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2
현질 전사
-3권 2화
정대식은 대답 대신 그들의 면면을 한 번 둘러봤다.
정대식이 빤히 보자 헌터들 중 한 명이 이를 드러내고 으르렁거렸다.
"뭘 봐!"
그 말에 정대식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아니, 말로만 듣던 쓰레기가 어떻게 생겼나 싶어서."
"쓰레기라고?"
"그럼, 잡아야 할 몬스터는 안 잡고 동료를 사냥하는 놈들을 쓰레기라고 부르지 뭐라고 불러? 헌터 사냥꾼이라고 부르면 듣기 좋으려나?"
정대식이 빈정거리는 소리를 듣고 아까부터 곧잘 답하던 두건 쓴 헌터가 말했다.
"우린 헌터 사냥꾼이 아냐."
"아, 예에~ 어련하시려고."
정대식이 귓등으로도 안 듣는 눈치이자 두건이 역정을 냈다.
"정말로 아니야! 우린 단지 네 탈로스 방어구가 목적일 뿐이다."
"그럼 탈로스 방어구만 내놓으라고 하지, 왜 가진 거 다 내놓으래? 견물생심이라 이건가? 터는 김에 다 털자고? 그런데 헌터 사냥꾼은 아니다?"
정대식이 정곡을 찔렀는지 두건의 얼굴이 벌게졌다.
"시끄러워!"
"이래서 사람은 함부로 자랑을 하면 안 되는데."
정대식은 혀를 쯧쯧, 차며 자신의 행동을 후회했다. 이들의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어도, 어쨌거나 던전에서 무구를 자랑하는 게 아니었다.
A급 아이템을 가지고 있다고 크게 떠벌린 탓에 이런 불청객과 마주하게 된 것이다.
"아무튼 뭐, 당연한 이야기지만 내 무구는 포기해. 이건 내 것도 아니지만...... 내 거라면 더더욱 내줄 수 없으니까."
그 말에 두건 역시 말했다.
"포기하라는 말이라면 내가 해 주고 싶다. 이렇게나 몬스터를 잡아 댔으니 마력이 동났어도 한참 전에 났겠지. 말했다시피 우린 헌터 사냥꾼이 아니고, 사람을 죽일 맘도 없어. 순순히 가진 걸 내놓으면 살려 주겠다는 말은 진심이다."
정대식은 코웃음을 쳤다.
"웃기시네."
"뭐?"
인상을 찡그리는 두건을 보고 정대식은 소리쳤다.
"가진 걸 다 빼앗아도 목숨만은 살려 줄 테니 감사하게 생각하라, 그 말인가? 그러면서 '우린 헌터 사냥꾼과는 다르다' 자위라도 하려고? 그런 헛소리는 집어치워! 차라리 날 죽이고 가진 걸 다 빼앗겠다고 말해! 내가 가진 건 내 목숨이나 마찬가지니까!"
정대식은 단숨에 그렇게 외치고는 자동 소총을 내쏘았다.
콰르르르르!
붉은 버튼을 누른 채 방아쇠를 당기자 시뻘건 화염이 튀어나왔다.
"으아앗!"
놀란 헌터들이 황급히 뒤로 물러섰으나 예상외로 당황하지는 않았다. 아마도 줄곧 정대식을 목표로 삼아 두고 미행하면서 그가 어떤 기술을 쓰는지 탐색해 두었을 것이다.
그들은 마치 몬스터를 사냥하듯 정대식을 대상으로 기민하게 움직였다.
"받아랏!"
타다다다당!
피융, 피융!
헌터 두 명이 마력탄과 화살을 쏘아 대는 가운데 정대식의 가까이로 두건이 바싹 붙어 왔다.
그가 탱커 겸 근딜 역할인지, 시미터처럼 생긴 곡도를 꺼내 들고 정대식의 앞을 가로막아 왔다.
"어디 한번 막아 봐라!"
훙훙훙훙!
얄팍한 날을 가진 곡도가 눈앞에서 이리저리 움직이는데, 궤도를 읽을 수가 없었다.
꽤나 실력 있는 작자들인지 몸놀림이 보통이 아니었다.
그러나 정대식이 누군가! 무려 차원이 다른 신, 데모크리토스의 선택을 받은 몸이 아니시던가! 현질의 혜택을 입은 그는 국가 기물 금고에서 가지고 나온 아이템으로 몸을 휘감고 있었다. A급 아이템인 탈로스 방어구가 그 위력을 십분 발휘했다.
정대식은 쏟아지는 칼날을 거의 못 피했으나, 그 칼날은 방어구를 꿰뚫지 못했다. 정대식은 공격을 무시한 채로 검은색 버튼을 누르고 자동 소총을 쐈다.
타다당!
"윽!"
지연탄에 명중당한 두건의 움직임이 느려졌다.
그 틈을 타 정대식은 두건을 아다만트 너클을 낀 주먹으로 한 대 쳤다.
퍼억!
부웅!
"으아악!"
정대식은 자기가 때려 놓고 순간 끔쩍 놀랐다. 두건을 쓴 헌터가 무슨 짚단처럼 허공으로 날아갔던 것이다. 상대가 몬스터가 아닌 사람이다 보니, 주먹 한 대로도 엄청난 위력을 발휘했다. 그 광경을 보고 오히려 정대식이 주춤했다.
잘못하다가는 사람을 죽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절로 몸이 움츠러들었다.
그때였다.
촤악!
눈앞에 무슨 그물 같은 게 쏟아져 내려왔다. 그게 정대식의 몸에 덮어씌워지며 곧 온몸을 옥죄었다.
'이런!'
와이어 네트가 그를 옴짝달싹 못하게 묶었다. 그 틈을 타 원딜들이 무자비하게 공격을 퍼부었다.
팅팅팅!
탈로스 방어구가 그 공격들을 튕겨 내는 가운데, 정대식은 화가 나서 이를 갈았다.
'이것들이 진짜......!'
정대식은 온몸에 힘을 주었다. 그가 가진 강철 신체 스킬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정대식이 팔을 벌리는 대로 와이어 네트가 벌어지고 있었다.
끼이이익!
이윽고는 투두둑, 찢어져 버렸다.
파바방!
그 광경을 보고 와이어 네트를 던진 헌터가 기가 막힌다는 듯 소리쳤다.
"마, 말도 안 돼! 이건 몬스터도 묶어 놓는 건데!"
그들의 경악 따위는 들려오지도 않았다.
정대식은 이깟 도둑놈들의 목숨 따위를 걱정한 자신이 더 기가 막혔다.
남의 피 같은 무구를 거저 가져가려고 작당한 놈들이다.
그렇다면, 죽어도 싸다.
남의 목숨을 탐하려는 자는 본인의 목숨 역시 잃을 수도 있는 법!
자신을 습격할 때 그 정도는 각오를 했을 테다. 인정사정 봐주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정대식은 이를 갈며 두 주먹을 꽝, 마주쳤다.
"강력권!"
강화까지는 더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강력권 한 방이면 이런 놈들 따위.......
그런데 양 주먹이 부딪치는 그 순간.
꽈아앙---!
번쩍!
아다만트 너클끼리 부딪치며 굉음과 섬광이 한꺼번에 일었다.
"으아-."
"아악-."
비명조차 잡아먹는 소리와 빛이 사방을 휩쓸었다.
구우우웅!
잠시 후.
화가 머리끝까지 났던 정대식은 어리둥절해 제자리에 바로 섰다.
그에게 덤벼들던 헌터들이 모조리 쓰러져 있었다.
그냥 놀라서 자빠진 것도 아니고 죄다 꿈쩍을 안 했다.
정대식은 입에 거품을 문 채 눈을 까뒤집은 헌터 하나를 발로 툭툭 찼다.
아무런 반응이 없는 꼴이 완전히 기절해 전투 불능이 된 상태였다.
"허허, 이거 뭐야?"
정대식은 실소를 흘리며 자신이 끼고 있는 아다만트 너클을 바라보았다.
아까 그냥 몬스터를 상대하고 있었을 땐 몰랐는데, 아다만트 너클을 서로 맞부딪치게 하면 또 다른 위력을 발휘하는 모양이었다.
사람 정도는 단번에 기절시킬 만한 굉음에, 시력을 순식간에 앗아 가는 섬광.
만약 탈로스 방어구를 걸친 상태가 아니었다면 아다만트 너클을 착용한 당사자인 정대식도 쓰러졌을지도 모를 정도의 위력이었다.
"하하하...... 이거 놀라운데? 빛을 일으키는 효과까지 있다니!"
정대식이 끝까지 아쉬워한 부분까지도 커버한 완벽한 무기였다.
과연, A급 아이템이다.
이러니 쓸데없는 벌레들이 붙는 거라고 괜스레 투덜거리며 정대식은 화풀이 삼아 기절한 헌터들을 발로 퍽퍽 찼다.
그리고는 되레 그들이 가진 것을 남김없이 다 털었다.
정대식은 별 볼 일 없어 뵈는 그들의 무구와 장비들을 몽땅 아공간에 털어 넣었다.
그것도 모자라 옷까지 홀랑 벗겨서 불태워 버렸다.
"어디 한번 잘난 목숨만 달랑 건져서 나가 봐라."
정대식은 콧노래를 부르면서 알몸뚱이가 된 그들을 구석에 던져두고 하던 일을 마저 했다.
그리고는 깨끗이 몬스터 사체들을 해체해서 돈 될 만한 것들만 모조리 챙겨 아공간에 넣은 뒤 홀가분하게 그 자리를 떠났다.
* * *
"하하하! 안녕하십니까?"
정대식이 호쾌한 웃음을 흘리며 몬스터 처리소에 들어서자, 그를 알아본 직원의 낯빛이 떨떠름하게 변했다.
"아하하...... 또 오셨군요?"
그는 억지로 쥐어짜 낸 미소를 지으며 정대식에게 다가왔다.
그러다 그의 뒷전에 아무것도 없는 것을 보고는 의아해하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오늘은 몬스터를 처리하러 오신 게 아닙니까?"
그는 곧 정대식이 무어라 말을 하기도 전에 지레짐작으로 기겁을 했다.
"아, 아니면 저번에 정산이 잘못되기라도......?"
지난번, 케르베로스 레이드를 뛰고 나서 이곳에 정산을 하러 왔던 정대식은 뺑덕어멈 저리 가라 할 만큼 까다롭게 굴었었다.
덕분에 고생을 엄청나게 했던지라 그를 반겨 맞이하지를 못하고 있는 것이다.
정대식은 어깨를 으쓱여 보이고는 너스레를 떨었다.
"그건 아니고요."
"후유......."
직원은 티 나게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였다.
"몬스터 처리소에 몬스터를 처리하러 오지, 뭘 하러 오겠습니까?"
정대식은 그를 끌고 나가 방수포를 펼쳐 달라고 말했다.
짐꾼들이 뒤따라 올 것이라 예상한 직원은 사무실 인력을 총동원해 방수포를 널찍하게 펼쳤다.
준비가 마쳐지기가 무섭게, 정대식은 아공간에서 몬스터 사체를 끄집어냈다.
파앗!
느닷없이 방수포 위에 몬스터 사체가 촤아악, 펼쳐지자 직원들이 깜짝 놀라 입을 쩍 벌렸다.
"아니?"
"으악?!"
"허억?"
헌터들을 상대하며 별의별 경우를 많이 봐 왔을 텐데도, 이런 건 처음 봤나 보다.
다들 허공에서 갑자기 나타난 몬스터 사체를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이, 이게 대체......?"
"내가 개발한 신기술이라고 해 두죠."
간단히 둘러댄 정대식은 얼이 빠진 직원을 재촉했다.
"자자, 놀라고 있을 틈이 없어요. 얼른 정산을 끝마쳐야 퇴근하실 거 아닙니까? 나도 돌아가서 좀 쉬고요. 그러니까 빨리빨리 서둘러 주세요."
물론, 서두르라고 했지 대충하라고는 안 했다.
손수 해체 작업을 한 만큼, 정대식은 몬스터 사체의 가격을 나름대로 매겨 놓고 있었다.
그 기준에 부합하지 못하면 득달같이 난리를 쳤다. 그게 하찮은 지옥개의 가죽이라 해도 마찬가지였다.
이윽고 케르베로스 사체의 정산이 시작되었을 때는, 서로가 완전히 전투 모드였다.
정대식은 조금이라도 더 많은 금액을 받아 내려고, 직원들은 조금이라도 더 깎으려고 혈안이 되어 맞붙었다. 그러나 이건 정대식이 이길 수밖에 없는 게임이었다.
정대식은 정산받는 대로 수입을 올릴 수 있었지만, 직원들은 월급쟁이인 것이다.
다소 인센티브를 받는다고 하더라도 한계가 있을 터.
눈에 불을 켜고 덤비는 정대식을 끝까지 상대할 만할 이유가 없었다.
결국, 정대식이 정산받은 금액은 그가 예상한 바를 넘어섰다.
'한 7억 5천 정도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래도 8억은 벌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