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1
현질 전사
-3권 11화
군더더기 없는 대답에 최희는 입을 다물었다.
금발머리는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반면 공대장인 강영후는 줄곧 무표정했다.
그러다가 질문을 던져왔다.
"......이번 3차 테스트에서 정대식 씨의 활약은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럼 한 가지만 더 물어보도록 하지요. 만약 정대식 씨가 공대장이 되어 공격대 하나를 책임지게 되었다고 합시다. 그런데 공격대의 사활을 걸고서 전원을 이끌고 들어간 던전에서, 한 대원이 큰 부상을 입어 목숨이 위태롭게 되었습니다. 당장 던전 밖으로 돌아 나가지 않으면 위험한 상황이지요.
그러나 도중에 포기하고 귀환한다면 아무것도 얻는 것 없이 손해가 극심하게 될 겁니다. 공격대를 계속 운영할 수 없는 수준...... 정대식 씨가 파산하고 대원들에게 빚을 지게 되는 수준이라 치죠. 이럴 경우, 정대식 씨는 어떤 선택을 하시겠습니까?"
정대식은 찰나 고민했다.
'어떻게 대답해야 하지? 일반적으로는 인명이 중하니 손해를 감수하고서라도 되돌아가야 한다고 대답해야겠지. 하지만 그런 뻔한 대답을 기대하고 질문을 던진 것일까? 솔직히 말하자면 난 되돌아가지 않을 것 같은데.'
헌터가 던전에서 죽는 것은 헌터가 된 이상, 어느 정도 각오해야 하는 일이었다.
사람 목숨만큼이나 돈이 중하다고 생각하는 정대식의 선택은 당연히 후자였다.
하지만 타이탄 공격대는 대원들의 목숨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들었다.
정대식이 다른 공격대를 다 마다하고 굳이 이곳에 오디션을 치르러 온 이유 또한 그 탓이 컸다.
정대식은 이율배반적인 자신을 잘 알았다.
그런 스스로가 부끄럽지도 않았다.
돈보다 목숨이 중하다고 잘라 말하는 것은 위선이고 가식이라고 생각하는 그였다.
정대식은 어떤 대답을 할까 하다가 그냥 솔직하게 말했다.
"저라면 그 대원을 포기할 겁니다."
뜻밖의 대답이었는지 침묵이 흘렀다.
강영후가 물었다.
"별로 고민도 없이 쉽게 대답하는군요. 왜 그런 선택을 한 거죠?"
정대식은 어깨를 으쓱했다.
"간단합니다. 제가 만약 그 상황에서 부상당한 대원의 입장이라면, 저를 버리고 가라고 말할 테니까요."
최희는 입술을 비틀었고, 금발머리는 납득한 기색이었다.
강영후는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나가 보셔도 좋습니다."
마지막 질문이 마음에 걸리기는 했지만 이미 지나간 일이었다.
떨어진다 하더라도 별수 없다고 생각하며 정대식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정대식을 뒤이어 다음은 기철민이었다.
정대식은 눈짓으로 기철민에게 격려의 인사를 건네고 그곳을 나왔다.
면접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C팀 전부가 면접을 끝내는 데는 채 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최종 결과 발표가 나기를 기다리는 동안, 던전 안에 고립되었던 헌터들이 구조되어 나왔다.
그들은 기가 확 죽어서 C팀과 눈도 마주치지 못했다.
그들 전원이 탈락이라 말없이 장비와 무구를 돌려받고는 던전을 떠났다.
잠시 후.
결과 발표가 났다.
감독관이 나와 말했다.
"최종 합격자는 두 분입니다."
어쩌면 정대식 한 명만이 붙을지도 모른다는 분위기가 있었던지라, 한 사람이 더 있다는 말에 모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게 자신이길 바라는 기대감 속에서 다들 감독관의 입술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응시번호 674번 정대식 씨와 응시번호 723번 기철민 씨, 두 분입니다."
정대식은 자신의 이름이 호명되는 것을 듣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혹 떨어지지나 않을까 걱정했는데, 다행이었다.
의외인 건 기철민이었다.
그는 자신이 붙으리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한 눈치였다.
믿기지 않는 표정을 하고 멍하니 서 있는 와중에, 세 명의 면접관이 밖으로 나왔다.
"타이탄 공격대에 들어온 것을 환영합니다."
짧은 축하의 인사말을 건네고 강영후는 정대식에게 악수를 청했다.
그는 정대식과 악수를 하면서 잠시 뜸을 들였다.
그리고는 그의 손을 꽉 맞잡은 채로 의미심장한 말을 건네 왔다.
"이제 와 하는 말이지만, 정대식 씨에 관해서는 익히 들어 알고 있었습니다. 하마터면 타이탄 공격대의 원칙을 깨트릴 뻔했지요. 그런데 이렇게 스스로 찾아 주셔서 감사하다는 말, 전해 드리고 싶습니다."
"아닙니다."
정대식은 강영후의 손을 힘 있게 맞잡으며 웃었다.
"저야말로 감사드립니다. 트리플리스트 그 이상의 활약으로 보답토록 하겠습니다."
강영후는 기철민과도 짧게 악수를 나눴다.
금발머리도 다가와 축하 말을 건넸으나, 최희는 뒷전에서 팔짱을 끼고서 정대식을 모르는 체했다.
그러다가 눈이 마주치자 "흥!" 하고 콧방귀를 끼며 고개를 팩 돌려 버렸다.
그런 그녀를 내버려 두고 정대식은 아직도 얼떨떨해 있는 기철민의 어깨를 툭 쳤다.
"설마했는데 정말로 같은 공격대에서 일하게 되었군."
"어? 어......."
여전히 어리둥절해하는 그를 향해 감독관이 말했다.
"정대식 씨, 기철민 씨, 합격을 축하합니다. 지금부터 두 사람은 1개월 간의 연수 기간을 거쳐서 정식 대원으로 채용될 것입니다. 이걸 받으시지요."
감독관은 두 사람에게 타이탄 공격대 서버의 접속 아이디와 임시 패스워드가 적힌 카드를 건네주었다.
"이제 이걸로 타이탄 공격대에 접속하실 수 있게 되었습니다. 24시간 내로 접속하셔서 신원 인증을 해 주시면 타이탄 공격대의 임시 출입증과 소속증이 발급될 겁니다."
카드를 받아 들고 나자 비로소 실감이 나는 모양인지 기철민의 얼굴에 기쁨이 번졌다.
아쉽게 떨어진 다른 헌터들도 정대식과 기철민에게 축하의 말을 건넸다.
그들과 덕담을 주고받으며 정대식은 자신의 인생에 새로운 국면이 시작된 기분을 느꼈다.
Chapter 17. 외인부대
"읏차."
정대식은 꾸릴 것도 없는 짐을 꾸렸다.
여관방 생활을 청산하고 이사를 가기 위해서였다.
타이탄 공격대는 원하는 사람에 한해 사택을 제공하고 있었다.
타이탄 공격대 본사 건물이 있는 남양주 신도시의 주택 단지였다.
아직 가 본 적은 없지만 팸플릿만 봐도 꽤 그럴싸했다.
사실 주거지야 어디든 별반 상관없었다.
제 명의로 된 강남 한복판의 아파트라면 또 모를까.
어차피 타이탄 공격대를 떠날 때 나와야 하는 집이었으므로 딱히 관심이 가지는 않았다.
오히려 이 좁아터진 여관방을 정리하는 데 있어서 뭔지 모를 시원섭섭함이 느껴졌다.
'쥐새끼 소굴 같던 이 시궁창을 벗어나는 판국에...... 기분이 좋아야 마땅한데 왜 은근히 섭섭하지?'
정대식은 입맛을 쩝쩝 다시며 텅 빈 여관방을 한 번 둘러보았다.
구질구질한 세간살이는 대부분 버렸다.
옷가지 몇 개만 빼고 전부 쓰레기통 행이었다.
별반 가진 것도 없다고 생각했는데, 짐을 다 치우고 나니 방이 영 썰렁했다.
"총각, 짐은 다 뺐어?"
나이 많은 여관방 주인이 나타나 슬그머니 고개를 들이밀었다.
검버섯이 피어 쪼글쪼글한 얼굴을 하고 여관방 주인은 아쉬운 기색을 역력히 드러냈다.
"막상 나간다니까 아쉽네. 그래도 총각이 세도 꼬박꼬박 내주고 해서 좋았는데."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저 가스버너는 두고 갈 테니 혹시 누구 필요한 사람 있으면 주세요."
"그래, 그래. 어디로 가는지는 몰라도 잘 살게, 잘 살아."
여관방 주인의 덕담을 들으며 정대식은 그곳을 나왔다.
가뜩이나 좁은데 불법 주차로 더 좁아진 골목을 지나치면서 저도 모르게 뒤를 돌아보게 되었다.
그러다가 그런 자신의 행동에 스스로를 질책했다.
'뭘 돌아보는 거야? 아쉬울 일은 조금도 없다. 이제부터 다시 시작이다. 앞으로만 내달리는 거야!'
정대식은 지하철에 몸을 싣고 남양주시로 향했다.
역에서 내려 타이탄 공격대로 발길하자, 이제는 그곳이 제법 익숙했다.
아직 정식 대원이 되지는 못했지만, 지난 1개월 간 연수를 받느라고 뻔질나게 드나들었던 것이다.
말이 연수이지, 연수는 훈련보단 부대 배정에 더 초점이 가 있는 것 같았다.
타이탄 공격대 각 부대의 부대장이 돌아가며 연수를 맡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각자의 방법대로 정대식과 기철민을 훈련시켰고, 그 과정을 통해 소속 부대와의 상성을 알아보는 것 같았다.
보아하니 기철민은 외눈박이 부대에서 눈독을 들이는 모양이었다.
외눈박이 부대는 주로 두뇌파 헌터들이 모인 곳이었는데, 그들은 던전을 공략하거나 몬스터를 사냥하기보다는 탐사나 정보 수집, 첩보를 위주로 활약했다.
그 외에도 매머드 부대, 프랑켄슈타인 부대, 머메이드 부대 등, 여러 부대가 있었다.
각각의 부대들은 전부 성격과 특징이 달랐다.
그리고 그러한 부대들이 전부 정대식을 낙점한 상태였다.
정대식이 당사자이다 보니 정확한 일은 알 수 없었지만, 대충 눈치로 봐서 알 수가 있었다.
정대식을 데려가기 위해 부대장 간의 눈치 싸움이 장난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정대식은 채용 시험에 등판했을 때부터 이목을 끌었다.
그가 제출한 심사 서류의 내용, 즉 세 가지나 되는 능력을 타고난 6등급 헌터라는 사실부터가 놀라웠고, 항간에 떠도는 온갖 소문들, 조디악 공격대를 비롯해 여러 대형 정공의 스카우트 제의는 물론이거니와 해외에서의 러브콜이 쏟아지는 최고의 인재라는 사실 또한 주목을 받았다.
본격적으로 테스트가 시작되었을 땐 홀로그램 룸을 박살 내는 공격력으로 좌중을 놀라게 했고, 3차 실전 테스트에서는 여느 노련한 헌터 못지않은 지식과 판단력을 자랑하며 타이탄 공격대가 그 시험을 통해 보고자 하는 바를 정확히 꿰뚫어 냈다.
결과적으로 그가 속한 C팀만이 3차 테스트를 통과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렇다 보니 정대식은 어느 부대에 가도 한몫할 만한 인재였다.
더욱이 그는 헌터가 된 지 불과 반년 정도밖에 되질 않았다.
앞으로 얼마나 더 성장할는지 모르는 것이다.
당연히 모두가 눈독 들일 만했다.
타이탄 공격대의 부대장들은 조디악 공격대의 경우처럼 소란을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았다.
정대식이 어디로 배치될지는 모든 부대의 상황과 부대장의 의견, 그리고 정대식이 가진 능력의 특성을 고려해 공대장이 결정할 일이었다.
부대장이 나서서 왈가왈부하다가는 공대장인 강영후의 심기를 불편하게 할 수 있었으므로 조심하는 눈치였다.
공대장인 강영후는 대형 정공의 여러 경우와는 달리, 타이탄 공격대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중소 공격대라 그런 것인지, 아직도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었으며 굵직한 사냥에는 손수 참가했다.
그의 전투 능력에 대해서는 뚜렷이 알려진 바가 없었으나, 부대장들은 전부 그를 우러르며 신뢰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