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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질 전사-49화 (49/297)

# 49

현질 전사

-2권 24화

잠시 침묵이 흐르고, 정대식은 입꼬리를 비틀어 올리고 말했다.

"그래서, 더 말할 건 없냐?"

<무엇을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내게 경고해야 할 다른 말이 없느냐고."

<아직까지는 없습니다.>

"아직까진 없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 똑바로 말해."

엔트로피는 마치 한숨이라도 쉬듯 입을 세모꼴로 모았다.

<아시다시피 제 지적 수준은 상점의 레벨 수준을 따라갑니다. 상점의 레벨이 3단계밖에 이르지 않은 지금으로선, 제가 파악할 수 있는 정보에도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앞으로 업그레이드를 계속해 나가다 보면 지금은 모르는 주의 사항이 생길 수도 있다는 말이야?"

<그렇습니다.>

정대식은 이를 갈았다.

"그것 참 편리하네. 내 귀에는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말을 바꿀 수 있다는 걸로 들리는데?"

엔트로피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할 말이 없는 것인지, 대답할 가치가 없다는 것인지 그저 허공에 둥둥 떠 있을 뿐이었다.

정대식은 그런 엔트로피를 보면서 짐짓 어깨를 으쓱였다.

"뭐, 좋아...... 애당초 내 능력에 대해 다른 사람들에게 밝힐 생각은 없었어. 현질 능력이라니. 듣도 보도 못한, 실로 말도 안 되는 능력이지. 이런 능력이 있다고 누가 믿겠어?"

<그도 그렇지요.>

"하지만 내가 계속 능력을 늘려 나가면 언젠가는 이 현질 능력이 발각이 될지도 몰라. 내가 말을 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정부 관계자와 같은 인물이...... 이 능력에 대해 눈치챌지도 모른다고. 그래도 내 존재가 지워져?"

엔트로피는 단언했다.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왜?"

<만약 정대식 씨의 능력에 대해 눈치채는 사람이 있다면 그의 존재 역시 지워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잠깐만, 그냥 내 능력을 눈치 까는 것만으로도 사라지게 된다는 말이야?"

<그렇습니다.>

"그거...... 그건 좀...... 신이 그래도 돼?"

<신이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데모 어쩌고 하는 그 신이 그렇게 대단해? 차원이 다른 신이라고? 그 신은 차원도 다르면서 무슨 볼일이 있다고 다른 신들이 득시글거리는 지구로 온 건데? 그리고 왜 하필 날 선택한 거지? 나에게 무슨 용건이 있어서?"

세상엔 공짜가 없다.

그것은 데모 어쩌고가 준 능력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다.

물론, 데모크리토스는 대가로 돈을 가져가기는 한다.

그러나 돈으로 지불하기에는 부족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억측인 것일까? 누구라도 돈을 주고 능력을 살 수 있다면 기뻐할 테니까.

데모 어쩌고가 대가로 바라는 것은 비단 돈뿐만이 아닌 것 같았다.

정대식이 속사포로 쏟아 낸 질문에 엔트로피는 담담히 말했다.

<지금의 레벨로는 제가 답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넌 데모크리토스가 차원이 다른 신이고, 그 신의 존재가 드러나서는 안 된다는 사실만을 알고 있다 뿐인 거지?"

<그렇습니다.>

정대식은 잠시 입을 다물고 엔트로피를 쳐다보았다.

엔트로피는 단순한 정보의 전달자일 뿐이다. 그것도 상점의 레벨에 따라 제한된 사항만을 알고 있는....... 결국 고민은 정대식의 몫이었다.

'데모크리토스라는 놈은 대체, 이 지구에 온 목적이 뭐지? 다른 신들의 목적은 뭐고?'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자 머리가 복잡해졌다. 정대식은 머리를 부르르 흔들었다.

'관두자, 이런 심오한 생각은 나와 어울리지 않아. 당장은 어느 공격대에 가입할 건지부터 고민을 해 봐야지.'

정대식은 도로 이불을 끌어 덮고 바로 누웠다. 그리고 낮에 받았던 여러 제안에 대해 떠올렸다.

'아이템을 받았으니 한미란의 제의를 받아들이긴 무리다. 그렇다고 박가람이 추천하는 공격대에 들어가기도 그렇고. 아니, 애당초...... 그 공격대들에 대해 내가 아무것도 모르잖아? 스카우터들이 어떤 식으로 말을 바꾸는지도 아리송하고, 무엇보다 지금 내게 중요한 건 단순히 조건이 아니다.'

정대식이 공격대에 가입하려는 궁극적인 이유는, 돈 때문이다.

대형 정공에 들어가면 이런저런 제약도 많고, 수입을 나눠야 하니까 성에 차지 않았다.

자신만의 공격대를 창설한다면 더 큰돈을 벌어들일 수가 있다!

그러니 공격대를 창설하기 위한 경험과 지식을 쌓기 위해 공격대에 들어가려는 것이다.

그러려면 정대식이 지향하는 스타일의 공격대를 스스로 골라 가야 했다.

'그래. 스카우트 제의를 받고 조건에 따라 휘둘리는 건 그만두자. 내가 직접 가입할 공격대를 고르는 거야!'

일단 원하는 곳이 정해지면 가입할 자신은 얼마든지 있었다.

이미 그의 능력은 6등급에 올라선데다가 세 가지 계열의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거의 모든 포지션의 소화가 가능하지 않은가.

거기에다가 지금은 A급 아이템까지 세 종류를 보유하고 있으니 실로 엄청난 전력이었다.

어느 공격대에서도 저를 마다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에 자신만만했다.

'좋아. 내일부터 공격대 물색에 나서야겠어. 내 능력이 정말로 필요한 곳...... 내 앞날을 위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만한 곳으로.'

그렇게 결심하고 정대식은 획득한 세 가지 아이템을 만지작거리며 눈을 감았다.

하루아침에 A급 아이템을 줄줄이 획득하고 나니, 밥을 안 먹어도 배가 불렀다.

'흐흐흐...... 손에 감기는 느낌이 아주 끝내주네. 이게 다 꿈은 아니겠지?'

정대식은 마치 애인이라도 되는 것처럼 아이템들을 끌어안은 채 잠이 들었다.

Chapter 13. A급 아이템의 성능

새 아이템을 획득하고 나자 몸이 근질거렸다.

A급 무구의 성능이 어떤지 시험해 보고 싶었던 것이다.

'이 정도 장비를 갖추고 있으면 솔플도 가능하지 않을까? 내겐 강력권도 있잖아! 아이템의 성능 시험 겸해서 혼자 사냥이라도 나가 볼까?'

정대식은 신이 난 와중에도 신중을 기했다.

사냥감만 보고 무작정 낯선 던전으로 가기에는 처음으로 혼자 사냥해 보는 터라 위험 부담이 있었다.

괜히 아이템 믿고 깝죽대다가 다치기라도 한다면 큰 손해가 아닌가!

가입할 공격대를 고르고 있는 와중에 부상을 입는 것은 곤란한 관계로, 정대식은 익숙한 S23D에 가기로 했다.

그동안 늘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서 사냥해 왔던 케르베로스를 혼자서 처치해 보기로 마음먹었던 것이다.

여러 마리는 무리라 하더라도 한 마리 정도라면 충분할 것 같았다.

그럼 굳이 짐꾼을 고용할 필요도 없었다.

남들의 눈을 신경 쓸 필요 없이 아공간을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좋았어, 당장 출발해 볼까.'

정대식은 편의점에서 컵라면에 삼각 김밥을 털어먹고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낯익은 S23던전이 나타나자 반가운 마음마저 들었다.

정대식은 온갖 파티가 드글드글한 1층의 광장에서 싸 짊어지고 온 장비를 풀었다.

지하철을 타면서 탈로스 방어구를 걸치고 오기는 좀 낯부끄러웠던 것이다.

일전에 티셔츠 사건도 있고.

'차를 한 대 사든가 해야지.'

진짜 살 마음도 없으면서 투덜거린 정대식은 돌돌 말아서 가져온 탈로스 방어구 세트를 착용했다.

과연, 착용감이 끝내줬다.

진짜 아무것도 안 입은 것 같았다.

걸쳤다고 해 봤자 가벼운 로브 한 장 정도?

게다가 자동 체온 조절 기능도 있는 것인지, 방금 전까지 인파의 열기로 후덥지근한 몸이 서늘해졌다.

딱 활동하기 적당할 정도로 쾌적해져 절로 감탄이 흘러나왔다.

'이것만 입고 있으면 추위나 더위 걱정은 없겠어. 냉난방비 아낄 수 있겠네.'

실로 수전노 같은 생각을 하면서 방어구의 이곳저곳을 확인해 보고 있노라니, 주변의 수군거림이 들려왔다.

"저 사람이 입은 방어구, 소재가 뭐지?"

"설마, 탈로스 가죽으로 만든 건 아니겠지?"

"에이, 아닐 거야. 탈로스 가죽이면 엄청나게 비싸잖아? 그걸로 어떻게 전신을 해 입어."

"광택이나 질감이 딱 탈로스 가죽인데? 나 딱 한 번 실물을 본 적이 있거든."

"네가 탈로스 실물을 본 적이 있다고?"

"아니, 탈로스 가죽으로 만들어진 걸 본 적이 있다고."

"네 눈이 삔 거지. 탈로스 가죽 방어구를 풀 세트로 갖춰 입고 다닐 만한 사람이 이런 던전엔 왜 와? 더 상위급으로 가겠지."

정대식을 보고 쑥덕거리던 딜러 둘이 한참 동안 입씨름을 벌이다가 은근슬쩍 그에게 접근했다.

"저기요?"

정대식이 돌아보자 키가 크고 깡마른 멸치가 물었다.

"혹시 이거, 탈로스 가죽으로 만든 겁니까?"

그 말에 멸치 옆에 선 키가 작고 얼굴이 퉁퉁한 호빵이 그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그럴 리가 있냐! 아니라니까 그러네."

"에헤이, 내 기억이 틀림없다니까. 이거 탈로스 가죽이라고!"

호빵의 말에 질세라 멸치가 반박하는 것을 듣고 정대식은 짐짓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탈로스 가죽 맞는데요."

정대식의 대답을 듣고 멸치는 자기 말이 맞다며 으스대지 않았다.

호빵도 그럴 리가 있겠느냐며 의심하지 못했다.

대신에 약속이라도 한 듯 동시에 입을 쩍 벌렸다.

"진짜예요? 탈로스 가죽이라고요?"

"정말이에요? 그럼 이게 도대체 얼마짜리야!"

두 사람이 큰 소리로 감탄사를 터트리자 주변의 이목이 확 쏠렸다.

탈로스 가죽이라는 말에 다들 부러움이 가득한 표정으로 정대식이 갖춘 전신 방어구 세트를 바라보았다.

맨날 구제 시장에서 거저 얻어 입다시피 한 넝마 쪼가리만 걸치고 다녔던지라, 차림으로 이렇게 시선을 받아 보긴 처음이었다.

엄밀히 말해서 장비를 착용한 거지만, 아무튼 간에 기분이 꽤나 우쭐했다.

정대식은 씰룩거리는 입가를 내리누르며 매우 시크하게 말했다.

"글쎄요, 가격을 매길 수가 있을까요? 무려 A급 아이템인데."

"A급 아이템이라고요? 허헐......."

"굉장하다. 때깔부터가 완전 다르네."

멸치와 호빵이 떠벌거리자, 옆에서 누군가 태클을 걸어왔다.

"탈로스 가죽으로 만들어졌다는 것만으로는 A급 아이템이 될 수가 없어요."

턱 주변이 털로 덥수룩한 수염이 팔짱을 낀 채로 아는 체를 했다.

"내가 몇몇 대장장이들을 잘 알고 있어서 하는 말인데, 탈로스 가죽이 희귀한 건 사실이지만 내구성과 복원력이 뛰어나고 탈로스의 적의로부터 보호해 준다는 것...... 그리고 보기에 좋다는 것 말고 특별한 기능은 없다고요. A급 아이템이 되려면 최소 세 가지 이상의 특수 성능이 추가되어 있어야 하니까, 단순히 탈로스 가죽이라는 사실만으로 A급 아이템이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어요."

수염의 말에 어느새 몰려선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몇몇 헌터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에도 정대식은 당황하지 않았다.

비록 대놓고 말을 할 순 없었지만, 이건 국가 기물 금고에서 가지고 나온 물건이다! 등급에 있어서 오류의 여지가 있을 수 없었다.

정대식은 어깨를 가볍게 으쓱이고 말했다.

"자동 체온 조절 기능에, 화속성과 빙속성으로부터의 방어력에, 독과 주술, 저주를 중화하는 정화력. 이 정도면 A급 아이템의 성능으로 충분하지 않습니까?"

웅성웅성.

사람들은 굉장하다면서 한마디씩 경탄을 했다.

"저 정도 기능이면 거의 미스릴급 아냐?"

"와, 자동 체온 조절 기능이 제일 부럽다! 덥거나 추운 데 가면 딱 죽을 맛인데."

"정화력이 최고지. 스켈레톤이나 구울 따위를 상대할 때 편하잖아. 뱀파이어 사냥할 땐 필수라고."

"저 사람은 저 아이템만 갖고 있어도 정공에 가입할 수 있겠네."

"도대체 어떻게 얻었을까? 돈 주고 산 것 같지는 않은데."

"어? 그러고 보니 저 사람, 저번에 레이드팟으로 케르베로스를 몇 마리나 잡아갔던 사람 아냐?"

"아! 그 짐꾼 출신이라는...... 듀얼리스트!"

정대식이 몇 번이나 들락거린 던전이다 보니, 이곳 말뚝들이 정대식을 알아보았다. 이미 그에 대한 소문은 퍼질 대로 퍼져 있어, 헌터들의 관심이 더욱 열렬해졌다.

"저 방어구는 케르베로스 사냥에 성공해서 번 돈으로 산 건가?"

"A급 아이템이 겨우 케르베로스 몇 마리 잡는다고 살 수 있을 정도야?"

"아무튼 한몫 크게 벌었으니까 저런 걸 떡하니 입고 나타났지."

"조디악 공격대로 들어가게 됐다는 소문이 사실인가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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