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3
현질 전사
-3권 3화
정대식은 콧노래를 부르며 몬스터 처리소를 나왔다.
그리고 어김없이 한 그릇에 6,000원 하는 콩나물 해장국 집을 찾았다.
'캬~ 보람차게 일하고 먹는 밥이라 그런가, 꿀맛이네!'
정대식은 국밥의 맛이 끝내주는 나머지, 전에 없던 사치를 부렸다.
"여기요, 소주 한 병만 주세요!"
어차피 차도 없겠다, 비겁한 놈들을 두드려 준 기념으로 기분 좋게 술을 한잔하고 싶었다.
그동안은 돈이 아까워 술은 일절 입에 대지 않았었다.
다 같이 어울리는 자리에서라면 또 모를까, 혼자 있을 때는 굳이 마실 이유를 찾지 못했었다.
그러나 오늘은 기분을 내 무려 3,000원이나 하는 소주 한 병을 깠다.
남은 국물을 안주 삼아 소주를 마시면서, 정대식은 앞으로 할 일에 대해 간략히 생각했다.
'A급 아이템의 위력은 충분히 확인했다. 이만한 실력이면 어느 공격대든지 골라서 들어갈 수 있겠지. 괜찮아 보이는 공격대를 물색하고...... 짐 정리를 좀 해야겠어. 필요 없는 무지개소뼈 너클을 처분하고 오늘 털어 온 쓰레기들의 무구도 팔아 치워야지. 그런데 무기 상가까지 또 나가야 하나? 그러긴 귀찮은데.'
소주 한 병을 비워 내며 정대식이 생각에 잠겨 있던 그때.
한 무리의 헌터들이 국밥 집 안으로 들어왔다.
막 사냥을 마치고 온 참인지 분위기가 상당히 들떠 있었다.
그들은 정대식 근처에 자리를 잡고 앉기가 무섭게 목소리를 높여서 떠들어 댔다.
"이야, 오늘 사냥은 괜찮았어."
"응, 꽤 쏠쏠했지. 이걸로 비로소 장비를 교체할 수 있겠네."
한데 개중에 한 명이 손에 낀 장갑을 빼면서 말했다.
"어휴, 너클에 금이 간 지가 꽤 되어서, 사냥 도중에 망가지는 건 아닌가 조마조마했지 뭐야."
"어디 보자. 진즉에 좀 고치지 그랬냐! 이거 완전히 맛이 가기 직전이네. 이제는 수리해도 못 쓰겠는데?"
"그렇지? 새로 하나 사야겠지?"
"그래도 너클은 그렇게 안 비싸잖아."
"에이그, 모르는 소리하지 마! 너클도 무기라고, 쓸 만한 건 꽤 비싸."
그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절로 귀가 쫑긋 섰다.
정대식은 잠시 고민하다 그들에게 선뜻 말을 걸었다.
"이봐요?"
"......예? 무슨 일입니까?"
정대식은 너클을 끼고 있던 안경에게 자신이 갖고 있는 무지개소뼈 너클을 보여 주었다.
"괜찮으면 이거 사지 않을래요? 싼값으로 팔아 줄 테니까."
안경은 그걸 살펴보고는 말했다.
"이거 무지개소뼈 너클 아닙니까? 꽤 값있는 물건일 텐데, 이걸 나한테 팔겠다고요?"
"아, 그게. 또 다른 너클이 생겨서 이건 쓸모없게 되었거든요. 무기 상가에 가서 도로 되팔려니 귀찮기도 하고, 듣자 하니 너클이 필요한 거 같아서 말입니다. 제가 거기까지 가는 차비 정도는 빼 드릴 테니까, 어때요?"
"흐음."
안경은 무지개소뼈 너클을 다시 요모조모 살펴보았다.
그러다가 곁눈질로 정대식이 끼고 있는 너클을 쳐다봤다.
정대식은 타고난 장사꾼의 기질로 은근한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너클을 어루만졌다.
"아~ 이거요? 이건 A급 아이템입니다. 아다만트로 만든 거죠."
"와, 혹시나 했는데! 그게 아다만트란 말이에요?"
감탄하는 안경에게 정대식은 너스레를 떨어 보였다.
"구하기 어려운 물건인데, 운이 좋았죠. 사실 아다만트 너클 정도가 아니라면 무지개소뼈 너클을 팔지는 않았을 거예요. 아시다시피, 무지개소뼈로 만든 무구는 성능이 좋잖아요? 보통 너클하고는 차원이 다르죠. 무려 섬광 효과가 있으니까."
"아! 섬광 효과! 그래, 맞아. 무지개소뼈로 만든 무구는 그렇다고 하더라고요."
"그게, 저도 써 봐서 하는 말이지만 진짜 요긴하게 쓰이거든요. 특히 포지션이 탱커라면야...... 딱 보아하니 탱커인데, 맞죠?"
"예에, 탱커입니다."
"탱커라면 이 너클이 꼭 필요해요. 몬스터 주의 돌리는 데는 딱이거든요. 파손도 잘 안 되고, 복원력도 뛰어나고."
"헤에...... 그래요?"
"사실 나도 그 너클, 어렵사리 구한 거예요. 원래 내가 알던 선배가 쓰던 거였는데...... 그 선배가......."
정대식은 상대방이 정신을 못 차리게 이야기보따리를 한바탕 풀어놓았다.
있지도 않은 선배를 팔아 가며 가공의 무용담을 들려주자, 안경은 완전히 혼이 쏙 빠진 표정이었다.
정대식은 아까운 술을 한 잔씩 나눠 줘 가면서 입을 털었고, 결국에는 그가 산 것보다 더 비싼 가격에 너클을 팔아 넘겼다.
"에이, 기분이다. 너클 샀으니까 제가 다른 장비도 좀 보여 드릴게요. 이건 아는 동생 걸 맡아 가지고 있던 건데. 너클만큼은 못해도 그냥저냥 쓸 만해요. 내가 거저 주다시피 할 테니까 가져가지 않을래요?"
정대식은 혹해 있는 다른 헌터들까지 꼬셔서 헌터 사냥꾼들에게서 뜯어 낸 장비를 몽땅 팔아 치웠다.
헐값에 넘긴 것은 맞지만 어차피 공짜로 얻은 물건이 아니던가!
다만 몇백이라 하더라도 쏠쏠했다. 그렇게 해서 벌어들인 돈이 거의 천만 원 가까이가 됐다.
신기에 가까운 말솜씨로 그들을 현혹한 정대식은 헌터들이 정신을 차리기 전에 재빨리 그곳을 떠났다.
"그럼 좋은 장비로 즐거운 사냥 되시길 바랍니다, 하하하!"
Chapter 15. 타이탄 공격대 오디션
"역시 상점 업그레이드는 너무 비싸."
정대식은 아공간 확장 문제로 상점 업그레이드를 고민하다가 좌절했다.
상점과 더불어 엔트로피를 Lv4로 만들기 위해서는 무려 10억이라는 돈이 필요했다.
지난번 조디악 공격대에서 받은 선금 1억과 그동안 사냥해서 번 돈 9억을 더해도 가진 돈을 거의 털어 넣어야 했다.
당장은 돈을 쓸 데가 없기 때문에 현금 10억을 쓴다 하더라도 문제는 없었다.
하지만 정대식의 체질상, 통장이 지나치게 비어 있으면 어딘지 모르게 마음이 불안했다.
게다가 아공간 확장과 엔트로피의 성능 향상이 아니라면 상점 업그레이드가 급하지도 않았다.
얼마 전 A급 아이템의 획득으로 실력이 비약적으로 향상되었다.
덕분에 아직까지는 능력의 고갈을 느끼지는 못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어느 공격대에 들어갈지 결정하지 못했다.
일단 공격대에 들어가 포지션이 정해지고 나면, 어떤 능력을 향상시켜야 할지 방향이 보일 것이다.
지금 가진 돈을 탈탈 털어 상점 업그레이드를 하는 것은 섣부른 행동이었다.
조디악 공격대에서 보수가 들어온다면 또 모를까.......
"에이, 이것들은 무슨 정산이 이렇게 늦어?"
정대식은 투덜거리며 노트북을 켰다.
정대식이 선택한 정산 방법은 세 가지 방법 중 두 번째인 '던전에서 얻은 수익을 나눠받는 것'이었다.
자금에 여유가 있으면 투자를 하는 방향으로 장기적 수익을 노려봐도 괜찮겠지만, 조디악 공격대에서의 스카우트 제의도 거절했고 그런 만큼 자금 사정이 넉넉지가 못했다.
아직 장기 투자를 생각할 때는 아니다 싶어서 무난한 정산 방법을 택한 것이다.
그때 던전 공략에서 얻은 몬스터의 부산물과 마정석의 감정이 끝나고 처분이 되는 대로 정산금이 들어올 것이다.
하지만 새로 생긴 던전의 최초 공략인지라 감정에 시간이 제법 걸리는 모양이었다.
거길 다녀온 지가 거의 한 달 가까이가 되어 가는데 아직까지도 소식이 없었다.
설마 떼먹지는 않겠지, 하고 중얼거리며 정대식은 비로소 켜진 노트북으로 즐겨찾기를 해 둔 페이지를 찾아 들어갔다.
거기에는 한 공격대의 채용 공고 페이지가 떠 있었다.
"타이탄 공격대라......."
정대식은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그 페이지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타이탄 공격대는 창설한 지 약 3년가량이 되는 곳으로, 여태까지 그렇게 유명한 곳은 아니었다.
헌터라면 누구나 이름을 알 법한, 그런 유명 인사를 영입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타이탄 공격대는 보통의 공격대와는 다르게 스카우트를 하지 않았다.
그들은 시즌마다 주기적으로 채용 공고를 냈다.
그리고 오디션을 통해서만 대원을 모집했다.
즉, 유명세보다는 실력을 우선으로 공격대 전체의 밸런스를 따져 대원을 뽑았다.
그런 관계로 지금은 꾸준히 성장해 중소형 공격대 중에서는 손꼽힐 만한 곳이 되어 있었다.
특히 헌터들이 선호하는 공격대로 소문이 났는데, 대원들의 목숨을 일회용으로 여기는 대형 공격대나 수입 올리기에만 급급한 중소 공격대와는 달리, 대원들의 안전을 무엇보다 우선시하는 덕분이었다.
그래서인지 채용 공고 횟수가 거듭될수록 응시자가 늘어나는 추세였다.
이번에는 경쟁률이 박 터질 예정인가 보았다.
헌터 커뮤니티의 게시판을 한 번 훑어보는 것만으로도 그 사실을 잘 알 수가 있었다.
다들 타이탄 공격대의 모집 요강을 묻는가 하면, 자신의 스펙을 공개하며 이 정도면 붙겠느냐고 물어 댔다.
하지만 타이탄의 심사 기준이 제법 까다로운 모양이라, 누구도 그럴싸한 답을 내놓지 못했다.
단순히 강하기만 하다고 뽑아 주는 데가 아니라서 갈피를 못 잡는 분위기였다.
그런 글들을 하나씩 살피다 보니 점점 마음에 확신이 들었다.
'그래. 볼수록 여기가 내가 가야 할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타이탄 공격대는 정대식이 요구하는 공격대의 조건에 부합했다.
규모가 그리 크지 않고, 새로 창설된 곳이 아니면서, 대원들의 복지가 잘 되어 있고, 계약 기간이 6개월에서 1년 단위인 곳.
타이탄이 거기에 딱 맞았다.
오디션을 통해서만 대원을 뽑는다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유명 인사를 섭외하지 않는다는 것은, 대외적인 이미지를 신경 쓰지 않는다는 거였다.
여러 정공에서 이름난 헌터들을 영입하려는 이유에는, 당연히 전력상의 문제도 있었지만 유명세를 떨치고자 하는 욕심도 있었다.
중소 공격대가 대형 공격대로 올라서는 데는 이 유명세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한 공격대가 자체적으로 성장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던전에서 잭팟을 터트리거나 공대장이 투자를 잘 하는 방법도 있겠지만, 그러기는 쉽지 않다.
대원의 숫자를 꾸준히 유지하면서 지속적인 수입을 벌어들여야 하는데, 여러 가지 돌발적인 요인이 많은 것이다.
사냥 중에 대원이 희생되면 계약 조건에 따라서 보상을 해 줘야 할뿐더러, 장비나 무구의 손실도 메꾸어야 한다.
공략하고자 하는 던전의 종류에 따라서 드는 준비 비용도 만만찮은데다가, 그렇게 투자를 한 만큼 사냥이 성공적으로 끝나리라는 보장도 없는 것이다.
실제로 중소 공격대의 대부분이 2~3년 고비를 넘지 못하고 문을 닫는 이유는 적자 운영 탓이었다.
공격대를 창설한 공대장이 개인 자금을 털어서 초기 비용을 댄다고 하더라도, 사냥을 연이어 성공시키지 못한다면 파산하고 말아 버리는 것이다.
설령 흑자 전환을 한다고 하더라도 사람 사이의 문제가 일어나기 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