 보시죠."
정대식은 짧게 뇌까렸고, 곧 방수포 위에 엄청난 양의 몬스터 사체가 나타났다.
닥치는 대로 쑤셔 넣은 거라 방수포 위에 다 들어가지도 않았다.
어느 몬스터의 뇌수와 내장, 아직도 철철 흐르는 피가 방수포 밖으로 넘쳐나 남자가 비명을 질렀다.
"으아악! 이, 이게 웬......!"
"말했잖습니까? 선별은 안 하고 그냥 들고 왔다고요."
"허어, 이거 참. 이걸 어떻게 다 처리하지?"
남자는 몹시 난감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거렸다.
"정산에만 한참이 걸리겠는데요?"
그는 턱을 쓰다듬으며 말을 이었다.
"이만한 양을 들고 온 손님이 없어서...... 이걸 여기서 처리하긴 무립니다."
정대식은 헛걸음했구나 싶어서 혀를 찼다.
이곳이 금액을 높이 쳐준다는 소문을 어디서 듣고 일부러 나온 거였는데, 아무래도 다소 손해를 보더라도 좀 규모가 있는 데를 찾아가야 할 모양이다.
정대식이 무리라면 되었다고 손을 내저으려 하자, 남자가 갑자기 목소리를 높였다.
"잠깐만요! 하지만 이걸 다 매입해 줄 만한 사람을 알고 있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이왕 여기까지 온 거, 좀 기다려 보자고 생각하며 정대식은 팔짱을 꼈다.
남자는 거의 골동품이 되어 버린 폴더폰을 꺼내어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커피라도 한 잔 하라며 정대식을 초라한 사무실 안쪽으로 인도했다.
* * *
그가 타 준 커피를 마시고 앉아 있자, 오래지 않아 또 다른 남자가 나타났다.
"어이, 왕 영감."
그는 한눈에도 보통 시민 같지는 않아 보였다.
40대 후반쯤으로 보이는 중년인으로, 유행에 뒤처진 등산복을 위아래로 걸치고 있었는데 전신이 이레즈미 스타일의 문신으로 뒤덮여 있었다.
게다가 목에는 조폭의 상징과 같은 두꺼운 금목걸이를 걸었고, 팔목에는 게르마늄 팔찌를 몇 겹이나 차고 있었다.
보아하니 불법적으로 몬스터 부산물을 사 들여 불법적인 물품을 생산하거나 판매하는 인물 같았다.
확장 현실 세계가 시작되고 던전 자원이 흘러들면서 지하 세계도 그 모습이 바뀌었다.
본디 조폭들은 1990년대를 기점으로 하향세에 접어들어, 규모가 많이 축소되었다.
기업으로의 발돋움에 성공한 몇몇 집단을 빼놓고는 대부분이 '동네 조폭'이라는 굴욕적인 명칭을 받아들여야 했다.
그러다가 확장 현실 세계가 시작됨으로써 모든 것이 바뀌었다.
에너지 고갈에 시달리던 세상은 갑작스럽게 에너지 과부하 상태가 되어 버렸다.
4차 산업 혁명은 예상되었던 바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진행이 되었고, 다 죽어 가던 경기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되살아났다.
당연히, 지하 경기도 활력을 되찾아 조폭들은 새로운 돈벌이를 찾아내었다.
그들은 던전 자원의 찌꺼기를 활용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보였다.
쓸모없다고 버려지는 온갖 것들을 현금화하는 데 성공했다.
몇몇 헌터들이 애용하는 물품들은 이런 음성적인 시장에서 판매되고는 했다.
가장 대표적인 게 '부스트'라고 불리는 약물, 일종의 포션인데 그것을 마시면 그 어떤 고통도 깡그리 잊혔다.
또한 비정상적으로 정신과 신체가 활성화되어 두려움을 모른 채 강한 힘과 속력, 뛰어난 능력을 발휘할 수가 있었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서 부스트는 마약이었다.
후유증이 클뿐더러 의존도가 높아 한 번 사용하기 시작하면 끊기가 힘들다고 했다.
나중에는 사냥을 하는 도중이 아닌 일상에서도 상습적으로 쓰게 된다고 하니, 마약이라고 불릴 수밖에 없었다.
이와 유사한 약물도 다양했는데, 규제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다.
일단은 부스트의 가격이 높아서 대중화되지는 않는다는 게 첫 번째 이유였고, 두 번째는 포션과의 차이점을 분간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보통 사람들이 보기에는 포션이나 이런 불법 약물이 그 효능이나 효과에 있어서 큰 차이가 없었다.
중독성 여부가 마약이냐, 아니냐를 판가름하는 척도가 될 수는 있겠지만, 포션의 종류에 따라서 후유증이나 중독성이 있는 것은 마찬가지다.
그런 관계로 불법 약물의 유통은 공공연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대놓고 사용하지는 않아도 법에 저촉되지는 않으니까 암암리에 흔히 쓰이고 있다는 말이다.
지금 정대식의 눈앞에 있는 남자는 그런 종류의 직업에 종사하는 것이 틀림없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