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5
현질 전사
-2권 20화
정대식은 메시지함으로 들어가 도착한 문자를 하나하나 확인해 보았다.
그러는 중에도 문자가 연달아 도착하고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헌터 전문 스카우터인 양세호라고 합니다. 우수한 헌터이신 정대식 씨에게 좋은 제안이 들어와 있으니, 시간 괜찮으시면 연락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전화를 받지 않으셔서 문자 남깁니다. 저는 인피니티 공격대의 공대장입니다. 최근 정대식 씨에 대한 호평을 듣고 이렇게 연락드립니다. 저희 공격대로 정대식 씨를 영입하고 싶으니, 확인하시는 대로 회신 부탁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안녕하세요? 던전 인력 소개 전문 강인 사무실의 박 과장입니다. 전부터 뛰어난 인재인 정대식 씨에 대한 이야기는 익히 들어왔습니다. 지금쯤 여러 공격대로부터 영입 제의를 받고 계실 것으로 짐작하고 있습니다. 만약 저희 강인 사무실을 방문해 주신다면 가장 좋은 조건으로 공격대 가입을 도와 드릴 것을 약속드립니다.
-사냥 가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계절입니다. 이렇게 모르는 번호로부터 갑자기 연락을 받게 되어 의아하시겠지요? 다름이 아니라 새로이 창설되는 저희 공격대에 정대식 씨를 모시고 싶어 이렇게 연락을 드립니다. 전화를 드렸으나 받지 않으셔서 부득이하게 문자를 남기게 되었으니, 가능하시면 이 번호로 전화 한 통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온갖 스카우터, 소개 업체, 인력 알선소, 신생 혹은 중견 공격대로부터의 메시지가 끝이 없었다.
정대식은 어안이 벙벙해 계속해서 울리고 있는 휴대폰을 쳐다보았다.
너무 연락이 많이 와서 어느 것부터 먼저 살펴봐야 할지도 모르겠다.
"하하...... 하하하......."
정대식은 시끄러운 휴대폰을 손에 든 채로 실소를 흘렸다.
어떻게 한 번, 일거리 하나라도 따내 볼까 전전긍긍하던 짐꾼 시절이 엊그제이거늘.
하루아침에 인생 역전을 했다.
더 놀라운 사실은, 여기서 끝이 아니라는 것이다.
'외부에 알려진 내 능력은 기껏해야 듀얼이다. 만약 내가 트리플의 능력을 갖고 있다는 게 알려지면 더 대단한 조건으로 영입 제의가 들어오겠지.'
정대식의 눈이 열망으로 번쩍번쩍 빛이 났다.
'만약에 현질을 더 해서 능력을 늘려 나간다면?'
새로운 계열의 능력을 획득하는 데 드는 돈은 겨우 1천만 원이다.
마음만 먹으면 손쉽게 모든 종류의 능력을 얻을 수가 있었다.
그리되면 전에 없던 존재, 올인원이 되는 것이다!
'올인원이 된다!'
올인원이라는 것은 모든 능력을 획득한 각성자를 이르는 말이다.
여태껏 듀얼이나 트리플까지는 확인된 바가 있어도, 그 이상의 능력을 획득한 각성자의 존재는 확인된 바가 없었다.
당연히 올인원도 일종의 가상의 존재로 여겨질 뿐이었다.
그런데 자신이 바로 그 올인원이 된다면?
지금 손에 들고 있는 이깟 계약서들은...... 우스운 종이 쪼가리가 될 뿐이다.
"아하하...... 하하하하하!"
생각만 해도 짜릿한 일이라, 정대식은 미친 사람처럼 큰 소리로 웃었다.
Chapter 12. 국가 기물 금고
"정대식 씨."
막 커피숍에서 집으로 돌아가던 정대식은 여관이 있는 골목 어귀에서 낯익은 인물들과 맞닥뜨렸다.
그들은 다름 아닌 몬스터 브레이크가 터졌을 때 그를 찾아왔던 정부 기관의 조사원들이었다.
개중에는 한눈에 보기에도 똑 부러지게 야무진 인상의 정부 요원, 장한나 역시도 있었다.
그녀는 마치 길을 가다 우연히 정대식을 만난 것처럼 아주 자연스레 인사를 건네 왔다.
"안녕하세요, 정대식 씨. 오랜만이네요."
"아, 예. 안녕하세요."
하지만 이곳은 시가지도 아니고, 그가 머물고 있는 여관으로 가는 길목이다.
여관이 막다른 곳에 자리해 있는지라 절대 우연히 마주쳤을 리가 없었다.
그들은 보란 듯이 정대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장한나는 속이 비치지 않는 예의 바른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괜찮으시면 잠시 이야기 나눌 수 있을까요? 조용한 곳에서 단둘이."
단둘이라는 말이 괜히 은밀하게 들렸으나 용건이 사적인 데 있지는 않을 터였다.
정대식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말했다.
"이 근처에는 커피숍 같은 게 없어서......."
"정대식 씨가 머무는 곳이 바로 이 근방이라 알고 있는데. 아닌가요?"
"거긴 손님을 들일 만한 곳이 아니라서요."
"흐음."
장한나는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여관을 한번 돌아보았다.
그녀는 어깨를 으쓱하고 말했다.
"괜찮으시다면 제가 타고 온 차에서 대화를 나눌까요?"
다른 조사원들을 밖에 남겨두고, 정대식은 장한나와 함께 시커멓게 선팅이 된 벤으로 향했다.
안으로 들어가 문을 닫자 외부와 완전히 차단된 느낌이 났다.
그곳에서 장한나는 다리를 꼰 채 말했다.
"최근 정대식 씨에 대한 이야기가 장안의 화제이더군요."
"이래저래 활동을 하다 보니 그리됐습니다. 아무래도 다중 능력자라는 존재가 흔하지는 않잖아요."
"그렇지요. 조디악 공격대에서 활약상이 훌륭했다고 들었습니다. 그쪽 팀장 중 한 분과 아는 사이라 이야기를 전해 들었는데, 이번 사냥에서 가장 큰 공로를 세운 분이 다름 아닌 정대식 씨라고 하더군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자기 팀으로 데려오겠다, 벼르고 있던데요?"
짧게 웃음을 터트린 장한나는 본론을 꺼냈다.
"곧 조디악 공격대뿐만 아니라 여러 대형 정공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가겠지요. 방금 전에도 스카우터를 만나고 돌아오셨다고 알고 있는데."
"그렇습니다만. 어떻게 아셨죠?"
설마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있기라도 한 건 아닌가 의구심이 들었다.
정대식은 미간을 찌푸려 불쾌감을 드러냈으나 장한나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정대식 씨와 같이 중요한 인재의 거취에 대해 파악하는 것이 제 주요한 임무 중에 하나라서요."
장한나가 이러한 시점에 자신을 만나러 온 이유는 하나일 수밖에 없었다.
정대식은 노골적으로 말했다.
"설마 제 행보에 간섭을 하려고 드는 건 아니겠죠? 어느 공격대에 들어갈지 결정하는 건 순전히 제 결정입니다만."
장한나는 호호, 웃어 보였다.
"물론이지요. 저희는 몬스터 브레이크로 인해 일어날지도 모르는 만에 하나...... 국가 비상사태를 대비해 각성자 분들의 정보를 알아 두려는 것뿐입니다. 어떤 공격대에 들어가느냐는 말씀하신대로 순전히 본인이 결정할 문제지요."
장한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말을 이었다.
"다만...... 해외로 나가시는 데 대해서는 다른 제안을 해 드리고 싶습니다."
"다른 제안이라고요?"
"이 나라에는 뛰어난 헌터가 많죠. 그들의 능력이 국가 경쟁력을 결정하는 만큼, 가급적이면 인재가 국외로 나가는 것을 막고자 함입니다."
장한나는 꼰 다리를 바꿔 앉고 말을 계속했다.
"만약 정대식 씨가 해외로 나가지 않고 국내에 남아 활동하실 경우, 모든 수입에 있어서 세금 감면 혜택을 드리겠습니다."
"세금 감면 혜택이라고요?"
정대식의 질문에 장한나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아시다시피 각성자들은 일반인들에 비해 다소 무거운 세금을 징수 당하고 있습니다."
장한나의 말이 사실이었기에 정대식은 짜증스레 말했다.
"무려 불로 소득세와 똑같은 30%의 세금을 물리고 있지요."
무거운 세금은 수많은 헌터들의 해외 이민을 조장하고 있었다.
정부의 주장으로는 각성자의 능력이라는 게 어떤 노력으로 인한 게 아닌, 운으로 인한 것이기에 불로 소득세와 같은 조건의 세금을 물릴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러나 각성자들 입장에서는 심히 억울한 일이다.
그저 능력을 타고났다 해서 돈이 그냥 하늘에서 떨어지는 게 아니다.
특히 헌터들 같은 경우에는 목숨을 걸고 몬스터 브레이크를 막기 위해 던전 공략에 나서고 있었다.
그런데 거기에서 발생되는 수입이 불로 소득과 같다니?
몇몇, 최희와 같이 국가 위기 상황에 공적을 올린 헌터들은 세금이 면제되거나 감면받는 경우도 있다고는 하지만, 그것은 극히 소수였다.
보통의 헌터들은 과한 세금을 뜯겼고, 그것을 피하기 위해 일부는 손해를 감수하고 불법적인 사설 몬스터 처리소를 이용하고는 했다.
공인 몬스터 처리소가 아닌, 사설 몬스터 처리소를 이용하면 사냥의 흔적이 남지 않는다.
당연히 세금을 안 내도 되지만 랭킹을 올릴 수가 없었다.
썰자팟으로 연명하는 신세라면 모를까, 레벨업을 목표로 하는 헌터들은 랭킹 순위에 민감했다.
스테이터스 측정기로 알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등급 정도일 뿐.
실질적인 실력 차는 랭킹에서 드러난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대부분은 세금을 감수하고서라도 공인 몬스터 처리소를 이용한다.
사설 몬스터 처리소를 이용하면 세금을 탈루할 수 있는 대신, 비싼 수수료를 물어야 하는 탓도 있었다.
마찬가지로 정대식 역시도 공인 몬스터 처리소를 이용했다.
그의 경우에는 랭킹이 신경 쓰여서라기보다는 수수료가 아까운 탓이었다.
애먼 놈의 배를 불려 주느니 차라리 세금을 내는 게 낫다고 생각해 왔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세금이 과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기는 했다.
그런데 그 세금을 감면도 아니고 면제해 주겠다니 솔깃할 수밖에 없었다.
"국내라면...... 제가 어떤 공격대를 들어간다고 하더라도 상관없는 겁니까?"
"네, 그건 관계없습니다. 대한민국 소속의 공격대이기만 하면 됩니다."
정대식은 혹해서 당장 고개를 끄덕일 뻔했다.
그러나 정대식이 누군가.
흥정의 달인이 아닌가!
장한나가 굳이 여기까지 찾아와 자신을 기다렸다가 이 말을 꺼내는 걸 보면, 상당히 급했다는 뜻이다.
한미란이 해외 공격대에서의 스카우트 제의를 놓고 갔으니, 정대식이 그것을 받아들이기 전에 그를 만나야 했을 테니까 말이다.
그렇다면 장한나의 윗선에서든 어디에서든, 정대식이 국외로 나가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게 틀림없었다.
그럼 뭐라도 더 뜯어낼 게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정대식은 "흐음" 하고 부러 턱을 쓰다듬었다.
그리고 골치가 아프다는 듯이 천천히 이야기를 꺼냈다.
"세금 면제 혜택만으로는, 글쎄요. 제가 해외에서 받은 제의에 비해서는 약소한데요? 이미 알고 계시겠지만, 저는 굳이 국내에 머물 이유가 없어서요. 가족이 여기에 있는 것도 아니고, 국가로부터 딱히 받은 게 있는 것도 아니고."
실제로 그랬다.
정대식은 고아로 힘겹게 살아왔다.
국가가 그에게 베푼 것이라고는 보육원에서의 알량한 삼시 세 끼의 밥뿐이었다.
그것마저도 아침 한 끼는 빵이었다.
성인이 되자마자 그곳에서 쫓겨 나와, 당장 잘 곳도 없던 때의 비참함을 정대식은 잊은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애국심 운운하며 자신을 붙잡을 순 없는 노릇이었다.
"보다시피 저는 아직 아무 가진 게 없어요. 잠도 여관 쪽방에서 자고 있고, 끼니도 길거리에서 대충 해결하고 있죠. 당장이라도 아무 미련 없이 떠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겨우 세금 감면 혜택만으로 머물라고 하다니, 솔직히 어이가 없네요. 제 능력치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장한나 씨가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장한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지요. 정대식 씨가 듀얼리스트라는 사실을 제가 진즉에 알고......."
"사실을 말하자면, 트리플입니다!"
정대식이 별안간 툭 던진 말에 장한나는 두 눈을 크게 떴다.
"트, 트리플이라고요?"
"예. 아시는 바대로 강화계와 변화계, 이 두 가지와 하나 더...... 정신계 능력을 가지고 있지요."
장한나는 도무지 못 믿겠다는 표정이었다.
"그게 사실입니까?"
"그럼 제가 이런 자리에서 헛소릴 하겠습니까? 아니라면 금방 들통날 일인데. 이미 제가 정신계 능력자라는 사실을 아는 헌터들도 몇몇 있습니다. 저와 함께 사냥을 다녀 본 사람들을 찾아 묻는다면 알게 되겠죠."
"하지만 여태까지 트리플리스트는...... 전 세계를 통틀어 딱 세 명, 한국에서도 단 한 명밖에 없었어요!"
정대식은 그랬느냐, 여상히 대꾸하고 말했다.
"변화계 능력도 처음부터 획득하고 있던 게 아니었죠. 정신계 능력 역시도 나중에 얻은 겁니다. 제 느낌으로는 하나씩, 차례대로 새로운 능력을 깨우쳐 가는 것 같아요. 어쩌면 트리플 그 이상의 능력을 획득하게 될지도 모르지요."
장한나는 경악했다.
"쿼드러플이나 퀀터플......까지 간다는 말인가요?"
"뭐, 제 짐작일 뿐입니다."
장한나는 입술을 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