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3
현질 전사
-3권 13화
아무래도 소강두라는 남자는 리칸트로피, 변신 능력을 타고난 헌터인 것 같았다.
매우 보기 드문 종류의 헌터라 정대식은 신기한 맘에 눈을 크게 떴다.
곧 옆에서 끼어들던 미남이 연이어 자기소개를 했다.
"나는 유태훈이고 네크로맨서야. 탱커, 딜러, 디버퍼 역할이 가능해."
네크로맨서 역시 희귀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그 외양이 일반적으로 생각되는 네크로맨서와는 판이하게 달랐다.
보통 네크로맨서 하면 두건을 뒤집어쓴 음산한 인물을 상상하기 마련인데, 유태훈이라는 남자는 지나치게 잘생겼다.
웃으니까 무슨 CF 화면 속에서 튀어나온 것 같았다.
"아, 그리고 이쪽은......."
"너도 빨리 자기소개해!"
유태훈과 소강두의 재촉을 받아 입을 연 세 번째 인물은 체격이 좋고 과묵한 인상의 남자였다.
짧게 자른 머리에 실용적인 복장, 그리고 두꺼운 워커를 신은 모습이 군인 같아 보였다.
이중에 가장 헌터다워 보이는 인물이기도 했다.
그는 무뚝뚝하게 입을 열었다.
"박무원. 탱커 겸 딜러 겸 힐러......."
마지막은 정대식의 가슴께까지밖에 오지 않는 여자아이였다.
나이도 10대 정도로 어려 보였다.
게다가 수줍음이 많은지 정대식과 제대로 눈도 맞추지 못했다.
그녀는 자기소개를 하는 대신 얼굴을 발갛게 붉히며 유태훈 뒤로 숨었다.
그러자 유태훈이 하하 웃으며 대신 소개를 했다.
"여기는 허미래. 뛰어난 디버퍼야. 어려 보이지만 이래 봬도 스물다섯이니까 행여 실수하지 말고."
스물다섯이면 정대식보다 더 나이가 많았다.
정대식은 절대 동안이라 생각하며 내심 입을 쩍 벌렸다.
듣자 하니 부대원 전부가 여러 개의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는 능력자들이었다.
정대식이 멀티플레이어라는 점은 여기선 유별날 것도 없어 보였다.
아무튼, 부대원 소개가 끝났으니 정대식이 자기소개를 할 차례였다.
"저는 정대식이고...... 제 능력에 대한 부분은 이미 부대장님이 다 말씀하셔서 할 말이 없군요."
그 말에 소강두가 킥킥거렸다.
"부대장님이 암 말 안 했어도 어차피 다 알고 있었어. 네 소문이 워낙에 퍼져서 말이지. 제발 우리 팀에 들어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정말 외인부대에 올 줄이야. 부대장님이 힘 좀 쓴 모양인데?"
유태훈이 쓴웃음을 지었다.
"우리 부대는 한동안 인원 보충이 이루어지질 않았으니까. 버퍼가 간절하던 참이지."
그러고 보니 대부분의 부대원들이 여러 능력을 갖고는 있어도 버퍼가 없었다.
디버퍼나 힐러가 있기는 하지만, 그들의 능력은 버퍼와는 명확히 구분된다.
김시온이 온갖 독설을 내뱉어 놓고 가기는 했으나, 부대원들의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그들은 정대식을 환대하며 부대에 대한 이런저런 일들을 알려 주었다.
보아하니 외인부대가 외인부대라고 이름 붙여진 데는 이유가 있었다.
"우린 독자적으로 활동하기보다는 다른 부대나 외부 공격대 요청으로 파견을 나가는 일이 많아. 말 그대로 외인부대지."
"보아하니 다들 특이 능력자신 것 같은데요?"
"응, 기본적으로 외인부대는 여러 포지션을 한 번에 소화 가능한 부대원들로만 이루어지거든. 미래 같은 경우에는 예외지만, 디버프가 워낙 강력해서 한 부대에만 묶어 두기엔 아까운 감이 있지. 너 같은 멀티플레이어...... 트리플리스트도 마찬가지고 말이야."
"그렇군요."
"그러고 보니 이제 같은 부대원인데 말 편하게 하지 그래?"
소강두의 제안으로 정대식은 부대원들과 말을 놓게 됐다.
"그럼 요청이 올 때마다 부대 전원이 출격하는 건가?"
"몇 명만 파견 나갈 때도 있고, 전부가 나갈 때도 있고 그래. 무슨 임무냐에 따라 다르지. 독자적으로 나갈 때도 있는데, 신입이 들어왔으니 당분간은 함께 움직이게 될 거야."
이런저런 설명을 듣던 정대식은 김시온에게 넘겨받은 가죽 케이스를 들어 보였다.
"이건 뭐지?"
"아, 그거? 네가 머물게 될 사택 키 카드와 차 키랑, 외인부대 접속 코드가 심어진 저장 장치랑, 타이탄 공격대가 공용으로 이용하는 통신 패드야. 분실하면 재발급받기 귀찮으니까 간수 잘해야 해."
"그렇군."
정대식은 외인부대의 클라우드에 접속하는 방법과 통신 패드를 이용하는 방법을 간단히 익혔다.
그러고 나서 부대원들의 의견을 따라 다 같이 밥을 먹으러 갔다.
식사는 타이탄 공격대 본사 건물 내 자리해 있는 구내식당에서 해결했다.
뷔페 식으로 된 구내식당의 수준이 상당히 훌륭했다.
여기서 먹는 밥은 전부 공짜라 하니 끼니는 전부 여기서 해결하면 될 것 같았다.
디저트 구성까지 알차서 무슨 고급 호텔 뷔페에라도 온 기분이 들었다.
정대식은 부대원들의 안내를 받아 그동안은 정식 대원이 아니어서 제대로 둘러보지 못했던 건물 투어를 했다.
그러고 나니까 몇 시간이 훌쩍 흘러, 유태훈이 술 한잔하러 나가자고 부추기는 소강두를 말렸다.
"오늘 사택에 처음 들어가는 거지? 가서 짐 정리도 해야 할 테니까 이만 해산하자. 내일부터는 보나 안 보나 지옥 훈련이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내일부터 지옥 훈련일 테니까 오늘 놀자는 거 아냐!"
아우성치는 소강두를 반 강제로 끌고 가는 부대원들과 헤어져, 정대식은 타이탄 공격대 본사 건물 지하 주차장에서 자신이 몰고 다닐 차를 수령했다.
공용으로 쓰는 차는 지프였으나 그가 개인적으로 타고 다닐 차는 세단이었다.
그리 고급 기종은 아니어도 매번 지하철이니 버스니 대중교통을 타고 다니던 것과는 비교할 수 없었다.
정대식은 차를 몰고 앞으로 자신이 기거할 사택을 찾았다.
그가 머물 집은 타이탄 공격대 본사 건물 인근의 주택 단지에 자리해 있었다.
몬스터 브레이크로 완전히 파괴되었던 곳을 밀어 버리고 다시 재건한 곳이라서 계획도시의 느낌이 났다.
반듯하게 뻗은 도로에 질서 정연하게 주택들이 들어앉아 있었다.
한꺼번에 지은 곳이라 무개성한 느낌이 없잖아 있었다.
성냥갑처럼 똑같이 생긴 1인용 주택이 쭉 늘어서 있었는데, 정대식의 집도 개중 한 곳이었다.
아파트와 별다를 바 없어 보이는 공동 주택이었으나, 그래도 주택이라고 개별 주차장과 작은 마당, 테라스, 옥상 등이 자리해 있었다.
주위 주택과의 거리도 적절하게 떨어져 있어 프라이버시 보호도 잘 되는 듯 보였다.
더군다나 타이탄 공격대의 사택은 공용 보안 시스템으로 묶여 있어, 외부인은 주택지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타이탄 공격대의 표식을 갖고 있거나 출입증을 소지해야지만 가능했다.
스크롤을 통해 받은 표식이 신분증이나 마찬가지 역할을 하는 것이다.
입구에는 경비실 겸 관리실이 자리해 있어 불편 사항은 전부 그곳에서 해결이 가능했다.
정대식은 경비원과 간단히 인사를 나누고 보안 검색을 통과해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자신의 집에 도착했다.
주차장에 차를 집어넣고 키 카드로 현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자, 생각보다 너른 실내가 보였다.
기본적인 살림살이는 다 갖춰져 있기에 몸만 들어가면 되었다.
정대식은 집 안을 한 바퀴 둘러보고 옷가방을 대충 던져 놓았다.
그리고 여관방에서는 결코 누릴 수 없었던 사치, 자신만의 욕실로 들어가 샤워 부스에서 뜨거운 물을 실컷 썼다.
그런 뒤 곧장 침실로 들어가서 곯아떨어졌다.
* * *
다음 날, 정대식은 정시에 출근해 외인부대 사무실로 갔다.
부대원들이 모이기가 무섭게 부대장인 김시온이 모습을 드러냈다.
날이 더워져 그런지 그녀는 크롭티를 입고 있었는데, 아래로 드러나는 복근이 남자 못지않았다.
그러고 보니 드러난 어깨와 팔뚝에 비치는 혈관도 장난이 아니었다.
그 모습에 약간 기가 죽어 있노라니, 김시온이 말했다.
"오늘은 새로 온 얼간이 기저귀도 갈아 줄 겸, 던전으로 나간다."
던전에 나간다는 말에 소강두가 환호성을 올렸다가 김시온의 눈총을 받았다.
소강두가 찔끔해 입을 다물자 김시온이 말을 이었다.
"기껏 데려온 애송이가 죽어 자빠지기라도 하면 곤란하니까, 비교적 편한 곳으로 가겠다. S12던전으로 가자."
그 말에 유태훈이 눈을 한 바퀴 굴렸다.
"S12던전이면...... 그 슬라임이 나오는 곳 말입니까?"
슬라임이 나오는 곳이라는 말에 소강두가 김이 팍 샜다는 식의 표정이 됐다.
상대가 슬라임이라면 그럴 만도 했다.
슬라임은 속도가 느리고 몸체가 젤라틴과 같이 물렁한 성분으로 이루어져 있는 지라, 공격하는 맛이 없었다.
비명도 맥 빠지는 주제에 치명상을 입히기가 어려워 상대하기가 까다로웠다.
즉, 돈은 안 되고 수고는 많이 드는 몬스터라고 하겠다.
김시온은 그 어떤 불만도 접수하지 않겠다는 듯이 눈을 부라렸다.
"그보다 더 강한 몬스터가 나오는 던전으로 갔다간, 말했다시피 새로 온 얼간이가 큰일이 날 수도 있지 않겠나?"
자꾸만 얼간이니 애송이니 하는 게 거슬려서, 정대식은 저도 모르게 말대답을 했다.
"저는 상관없습니다만."
그 말에 김시온이 눈을 가늘게 떴다.
"호오, 상관이 없다라? 그래, 공격력에는 자신이 있다, 이건가?"
"저를 의식해서 수위 조절을 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그래, 네 똥 기저귀는 네가 갈겠다?"
"애초에 똥을 지리지도 않을 겁니다."
김시온은 사악하게 웃었다.
"좋다, 네 치다꺼리를 얼마나 잘하는지 두고 보자."
그녀는 단단히 벼르는 표정으로 무장을 차리게 하고 장비를 챙겨 지하로 내려갔다.
외인부대는 다 함께 지프에 올라타 남양주시를 벗어나 서울 시내를 관통했다.
S12던전은 서울의 북쪽, 의정부시와의 경계에 걸쳐 있는 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다 왔다."
손수 운전을 한 김시온은 던전 입구에서 재빨리 짐꾼을 수배했다.
그런 뒤 무구와 장비를 점검하라 하고 말했다.
"사냥 시간은 여섯 시간! 해지기 전에 돌아 나올 예정이다. 기본적인 보급품 외에 더 필요한 것이 있다면 지금 말해라. 저 안으로 들어가면 여섯 시간 동안은 죽이 됐든 밥이 됐든 나오지 않을 거니까 말이다."
대답하는 사람은 없었고 김시온은 곧 손짓을 했다.
"진입한다!"
S12던전은 중·초급 헌터들이 찾는 대중적인 사냥터였다.
등장하는 몬스터가 슬라임이라서 그렇게 인기 있는 던전은 아니지만, 전력을 시험해 보거나 전략을 짜기에는 좋은 장소였다.
또한 썰자팟 명소로도 유명했다. 빌드형이 아닌 필드형이라서 이동하기에도 용이한 덕분이다.
그래서 그런지 입구에는 헌터들이 바글바글했다.
외인부대는 사람들이 북적이는 장소를 지나 더 깊은 구역으로 들어갔다.
듬성듬성 나무가 서 있는 숲이 끝나고, 들판이 나타나자 인적이 드물어졌다.
S12던전은 총 12방향으로 나뉘어져 있었고, 출몰하는 몬스터에 따라 영역이 구분되었다.
외인부대가 가는 방향은 11G구역이었다.
탱커 역할도 겸하고 있는 소강두와 유태훈이 앞장서고, 그 뒤를 박무원과 정대식이 뒤따랐다.
후방을 허미래와 김시온이 지키며 앞으로 전진해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