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질 전사-62화 (62/297)

# 62

현질 전사

-3권 12화

공대장의 말 한마디가 타이탄 공격대에 있어서는 법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런 강영후가 눈치를 보는 사람은 단 한 명, 타이탄 공격대의 후원자이자 투자자인 최희였다.

놀랍게도 최희는 타이탄 공격대를 초기에서부터 뒷바라지해 온 인물이었다.

그러므로 타이탄 공격대에 강영후 못지않은 지분을 갖고 있다고 해야겠다.

물론, 최희는 타이탄 공격대의 운영에는 일절 간섭하지 않았다.

강영후로부터 어떤 요청이 있으면 간혹 거들어 주는 경우는 있어도, 철저히 외부인의 입장을 견지하고 있었다.

그런 그녀가 지난 채용 시험의 면접관으로 나온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라고 했다.

덕분에 정대식은 최희가 자신을 떨어트리기 위해 굳이 나온 게 아닐까 하는 피해망상에 시달렸다.

최종 면접 내내 최희에게서 적대적인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아무래도 사인을 헐값에 판 것이 대단히 기분 나빴나 보았다.

아무튼 최희가 마지막까지 정대식을 반대했더라면 타이탄 공격대에 들어오지 못했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최희 또한 그가 타이탄 공격대에 필요한 인재라는 사실을 인정했기에 면접을 통과할 수 있었던 것이다.

'기회가 되면 최희와의 관계 설정을 다시 해 봐야겠어.'

아무리 정대식이 마이웨이라고 하더라도 대한민국 최고의 슈퍼스타, SS급의 유일무이한 헌터인 최희에게 밉보여서 좋을 건 없다.

언젠가는 사인 사건을 만회해야 되겠다고 다짐하며, 정대식은 훈련장으로 향했다.

잠시 후, 기철민이 훈련장에 나타났다.

그는 정대식에게 아는 체를 해 보이며 말했다.

"드디어 오늘로 연수도 끝이군. 어느 부대로 갈지 걱정되는데?"

정대식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너는 외눈박이 부대로 가는 게 거의 확실한 거 아냐? 거기 부대장이 널 보는 눈빛이 아주 열렬하더만."

정대식의 말에 기철민은 어깨를 부르르 떨었다.

외눈박이 부대장은 부대 이름처럼 외눈박이였다.

한쪽 눈을 무슨 산적 같은 안대로 가리고 다니는 스킨헤드의 거구로, 아시아인이라는 게 의심스러운 용모였다.

제아무리 공적인 이유에서라고 하더라도, 그런 흉악한 용모의 남자가 열렬하게 쳐다본다 하니 오싹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기철민은 복수라도 하듯이 곧장 쏘아붙였다.

"그러는 너야말로! 외인부대장이 널 잡아먹으려고 들더라."

정대식은 진저리를 쳤다.

"다른 데는 다 좋아도 외인부대만큼은 사양이다."

한 달 간의 연수를 통틀어, 훈련이 가장 지독했던 사람은 외인부대장이었다.

그녀는 특히 정대식에게 무슨 앙심이라도 있는 것처럼 지독하게 그를 갈궜다.

무려 일주일 동안 서울에 있는 던전 중에서 난이도가 가장 높다는 S8D에서 개같이 굴렸던 것이다.

비록 3층 정도까지만 갔다고 하더라도 몇 번이나 죽을 뻔했다.

그런 상황에서 외인부대장이 쏟아 내는 폭언은 실로 신박하다고 할 만 했다.

외인부대장의 성별은 여자였지만 그 사실을 부정하고 싶어질 정도로 터프했다.

지난 악몽을 떠올리며 정대식은 손사래를 쳤다.

"거기만 아니면 돼! 거기만 아니면."

그때 꿈에서 들을까 두려운 목소리가 날아들었다.

"거기가 어디지, 정대식?"

정대식과 기철민은 기겁을 하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어느샌가 훈련장 입구에 외인부대장인 김시온과 외눈박이부대장인 팔용대가 서 있었다.

김시온은 서리라도 내려앉은 듯 서늘한 얼굴인데 반해 팔용대는 꽃밭에 앉아 있는 표정이었다.

아마 원하는 대로 기철민을 낚아채 갈 생각에 들뜬 모양이었다.

그렇다는 말은...... 정대식 또한 김시온의 부대에 들어갈 가능성이 높다는 말이었다.

'제기랄.'

정대식은 욕설을 삼키며 자세를 바로 한 채 그 두 사람이 다가오길 기다렸다.

코앞에 당도한 김시온은 등장에서부터 기분 나쁘게 정대식의 이마를 검지로 쿡쿡 찌르며 말했다.

"어디만 아니면 된다는 건데? 손사래까지 치면서 질겁하는 모양새를 보아하니, 거기가 어딘지 심히 궁금하군."

정대식은 솟구치는 짜증을 내리눌렀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부대장님."

"아무것도 아니어야 할 거다. 어차피 너희들에게 부대 선택권은 없으니까. 가진 능력이 좀 잘났답시고 스스로 부대를 고를 수 있을 줄 알았다면 큰 오산이다!"

살벌하게 소리를 치는 김시온을 팔용대가 만류했다.

"기선은 그쯤 잡고, 어서 해치우자고."

김시온은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 턱짓을 했다.

"손을 내밀어라."

정대식과 기철민이 손을 내밀자, 김시온이 손등을 보이게 했다.

그리고 팔용대와 함께 뭔가를 꺼냈다.

그건 스크롤이었다.

"오늘부터 정대식을 타이탄 공격대의 정식 대원으로 임명한다."

"오늘부터 기철민을 타이탄 공격대의 정식 대원으로 임명한다."

김시온과 팔용대는 그렇게 말을 하기가 무섭게 들고 있던 스크롤을 북 찢었다.

그러자 그 안에서 작은 빛이 손등으로 쏘아져 나왔다.

벌에 쏘이듯 따끔하는 느낌이 스쳐 지나고 빛이 가시자, 손등에 새겨진 선명한 표식이 보였다.

타이탄 공격대를 상징하는 거인을 형상화한 문양이었다.

"이로써 너희 두 사람은 타이탄 공격대 소속이 되었다. 정식 입대식은 사냥 나간 부대가 전부 귀환하는 다음 달 월요일에 이루어질 것이다. 거기에서 입대 선언문을 낭독해야 하니 홈페이지를 참고해 한 번쯤 읽어 보도록. 선언문을 읽다가 더듬거리기라도 하면 향후 1년 간은 말더듬이 취급을 받을 테니까."

킬킬거리며 말하는 팔용대에게 정대식은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문양의 색깔이 다르네요?"

그 말에 팔용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너희는 각자 다른 부대로 배치되었다."

자연히 시선이 김시온과 팔용대의 손등으로 향했다.

팔용대는 팔짱을 끼고 있었기에 녹색의 문양이 새겨진 손등이 잘 보였다.

반면 김시온은 워머를 끼고 있어 보이지 않았다.

정대식의 시선을 깨닫고 김시온은 악의적으로 웃으며 말했다.

"굳이 확인해보지 않아도 내 문양은 보라색이다."

그 두 사람이 나타났을 때 이미 예견하기는 했다.

기철민은 녹색 문양이었고, 정대식은 보라색 문양이었다.

정대식은 침중한 기색을 삼키며 생각했다.

'망했다.'

* * *

외인부대로 이동하면서 정대식은 질문을 던졌다.

"뭐 하나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김시온은 뒤도 안 돌아보고 싸늘하게 답했다.

"질문하라고 말한 적은 없는데."

정대식은 그 말을 무시하고 말했다.

"왜 저를 뽑으신 겁니까?"

김시온은 문득 걸음을 멈추고 정대식을 돌아봤다.

그리고 미간을 찡그렸다.

"그런 건 뭐 하러 묻지?"

정대식은 기죽지 않고 답했다.

"부대장님께 연수를 받는 과정에서, 부대장님이 저를 잘 본 것 같지는 않아서 말입니다."

잘 본 것 같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었다는 게 맞겠다.

그녀에게 연수를 받는 일주일 동안 그 끔찍한 던전 안에서 평생에 들을 욕을 다 들어먹었다.

세상에는 저런 욕도 있구나 싶은 욕까지 들어 봤으니 오죽하랴.

그런데 자신을 외인부대로 발탁해 가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 정도로 제 능력이 탐이 났다는 말인가?

김시온이 별안간 미소를 지었고, 정대식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는 김시온과 같은 여자가 웃으리라곤 생각해 보지 못했다.

"내가 너를 청한 것은 사실이다. 타고난 능력만 믿고 까부는 애송이를 다스릴 줄 아는 부대장은 나뿐이라고 확신했으니까. 그리고 그 생각에 공대장 또한 동의하셨다."

"아, 예......."

정대식은 구시렁거리며 발길을 옮겼고 외인부대가 쓰는 사무실 앞에 다다랐다.

김시온이 그 앞에서 문을 벌컥 열고 들어가자, 방만한 태도로 있던 부대원들이 소스라치게 놀랐다.

"부대장 오셨습니까!"

일사불란하게 자세를 가다듬는 부대원들을 보고 김시온은 자리에 앉으라고 손짓했다.

그리고 옆에 정대식을 세워 두고 소개했다.

"여기는 정대식. 이번에 새로 들어온 대원으로, 우리 부대원이 되었다."

김시온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부대원들이 오오오, 소리를 치며 환호를 보냈다.

"드디어!"

"이야아!"

"휘익!"

휘파람까지 불어 가며 기뻐하는 부대원들을 손짓 하나로 진정시킨 김시온은 계속 말을 이었다.

"이미 이런저런 소문을 들어 알고 있겠지만, 또한 우리 외인부대에 배치되었다는 이유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겠지만, 정대식은 보기 드문 트리플리스트다. 강화계, 정신계, 변화계, 세 가지 능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모든 포지션이 소화 가능한 멀티플레이어라고 할 수 있다."

김시온은 곧 정대식을 향해 살벌한 눈초리를 보냈다.

"하지만 그거 말고는 아무것도 모르는 얼간이기도 하지. 이제 헌터가 된 지 고작 6개월밖에 안 되는 애송이란 말이다. 아직 젖비린내가 풀풀 나는 꼬맹이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부대원들은 똥 기저귀를 가는 마음으로 이 녀석의 치다꺼리를 해라. 알겠나!"

"알겠습니다!"

"앞으로 이 녀석의 실수는 부대원 전원의 실수다. 그 모든 책임은 모든 부대원들이 나눠 갖는다. 하루 빨리 걸음마라도 하는 수준으로 만들어 놓든지, 아니면 아예 죽여버리든지 알아서 해라. 알겠나!"

"알겠습니다!"

"그럼 오늘은 너희가 얼마만한 골칫덩이를 떠안게 되었는지 확인할 시간을 주겠다. 코흘리개를 울리지 않는 선에서 구워 먹든 삶아 먹든 알아서 해!"

김시온은 곧 손에 들고 있던 뭔가를 휙 던지고 밖으로 나갔다.

엉겁결에 그걸 받아 든 정대식은 쾅! 닫히는 문에서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호기심이 가득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는 부대원들의 면면이 보였다.

외인부대의 인원은 총 다섯 명.

외인부대라는 명칭이 범상치 않다 싶더니만, 대원들 또한 범상치 않아 보였다.

즉, 정상인 같아 보이는 사람은 한 놈도 없다는 말이다.

"야아, 이게 얼마만의 신입이야. 만나서 반갑다!"

활짝 웃으며 악수를 건네 오는 인물은 이십대 초반의 젊은 남자였다.

머리는 화려한 빨간색, 이마엔 삼각형의 문신이 있는 게 무슨 데스 메탈이라도 하는 사람 같았다.

잇몸까지 드러나는 입 안의 이빨이 모조리 금니라 더 그래 보였다.

"아, 예...... 반갑습니다."

정대식이 얼결에 악수를 나누자 그가 자기소개를 했다.

"나는 소강두. 외인부대 팀에 없어서는 안 될 인물이지! 포지션은 탱커 겸 딜러. 웨어타우르스로 주로 근거리 공격을 맡고 있어."

그 말에 옆에서 웬 훈남이 참견을 했다.

"웨어타우르스는 무슨...... 그냥 변신 소라고 해."

"누가 소야, 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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