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질 전사-30화 (30/297)

# 30

현질 전사

-2권 5화

* * *

송시건이 말한 팀장이라는 인물은 조디악 공격대에서 황소좌라 불리는 딜러 팀을 도맡은 인물이었다.

놀랍게도 작고 아담한 체구의 젊은 여자로, 정말이지 안 어울리는 대검을 등에 걸머메고 있었다.

대검이 어찌나 무식하게 생겼는지, 그 위에서 철판 요리를 해도 손색없겠다 싶을 정도였다.

여자 키보다 검날이 더 길 정도라, 손잡이가 정수리 너머에 삐죽이 솟구쳐 올라와 있었다.

들고 다니는 것조차 버겁겠다 싶은 와중, 그 여자가 입을 열었다.

"당신들이 이번 작전에 지원하겠다고요?"

"그렇습니다."

기철민이 공손하게 답하자 여자가 질문했다.

"두 사람 다, 7등급 이상이죠? 포지션은 딜러가 확실하고."

"여기 이 사람은 버퍼도 가능합니다."

"흐음, 그래요?"

기철민이 정대식에 대해 한마디를 덧붙였으나, 여자는 귀담아 듣는 눈치가 아니었다.

별스럽지 않게 넘겨 버리는 바람에, 원래는 원거리 딜러라는 말은 덧붙일 수도 없었다.

"알다시피 이건 던전 공략을 하러 떠나는 거라서 중도 포기는 있을 수 없어요. 만약에 도중에 돌아가겠다고 나서면 그 어떤 지원도 해 주지 않습니다. 보급품을 전부 반납하고 위약금을 지급하겠다는 내용에 동의하셔야 해요. 당연히 목숨도 보장해 줄 수 없고요. 단,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부상에 대한 치료는 저희가 지원해 드립니다. 그렇지만 후유증까지는 책임져 주지 않아요. 모든 지원은 던전 내부로 국한됩니다."

기철민과 정대식이 고개를 끄덕끄덕하자 그녀가 계약서를 내밀었다.

"자세한 내용은 여기에 있으니까 상세히 읽어 보시고요. 서명 후에 제출은 저쪽에 저희 공격대 법무 팀으로 가서 제출하시면 돼요. 아! 그 전에 스테이터스 측정부터 하셔야 해요. 저희 기준은 방금 말씀드렸다시피 7등급이에요. 그 이하 수치가 나오면 지원하실 수 없습니다. 평소 수치가 어쨌든 상관없이 여기서 재는 게 7등급이 아니면 안 돼요! 6등급 이상부터는 인센티브가 붙어요. 그 내용도 계약서에 있으니까 확인해 보시고...... 팀 배정은 나중에 바뀔 수 있습니다."

정신없이 다다다 말을 쏟아낸 여자는 송시건을 재촉했다.

"뭐 해? 어서 데려가지 않고."

"아, 예."

송시건은 붐비는 사람들 틈바구니를 뚫고 그들을 간이 막사로 데리고 갔다.

거기가 딜러를 모집하는 장소인지, 스테이터스 측정 기기와 간단한 건강 검진과 백신 접종을 위한 의료진, 계약서를 접수 중인 법무 팀이 바쁘게 일하고 있었다.

송시건은 그들을 거기에 데려다주고 그냥 가 버렸다.

그 바람에 정대식과 기철민은 다소 허둥거린 끝에 스테이터스 측정을 위한 줄을 찾아 늘어섰다.

잠시 후, 차례가 되어 기철민이 먼저 측정을 시작했다.

그는 다소 긴장한 눈치로 기기의 손잡이를 붙잡았다.

짧은 시간이 흐르고 결과가 금세 나왔다.

화면에 표시되는 등급을 보고 담당자가 미간을 찌푸렸다.

"8등급 나오셨습니다. 참가 안 됩니다. 다음 분!"

기철민은 당황해 말했다.

"잠깐만요, 나 7등급 확실한데? 이거 기계가 이상한 거 아녜요?"

기철민 같은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는지 담당자는 짜증을 부렸다.

"기기는 멀쩡하거든요. 순서 밀리니까 비켜 주세요."

"한 번 더해 봅시다. 8등급일 리가 없어요."

"안 됩니다. 비켜요."

"한 번 더해 보자니까요!"

기철민은 담당자와 옥신각신한 끝에 스테이터스 측정을 한 번 더했다.

다행히 이번엔 결과가 7등급으로 나왔다.

간신히 턱걸이를 하는 수준이기는 했으나, 어쨌든 지원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기철민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런 기철민 다음으로 정대식이 스테이터스 기기 위에 올랐다.

스테이터스 측정은 일전에 헌터 자격증을 발급받기 위해 잰 이후로는 처음이었다.

과연, 등급이 얼마나 나올지 긴장되는 가운데 결과가 떴다.

기철민은 입을 쩍 벌렸다.

"6등급!"

"와!"

그의 스테이터스 등급을 보고 뒤에 늘어서 기다리던 사람들이 감탄사를 흘렸다.

공격대에 소속되지 않고 떠돌아다니는 헌터들 중에서 6등급은 보기 드물었다.

위험을 무릅쓰고서라도 솔플을 고집하는 특이 성향이 아니라면, 대부분 공격대에 속해 있기 마련인 것이다.

사람들이 쑥덕거리는 가운데, 기철민이 시기 어린 말투로 중얼거렸다.

"나한테 수수료 10% 떼 줘도 됐겠네."

정대식은 별말 하지 않았다.

6등급 정도가 나오지 않을까, 이미 기대하고 있던 바였다.

요전번에 6억 5천만 원 넘게 써서 능력치를 높여 놓았으니, 6등급이 나온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스테이터스 출력표를 받아 든 두 사람은 기본적인 건강 검진을 받고 이런저런 백신을 접종했다.

그런 뒤 사인한 계약서를 제출하고 사본을 받았다.

마지막으로 손목에 조디악 소속임을 뜻하는 표식을 받았다.

이로써 조디악 공격대의 임시 대원이 된 것이다.

그들은 자리를 이동해 몇 가지 보급품을 수령했다.

간단한 비상식량과 오염된 물을 정수시켜 주는 정화석, 휴대용 산소마스크와 체내형 통신기, 마크 스프레이, 신호탄, 야광봉, 라이터, 와이어, 물통, 침낭 등등, 던전 안에서 생존을 위해 필요한 기본적인 물품이 들어간 배낭과 지혈, 해독, 해열용 포션, 화염 내성, 빙속 내성, 신속, 은신 스크롤, 사냥칼, 권총 등등이 부착된 가슴 벨트였다.

과연, 대형 공격대답게 보급품이 빵빵했다.

그것들을 일일이 확인해 보고 있던 정대식은 가슴 벨트 옆 부분에 조그만 약통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하나는 빨간약이었고, 다른 하나는 파란약이었다.

정대식은 기철민에게 그것의 용도를 물었다.

"이건 뭐지?"

기철민은 간단히 대꾸했다.

"빨간 건 폭주용, 파란 건 자살용."

"뭐라고?"

정대식의 반문에 그는 다소 성가신 듯이 몇 마디 설명을 덧붙였다.

"그 두 가지는 진짜 비상사태, 즉 목숨의 위기가 닥쳤을 때나 쓰는 거야. 빨간약을 먹으면 버서커화가 되어서 비정상적인 힘을 쓸 수 있게 돼. 단, 쓰고 나면 후유증이 어마어마하지. 거의 반병신 된다고 보면 돼. 그리고 파란약은 빨간약으로도 안 될 때 쓰지. 한 입 깨물면 그대로 즉사다. 식육 식물 체내에 갇히거나 몬스터한테 조금씩 뜯어 먹히게 생겼거나, 아무튼......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 싶을 때 써."

기철민의 말을 듣고 나니 이번 일이 얼마나 위험한지가 확 실감이 났다.

어디까지나 살아서 부자가 되는 것이 정대식의 목표였으므로, 이제라도 계약을 물려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저보다 더 약한 기철민이나, 그 외 7등급 헌터들도 도전하는 일이다.

잘만 하면 대박이 터질지도 모르는 기회였기에, 여기서 발을 뺄 순 없었다.

'그래, 시작도 하기 전에 겁먹을 필요가 있나.'

정대식은 마음을 굳게 먹고 장비를 챙겼다.

채비를 다 끝마친 헌터들에게는 도시락이 지급되었다.

소불고기가 들어간 호화판 도시락을 까먹고, 요구르트에 초코파이까지 하나 받아먹고 나니 비로소 임시 대원 접수가 끝마쳐졌다.

곧, 브리핑이 시작되었다.

행사용 트럭에 설치된 전광판 앞에서 아까 정대식과 기철민이 만났던 황소좌의 팀장이라는 여자가 간단히 자기소개를 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여기 모집된 임시 대원들을 인솔할 딜러 팀 중 하나인 황소좌를 도맡고 있는 황미건이라고 합니다."

무뚝뚝하게 이름만 밝히는 것으로 자기소개를 끝내 버린 그녀는 곧장 본론을 시작했다.

"오늘 우리가 들어가야 할 곳은 경기도 고양시, 일산 호수에 새로이 생겨난 던전입니다. 이 던전의 정식 명칭은 GO8D로, 사전 조사에 의하면 곤충 형태의 몬스터가 출몰하는 곳입니다."

곧 전광판의 화면이 바뀌며 촬영해 온 몬스터의 모습이 떠올랐다.

시커먼 털이 빽빽하게 나 있는, 대형견만 한 크기의 거미형 몬스터였다.

"종류도 다양해서 거미줄로 먹잇감을 억류할 뿐만 아니라, 독침을 쏘거나 갈고리같이 끝이 날카로운 여덟 개의 다리로 공격하기도 하고, 보다시피 끔찍한 모양새의 턱으로 물어 죽이기도 합니다. 지극히 조심할 필요가 있겠죠."

다시 화면이 넘어갔다.

이번엔 개미와 유사한 몬스터로, 크기는 작았지만 그 수가 굉장히 많았다.

"이 역시 GO8던전에 서식하고 있는 몬스터입니다. 개미처럼 무리를 지어 움직이죠. 이놈들에게 한 번 포위되면 뼈도 추릴 수 없는 모양이더군요. 이 외에도 애벌레, 사마귀, 지네 등등...... 아주 다양합니다."

곧 화면이 꺼지고 황미건은 힘을 주어 말했다.

"물론 이 자료는 사전 조사로 밝혀진 내용으로, GO8던전에 대한 극히 일부 사항일 뿐입니다. 던전의 깊은 곳에서는 더 흉악한 몬스터들이 득시글거릴 겁니다. 그러니 임시 대원 여러분께서는 저희 조디악의 정식 대원만큼이나 사명감을 가지고 성실히 작전에 임해 주시기 바랍니다. 모든 것은 각자 소속될 팀의 팀장이 지정해 줄 겁니다. 그 명령에만 충실히 따른다면, 여기 있는 전부가 무사히 살아 나올 수 있을 것입니다."

근거 없이 막연한 희망을 던지는 말이었다.

뻔한 소리에 불과해 정대식은 황미건이 하는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황미건도 그 사실을 알고 있는지 길게 말하지 않았다.

"그럼 브리핑이 끝나고 나서 발표될 각 소속 팀을 확인해 주신 뒤, 그 팀의 이름이 붙어 있는 버스에 올라타시면 됩니다. 마지막으로...... 간단히 헌터의 구호를 외치고 끝마치겠습니다."

정대식은 짧게 의문했다.

'헌터의 구호라니?'

그때, 정대식이 익히 들었던 외침이 터져 나왔다.

"신에게 선택받은 자들! 이계의 존재를 처단하라!"

황미건이 외친 그 말을 모인 헌터들이 일제히 소리쳤다.

"그리하면 힘을 얻게 될지니!"

"우리는 헌터다!"

"헌터다!"

"우리는 사냥한다!"

"사냥한다!"

"고로 존재한다!"

"존재한다!"

또 그거다.

헌터 사이를 휩싸고 도는 기이한 열기.

다들 무슨 아이돌 콘서트 장에라도 온 것처럼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황미건 역시도 무슨 선거 유세를 펼쳐는 것처럼 목청을 높였다.

심지어는 기철민도 목에 핏대를 세운 채로 발을 굴러 댔다.

오로지 정대식만이 어리둥절한 채 입을 다물고 있었다.

그는 좌중의 열띤 분위기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냥 예전에 헌터들이 똑같은 말을 외칠 때 느꼈던, 뭔지 모를 기분으로 가슴이 울렁거릴 뿐이었다.

"감사합니다."

예의 헌터들의 구호라는 걸 끝마친 황미건은 곧 고개를 숙여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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