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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질 전사-34화 (34/297)

# 34

현질 전사

-2권 9화

파사삭! 쿠우웅...... 파사삭!

무성하게 우거진 숲이 요란하게 뒤흔들리며, 넝쿨이 빽빽하게 엉킨 관목 너머로 시커먼 게 불쑥 튀어 올라왔다.

그건 다리였다.

촘촘하게 가시가 돋아난 다리가 울창한 나무 사이를 헤집으며 나타났다.

곧이어 꼭 성게처럼 삐죽삐죽한 몸체가 뒤따라 왔다.

"퀴에에에!"

앞에 전열을 갖춰 선 공격대를 발견하고 가시거미가 크게 소리를 질렀다.

놈은 마치 새처럼 부리가 뾰족했는데, 혀가 채찍처럼 길고 가늘었다.

입과 천장에는 무슨 고문 도구처럼 가시가 빽빽하게 돋쳐 있어 무시무시했다.

게다가 전신은 새까만데 입만 시뻘게서 공포감을 한층 돋우었다.

"제길, 생긴 거 한번 엿같네......."

옆에서 기철민이 거친 욕설을 내뱉으며 검 자루를 움켜쥐었다.

곧, 백양좌에서 탱커 둘이 팀장의 신호를 받고 앞으로 뛰쳐나갔다.

던전 안에 들어와 처음으로 정식 대원들이 활약을 시작한 것이다.

"여길 봐라, 이 밤송이야!"

"저게 어딜 봐서 밤송이냐!"

앞장 선 탱커가 호기롭게 외친 말을, 뒤따르는 탱커가 면박 주었다.

그들 중 한 명은 장창과 원방패로 무장했고, 다른 한 명은 큼지막한 해머를 갖추고 있었다.

장창을 가진 탱커가 그걸 날리자 '훙!' 하고 바람 가르는 소리가 났다.

그게 정확히 가시거미에게로 날아가 박혔다.

"퀘에에에엑!"

분노한 가시거미가 쾅! 쾅! 발을 굴렀고, 그 틈을 타 접근한 두 번째 탱커가 해머로 가시거미의 몸뚱이를 후려갈겼다.

연거푸 첫 번째 탱커가 장창을 뽑아내자 거기서 피가 찍, 솟구쳤다.

"퀴에에엑!"

가시거미는 앞에서 알짱거리는 탱커들을 향해 관절이 제멋대로 움직이는 여덟 개의 다리를 이용해 무차별로 찍어 댔다.

어그로가 제대로 끌린 것이다.

가시거미가 탱커들에게 눈이 뒤집힌 사이, 해좌가 탱커들이 다치는 일이 없도록 버프를 가했다.

그러는 동안 사수좌에서 장거리 공격을 가시거미에게로 우수수 쏟아 냈다.

타다다다당!

퓨부부부부붓!

사수좌가 한바탕 공격을 쏟아 내고 나자 두 번째 열에 같이 서 있던 사수좌와 해좌가 양옆으로 갈라졌다.

그사이로 황미건과 사자좌 팀장의 지시를 받은 딜러들이 앞으로 돌격했다.

"한 방에 쓰러트려!"

제일 앞장서 달려 나가는 임시 대원들은 어금니를 질끈 물었다.

정대식은 그들이 자신에게 버프를 기대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았다.

그러나 이제 와 그들에게 강화를 걸 생각은 없었다.

대신 입 안으로 짧게 스킬을 되뇌었다.

"신속."

파아앗!

발끝으로 빛이 모이며 정대식이 달리는 속도가 월등하게 빨라졌다.

눈 깜짝할 새 다른 딜러들을 전부 제치고 앞으로 훌쩍 뛰어간 정대식은 허공으로 땅을 박차며 연거푸 스킬을 썼다.

"강력권!"

파우우웅!

단단히 움켜쥔 그의 주먹으로 마력이 둥글게 뭉쳐 들어갔다.

거기에 강화까지 덧입히자, 마치 주먹이 열 배로 커진 것 같은 착각이 일어났다.

"하아앗!"

정대식은 민첩의 기운이 남아 있는 다리로 탱커의 머리를 뛰어넘었다.

그리고 아마도 가시거미의 미간이라고 여겨지는 곳을 향해 강력권을 날렸다.

그런데 그때, 정대식의 존재감에 어그로가 흩어져 버렸나 보았다.

정대식을 인식한 가시거미가 그를 알아차리고 입을 쩍 벌렸다.

"캬앗!"

그 흉악한 주둥아리를 보아하니, 잘못 공격했다간 팔이 몽땅 갈려 나갈 판국이었다.

그러나 이미 강력권을 거둬들이기엔 늦어 버렸다.

정대식은 부상을 각오하고 그대로 주먹을 내리꽂았다.

"에라이!"

콰-악!

그의 주먹이 세모꼴로 쫙 벌어진 가시거미의 입 안으로 쑤우욱, 빨려 들어갔다.

덩달아 팔꿈치와 어깨, 심지어는 머리까지 한 번에 들어갔다.

가시거미의 역겨운 입 냄새가 끼쳐 오며 허리에 슈르륵, 가시거미의 길쭉한 혀가 감겼다.

실로 끔찍한 기분이었으나, 강력권은 가시거미의 주둥이에만 머물러 있지 않았다.

정대식의 주먹은 가시거미의 목구멍을 파고 들어갔다.

주먹 끄트머리에 무언가 닿는다고 느끼기가 무섭게, 정대식의 주먹에 응축되었던 마력이 엄청난 폭발을 터트렸다.

슈와아악!

마치 프로펠러가 회전하듯 마력이 소용돌이처럼 분출되며, 가시거미의 목구멍을 완전히 찢어 놓았다.

촤아아악!

실로 놀라운 광경이라 그 장면은 마치 슬로 모션 기법으로 촬영한 것처럼 느리게 보였다.

뚝, 끊어진 혀가 정대식의 허리에 감긴 채로 허공에 날리고, 입천장과 바닥에 촘촘히 박혀 있던 수천 개의 이가 옥수수 알처럼 사방팔방으로 튀어 올랐다.

동시에 부드러운 목구멍의 살이 터져 오르며 초록색의 피가 분수처럼 솟구쳤다.

촤아아악!

강력권을 내리꽂던 기세 그대로, 정대식은 가시거미의 찢어진 몸뚱이에 처박혔다.

"으악!"

짧은 비명을 터트리며 나동그라진 정대식은 가시거미의 외피를 둘러싸고 있는 가시에 찔려 얼른 몸을 움츠렸다.

강화 알루미늄 방어구에 몸을 숨기듯 해서 한바탕 뒹굴고 나니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으윽......."

정대식은 신음을 흘리며 후딱 몸을 일으켰다.

언제 다시 공격이 날아들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허둥지둥, 제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전신에서 끈끈한 녹색 피가 줄줄 흘렀다.

고약한 냄새에 질겁하면서도 태세를 갖추노라니, 문득 저쪽에서 얼이 빠진 채 이쪽을 보고 있는 대원들이 보였다.

'아니? 뭣들 하는 거지?'

자신이 앞장서서 크게 한 방 먹였으면, 얼른 뒤이어 공격을 해야 할 게 아닌가.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하나같이 입을 쩍 벌리고 서서 미동이 없었다.

답답하기 짝이 없는 광경이라 정대식은 미간을 찡그렸다.

다들 멍청하게 뭐 하는 거냐는 소리가 절로 입 밖으로 튀어 나가려는 그때.

자신의 앞에 나뒹굴고 있는 가시거미의 시체가 보였다.

'으응?'

그랬다, 시체였다.

가시거미는 무슨 폭탄이라도 삼킨 것처럼 머리가 완전히 날아가 버리고 없었다.

그냥 주먹을 맞은 게 아닌, 완전히 폭사한 꼴이었다.

그 광경을 보고 이번에는 정대식이 깜짝 놀랐다.

그는 어리둥절한 채로 자신의 오른손을 내려다보았다.

'뭐야? 지금 저거, 내가 처치한 거야?'

그저 강화를 입힌 강력권 한 방을 날렸을 뿐이다.

그런데 최소한 6등급이라고 판단되는 대형종 몬스터가 단번에 죽다니!

'대, 대단하다!'

저도 모르게 자화자찬을 하고 만 정대식은 빠르게 눈을 깜박거렸다.

'이건...... 이건 뭐지? 공격력만 본다면 거의...... 5등급 수준이잖아? 겨우 스킬 두 개를 겹쳐 썼을 뿐인데 이 정도란 말이야? 돈으로 따져 봐도 겨우 2천만 원짜리에 불과할 뿐인데!'

역시, 마력과 체력을 올린 게 주효한 모양이다.

무려 10포인트씩을 한 방에 올렸더니만, 순식간에 엄청나게 강해진 것이다!

'세상에! 내가 한 일이지만 믿기질 않네.'

정대식은 얼떨떨한 채로 자신의 몸을 더듬거렸다.

가시에 찔려 다소 생채기를 입기는 했으나, 어디가 부러지거나 심각하게 다치진 않았다.

대형종 몬스터를 상대한 점을 감안한다면, 이 정도는 부상이라 칠 수도 없는 수준이었다.

그것 또한 놀랍다고 생각하며 정대식은 현질의 위대함에 몸서리를 쳤다.

처음으로 재물과 탐욕, 대가의 신 데모...... 어쩌구가 신이 맞구나 싶었다.

'이게 바로 내 능력! 내 신의 힘이란 말인가!'

입을 열었다간 헛소리가 튀어나올 것 같아 정대식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렇게 감탄사를 집어삼키고 있는 동안, 대원들 사이에서도 경악과 감탄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방금, 방금 뭐였어......?"

"저거...... 주, 죽은 거 맞지?"

"내가 지금 뭘 본 거야?"

웅성웅성.

당혹한 사람들의 말이 흘러나오는 가운데, 탱커 중 한 명이 뒤쪽을 돌아보며 말했다.

"해좌! 당신들이 도왔어요? 내가 모르는 신종 기술이라도 있나 봐요?"

해좌의 팀장이 당혹한 표정으로 팀원들을 둘러보는 가운데, 그 탱커가 어깨를 으쓱였다.

"그런 수가 있으면 좀 아껴 두지 그래요? 앞으로 뭐가 나올지 모르는데 이런 거미 따위에게 쓰기는 아깝잖아요? 이 정도는 임시 대원만으로도 충분히 처치가 가능하단 말이에요."

그가 떠드는 말을 듣고 해좌의 팀장이 팀원들을 향해 질문을 던졌다.

"난 명령한 적이 없는데. 누가 저 딜러한테 버프를 줬나?"

보조 역할을 도맡고 있는 해좌 대원들은 서로를 쳐다보며 고개를 저었다.

보기 드문 버퍼와 힐러로만 구성되어 있는 팀이었고, 인원수도 얼마 되지 않아 그들이 도운 게 아니라는 사실은 금방 밝혀졌다.

"우리가 아녜요."

"탱커한테 넣던 버프도 거둬들인 참이었는데."

"뭘 잘못 알고 있는 거 아녜요?"

해좌의 어리둥절한 반응을 보고 다른 쪽 탱커가 말했다.

"멍청아! 넌 이게 해좌의 공으로 보이냐?"

그 말에 정대식이 버프를 받아 엄청난 위력을 보였다고 착각한 쪽의 탱커가 눈을 끔벅끔벅했다.

"아냐? 그럼 방금 내가 본 건 뭔데?"

"저 사람이 해낸 거지!"

"에이, 설마. 우리 쪽 사람도 아니고, 임시 대원이잖아?"

그는 그렇게 말하며 정대식을 위아래로 훑어봤다.

외부 딜러면 그 실력이야 보나, 안 보나 빤하다는 식이었다.

그러자 다른 쪽 탱커가 정대식을 손가락질하며 말했다.

"저 사람, 보통이 아냐. 듣자하니 임시 대원들 중에 6등급 딜러가 있다던데? 저 사람이 그 사람인 모양이네."

그렇게 말하는 목소리가 어딘지 모르게 낯익었다.

정대식은 그자가 어젯밤, 황미건과 대화를 나누었던 인물이라는 사실을 눈치챘다.

그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황미건이 앞으로 나섰다.

"맞아! 저 사람이 바로 그 사람이라고."

황미건은 어울리지 않게 껄껄, 하고 아저씨 같은 웃음을 터트렸다.

"놀랠 노자로세! 내 눈으로 보지 않았다면 믿지 않았을 거야! 어떻게 주먹 한 방에 저 큰 걸 쓰러트리지?"

황미건의 하는 말로 대형종 가시거미를 쓰러트린 게 정대식이라는 사실이 확실해졌다.

아까보다 놀란 사람들의 수군거림이 더 커지면서, 황미건이 얼떨떨하게 서 있는 정대식에게로 가까이 다가왔다.

그리고 그의 등을 아프도록 퍽퍽 때리면서 말했다.

"6등급이라고는 했지만, 별 기대 안 했는데 대단하네요? 그 정도면 6등급이 아니라 한 5등급이어야 하는 거 아녜요?"

정대식은 아픔에 입술을 꿈틀거렸다.

그는 친한 척 연신 팔뚝을 쓰다듬는 황미건의 손을 밀어내며 짤막하게 대꾸했다.

"운이 좋았어요."

"이 바닥에 운이 어딨어요? 다 실력이지!"

그렇게 말을 한 황미건은 한껏 까치발을 해 정대식의 목덜미를 끌어내렸다.

그리고는 정대식의 머리를 옆구리에 끼워 헤드록을 건 채 속닥거렸다.

"방금 그건 무슨 수를 쓴 거죠? 역시 강화 버프를 써서 그런 건가요?"

"말해 줄 이유가 없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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