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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질 전사-41화 (41/297)

# 41

현질 전사

-2권 16화

정대식은 설유란과 황미건이 옥신각신하도록 놔두고 발길을 옮겼다.

그러던 중에 기철민이 무사한 광경이 보였다.

다른 누구보다 그가 멀쩡해 보여 안도가 들었다.

정대식은 피식 웃으며 기철민의 등을 두드렸다.

"용케 살아남았네?"

기철민은 어깨를 으쓱했다.

"눈칫밥으로 살아남았지. 가시전갈이 독침으로 딜러들 쓸어버릴 때 어찌 되는가 싶었는데......."

기철민은 광필두 쪽을 턱짓했다.

"저치와 제법 쿵짝이 잘 맞던데?"

"그러게. 나도 예상 외였어."

기철민은 곧 묘한 웃음을 입가에 달았다.

"솔직히 오늘 사냥에 따라 나오면서 사지 멀쩡한 채로 돌아갈 거라고는 기대치 않았다. 덕분에 크게 한몫 벌었어. 마정석의 값어치가 그리 높아 보이지는 않지만, 그래도 마정석은 마정석이지. 보수를 받을 때 마정석의 값도 따져 받을 수 있을 거야."

돈 이야기가 나와서 정대식은 당장 눈에 불을 켰다.

"대충 얼마나 벌어 갈 것 같아?"

정대식의 질문에 기철민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받아 봐야 알겠지? 나도 던전 공략에 끝까지 남아 본 것은 처음이라. 감은 잘 안 오지만...... 아무리 못해도 몇십은 받지 않을까?"

"몇십이라고?"

"억, 억. 몇십억 말이야."

몇십억!

10억, 20억도 아닌 몇십억!

정대식은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그런 정대식을 보고 기철민이 말을 이었다.

"네 말대로 돈이 목적이라면, 이번 사냥을 끝으로 은퇴해도 되지 않을까?"

기철민의 말이 옳았다.

몇십억 정도면 괜찮은 건물 하나 정도는 충분히 살 수가 있었다.

그러고 나면 헌터 생활 따위는 관두고 편안하게 월세나 받아먹으며 지낼 수 있으리라.

고대해 마지않았던 일이건만.

정대식은 기쁘다기보다는 기분이 묘했다.

줄곧 돈을 벌어 하루라도 빨리 사냥을 관두고 싶었던 것은 사실이다.

한데 이렇게나 빨리?

적어도 한동안은...... 최소한 몇 달은 더 뼈 빠져라 일해야 될 줄 알았는데.

뜻밖의 상황 속에서 뒷정리가 시작되었다.

정대식은 부상자들을 옮기고 후발대가 짐꾼들을 데리고 진입하기 쉽도록 길을 닦는 일을 도왔다.

그러는 동안 내내, 머릿속에는 '은퇴'라는 단어가 떠돌고 있었다.

Chapter 11. 스카우트 제의

던전을 벗어났을 땐, 현실 세계의 공기가 달콤하게 느껴졌다.

습기 찬 정글 형태의 던전이었던지라, 줄곧 무덥고 어두컴컴했었는데.

바깥은 햇살이 환하고 바람이 시원했다.

정대식은 밖으로 나오자마자 엉망진창으로 더러워지고 찌그러진 강화 알루미늄 방어구를 벗어 버렸다.

그걸 바닥에 아무렇게나 내동댕이치고 제자리에 주저앉아도 누구 하나 뭐라 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대원들 전부가 무사히 던전을 벗어난 걸 만끽하고 있었다.

그런 대원들을 황미건이 재촉했다.

"자, 자! 휴식이라면 호텔로 이동해서 하자고! 얼른 차에 올라타!"

재정비를 마치고 대원들은 지프에 나눠 탔다.

얼마간 차를 달려 도착한 곳은 한 호텔이었다.

그리 고급스럽지는 않아도 잠시 쉬어 가기에는 적합한, 온천이 딸린 리조트 형식의 비즈니스호텔이었다.

간혹, 조디악 공격대가 사냥 후에 임대를 하곤 했는지 직원들이 달려 나와 익숙하게 대원들을 맞았다.

대원들은 옷을 벗어던지고 대중탕으로 들어가 땀과 온갖 몬스터들의 체액, 그리고 피로에 찌든 몸을 씻어 냈다.

정대식도 그들과 어울려 목욕을 하고 지급받은 티셔츠로 갈아입은 뒤 뷔페에서 식사를 했다.

맥주 한 잔과 함께하는 식사는 기가 막혔다.

배가 터지도록 먹고 곧장 방으로 올라가 푹신한 침대에서 휴식을 취했다.

실컷 자고 일어나 보니, 정식 대원들은 대부분 귀갓길에 오른 상태였다.

팀장들만이 남아 있다가 아침 식사를 하러 로비로 내려온 정대식을 찾았다.

"대식 씨! 이쪽이에요!"

"누구 맘대로 대식 씨야?"

설유란과 황미건이 어김없이 옥신각신하는 가운데, 박무식이 차후의 일을 간략하게 언급했다.

"조만간 던전에서 얻은 자원의 감정이 끝나는 대로 정산서가 갈 겁니다. 내용을 확인해 보고 정산 방법을 선택해 연락을 주시면 됩니다. 아마 스카우트 제의도 그쯤해서 가지 싶네요. 오늘 본사로 들어가는 즉시 공대장님께 정대식 씨를 영입하자고 제안할 겁니다."

박무식의 말에 정대식은 거북살스러운 기색을 드러냈다.

그 표정을 보고 박무식이 피식 웃었다.

"만약 공대장님께서 정대식 씨를 들이기로 마음먹는다면, 또 어떤 조건을 내걸지 모르지요. 제가 보여 드린 가계약서는 어디까지나 제가 가진 권한 내에서 제안할 수 있는 내용이었으니까요. 그러니 열린 마음으로 소식을 기다려 주십시오."

조디악 공격대에 들어갈 마음이 없다 한들, 자신을 높게 평가해 주는 것은 고마운 일이었다.

정대식은 예의를 차려 팀장들에게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이번 사냥은 제게 좋은 경험이 되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조만간 다시 볼 수 있게 되기를 바라죠."

정대식은 그들과 악수를 나누고 간단히 아침 식사를 한 뒤, 방으로 올라가 장비를 챙겼다.

조디악 공격대에서 받은 보급품은 그대로 소지할 수가 있었으므로, 원래대로라면 짐이 많았다.

그가 걸치고 있던 강화 알루미늄 방어구만으로도 몸에 장착하지 않는 이상은 부피가 상당했다.

하지만 정대식은 그 짐을 모조리 아공간에 집어넣었다.

일종의 인벤토리인 그 무형의 공간은 상점을 업그레이드함에 따라 용량이 세 배로 늘어난 상태였다.

덕분에 어지간한 짐이라면 그 안에 몽땅 털어 넣을 수가 있었다.

정대식은 조디악 공격대에서 지급받은 티셔츠를 걸치고 슬리퍼를 직직 끌며 호텔을 나섰다.

그러자 마침 택시를 잡고 있던 기철민이 의아한 듯이 쳐다보았다.

"너, 네 짐은 어디다 버리고 달랑 몸만 나가는 거야?"

정대식은 어깨를 으쓱했다.

"벌써 보내 버렸지. 넌 지금 돌아가는 길이야?"

"그래. 가서 좀 쉬어야지."

그는 코를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가능하면 이것도 고칠 방법을 찾아보고."

정대식은 씩 웃었다.

"보기에 그리 나쁘진 않아. 베테랑 헌터 같고 보기 좋구만, 뭘."

기철민은 얼굴을 찡그렸다.

"네 얼굴에 이딴 게 생겨 봐라. 그런 말이 나오나."

그렇게 말한 기철민은 택시가 도착한 걸 보고 짐을 챙겨 들었다.

그리고 택시에 타려다가 갑자기 우물쭈물했다.

뭔가, 정대식에게 할 말이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반드시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는지, 그는 "간다"라는 퉁명스런 말 한마디만 남겨 놓고 가 버렸다.

정대식도 더 주저하지 않고 발길을 옮겼다.

어디로?

당연히 지하철역이다.

"여기서 몇 호선을 타야 하더라......."

아무리 몇십억의 돈이 들어올 예정이라 하더라도 정대식은 곧 죽어도 대중교통이었다.

조디악 공격대의 마크가 새겨진 티셔츠를 걸친 채, 그는 지하철역으로 발길을 옮겼다.

* * *

뚜르르르르~.

승강장에서 기다린 지 오래되지 않아 전동차가 도착했다.

정대식은 전동차에 올라타 적당한 자리를 찾아서 섰다.

집까지는 몇 정거장을 더 가서, 또 버스를 갈아타야 하는 관계로 꽤 멀었다.

거기까지 언제 가나 싶은 정대식은 입이 찢어져라 하품을 했다.

그때 옆에 서 있던 남자애가 그를 힐끔거리며 쳐다보았다.

계속 곁눈질을 해 대서 무슨 영문인가 싶었다.

설마 여자 헌터들에게나 통하는 페로몬이 여기서도 발산되는 것인가, 하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남자애가 조심스럽게 말을 걸어왔다.

"저어......."

"예?"

이제 기껏해야 스무 살쯤 되어 보이는 남자애는 정대식이 입은 티셔츠를 손가락질하며 물었다.

"이거, 조디악 공격대 티셔츠 맞죠?"

"아, 예. 그런데요."

그건 왜 묻나 싶어서 의아해하며 바라보니, 남자애가 눈을 번쩍이며 말했다.

"혹시, 조디악 공격대 소속이세요?"

"예? 아......."

정대식은 조디악 공격대의 마크가 적나라한 티셔츠를 한번 내려다보고, 뒤통수를 긁적거렸다.

"그런 건 아니고요."

남자애는 두 눈을 크게 떴다.

"아니라고요? 그럼 이 티셔츠, 어디서 구하셨어요? 저도 좀 구할 수 있을까요? 제가 공격대 굿즈 모으는 게 취미라서요."

공격대 굿즈라고?

그런 게 있었나?

정대식은 얼굴을 찡그리고 말했다.

"어떻게 구한 것은 아니고, 그냥 임시 대원으로 사냥에 참가했다가 받은 겁니다."

그 말에 남자애가 입을 쩍 벌렸다.

"예? 이, 임시 대원으로...... 그럼 헌터세요?"

헌터라는 말이 나오기 무섭게 사람들의 시선이 이쪽으로 쫙 몰렸다.

귀에 이어폰을 꽂고 있는 몇몇 이들을 제외하고, 같은 칸에 탄 사람들이 모조리 그를 쳐다보는 것 같았다.

정대식은 몹시 부담스러운 기분 속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 그런데요."

"우와! 지, 진짜요? 진짜 헌터예요?"

"예. 뭐가 이상한가요?"

"아뇨, 아뇨. 그게 아니라......."

남자애는 갑자기 가방을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난감한 기분으로 그놈을 쳐다보고 있는데, 몇몇 사람들이 휴대폰을 꺼내 들어 사진을 찍었다.

여자애들은 흥분해서 이쪽을 쳐다보며 속닥거렸고, 착각인지 아닌지 여기저기서 "헌터래", "정말?", "헌터라는데?"라는 말들이 오가는 게 들렸다.

헌터인 게 이렇게나 놀랄 일인가.

좀 어리둥절해 있으니 남자애가 수첩과 펜을 내밀었다.

"괜찮으시면 여기...... 사인 좀 해 주세요."

"예? 사인이라고요?"

"예. 제가 헌터 마니아거든요."

"......하지만 저는 조디악 공격대 소속이 아닌데요. 임시 대원으로 잠시 함께했을 뿐인데."

남자애가 헌터 마니아라는 말은 거짓이 아닌 모양이었다.

개중에서도 특히 공격대에 대해 관심이 많은지, 정대식도 모르는 조디악 공격대의 특징을 줄줄 읊었다.

"아무리 임시 대원이라도 조디악 공격대에서 아무나 사람을 쓰지는 않아요. 최소한 7등급 이상은 되어야 한다고 알고 있거든요. 게다가 조디악 공격대는 공채를 안 해서, 현 정식 대원들 중에는 임시 대원 과정을 거쳐서 고용된 사람이 제법 있어요. 그러니까 언젠가는 조디악 공격대가 되실 지도 모른다, 이 말이죠! 미래의 조디악 공격 대원이라면 당연히 사인을 받아 둬야 한단 말이에요."

"......."

어쨌든 해 달라니까, 굳이 마다할 이유도 없고 해서 정대식은 대충 사인을 해 줬다.

남자애는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라고 몇 번이나 고개를 꾸벅거려 보였다.

정대식은 대충 대답하고 쏠리는 시선이 부담스러워 칸을 옮겨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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