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질 전사-76화 (76/297)

# 76

현질 전사

-4권 1화

Chapter 20. 능력 확장

"키르아아아!"

웜은 단말마를 내지르며 쓰러졌다.

그 앞에 서서 정대식은 "헉! 헉!" 거친 숨을 토해 냈다.

웜을 상대하느라 힘에 부쳐 그렇다기보다는, 수컷 와이번을 상대하고 여기까지 곧장 달려오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다행히도 제때 도착해 동료들을 웜에게서 구해 낼 수 있었으니, 천만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어 몸에서 긴장이 쭉 빠져나갔다.

'마력을 다 소진해 버렸다. 텅텅 비었어.'

정대식은 한숨을 내쉬며 팔을 늘어트렸다.

그러기가 무섭게 등 뒤에서 뭔가 부닥쳐 왔다.

"정대식 씨!"

"어억."

몸에 힘을 완전히 빼고 있던 정대식은 하마터면 앞으로 자빠질 뻔했다.

그는 황급히 균형을 잡고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엔 허미래가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 매달려 있었다.

"무사했군요, 무사했어요!"

코맹맹이 소리를 내며 하는 말에 정대식은 입술을 씰룩거렸다.

곧 박무원도 그에게로 다가가 어깨를 툭 치고 말했다.

"다행이야. 돌아올 수 있어서."

심지어는 다른 공격대에 속해 있는 황유미조차 안도의 한숨을 토해 냈다.

"끝장인 줄 알았는데......."

정대식은 그들의 환대에 어색한 표정으로 입술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파리한 얼굴로 블랙 스캘럽을 거둬들인 김시온이 가까이 다가왔다.

그리고 생전 본 적 없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잘 돌아왔다."

정대식은 깜짝 놀라 혀를 깨물 뻔했다.

그는 김시온이 웃는 모습을 처음 봤다.

간혹 가다 미소 비슷한 걸 지어 보일 때도 있었으나 대부분은 잔인하고 악독해 보이는 표정이라 전혀 웃는다고 생각할 수 없었다.

그런데 이렇게 순수하게 웃는 모습을 보아하니 김시온이 생각보다 미인이라는 사실이 깨달아졌다.

"아, 음...... 아닙니다."

정대식은 당황해서 어버버거렸다.

그런 그를 보고 김시온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표정을 바꿨다.

그녀는 침착함을 되찾은 얼굴을 하고 질문했다.

"와이번의 알은 안전하게 보관되어 있겠지?"

"예, 물론입니다."

고개를 끄덕인 정대식은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다.

그들을 떠나보내기 전에 와이번의 알을 먼저 건네줬어야 했다.

김시온은 나중에 그것을 디멘션 포켓 채로 회수할 생각이었겠지만, 정대식이 가진 아공간은 디멘션 포켓과는 달랐다.

다른 사람이 소지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가 죽으면 모르긴 몰라도 아공간과 그 안에 있는 물건도 사라질 가능성이 높았다.

김시온은 곧장 부상당한 유태훈을 돌아보았다.

"괜찮나?"

유태훈은 쓴웃음을 지어 보였다.

"일단...... 죽지는 않았습니다."

"그럼 됐군."

김시온은 그렇게 말했으나 정대식이 보기에 유태훈의 상처는 심각해 보였다.

힐을 쓸 수 있다거나 무슨 포션이라도 남아 있으면 괜찮을지도 모르겠지만, 지금은 전원이 마력을 소진해 버린데다가 포션도 없었다.

출혈이 계속되고 있어 자칫 잘못하다가는 세이브 포인트에 당도하기 전에 죽을 수도 있었다.

황유미와 허미래는 서둘러 유태훈의 하프 아머를 벗겼다.

그리고 다 찢어진 가죽 재킷을 벗겨 냈다.

안에 받쳐 입은 흰 티셔츠가 피로 온통 벌겋게 물들어 있었다.

그걸 조심스럽게 찢어 내자 참혹한 상처가 드러났다.

웜에게 물린 자리에 살점이 완전히 뜯겨 나가 있었다.

"으윽......."

유태훈은 신음을 뱉으며 식은땀을 뻘뻘 흘렸다.

그의 상처를 지혈하며 박무원이 안타까운 소리를 토해 냈다.

"포션이 한 병만이라도 있었더라면......."

속이 타기는 정대식도 마찬가지였다.

어찌어찌 대원들을 구해 내기는 하였으나 결코 상황이 좋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거의 맨몸이나 마찬가지이다시피 한 상태에서 부상자를 두 명이나 데리고 이곳을 탈출해야 하는 것이다.

김시온은 유태훈이 박무원의 부축을 받는 것을 보고 말했다.

"조금만 더 가면 신채운이 다른 대원들을 데리고 올 거다. 그때까지만 버티면 돼."

김시온은 그 일이 곧 일어날 사실처럼 말했다.

그러나 누구도 순진하게 그 말을 다 믿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들은 와이번의 둥지로 오기까지 언데드 와이번을 타고 왔다.

그 거리를 평범하게 두 다리로 걷는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다.

김시온은 그 사실을 외면하듯 앞장을 섰다.

"출발한다."

박무원이 유태훈을 부축했고, 김시온도 황유미와 허미래의 도움을 받아 발길을 옮겼다.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소강두는 정대식이 업었다.

당연히 대열 같은 건 짤 수 없었다.

그들은 패잔병처럼 한 줄로 늘어선 채 걸어갔다.

그 뒤를 따르며 정대식은 마른 입술을 핥았다.

무력한 것은 그 역시도 마찬가지인 상황이었다.

단, 차이가 있다면 정대식은 돈으로 자신의 상태를 바꿀 수가 있었다.

그러나 일전에 많은 돈을 써 버렸기에 여유 자금이 그리 넉넉하지가 않았다.

적은 금액으로 최상의 방법을 이끌어 내야 했다.

'어떡하면 좋지?'

정대식은 일단 자신의 상태창을 불러내었다.

그것은 남들 눈에 보이지 않았고, 반투명했기에 걸으면서도 내용을 살펴볼 수가 있었다.

정대식은 상태창을 뚫어져라 쳐다보면서 어떻게 해야 할지를 고민했다.

'마력을 다 소진해 버린 이상, 공격용의 액티브 스킬을 획득하는 건 의미가 없다. 차라리 마력을 보충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게 나아. 하지만 그조차도 나 자신을 대상으로 쓰는 것이라 소용이 있을지 모르겠어. 마력 회복 포션과 같은 효과를 내는 스킬이 있다고 하더라도, 일단 마력이 기본적으로 깔려 있어야 발동을 할 거 아냐?'

정대식은 생각의 방향을 조금 바꿨다.

'그래. 지금 상태에서 마력을 회복한다 하더라도 결과적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은 공격력뿐이다. 몬스터가 나타나면 싸울 수 있게 된다는 것이지. 하지만 여기서 빠져나가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테고, 어떤 몬스터가 나타날지는 미지수야. 설령 몬스터를 쓰러트린다 하더라도 또 다른 몬스터가 나타날 수도 있단 말이지.'

정대식은 입술을 깨물었다.

'나 혼자라면 모를까, 부상당한데다가 지쳐 버린 다른 대원들이 있는 이상 마주치는 몬스터를 붙잡고 싸우는 것은 소모적일 뿐이다. 지금 최대 목표는 몬스터 사냥이 아닌, 이곳에서의 탈출이야. 차라리 이곳을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게 나아.'

상점 레벨 업그레이드로 그에게는 새로이 획득할 수 있는 스킬이 몇몇 있었다.

개중에 이 상황을 타파할 방법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것 역시도 마력이 있어야 발동할 수가 있었다.

이랬든 저랬든 마력 고갈이라는 지금 상태를 해결할 방법이 없었다.

'어떤 스킬이든지 간에 마력이 있어야지만 해당이 되는...... 아!'

정대식은 문득 번개 같은 깨달음을 얻었다.

'그래! 마력이 없어도 발동되는 스킬이 있기는 하지! 다름 아닌 패시브 스킬이다!'

강철 신체와 같은 패시브 스킬은 보유한 마력량과는 상관이 없었다.

그것은 획득하는 그 순간부터 정대식의 상태와는 상관없이 동일하게 그 효력을 발휘했다.

만약 마력이 있어야지만 강철 신체가 효과가 있었다면 정대식은 지금 이 자리에 서 있지도 못했을 것이다.

'맞아, 패시브 스킬은 일단 획득하고 나면 영구적으로 작용하지! 그렇다면 패시브 스킬 중에서 이 상황에 도움이 될 만한 걸 구매하면 된다!'

무엇이 좋을까 스킬 창을 몇 번이나 탐독한 끝에, 정대식은 신중히 결정을 내렸다.

'주의 확장. 이 스킬을 구입해야겠다.'

주의 확장이라는 것은 적의 기운을 읽어 내는 스킬이었다.

정확히는 살기를 포착할 수 있는 능력으로 몬스터의 접근을 미리 짐작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몬스터가 출몰해도 피해 갈 수 있으므로 대원들과 함께 안전하게 이곳을 벗어나는 것이 가능했다.

그때, 어디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듣자하니 이를 가는 소리였다.

박무원에게 기대어 걷고 있는 유태훈이 고통을 참다못해 이를 북북 갈고 있었다.

얼굴은 이미 백짓장이었고 땀을 비 오듯이 흘리고 있었다.

그것을 보고 마찬가지로 황유미와 허미래의 부축을 받고 있던 김시온이 발걸음을 멈추었다.

그녀는 유태훈의 상태를 보고 말했다.

"안 되겠군. 잠시 쉬어가자."

유태훈은 흐려진 눈을 하고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얼른 세이브 포인트를 찾아야......."

"그 전에 네놈이 죽는다!"

대원들이 수풀이 우거진 자리에 지친 몸을 누이는 사이, 정대식은 경계를 서겠다며 밖으로 나왔다.

다른 대원들과 거리를 두고 서서 정대식은 입을 열었다.

"엔트로피."

<부르셨습니까, 정대식 님?>

엔트로피는 즉각 모습을 드러내었다.

곰 인형처럼 앙증맞은 꼴이라니, 정말 적응이 안 됐다.

그러나 그런 것에 연연할 상황이 아니었으므로 정대식은 빠르게 말을 이었다.

"내가 구입할 수 있는 스킬 중에 주의 확장이란 게 있지?"

<그렇습니다.>

"그걸 구입하겠어."

<주의 확장 스킬을 구입하고 천만 원을 차감합니다.>

정대식은 자신이 보유한 정신계 스킬 목록에 주의 확장이 뜨는 것을 보았다.

"이건 패시브 스킬이라 상시 발동인 거겠지?"

확인 차 묻는 말에 엔트로피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다!

어설프게나마 머리와 몸, 팔다리가 나뉘어진 엔트로피는 그런 식의 제스처가 가능했다.

처음에는 그저 말풍선과 같은 기호일 뿐이었는데, 놀라운 발전이었다.

정대식이 새삼 그 사실에 놀라는 사이 엔트로피가 설명을 이었다.

<그렇습니다. 주의 확장은 패시브 스킬로 일반적인 액티브 스킬과는 다르게 상시 발동됩니다. 그것은 정대식 님의 마력이 고갈되거나 의식을 잃었을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주의 확장의 경우 정신계 스킬로 상시 발동이 된다는 사실과는 별개로, 사용자의 지각 여부가 실재적 효용에 영향을 미치는 고로.......>

"간단하게 말해, 간단하게."

<정신계 스킬이기 때문에 아무리 패시브 스킬이라고 하더라도 강철 신체와는 달리 의식을 하고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어엉?"

<쉽게 설명을 하자면 초점을 맞추는 것과 같습니다.>

"아하!"

사람의 시야각은 보통 110도에서 120도에 달한다.

그러나 사람이 그 시야각에 들어오는 모든 것을 보고 있는 것은 아니다.

긴장을 하면 시야각이 좁아져 코앞에 있는 것을 못 보기도 하고, 정신을 집중하면 작은 것을 또렷하게 보기도 한다.

즉, 주의 확장도 정대식이 얼마나 의식을 하느냐에 따라 다르게 작용을 한다는 말이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 하긴, 주의 확장의 효력이 항상 120퍼센트 발동되어 있는 상태면 꽤나 피곤하겠지."

<사실을 말하자면 그렇지는 않을 겁니다.>

"그건 또 무슨 말이야?"

<정대식 님이 획득한 주의 확장 스킬의 레벨은 고작해야 1단계. 그 정도로는 반경 100m밖에 살필 수가 없습니다.>

"뭐야? 겨우 100m라고? 그건 눈으로도 충분히 볼 수 있는 거리잖아! 왜 그거밖에 안 되는 건데?"

<그것은 정대식 님의 오감과 민첩 상태와 연관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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