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4
현질 전사
-2권 19화
박가람은 품에서 휴대용 홀로그램 영상 장치를 꺼냈다.
그걸 틀자 허공에 화면이 떠올랐다.
그건 다크플레임 공격대의 사냥 장면을 촬영한 영상이었다.
"여기 뒤에서 지휘하는 분이 공대장이신 한찬수 님이십니다."
"어......? 혹시 이분, 힐러이십니까?"
"예, 맞습니다. 한찬수 님은 뛰어난 힐러로 사냥에서 큰 역할을 도맡고 계시죠. 보시다시피 한찬수 님이 힐을 아낌없이 뿌리고 있으니 사냥에서 입는 자잘한 부상 같은 것은 즉시 나아 버립니다. 그러니만큼 부상에의 위험이나 두려움 없이 싸울 수 있는 것이지요."
영상에서 한찬수의 활약은 인상적이었다.
보통 힐러 하면 뒷전에 숨어서 요청하는 힐이나 뿌리는 게 다인데, 한찬수는 적극적으로 현장을 지휘하며 적재적소에 즉각적으로 힐을 쓰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공대원들의 기세도 좋았고, 사냥도 침착하게 진행이 됐다.
"한찬수 님이 힐러인 덕분에 다크플레임에서는 포션비나 치료비가 크게 절감이 됩니다. 물론 힐러의 몸값도 아낄 수가 있지요. 다크플레임에서는 이렇게 아낀 비용을 전부 공대원들에게 나눠 주고 있습니다."
"수익 배분이 어떻게 되는데요?"
"6 대 4입니다. 대원들이 6, 회사가 4인 거지요. 공대원들은 수익을 공평하게 나누고, 성과에 따라서 인센티브를 받습니다. 매번 사냥이 끝나고 나면 공대장이신 한찬수 님과 각 팀장이 참여해 평가 회의를 열고 거기에서 성과급을 책정하지요. 아마 정대식 님처럼 뛰어난 능력을 갖추고 계신 분이라면, 다크플레임의 어느 공대원보다 더 많은 수익을 가져가실 수 있을 겁니다."
"그 외 다른 지원은 없습니까?"
"당연히 있지요. 제가 방금 회사 사옥을 신축하고 있다고 말씀드렸지요? 바로 옆에 공대원들을 위한 아파트도 짓고 있습니다. 완공되면 다크플레임 소속이라면 누구나 그곳에서 살 수 있지요. 차량도 사냥용 지프와 회사용 승용차로 두 대씩 지급이 됩니다. 승용차의 경우엔 재계약을 하면 아예 명의를 변경해 드립니다. 각종 무구와 장비 지원은 물론이거니와...... 공식 일정이 없는 경우에는 자유롭게 사냥을 다니실 수도 있습니다. 그때 벌어들이는 수익은 당연히 정대식 님 것이고요."
"그러니까 공격대 보급품으로 개인적으로 사냥을 다닐 수도 있다는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한 달에 각 대원들에게 지급되는 기본적인 보급품의 경우, 사용에 제한이 없습니다. 판매를 해도 무방합니다. 단, 대여하는 장비의 경우 손상이 되면 수리비는 따로 청구가 됩니다."
"그렇군요."
"또한 1년에 두 번, 한찬수 님의 지휘 아래 레벨업팟도 열립니다."
"레벨업팟이라고요?"
"아무래도 사람마다 타고난 능력치가 다르다 보니, 성장에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죠. 한찬수 님은 그런 부분까지도 신경을 써 지원을 목적으로 하는 레벨업팟도 지휘를 하십니다. 요청만 하면 얼마든지 공대장의 도움을 받아서 능력치를 올릴 수 있다는 것이지요."
"과연, 공대원들이 재계약을 할 만하네요."
"그렇습니다. 모든 일에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지요. 천룡 공격대는 대원 복지 부분에 있어서는 다크플레임보다 덜합니다만, 또 나름의 이점이 있습니다. 일단 다크플레임 공격대보다 창설된 지가 좀 오래되었고......."
그때였다.
커피숍 문이 열린다 싶더니, 눈에 확 띄는 미녀가 안으로 들어왔다.
길쭉한 팔다리에 긴 머리칼이 모델처럼 화려했다.
정대식은 박가람의 설명을 한참 동안 듣는 와중에 그쪽에 정신이 팔리고 말았다.
실로 좌중을 압도할 만한 미인이었는데, 너무 빤히 쳐다봤는지 커피숍을 한 바퀴 쭉 둘러보던 그녀와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그러자 그 여자가 별안간 이쪽으로 다가왔다.
또각또각!
위협적인 하이힐 소리에 박가람이 미간을 찌푸리며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다가 그 여자를 발견하고 낭패 어린 표정으로 외쳤다.
"아니...... 여긴 어떻게......?"
여자는 생긋 웃으며 양해 한마디 없이 박가람의 옆자리에 털썩 앉았다.
그리고 선글라스를 벗으면서 정대식에게 인사를 해 보였다.
"안녕하세요? 만나서 반가워요, 정대식 씨."
"......아, 예."
그녀는 손바닥만 한 클러치 백을 열어 안에서 명함을 끄집어냈다.
금테가 둘러진 것이 명함조차 여자처럼 화려해 보였다.
"저는 스카우터인 한미란이라고 합니다. 느닷없이 들이닥쳐서 죄송해요."
"아닙니다. 어, 저...... 그런데 지금은 박가람 씨하고 대화를 나누는 중이었습니다만."
정대식이 불쾌한 기색이 역력한 박가람을 의식하고 말을 하자, 한미란이라고 자신을 밝힌 여자가 뻔뻔하게 웃어 보였다.
"미팅을 반드시 한 사람하고만 하라는 법은 없지요. 이왕이면 여러 제안을 들어보고 판단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박가람은 화를 내리누르고 말했다.
"달리 볼일이 있다면 내 용건이 끝나고 나서 약속을 잡아 차후에......."
"꼭 따로 만나야 할 이유가 있나? 내가 보기엔 없는 것 같은데."
박가람과 한미란은 서로 아는 사이 같아 보였다.
악연으로 얽힌 게 분명해 보이기는 했다.
아무튼 간에 한미란은 손깍지를 끼고 정대식을 바라보며 본론을 꺼냈다.
"이미 짐작하고 계시겠지만, 제게도 여러 건의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와 있어요. 개중엔 특별히 보수를 더 얹어 줄 테니, 반드시 정대식 님을 자기 공격대로 끌어와 달라고 부탁하는 곳도 있었죠."
한미란은 빙긋이 미소 지으며 박가람을 쳐다보았다.
"이쪽 스카우터께서는 아마 특정 공격대를 강력하게 추천했겠지요? 아마 그 공격대에서 적지 않은 보수를 약속했을 겁니다. 그러니 그 공격대의 이점만을 어필하려 했겠지요."
박가람은 얼굴을 시뻘겋게 붉혔다.
"이런 식으로 행동하면 스카우터 연맹에 고발하겠어."
박가람의 위협적인 어조에도 한미란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상관없어, 어차피 난 연맹에 가입되어 있는 것도 아니고. 난 외국 정공도 끼고 일하니까 연맹의 제지가 들어와도 별 상관이 없지."
한미란은 박가람을 무시한 채 방긋 웃으며 말했다.
"여기 이 스카우터뿐만이 아니라, 앞으로 정대식 님을 찾는 모든 스카우터가 본인에게 높은 보수를 약속한 공격대 쪽으로 정대식 님을 끌어가기 위하여 온갖 수를 다 쓸 거예요. 그 가운데서 더 나은 계약 조건을 알아내기란 쉽지 않죠. 솔직히 대형 정공이 아닌 이상 제의할 수 있는 조건에도 한계가 있을 거고요. 하지만 해외라면 어떨까요?"
정대식은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해외라고요?"
한미란은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해외에서 활약하고 있는 여러 공격대와 국내 헌터들을 이어 주고 있어요. 그쪽이 전문이죠. 그 어느 나라의 헌터들보다 우리나라의 헌터들이 월등히 우수하니까요. 대한민국의 헌터라면 데려가려는 해외 정공이 줄을 섰어요. 특히 여러 능력을 보유하고 있는 정대식 님이라면...... 국내 정공보다 더 좋은 조건으로 골라서 갈 수 있어요."
해외로 진출하는 것에 대해서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일단 영어도 안 될뿐더러 헌터들의 성지는 서울이다.
세계 어느 나라보다 헌터들의 실력이 뛰어난 곳이 바로 대한민국이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숫자의 공격대가 있는 곳 또한 대한민국이었으므로, 굳이 해외에 나가야겠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한미란의 말은 계속됐다.
"사실을 보자면 해외의 헌터들은 우리나라 헌터들의 수준을 못 따라오고 있죠. 그건 공격대 역시 마찬가지예요. 그러나 그것도 예전 이야기고, 미국이나 러시아, 중국, 일본 같은 강대국들의 경우에는 국가가 앞장서 공격대를 창설, 관리하고 있어요. 그 과정에서 우수한 인재를 끌어모으고 있음은 당연한 일이고요.
해외 공격대는 대부분이 국가 지원을 받고 있기 때문에 자금력이 매우 뛰어나요. 특히 스카우트에 있어서는 돈을 아끼지 않죠. 국내 대형 정공 못지않은...... 아니, 그보다 더 대단한 조건을 받으실 수가 있어요."
그러자 박가람이 날카로운 어조로 말했다.
"그 정도 조건을 제시받는 건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만큼 귀화가 전제 조건이 됩니다. 단순히 몇 년 가서 용병으로 일하는 것 정도로는 그리 좋은 조건을 받을 수가 없어요. 정대식 님 정도면 충분히 국내에서도 높은 몸값을 받을 수 있습니다. 어느 정도를 원하시는지 말씀만 해 주시면, 제가 그 조건, 충분히 맞춰 드릴 수 있고요. 굳이 말도 안 통하고 낯선 타국으로 갈 필요가 있을까요?"
박가람의 말에 한미란이 곧장 반박했다.
"뛰어난 인재가 넘쳐 나는 탓인지, 한국은 헌터 대접이 매우 짜죠. 각성자 연맹이 무능하다는 사실은 널리 소문난 바이고, 각성자 관리청이나 국민안전처, 여러 국가 기관들은 헌터를 아예 잠재적 범죄자 취급하는 경향마저 있지요. 단지 각성자라는 이유만으로 무거운 세금을 물리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국가가 담당해야 할 치안이나 안보 문제까지 헌터들에게 떠넘기는 형국이잖아요?
빈말로라도 대한민국이 헌터가 살기 좋은 나라는 아니죠. 해외로 나가는 헌터들이 왜 역적 취급을 받겠어요? 그렇게 분위기를 조장하고 있는 거지요. 그러지 않으면 헌터들이 죄다 외국으로 빠져나갈 테니까요."
"뛰어난 헌터들은 그 존재만으로도 국가에 큰 이바지를 합니다. 대한민국 국민으로 태어나 이 나라를 저버리고 외국으로 나간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일이지요. 무엇보다 제아무리 타국에서 공격대를 키운다고 하더라도, 아직까지 세계 최고의 공격대는 이 나라에 모여 있어요. 해외에서 그 어떤 공격대에 들어간다고 하더라도 정대식 님의 수준에는 못 미칠 겁니다. 아마 배우는 것보다 가르치는 일이 더 많겠지요."
박가람과 한미란은 정대식을 앉혀 놓고 한참 동안 설전을 벌였다.
처음엔 흥미진진해 귀를 기울이던 정대식도 도중에 지루해져 귀가 따가울 뿐이었다.
그 기색을 눈치채고 한미란이 재빨리 계약서 한 부를 정대식에게 쥐어 주었다.
"이게 제가 정대식 님께 권해 드릴 수 있는 최고의 조건이에요. 물론 여기서 협상도 가능합니다. 무엇이든 원하는 바대로 맞춰 드릴 수 있으니, 한 번 잘 생각해 보시고 명함에 있는 번호로 연락 주세요."
박가람도 질세라 계약서 두 부를 내밀었다.
"여기, 제가 말한 다크플레임과 천룡 공격대의 가계약서입니다. 저도 당연히 정대식 님의 조건을 맞춰 드릴 수 있습니다. 반드시 이 두 곳이 아니더라도 원하는 공격대가 있으시면 협상해 드리지요."
그들이 돌아가고 정대식은 홀로 남아 찬찬히 계약서들을 훑어보았다.
과연, 한미란이 해외 공격대가 더 낫다고 자신할 만했다.
다크플레임이나 천룡 공격대의 조건도 나쁘지는 않았지만, 해외 공격대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중동의 지원을 받는 다국적 공격대였는데, 조건이 그야말로 어마어마했다.
'이건...... 그냥 숨만 쉬어도 돈이 벌리는 수준이잖아!'
정대식은 본인의 눈을 의심하며 숫자를 하나하나 세어 보았다.
'고정 연봉만 100억! 여기에 내가 가져가는 보수는 사냥 공헌도에 따라 별도고...... 세상에! 장비나 무구, 보급품은 요구하는 대로 지급받을 수가 있군...... 거기다 전용기도 상시 이용 가능하고, 초호화 주택에 슈퍼카는 그냥 무상 지급...... 이 차 한 대만 팔아도 평생 먹고살 걱정은 없겠네.'
그야말로 입이 쩍 벌어지는 조건이었다.
'지나치게 좋아서 실감이 안 난다.'
정대식은 일단 좀 고민을 해 봐야겠다고 생각하며 계약서를 품속에 구겨 넣었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기 전에 휴대폰을 한번 확인해 보았다.
박가람과 한미란의 이야기를 듣느라 잠시 무음으로 돌려놓았던 것이다.
그런데 부재중 통화 목록이며 메시지함이 터져 나갈 듯했다.
'으악, 이게 뭐야!'
발신인은 다 달라도 용건은 하나였다.
다름 아닌 각종 공격대로부터의 영입 제안이었다.
"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