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
현질 전사
-2권 6화
임시 대원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각자 소속된 팀을 확인했다.
정대식과 기철민은 한 팀으로 황미건이 이끄는 황소좌 소속이었다.
황소좌는 근딜 팀이라 본디 정대식의 포지션과는 맞지 않았다.
기철민의 소개를 받아 함께 지원을 하다 보니 어영부영, 근딜 팀으로 오게 된 것이다.
하나 정대식은 그것을 개의치 않았다.
사실, 체력 수치를 40까지 올려놓은 덕분에 자신의 신체 상태가 어느 정도인지 궁금했던 것이다.
탱커는 모집하지 않았기에 몸빵이 되는지, 안 되는지 확인하려면 근딜 포지션으로 들어가는 게 최적이었다.
두 사람은 짐을 챙겨 황소좌라고 써 붙여진 버스에 올라탔다.
곧, 버스가 출발했다.
* * *
잠시 버스 안에서 졸다 보니 금세 목적지에 당도했다.
임시 대원들은 버스에서 우르르 내려, 미리 던전 입구에 대기 중이던 본대와 합류했다.
보아하니 이번 던전 공략에 동원된 팀은 총 다섯이었다.
조디악 공격대가 그 이름처럼 열두 개 팀으로 구성되어 있으니, 불과 절반도 안 되는 전력이 나온 셈이라고 할 수 있겠다.
참가 팀은 탱커 역할의 백양좌, 근딜 역할의 황소좌와 사자좌, 원딜 역할의 사수좌, 버퍼와 힐러 역할의 해좌 팀이었다.
그 외 앞서 길을 닦고 전진 기지를 설치하면서 사전 조사를 담당할 정찰, 몬스터 부산물과 이런저런 자원을 외부로 실어 나를 운송, 통신망을 구축하고 보급품을 배급·조달하는 관리 팀 등등.
따라붙는 지원 팀의 규모만 해도 엄청났다.
모두 합해 기백 명은 되는 것 같은 규모에 정대식은 입을 쩍 벌렸다.
넋을 놓고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그를 보고 기철민이 피식 웃었다.
"넌 짐꾼 생활했다면서 이런 거 첨 봐?"
정대식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같이 일반인에 불과한 짐꾼들은 안 죽으려면 하급 던전에 머무르는 수밖에는 없으니까. 상급 던전의 짐꾼들은 10등급짜리 각성자들이 대부분이야."
기철민은 눈살을 찌푸리며 바닥에 침을 탁 뱉었다.
"각성해서 기껏 한다는 게 짐꾼이라니. 난 죽었다 깨나도 그리는 못해."
정대식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그런 경우에 보통은 자신이 각성자라는 사실을 숨기지. 쪽팔린다고 생각하니까. 그래도 10등급 수준으로 몬스터 사냥은 무리야. 기껏 해야 힘이 좀 세지거나 잔재주 부리는 정도라서...... 차라리 짐꾼으로 돈이라도 잘 버는 게 낫지."
"얼마나 버는데?"
"잘 벌면 한 달에 몇천씩은 벌어 갈 걸?"
기철민은 깜짝 놀라는 눈치였다.
"뭐? 그렇게나 벌어?"
"짐꾼이라고 우습게 봤나 본데, 상급 던전의 짐꾼 수입은 어지간한 헌터 뺨치게 번다고."
기철민은 금세 태도를 바꿔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나도 짐꾼 노릇이나 할 걸 그랬나."
"퍽이나."
콧방귀를 낀 정대식은 덧붙였다.
"7, 8등급 정도면 짐꾼보단 헌터가 더 나아. 헌터는 한탕 크게 벌 수 있는 기회가 있잖아."
기철민은 투덜거렸다.
"그것도 운이 좋아야 가능한 일이지. 보통은 헌터 노릇 한답시고 장비다 뭐다, 기껏 번 돈 탕진해 버리기 일쑤라고.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일이니만큼 맨손으로 다닐 수도 없고."
"그건 짐꾼들도 마찬가지야. 상위 레벨의 던전에 다니는 짐꾼들은 헌터 못잖게 장비를 갖춘다고 들었어...... 저 봐, 여기 조디악 공격대의 짐꾼들도 마찬가지잖아."
몬스터 부산물과 채집한 자원을 실어 나를 트럭 위 짐꾼들은 얼핏 보면 헌터라고 착각할 정도였다.
트럭 위에 중기관총이 설치되어 있는가 하면, 각자 돌격 소총이나 기관단총 따위로 무장하고 있었다.
강화 플라스틱 방어구까지 갖추고 있어 얼핏 보면 무슨 대 테러 부대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그 광경을 보고 기철민이 기가 팍 죽어서 중얼거렸다.
"어째 나보다 더 장비가 좋은 거 같냐."
"짐꾼들이 죽어 자빠지면 던전에서 돈 될 만한 걸 건져 나올 수가 없잖아."
그때 저쪽에서 황미건의 목소리가 들렸다.
"황소좌 임시 대원들은 이쪽으로 모여 주세요!"
그 말을 듣고 가까이 다가가자, 황소좌 정식 대원들이 자리에 서 있었다.
그들의 수는 총 열 명으로, 임시 대원들의 수가 그들의 두 배였다.
황미건은 굳이 정식 대원들을 소개하지는 않았다.
대신에 손을 번쩍 들어 보이며 말했다.
"계약하고 나서 각자 이 황소 표식을 받으셨겠죠?"
정대식과 기철민의 손목에는 문신 같은 야광 띠가 둘러져 있었다.
손등 부분에 황소 마크가 뚜렷했는데, 정식 대원들도 똑같은 표식을 갖고 있었다.
단, 정식 대원들은 푸른색이었고 임시 대원들은 연두색이었다.
"이걸로 같은 팀인지, 아닌지를 분간할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작전이 팀 별로 움직이니까, 동료들 곁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해 주세요."
황미건은 손을 도로 내리고 말을 이었다.
"우리가 들어갈 던전은 지상의 필드형입니다. 현재, 1층까지는 사전 조사를 끝마친 상태고 베이스캠프가 마련되어 있어요. 거기에서 정찰 팀이 대기 중이니 일단 베이스캠프까지 이동할 겁니다. 그럼 여기 빈 트럭에 나눠 타고 움직이죠."
황미건이 트럭 두 대 중 하나의 앞좌석에 올라탔고, 나머지는 전부 뒤에 탔다.
정식 대원들이 먼저 나눠 타고 임시 대원들이 따라 탔다.
별로 친목을 도모하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정식 대원들은 임시 대원들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임시 대원끼리도 긴장한 탓에 아무 말이 없었다.
덩달아 정대식과 기철민도 입을 꾹 다물었다.
잠시 후, 트럭이 던전 내부로 진입해 들어갔다.
시커먼 구멍처럼 생긴 던전 입구로 차가 통과하기 무섭게 공기가 달라졌다.
마치 정글에라도 온 것처럼 습하고도 무더웠다. 사방에서 정체불명의 울음소리가 들려오는 가운데, 모두가 목을 길게 뺐다.
던전 내부의 생김을 보기 위해 시선을 돌리자 울창한 숲이 보였다.
꼭 정글을 빼다 박은 듯, 고목과 수풀과 넝쿨과 이끼가 엉망으로 엉켜 있었다.
단지 그 색채가 지구에 존재하는 장소 같지가 않았다.
붉고 푸른, 야광 식물들이 온갖 색깔을 내뿜고 있었다.
그 가운데 사전 조사를 하면서 다져 놓은 것 같아 보이는 길이 쭉 나 있었다.
그 길을 따라서 트럭들이 줄줄이 들어갔다.
베이스캠프까지의 거리는 그다지 멀지 않아, 차는 금방 멈춰 섰다.
차에서 내리자 벌목을 해 만들어 놓은 광장에 막사가 여럿 쳐져 있고, 보급품이 산처럼 쌓인 광경이 보였다.
황미건은 바삐 달려가 황소좌에게 배정된 천막으로 안내했다.
정규직과 계약직은 철저히 차별되고 있어서, 정식 대원과 임시 대원은 거주하는 공간이 달랐다.
임시 대원에게 배정된 천막에서 잠시 쉬면서 도시락을 받았는데, 모르긴 몰라도 메뉴 역시도 다를 터였다.
다들 불평할 처지가 아니었으므로 묵묵히 점심을 먹고 대기했다.
지루해진다 싶을 때쯤, 본격적으로 작전이 시작되었다.
"정찰 팀 말에 의하면, 크고 작은 곤충계 몬스터가 무작위로 튀어나올 거라고 합니다. 작은 놈들은 대부분 무리를 지어 다니고, 큰 놈들은 혼자서 어슬렁거리고는 있지만 그렇게까지 위험하지는 않다는군요. 대략 반경 30km 정도가 9, 10등급...... 간혹 8등급 수준의 몬스터가 나오는 A구역이라고 합니다. 이곳을 벗어나면 중형종의 6, 7등급 몬스터가 출몰하니 주의가 필요할 겁니다. 일단 오늘은 A구역을 돌파해 2차 베이스캠프를 설치하는 것을 목표로 하게 될 겁니다."
간단한 브리핑을 마치고 만에 하나 있을지도 모를 불상사를 막기 위하여 전체 팀이 선발대와 후발대로 나뉘었다.
선발대가 먼저 진입하고, 후발대가 하루 차이로 선발대를 뒤따라 베이스캠프를 거점으로 이동하기로 했다.
정대식과 기철민은 선발대에 속해 곧장 작전에 투입되었다.
무장을 갖춘 채로 대열을 갖추어 정글 속으로 진입해 들어갔다.
'이제 시작이군.'
정대식은 이마에서 흐르는 땀을 훔치며 다른 이들과 함께 발길을 옮겼다.
* * *
한 30분가량을 걸었을까.
앞쪽에서 정지 신호가 떨어졌다.
보아하니 정찰 팀이 무어라고 표식을 남겨 둔 모양이었다.
선발대에 속한 세 명의 팀장들이 그것을 보고 숨을 죽였다.
최대한 조용히 지나가야 한다는 수신호가 날아오고, 다들 입을 꽉 다문 채 조심스레 발길을 옮겼다.
그러나 애당초 우거진 정글에서 이만한 인원이 소리 없이 움직인다는 게 가능할 리가 없었다.
곧 사방에서 기묘한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파바바밧-! 파바바바밧-!
수없이 많은 잠자리가 나는 것처럼 어지러운 날갯짓 소리가 들려왔다.
곧 수풀을 헤치고 팔뚝만 한 잠자리 수백 마리가 날아들었다.
"우와아앗!"
타다다당!
놀란 누군가가 명령도 없이 멋대로 발포를 했다.
원딜인 사수좌 쪽에서 나온 실수였다.
당장 사수좌 팀장이 눈을 부라리며 임시 대원이 곤두세운 총부리를 손으로 내리눌렀다.
"조용히!"
다행히도 잠자리 떼는 멈추는 일 없이 선발대의 머리 위를 그냥 스쳐 지나갔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총성을 듣기라도 한 것일까, '우두두두!' 땅이 울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걸 보고 사수좌의 정식 대원 중 한 명인 마법사가 쯧, 하고 혀를 찼다.
"잘한다. 아주 사방의 몬스터란 몬스터는 다 불러 모으셨네."
실수를 저지른 임시 대원의 낯빛이 창백해졌다.
팀장은 더 이상 그를 나무라는 일 없이 신속히 지휘를 했고, 선발대는 곧 사방에서 모여드는 거미 떼를 맞아 싸우기 시작했다.
"새끼 거미들이다!"
사방에서 새카맣게 모여드는 거미들은 크기가 30cm에서 50cm쯤 되어 보였다.
아마 여기서 서식하는 중·대형종 거미형 몬스터들이 까놓은 알에서 난 놈들인 것 같았다.
그 광경을 보고 황미건이 임시 대원들을 재촉했다.
"약한 놈들이니 겁먹을 필요 없어! 근딜들, 앞으로! 모조리 밟아 죽여!"
"원딜은 대기하고 있다가 뒤로 흩어지는 놈들만 골라서 죽인다!"
빠르게 지시가 내려지는 가운데, 정대식은 반사적으로 앞으로 뛰쳐나갔다.
이 새끼 거미들은 섬뜩하게도 새카만 몸에 이빨만 희었는데, 마치 사람 이처럼 앞니가 가지런하고 송곳니가 뾰족했다.
그 위화감이 몹시 징그러워, 얼른 처치해야겠다는 생각밖엔 안 들었다.
"강화!"
정대식은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강화 스킬을 쓰면서 절로 거기에 마력이 모여들었다.
그는 강화 알루미늄 방어구를 사면서 함께 구입했던 장갑을 끼고 있었다. 손등 뼈에 강화 알루미늄이 붙어 있어 주먹질을 해도 다칠 염려가 없었다.
"으럅!"
정대식은 강화된 주먹을 무식하게 휘둘렀다.
가볍게 잽을 날렸을 뿐인데, 그의 주먹에 직격한 새끼 거미가 '퍽!' 하는 소리를 내면서 터져 나갔다.
'허어, 이거 느낌도 없잖아?'
무슨 물풍선을 친 것처럼 정대식에게는 아무런 타격이 없었다.
9, 10등급 수준의 하급 몬스터인지라 상대하기가 쉬웠다.
아마 체력 포인트를 올린 탓에 공격력이 강화된 탓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