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
현질 전사
-2권 1화
Chapter 8. 상승세
이미 소문이 먼저 도착했는지, 몬스터 처리소는 주차장을 전부 치우고 방수 패드를 널찍하게 깔아 두고 있었다.
만일 그냥 지나치기라도 했다간 원망을 한 바가지 들을 기세였다.
사실 정대식은 돈을 더 많이 쳐주는 곳을 알고 있었다.
몬스터 처리소는 던전에서 거리가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가격을 낮게 책정했다.
돈을 더 받고 싶으면 먼 데 자리한 곳으로 가면 된다.
하지만 그만큼 운송료가 들뿐더러 이 많은 몬스터 부산물을 싣고 시내를 가로질러 가는 것도 마뜩치 않은 관계로, 그냥 그 처리소로 들어갔다.
"어서 오세요!"
평소엔 데스크에 앉아 고개만 까닥이던 직원들이 버선발로 뛰어서 마중을 나왔다.
손을 싹싹 비벼 대며 연신 굽실거리는 직원에게 정대식은 고개를 까닥해 보이고는 말했다.
"케르베로스 사체를 처리하고 싶은데요?"
"예에, 이야기는 익히 들었습니다. 정산할 준비를 해 두었으니 이쪽으로 오시지요."
짐꾼들은 방수 패드가 깔려 있는 주차장에서 짐을 부렸다.
정대식은 눈을 부릅뜨고 직원들이 부산물을 감정하는 광경을 지켜보았다.
양이 많아 시간이 한참 걸렸지만, 일일이 뒤를 따라다니며 가격이 적당한지, 아닌지 까탈을 부려 가며 따져 보았다.
"지금 천만 원이라고 했습니까? 케르베로스 한 마리 죽여서 나오는 눈알 개수가 겨우 여섯 개인데, 하나에 천만밖에는 못 쳐주겠다고요?"
"그것이...... 보기가 좋아서 수집가들이 선호하는 품목이긴 합니다만, 실질적으로 쓰이는 데가 없어서요. 가격은 천만 원이 최대치입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게 가격이 천만 원으로 딱 떨어질 수가 있어요? 몬스터 부산물 감정 평가 페이지를 보면, 케르베로스 눈알 하나의 가격이 1,130만 원가량입니다. 그런데 130을 더 깎겠다고요? 지금 장난합니까? 이런 식으로 할 거면, 부산물 다 싸 들고 그냥 갈 겁니다. 다소 부패가 되어 손해를 본다 하더라도 그게 낫겠어요."
"대신에 아까 발톱에 대해서는 높은 가격을 쳐 드리지 않았습니까? 5%를 더 얹어 드렸는데......."
"가죽 가격은 형편없었잖아요! 아무리 가죽이 좀 상했기로서니 완전히 날강도나 다름없는 가격을 매겨 놓고선......."
결국 정대식의 성화에 직원들은 울상을 한 채로 감정 평가를 끝냈다.
몇 시간이나 그에게 시달린 탓에, 이윽고 종합 가격이 나왔을 때는 다들 얼굴에서 피로가 뚝뚝 떨어졌다.
이미 해가 까무룩 져 밤늦은 시간이었으나, 정대식의 괴롭힘으로 초과 근무를 한 것이다.
심지어는 정산을 받아 가야 할 파티원들도 지겨워 죽겠다는 표정으로 처리소 한구석에 노숙을 하고 있는 판국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정대식은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꼼꼼하게 감정 평가서를 확인해 보았다.
이윽고 세금을 제하고 난 정산 금액을 확인하여 사인을 했다.
"총 가격 6,398,744,334원. 확인했습니다."
"예, 여기 영수증 있고요. 잠깐만 기다리시면 입금이 될 겁니다. 그럼 다 끝난 거지요?"
"입금 확인까지 다 하고요."
1분 만에 입금은 금세 완료가 됐다.
아까 직원이 어디론가 열나게 전화를 걸어 대더니만 칼같이 입금이 된 것이다.
"이제 됐죠?"
다 됐으면 제발 꺼지라는 표현을 완곡하게 돌려 말하는 직원을 보고 정대식은 마침내 고개를 끄덕였다.
"예, 다 됐습니다. 그럼 수고하셨습니다."
"네네, 살펴 가세요."
다음에 또 오라는 말을 으레 할 법도 한데 그 직원은 그러지 않았다.
오히려 정대식이 가고 나면 소금이라도 한바탕 뿌릴 기세였다.
지나치게 까탈을 부렸나 싶어서 정대식은 입맛을 쩝 다셨다.
보통 헌터들은 워낙에 거금을 만지다 보니, 이런 정산에는 다소 널널한 편이다.
아마 정대식 같은 손님은 처음이었을 것이다.
다음부턴 적당히 해야겠다고 생각하며 정대식은 파티원들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약속한 대로 제 몫을 놔두고 나머지를 공평하게 분배해 주었다.
그러자 다들 침묵한 채 휴대폰을 들고 모바일 뱅킹으로 입금된 금액을 확인해 보았다.
그러고도 한참 동안이나 말이 없었다.
모두 통장에 찍힌 액수를 믿기지 않아 하는 눈치였다.
그 마음이 십분 이해가 가, 정대식은 괜히 뿌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러는 정대식을 향해 원딜 중 한 명이 꾸벅 고개를 숙여 보였다.
"고맙다, 네 덕분에 큰 수입을 올릴 수 있었어."
덩달아서 다른 딜러들도 정대식에게 감사를 표시했다.
"나도 고마웠어. 솔직히 이게 웬 횡재인가 싶어서 얼떨떨하네."
"이렇게 큰돈 만져 본 건 난생 처음이야. 고마워."
"이제 빚 다 갚을 수 있겠다. 정말이지...... 고맙다."
다들 정대식을 둘도 없는 은인 대하듯이 해, 좀 머쓱해졌다.
분위기가 그렇다 보니 곧장 헤어지기도 뭣해서 뒤풀이 겸 인근의 고깃집으로 갔다.
그들은 자리에 앉아 식사를 즐기면서 그 돈으로 뭘 할 것인지 각자 계획을 늘어놓았다.
"난 그냥 이 돈 가지고 은퇴할래. 고향에 가서 아파트나 한 채 사고 상점이나 열어야지."
"은퇴하기에는 좀 부족하지 않아? 난 새로 장비 마련해서 몇 년 더 바짝 벌어 보려고."
"그래도 다들 빚은 없나 보네. 난 드디어 빚 탕감할 수 있게 되어서 속이 다 시원하다. 이제 두 발 쭉 뻗고 잠 좀 잘 수 있겠어."
제각기 하는 말들을 들어 보니 각자의 사정이 있고, 꿈이 있고, 목표가 있었다.
거기에 자신이 한몫 거들어 주었다 생각하니 정대식은 은근히 뿌듯했다.
"파티장은 앞으로 어떡할 거야?"
그러던 중, 문득 질문이 날아들어 정대식은 반문을 던졌다.
"나 말이야?"
"그래. 우리 중에 제일 많이 벌었잖아...... 아, 트리플한테 그 정도는 껌 값인가?"
한바탕 웃음이 터지고 정대식도 덩달아 웃었으나 속으로는 쓴웃음을 지었다.
오늘 그가 벌어들인 금액은 10억 가량이었다.
이른바 중산층의 기준이라는 금액을 달성한 것이다.
어찌 보면 기념비적이라 할 만한 액수였으나, 이후 현질해야 할 금액을 생각해 보니 그리 기쁘지만은 않았다.
'분명히 오늘 벌어들인 돈 정도는 순식간에 사라져 버리겠지. 기술 업그레이드 한 번 하면 그냥 날아갈 금액이라고.'
잠시, 헌터 일을 접을까 하는 유혹이 들었다.
10억 정도면 지방 소도시에 작은 상가 건물 하나 정도는 구할 수 있을지 모른다.
1, 2억쯤 빚을 진다 하더라도 꾸준한 수입이 있으면 금방 갚을 수 있었다.
어차피 일 안 하고 놀고먹을 것도 아니고, 상가 중간에 편의점이라도 하나 열어서 달세까지 받아 챙기면 먹고살 걱정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본전 생각이 났다.
여태까지 현질을 하느라 쏟아부은 돈이 꽤 됐다.
10억 정도로는 성공적인 투자를 했다고 볼 수 없다.
좀 더 뽕을 뽑아야 한다고 다짐하며 정대식은 짧은 갈등을 뿌리쳤다.
'당분간은 돈을 좀 써 가며 현질로 능력을 키운다. 그러고 나면 이깟 10억쯤은 진짜 껌 값일 걸? 이왕 버는 거, 팍팍 버는 거야. 하루에 10억이면 열흘엔 100억! 한 달이면 300억! 여기서 그만두긴 아깝지. 더 벌어야 서울을 벗어나지 않고도 건물주로 살 수 있단 말이야.'
식사를 끝마치고 정대식은 파티원들과 헤어졌다.
품속에 10억이라는 돈이 있었지만 그는 오늘도 버스를 탔다.
버스에 몸을 싣고 달리면서 정대식은 상점 창을 면밀하게 검토해 보았다.
그가 보는 상점이나 상태, 기술 창 등등이 그의 눈에만 보일 뿐, 다른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덕분이었다.
단, 엔트로피에게 하는 말은 주변에 들리는 관계로 그를 불러내지 않고 혼자서 어떡해야 10억이라는 돈을 가장 효율적으로 쓸 수 있을지를 궁리해 보았다.
'일단은 마력을 더 키울 필요가 있어. 기술의 개수가 늘어나니까 마력량이 부치더란 말이지. 그다음은 당연히 체력이다. 몸이 바탕이 되어야 사냥을 하든지 말든지...... 그러고 나서가 스킬이겠지? 스킬은 뭘 사는 게 좋을까? 공격력을 올리는 걸 사야 하나?'
정대식은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니야, 어차피 내 입장에서 원딜 포지션은 중요도가 떨어져. 어차피 공격력이야 마력이나 체력을 올리면 같이 올라가는 거니까, 차라리 힐 쪽을 더...... 아니지, 변화계는 마력을 많이 잡아먹는다고. 그보다는 내 방어력을 올리는 게 나을지도 몰라. 그럼 나한테는 강화를 덜 써도 되니까, 마력을 좀 아낄 수 있겠지. 안전도 높일 겸해서 말이야. 일단은 살고 봐야 돈도 벌 수 있지 않겠어?'
요모조모 따져 보니 역시 강철 신체만 한 게 없는 것 같았다.
'이거라면 탱커의 역할을 보다 잘 수행할 수 있다. 근딜이라는 또 다른 포지션 역시도 소화 가능해지고, 방어력이 올라간다는 게 무엇보다 마음에 들어. 다른 사람에게 목숨을 맡기는 건 내키지 않는 일이니까. 결국에는 망가지고 말 방어구에 돈을 투자하기보다는, 차라리 이 패시브 스킬을 사는 게 더 낫겠지. 뭣보다 가격이 싸잖아?'
스킬의 레벨을 올리는 건 돈이 10억이나 들지만, 일단 사들이는 것까지는 저렴한 편이다.
천만 원만 있으면 되니까 스킬은 투자해 둘 만했다.
'좋아. 일단 강철 신체를 사는 거다. 그다음 마력과 체력을 적절히 높이는 방향으로 하자.'
* * *
정대식은 여관방에 도착하기가 무섭게 엔트로피를 불러냈다.
"엔트로피!"
<부르셨습니까?>
허공에 둥둥 나타난 엔트로피는 언제나 그렇듯이 시큰둥한 표정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정대식은 돈을 쓸 때만 느낄 수 있는 흥분 속에서 말을 이었다.
"현질을 하겠어."
<그러시겠습니까?>
"일단 강철 신체를 구입하겠다."
<강철 신체 스킬을 구입하고 천만 원을 차감합니다.>
"그다음으로 마력을 10포인트, 체력을 10포인트 사지."
<마력을 10포인트, 체력을 10포인트 구입하고 6억 4,300만 원을 차감합니다.>
정대식이 또 트집을 잡기라도 할까 봐 걱정스러웠는지 엔트로피는 묻지도 않았는데 설명을 덧붙였다.
<포인트 증가액이 천만 단위가 된 후부턴 포인트 금액이 1천만 원 씩 인상됩니다. 포인트 증가액이 억 단위가 된 후부터도 마찬가지입니다. 1억 씩 인상됩니다.>
포인트 금액이 계속 100만 원씩 상승하지 않으리란 정도는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
아마도 1천만 원이 되면 2천만 원, 3천만 원으로 증가하지 않을까 예상한 게 적중한 것이다.
정대식은 대답 대신 코를 후비적거렸다.
그리고 상태창을 열어 마력이 35, 체력이 40으로 뛰어오른 것을 확인했다.
'이 정도면 어디 가서 꿀리진 않겠지? 스킬을 마구잡이로 써 대도 마력량이 부족하다 느껴지지는 않을 거야. 체력도 마찬가지고. 체력은 나중에 헌터 일을 관두고 나서도 적잖이 도움이 되겠지.'
이쯤 되니까 자신의 체력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가 궁금했다.
물론 헌터들이야 5등급을 넘어가면 워낙에 괴물 같은 놈들이 많았다.
그런 사람들과 헌터가 된 지 얼마 안 된 자신을 비교하는 것은 무리다.
그러나 보통 사람들에 비하자면 체력이 30인 수준에서도 에너자이저라 할 만했다.